류응렬 목사 I 야고보서 1장 19-27절 I 살아있는 믿음은 생활을 바꾸어 놓습니다 I 믿음 3
류응렬 목사, 야고보서 1장 19-27절, 살아있는 믿음은 생활을 바꾸어 놓습니다., 믿음 3,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류응렬 목사, 야보고서 강해, 야고보서 1장 19-27절 설교, 야고보서 1장 19-27절 설교문, 2022년 7월 24일 와싱톤중앙교회 주일예배
살아있는 믿음은 생활을 바꾸어 놓습니다.
- 와싱톤중앙교회 류응렬 목사 -
데이비드 브룩스가 쓴 '두 번째 산'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산을 올라가는 사람들, 첫 번째 산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기 자신의 행복, 자신의 명예, 자아실현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나은 것을 얻어야 그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이들이 정상에 오르게 되면, 언젠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정말 추구했던 것이 이런 삶이 맞는가? 그때부터 인생의 고민이 시작이 됩니다. 그때에 비로소 눈이 열려서 다른 세상, 제 두 번째 산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산이라는 것?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추구할 때 내 삶도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을 깨닫는 삶입니다. 첫 번째 삶이 자기 행복, 자기 성취를 추구한다면, 두 번째 산은 다른 사람의 행복, 다른 사람의 유익을 추구할 때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첫 번째 산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깨닫는 것 한 가지는, 모든 삶이 내 중심, 내 자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두 번째 산. 예수님이 먼저고 타인이고 내가 마지막이라는 것. 세상에는 그렇게 멋지게 살다가 변화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은 두 번째 산을 추구하다가, 마지막에 만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연하지요, 예수님이야 말로 하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당신의 삶을 드린 사람. 진짜 두 번째 산을 살아냈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야고보는 이렇게 두 번째 산을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어서 내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어서 내 중심의 사고,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삶. 하나님이 사랑하신 사람을 향한 삶. 변화된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세 가지의 변화를 말씀하시는 데 첫째로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말에 대한 변화. 그리고 이 말을 삶으로 실천하는 행동에 대한 변화.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마음 자세, 고아와 과부를 대하는 경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말할 때 분노하지 마라, 성내지 마라' 여러분 언제 사람이 화를 낼까요?
1. 말하고 듣는 자세를 바꾸어라.
첫 번째 변화입니다. 말하고 듣는 자세를 바꾸어라. 하나님 앞에 정말 변화된 사람. 타인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첫 변화는 말입니다. 들을 때나 말할 때나 변화된 삶을 보이라. 먼저 하지 말아야 할 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해야 할 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먼저 '속히 말하는 것, 성내고 분 내면서 말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해야 될 것은? '깊이 상대를 배려하면서 온유함으로 말하라'라고 합니다. 오늘 야고보가 들려주는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야고보서 1:19-20,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왜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지요.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 역시도 말씀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말씀으로 오셨고, 하나님이 저희를 보여 주시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는 것도 가장 중요한 것이 말씀을 통로 삼아서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 합니다. 말씀의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말씀 속에 하나님의 모든 것들이 들어가 있고 말씀 속에 사람의 인격, 품성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의 말씀을 그토록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오늘 어떻게 부탁을 합니까? "말씀을 들을 때는 속히 하고, 말할 때는 천천히 하라." 야고보는 "자기 의사를 조금 더 빨리 확실하게 밝히라."라고 말하는 오늘의 시대와 다른 가르침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을 적게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에요. 말을 잘 듣는 경청하는 모습으로 대화를 하라는 것입니다. 마이콜 니콜라스라는 심리학 교수님이 쓴 '듣는 것 만으로 마음을 얻는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35년 동안 상담치료를 하면서 사람들의 인간관계에서의 일어나는 문제의 핵심에는 듣는 것에 있다고 강조해요. 다들 듣기는 듣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을 하는 것에 집중하려 들으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자꾸 자기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들으면서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고, 그 말씀을 들으면서 뭔가 자기의 경험이 있으면 그때 또 끼어 들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아무리 좋은 것을 듣고, 좋은 것을 읽어도 그것이 내 자양분이 되지 못하고 내 생각을 가지고 그 말을 판단하면서 듣게 되면, 더 이상 변화도 발전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듣기는 속히 하라."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들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겠지요?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무슨 말씀을 하실까? 성경 읽기가 그것입니다. 말씀을 읽는다는 것은? 그분이 나의 주인이기 때문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보이지만 하나님께 내 뜻을 고하고 나면,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들어야겠지요? 하나님이 말씀하실 수 있는 기회를 주셔야 되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의 의미는 내 뜻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기도의 본질, 성경 읽기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잘 듣는 것이 시작이라면, 말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한 실천 덕목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말하기를 더디하라." 영국의 수상 처칠이 한 말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삼켜서 채하는 법이 없다." 우리 교회 권사님과 장로님들께 늘 하는 부탁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말을 줄이고 입은 닫고 지갑을 여세요. 그래야 실수를 줄이고 존경을 받는다."라는 말입니다. 내 언어생활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 말이 사람을 세우는 말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말로 말미암아 긴장을 조장하고 불화를 조장하거나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지 않는가.. 일본의 파동 연구가 중에 '에모토 마사루'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펴 놓은 것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참 중요한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똑같은 물 컵에 식물을 담아 놓고, 한 물컵에는 "사랑한다. 소중하다."와 같은 아름다운 말을 계속합니다. 그러면 그 물은 육각형의 아주 아름다운 결정체를 만들어 내고, 거기서 자라난 식물은 아름답게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컵에는 "짜증 난다. 밉다."와 같은 독설을 쏟아내었더니 똑같은 물이었어도 찌그러진 결정체의 모습을 띨 뿐만 아니라 그 컵에 담겨 있는 식물은 올곧게 자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은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70%나 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람이 말을 받을 때에 우리의 정신 작용을 통해서 듣지만, 70%가 넘은 물로 구성된 인간은 자연스럽게 말에 대한 반응이 끼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영향을 말에서 받겠어요?
잠언서의 말씀도 보면, 말에 대해서 만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잠언 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마음에도 달고 뼈에도 양약이 되는 원천이 무엇입니까?' 선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된 사람이 가장 첫 번째 변화된 특징으로 꼽는 것이 말씀을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 실생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야고보가 이 말씀을 했다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여러분, 야고보가 누구지요? 예수님의 동생이에요. 예수님이 그토록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때는 귀 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경험하고, 부활하신 주님과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지기 시작합니다. 야고보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들까요? '조금 더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면 내 삶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내가 살아있을 때, 형이 살아있을 때 형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하면서 야고보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았을 것입니다.
똑같이 많은 말을 하고 살아가는 성도님들, 우리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가는 순간, 마지막 순간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하는 후회 중 하나가 좀 더 따스하게 말할걸.. 사랑한다는 말을 할걸.. 사람을 세우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말할 때 하는 특별한 부탁이 계속해서 나오지요. " 여러분 사람이 언제 화를 낼까요? 내가 중심이 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 분노입니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내 생각처럼 사람이 말을 받아주지 않을 때.. 모든 것이 다 내가 주인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한 대학교에서 분노에 대한 연구를 한 것이 있습니다. 스트레스와 분노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서양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나타나면 나타나는 결과가 우울증이라던가, 사람을 기피하든가, 불안으로 나타나는데 한국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1순위로 나타나는 것이 분노라는 결과입니다. 2021년 발생한 폭력 범죄의 40%가 자기도 모르게, 우발적으로.. 분노를 참지 못해서 발생한 경우였다고 해요. 에베소서 4:26-27,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7
'분을 내어도'라는 것을 보면, '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단계로까지는 가지 마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마라.' 왜냐하면, 분을 오랫동안 품고 있다면 마귀가 틈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분노를 일으킬 수 있지만, 그렇게 반응하지 말라. 왜 하루가 분을 품지 말라고 할까요? 내일의 삶은 우리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하루의 삶 속에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있다면, 그 불편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우리는 화를 내고, 급하게 말을 하게 될까요? 다 자기중심적인 생각. 첫 번째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면, 달라지게 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떤 말을 들어도 여유 있게 듣게 됩니다. 불편한 말을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이를 변화시킬 것을 기도하게 되고,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늘 강조하는 것이 있는 것이 있지요? 정말 신앙이 좋은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나요? 교회에 열심을 내는 것은, 참 필요한 일이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성품을 가리키는 일입니다. 신앙성품, 신앙인격이 형성되어 있는가? 두 가지 중요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일을 대하는 태도, 자기 생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다른 하나가 언어입니다. 말을 통해서, 말의 쓰임을 통해서 그의 신앙의 척도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사람의 언어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사람의 말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말씀을 합니다. 야고보서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 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여기서 '온유함'이라는 단어 하면 떠오르는 성경의 인물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하니라'(민 12:3). 사실 모세의 성격을 가만히 보면 온유함이라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습니다. 동족을 해한다고 애굽 사람을 쳐 죽이기도 했던 혈기 많은 사람. 기도하고 내려왔더니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고 있는 모습을 본 후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금송아지를 갈아서 먹였던 사람 아닙니까? 왜 이런 사람을 가리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할까요? 히브리어로 '온유'는 '아나와'입니다. 본래 이 단어는 '겸손함, 내 자신을 죽이는 것, 자신을 낮추는 것'을 말해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주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낮출 수 있는 사람을 가리켜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랬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드린 이후, 오직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드린 사람입니다. 누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온유함으로 드릴 수 있을까요? 그분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을 신뢰하고, 정말 믿고 맡기는 사람입니다.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이 정말 그런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가? 그런 자세로 받는 사람이 그렇게 말도 할 수 있는 거예요.
2.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삶을 보여라.
말씀을 받아들였을 때, 두 번째로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말씀을 듣고는 행하는 삶을 보여라' 말씀을 들었다면, 그 말씀을 가장 잘 들을 것에 대한 반응이라면,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고 조리 있게 논리 있게 정리하는 것 다 중요합니다. 결국 말씀을 잘 들은 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훌륭한 아들이겠지요? 설교를 가르치면서도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말 뛰어난 설교자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잘 풀어내고 감동적으로 전하는 것. 다 귀한 일입니다. 최고의 설교라는 것은? 성도들의 머릿속에 가치관이 바뀌고 손과 발이 바뀌어져서 예배당 문을 나서면서 정말 말씀대로 살아가게 만든 것.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설교가 최고의 설교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살아있는 믿음이 가져오는 행동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야고보서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듣기만 하고, 말씀을 행하지 않는 자'를 '자신을 속이는 거'라고 해요.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 말씀을 듣고 잘 깨닫고 이해를 하면, 말씀을 바르게 이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말씀을 듣고 행해야 그게 진짜 말씀을 듣는, 깨닫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들었는데 행함이 없는 것을 두고, 거울을 보는 사람의 비유를 합니다. 거울을 본 것처럼 말씀을 보았는데 돌아서기만 잊어버리는 사람. 우리는 거울을 보면, 얼굴이 생생하게 보이는데 왜 이렇게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1세기의 거울은 오늘과 달라서 청동거울이라서 희미하게 보이기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고, 돌아서기만 하면 자기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고 말씀을 듣기는 들었는데 삶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은? 그 말씀이 사라져 버린 것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되, 실천하는 것이 최고의 들음이라는 것입니다.
김양재 목사님께서 강사로 오셔서 Q.T세미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식으로 읽고 큐티하는 지를 참 많이 배웠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묵상의 꽃은 적용이요. 적용의 마지막은 영혼 구원이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라는 것은? 들었으면 삶으로 바뀌어야 한다. 적용의 마지막 꽃은 영혼구원이다. 살아내는 것의 모든 마지막은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영혼 구원이다.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죠? 치열한 아픔 속에서 뱉어낸 한 마디입니다. 30대에서 병원장이었던 남편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긴 세월을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서 오늘까지 큐티로, 말씀으로 견뎌온 분의 말씀입니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을 소중히 여겨 이런 실천이 가능한 거예요.
제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섬길 때였습니다. 중국을 참 사랑하고, 중국을 향한 사명감을 가지고 들어가니까 사람 만날 때마다, 중국 음식 대할 때마다 그렇게 맛있고 좋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것들도 참 많이 먹었어요. 토끼 생간, 거위 피도 먹어봤어요. 사람들이 좋으니까 다 사랑스럽고 모든 게 다 행복해요. 제가 중국에서 했던 일은, 중국을 오랫동안 섬겼던 선교사님과 동역하여 두만강 북한 인접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서 준비를 해두면 두만강 상류는 건너오기 쉬워요. 그러면 아주머니들에게 준비한 감자, 옥수수, 고구마를 싣고 돌아갑니다. 언제나 밥통에 밥을 많이 해둡니다. 그러면 따스한 밥을 드시고 가시도록 합니다. 그렇게 영혼을 위해서 삶을 던졌던 선교사님,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기는 일이 매우 위험했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위험도 행복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당시에 저를 도와서 통역을 도와주었던 두 명의 젊은이가 있습니다. 나중에는 한국에 들어와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했던 말이 있어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만난 게 아닙니다. 이 선교사님의 삶을 보고 예수님을 만났어요. 고아원에 가게 되면 코 흘리는 아이들 다 닦아 주고, 한 사람 한 사람 사랑으로 돌보아주는 그분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 자체가 최고의 복음 전파인 것입니다.
이번 선교대회에서 성도님들이 보여주신 사랑과 실천은, 예수님께서도 다 보시고 좋아하셨을 겁니다. 기도해 주신 분들, 또 참석해서 은혜를 받으신 분들, 또 헌금으로 물질로 후원해 주신 분들 봉사해 주신 분들 마음으로 격려해 주시며 온 교회가 함께 동참해 주심으로 지역의 많은 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이루어 낸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교회로 들어오면서 코로나 테스트를 했어요. 자기도 모르게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코로나에 감염된 선교사님들도 더러 계셨어요. 그들을 호텔로 실어 나르신 분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식사를 날랐던 분들, 목사님들.. 많은 성도님들이 보이지 않게 얼마나 감동적인 사랑을 펼쳤는지 이 모든 사랑의 실천이 비록 그들이 마음껏 참석하지 못했지만.. 참석보다 더 강한 사랑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들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실천입니다.
3. 삶 속에서 진정한 경건을 실천하라
세 번째, 변화입니다. 삶 속에서 진정한 경건을 실천하라. 오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완전한 변화. 마치 두 번째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변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말씀을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 했지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경건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제자답게 살아가는 것.'의 구체적인 삶이 뭐냐?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아보는 것.' 고아와 과부라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되고, 그 도움을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보면, 신약과 구약을 보면 굉장히 많이 강조하고 있지요. 그들에게 하나님의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연약한 사람들이 있다면, 예수님을 정말 만나면 구체적으로 나아가서 사랑의 실천을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중국에 들어갈 때마다 권사님들이 만들어 주신 목도리, 장갑 등을 가지고 갑니다. 얼마나 많이 주시는지 '엑스트라 차지'까지 지불하면서 들어가고 있습니다. 고아원들, 농아분들이 얼마나 그것을 좋아하는지 몰라요. 사실 중국에서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만지는 털 옷은 그냥 털실이 아닙니다. 사랑이고, 기도이기 때문에 그토록 기다리고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영하 30도에 하얼빈의 추위를 녹이는 것은 털실이 아니라, 성도님들의 사랑과 기도에 있는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귀하게 여기라.' 이 말씀을 깊이 들여다보세요. 이 시대의 고아와 과부가 누가 일까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속하겠지요. 정말 고아와 과부와 같은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어쩌면 그분의 도움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지옥에 떨어질 우리 자신이 아닐까요? 영적인 고아요, 영적인 과부 한 사람 한 사람. 이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요?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고아된 우리, 과부 된 우리, 지옥으로 버려질 우리를 위해서 당신이 대신 피를 흘리시고 고아와 과부가 될 우리들을 아들로, 딸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의 고아와 과부, 연약한 사람을 돌보는 것은 단순한 사랑 베풂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삶을 이 땅에서 실천해 내는 통로가 되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야고보의 삶을 통해서 변화된 사람.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보았습니다. 말하고 듣는 것의 변화는 귀와 입의 변화지요. 실천하는 것, 손과 발, 행동의 변화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대한 것, 마음의 변화,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총체적인 모든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전에 첫 번째 산에 오른 사람들은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두 번째 산을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주님이 어떻게 말씀을 받아들이셨는가? 예수님이 어떻게 삶으로 말씀을 증명하셨는가? 그리고 언제나 눈물 진 사람에게 먼저 가셔서 도움의 손길을 주신 예수님. 바로 이 삶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참으로 젊은 집사님 부부가 계세요. 부모님께서 한국에서 목회를 하시는 분이에요. 이 분들이 오랫동안 사업을 하시다가 목회를 하시게 되었어요. 이분들이 나중에 고아원에 찾아갔을 때였어요. 주말이면 그곳에 방문하여 꼭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지극한 사랑으로 베풀었던 귀한 분이 계십니다. 말씀으로 가르칠 뿐 아니라, 아이들의 말을 귀 담아 듣고, 정중하게 했던 사람. 아이들은 그분을 보면 너무너무 좋았고 마치 고아가 자녀들처럼 여겼던 분이에요. 이 분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 분이 훗날에는 사업을 접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떠올랐어요. 꼭 전해주고 싶었어요. 내가 당신의 사랑과 실천을 보고 하나님 앞에 결단을 하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연락이 끊어지고 궁금했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어느 날 책을 보다가 그분의 사진을 본 거예요. 그분은 목사가 아니었어요.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설립자였고, 초대 원장. 한국에서 성자라 불리던 장길여 박사였습니다. 가장 연약하고, 가장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서 소중하게 대하고, 마치 고아가 아닌 자녀들처럼 여겼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속에 있었기에 그렇게 평생을 살아낸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산을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말 이 예수님을 만났는가? 나는 이 예수님을 내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가? 내 삶이 예수님의 언어, 행동,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향기를 맡고 있는가?
오늘 야고보서의 1장의 설교를 마치게 됩니다. 그러나 설교가 끝난 것이 아니지요.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었으니 이 예배당 문을 나서면서 여러분들의 삶으로 오늘의 설교를 삶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일어나셔서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기 원합니다. '내게 허락하신 시련을 통해 나의 믿음이 더욱더 자라나기 원합니다. 험한 산과 골짜기 지나는 동안에 주님께서는 나를 더 가까이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주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을 향하여 나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서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며 나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변화된 시람. 두 번째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새로이 변화된 삶을 보았습니다. 내가 중심에서 예수 중심, 타인 중심으로 바뀌어진 사람. 언어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들을 때 말할 때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우리 기도 합시다. 주님 내 언어를 성령이 지배하여 주옵소서. 최고의 말을 듣는 것은, 삶이라 했습니다. 주님 제가 때로는 입을 닫고 손과 발로 살아내게 하옵소서. 내 삶이 살아있는 주님의 증거가 되게 하옵소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되기 원합니다. 가장 연약한 사람. 그들을 위해 주님이 오셨고, 주님의 눈물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변화된 신자의 삶. 우리의 삶이 참으로 따스한 예수님의 마음을 담아내어 우리를 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하옵소서. 이제 말씀을 들었으니 저 예배 당 문을 나서면서 그 말씀을 살아냄으로 설교를 완성시켜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함께 기도합니다."
우리 아버지여, 오늘 하나님의 제자 야고보를 통해서 정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구원을 얻고 영생을 노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삶의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하소서. 매일 수많은 말을 해야 하는 삶입니다. 말하기 전에 듣게 하시고, 상대방의 눈을 보며 마음을 읽게 하시고 소중하게 여기게 하시고 그래서 대화 자체 나누어지는 가운데서 상대방이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게 하는 아름다운 인생으로 저희를 빚어 가 주시옵소서. 이제 우리가 말씀을 들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공동체가 눈물로 아파하게 하시고 특별히 한 사람도 외로운 눈물, 고단한 눈물을 흘리는 이 없도록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의 손을 붙들고 아름다운 생을 살아가게 하시고, 천국을 이루게 하옵소서. 이제 들었으니 예배 당 문을 나서 삶의 자리에서 사람을 대하고, 직장 생활, 가정에서 말씀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하심이 하나님 앞에 변화된 인생, 살아있는 믿음이 만들어 내는 변화된 모습으로 세상에 나아가 그리스도의 빛으로, 향기로 살아가기 원하는 사랑하는 주의 백성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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