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야고보서 3:1-12 I 혀의 권세 I 송태근 목사 I 삼일교회
돌아오지 않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 흘러가는 시간. 입에서 나온 말. 그래서 우리가 말을 한마디 할 때는 엄청난 역사의 무게감을 가지고 말을 해야 하는데, 평생 말을 하고 살면서도 말 때문에 고민이 많지요. 부부간에도 말 때문에 상처를 입고, 특별히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공동체는 말 때문에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혀의 권세
어느 교회는 딱히 시끄러워야 될 문제가 없는데, 어느 권사님이 툭~ 내뱉은 말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서 온 교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수년간 분쟁을 일으키며 다툼을 낫게 한 교회를 알고 있어요. 말은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기 때문에 서신을 쓰는 가운데 이 교훈 속에서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7 -20절 '17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만큼 이 말은 그 사람의 품성의 문제고, 심령의 문제이면서 마음의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가 1절에 보니까,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이 말은 선생에 대한 인원수가 아니라, 당시에 돌아다니면서 가르치네 하면서 거짓 내용을 전하고 있는 거짓 교사들을 지칭하는 말로 거짓 교사들이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는 거예요. 그때 수사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논리를 배우고, 말하는 법을 배워서 가르쳐요. 선생이 되는 거지요. 그때는 이런 문화가 있었어요. 사람들을 가르칠 때 청중이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재정적 수입이 확보되곤 했습니다. 청중이 조금 오면, 수입이 적고 청중이 많으면 더불어 수입이 증가하는 거지요. 그 당시 사람들이 이야기 듣는 것을 굉장히 즐겨했어요.
며칠 전에 쉬는 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나가봤어요. 그랬더니, 큰 무리의 사람들이 몇개의 서클을 만들어서 한 그룹에 가보니까 어느 젊은 여성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요. 그리고 열려진 케이스마다 도네이션을 받기도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그룹으로 가서 보니까, 중년 남성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요즘의 이슈를 자기의 논리와 궤변을 섞어서 젊은이들에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거기에는 비속어, 욕지거리, 폄하하는 발언. 거기에 젊은이들이 호응을 해서 웃고, 돈을 내고.. 당시에도 광장 같은데에 거짓 교사들에 의해서 또는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서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런 분위기와 풍토가 교회 안에도 들어왔어요. 교회 안에 거짓 교사들이 있었어요. '여기서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는 말은, 너무 많이 가르치려 하지 말라는 거예요. 잘못된 가르침을 말하는 거예요.
제가 잊을 수 있는 은사님이 계시는 데, 박윤선 박사님이라는 분이 계세요. 그 분은 주로 신학대학원 졸업반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셨는데.. 워낙 유명하시다 보니 학부 학생들도 가끔가다가 들어와서 청강을 하곤 했어요. 저도 여러 시간 들어가서 뒤편에 앉아 청강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 분은 수업시간마다 빼놓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 있었어요. 이번 수업을 마치면 졸업하는 학생들을 놓고 하시면서 "여러분이 지금이라도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시면 돌아가십시오." 여럿 돌려보냈습니다. '그때는 저분 왜 저러시나?' 그랬어요. 오랜 기간 동안 공부하고, 목회의 꿈을 안고 나가려는 학생들을 향해서 "여러분 지금이라도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시면 돌아가십시오." 그 말을 듣고 정말 중도하차한 선배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도 졸업을 하고 30년 넘게 목회 현장에서 늘~ 가르치는 입장에서 서야 되고, 늘 짧은 지식으로 성도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 보니까 그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설 때마다 기억이 나는 거예요. 이 자리가 너무 두렵고, 무섭고, 힘들고, 어려운 자리임을 요즘처럼 실감하고 절감할 때가 없어요. 야고보 사도가 그 말을 하는 거예요. 너무 선생 되지 마라. 그만큼 이 자리는 가르치는 자리고, 말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엄청난 무게감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절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여러분 말 실수 없는 사람이 가능할까요? 말은 그 위력이 대단해요. 여기 세 가지로 설명을 했는데, 첫 번째. 우선 3절을 봅시다.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재갈로 비유합니다.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면, 거대한 힘 있는 말을 조그만 소년이 붙잡고 있어도 조정을 할 수가 있어요. 산더미 같은 소도 코에 뚜레를 씌우면 어린 소녀라도 그 소를 마음대로 데리고 다닙니다. 그다음 두 번째로 비유한 게 뭐냐 하면? 4절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배는 큽니다. 특별히 고대시대의 배의 크기는 굉장했습니다. 게다가 이 배가 광풍에 바람을 맞으면 통제 불능입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바람과 크기의 배가 간단해 보이는 키로 방향이 조정이 되요.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키입니다. 그다음 마지막으로 세 번째의 비유가 불입니다. 5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불씨. 여러분 오래전에 태백산맥 줄기가 홀라당 탄 적이 있어요. 거의 한 달 탄 것으로 기억돼요. 그런데 그것이 조그마한 불씨로 시작이 되었어요. 지금도 그 산맥 줄기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어요. 강원도 고성 근처로 시작된 불이 어마어마 한 재해를 낳고 말았지요. 우리나라 산불 역사에서 가장 큰~ 산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조그마한 불씨가 산맥을 태워버렸어요. 그런데 특별히 땅이 넓고 숲이 많은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같은 데는 자연 발화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스치면서 거기에서 스파크가 일어나고 불씨가 지펴졌지만 나무들이 바싹 말라있기 때문에 거의 몇 달 탑니다. 헬기가 뜨고 수많은 소방차가 동원이 되어도 끄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끔 가다가 미국에서는 옆에 산이 계속 탑니다. 그리고 지나가다 보면 화기가 느껴져요. 그만큼 무섭습니다. 전부 조그만 불씨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이 있어요. 뭘까요? 작은 것이 큰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냥 무심히 한 말인데, 그것이 평생 인격살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탈주범의 대명사 신창원 씨 기억하시지요? 그분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슴이 아파요. 그분이 실지로 고백한 거예요. 초등학교 때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하니까, 기성회비를 못 내요. 해서 애들이 그냥 가지요. 그런데 어느 선생님 한분 그 아이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했어요. "이새끼야~ 기성회비도 못 내는 놈이 학교는 뭐하러 나와!" 욕을 하면서 그때 신창원 씨 고백이 그때를 기억하면서 "악마가 내 마음이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짓밟아 버린 거예요. 아무리 어린아이의 인격이지만 자존감이 무너지고, 자존심이 상해버린 거예요. 그때 내 마음에 악마가 들어왔다. 보통 말 씨라고 하지요. 왜? 씨라고 하냐 하면, 말은 상대방에 심어버리는 거거든요. 정말입니다. 어느 아이는 지도하시는 분이 그 아이를 보고 애 손이 하도 가는 걸 보고, 자기는 그게 늘 콤플렉스였는데 그랬다고 해요. "너는 사내아이가 손이 가느다란 걸 봐서 굉장히 섬세한 일을 잘하겠다. 그리곤 너는 평생 외과의사 해라." 그 말을 하고 자기는 잊어버렸는데,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할 일이 있어서 거길 갔는데 잘생긴 청년 하나가 와서 인사를 하더래요. 누군지도 모르고 기억이 안 나는데.. "선생님이 저 옛날에 외과의사 돼서 많은 사람들 살리라고 했잖아요." / "내가 언제 그랬어요?" 그리고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청년은 자기의 콤플렉스인 가느다란 그 손을 보면서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좌절이 오더라도 선생님이 자기에게 해준 그 말을 붙들고 정말 미국에 이민을 와서 의사 공부를 했다는 거예요. 말씨가 된 거예요.
그런데 또 좀 부정적인 언어를 말투라 하고 우리 청년들 말투 가운데 유행병이 뭐냐 하면, 디스하는 말투가 있지요? 그건 좋은 표현 방법이 아니에요. 칭찬을 온전하게 하십시오. 특별히 우리나라를 팔도로 보면 말투가 제일 거친 쪽이 영남 쪽입니다. 왜 그런가 봤더니? 그쪽은 산세가 험해요. 그래서 그런지 말투가 굉장히 강렬하게 쎕니다. 특별히 마산, 울산, 부산. 산짜 들어가는 쪽의 말투가 쎕니다. 경상도 남자들은 식당에 가도 밥을 먹다가 "맛있지?" 지가 결정하고 얘기를 해요. 거기다가 대고 맛없다고 할 수 있나요? 보통은, "맛이 어때?"라고 물어야 하지 않나요? 물론, 이것은 지방색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고, 예를 하나 들은 건데.. 우리의 언어가 굉장히 무너져 있어요. 특별히 중학교 이후부터 언어 세계를 검토해보면 70% 이상이 욕으로 시작되고, 글자가 다 무너져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욕입니다. 그것이 가장 만개하는 때가 군대 가서입니다. 그 습관이 아직도 남아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언어습관이 바뀌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격적이고,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보면.. 아담이 제일 먼저 했던 최초의 언어가 먼지 아세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하와를 보고 했던 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람을 살리는 말이었습니다. 그냥 무심히 피어 있는 들풀이지만 그 이름을 부르기까지는 꽃이 아니었다는 시와 같은 의미의 언어를 내뱉은 거지요. 사랑하는 이에 가치를 부여하고, 존재를 드러내는 말이었어요. 타락은 어디서 왔나요? 타락도 말로 옵니다. 뱀이 여인을 꼬였지요. 그는 제일 먼저 그 속에 거짓을 심습니다. "정말 죽지 않는다고 하더냐? 정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더냐?" 거짓의 시작은 항상 과정에서 입니다. 거기에 인류가 넘어가고 말지요. 그래서 에덴동산의 실낙원은 말로부터 시작하고, 말로부터 타락이 왔어요.
그래서 오늘 야고보 사도가 말이 온전한 사람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말을 구속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속이 되어야 합니다. 자, 또 성경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볼까요? 6절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그 사르는 말이 지옥불에서 난다는 말은, 게헨나입니다. 게헨나는 지명의 이름으로 흰놈의흰 놈의 골짜기라는 의미입니다. 흰 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한편에 쓰레기 소각장이 있어요. 거기서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서 불을 피우면 쓰레기들이 타겠죠? 지독한 악취가 납니다. 그래서 정말 구속받은 백성은 입을 열어 말을 하면, 펜을 들어 글을 쓰면 복을 심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언어까지 구속함을 입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거지요. 정말 어떤 사람들은 말을 그대로 복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특별히 편한 사람끼리의 대화에서 그 사람의 리얼한 인격이 여과 없이 드러나지요. 그러면 제일 편한 관계는 어느 관계일까요? 가족관계입니다. 여러분 어느 훈련은 불편한 사람끼리는 서로 조심을 하기 때문에 실수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제일 많이 나타나는 관계가 가족끼리의 언어생활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가족관계 속에서 그 사람의 리얼한 인격이 말을 통해서 생산이 되지요. 오랜만에 아내가 반찬을 몇 가지 더 해서 상에 놓았어요. 그러면 주는 대로 먹고 "역시 당신은 솜씨가 최고야" 그러면 되는데, 꼭~ 잘 먹고 나서 "왠일이야?" 산통을 깨지요. 그러면 그다음에 또 그렇게 하고 싶겠어요? 다시는 하고 싶지 않겠지요. 그렇게 평생 가슴에 멍을 지우지 않고 살아가는 여자들이 그렇게 만다고 해요. 저도 말실수로 아내를 아프게 할 때가 뜨문뜨문 있어요. 자주는 아닌데.. 가끔은 있어요. 그런데 바로 "내가 잘못했어~" 그 말을 하기가 또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오늘 마지막으로 유치하지만.. 오늘의 설교를 실천하고 적용한다는 차원에서 고운 말 연습하고 설교를 마칩시다. 여러분들은 따라만 하면 됩니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 마음에 두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고백하고 시인해보는 것이 굉장히 필요합니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왜 헤어졌다고요? 말을 안해서.. 서로 사랑하고 있었는데 말을 안 해서 불행한 사랑의 스토리를 만들어 냈잖아요. 따라 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제가 잘 못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옆에 사람 쳐다보면서 "당신이 최고입니다." 제가 여섯 가지를 말씀드렸어요. 여러분들은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신분만 구속받는 게 아니라,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언어가 구원함을 얻어야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시죠? 이 분은 천재예요. 유명한 발명가이기도 하고, 화가이기도 하고, 조각가이기도 한데 이분이 신체 비율 팔 벌리고 있는 그림도 이분이 연구한 거죠~ 이분이 훌륭한 조각을 하기 위해서 뭘 연구했냐 하면? 사람의 몸을 구석구석 연구를 했어요. 굉장히 오랜 세월 진지하게 연구를 했어요. 특별히 사람 몸에서 어느 부위가 근육이 제일 발달했는가? 그걸 연구했어요. 어느 부위가 근육이 제일 발달했을까요? 뜻 밖에도 혀라고 합니다. 신체 어느 부위가 신기하지 않을 부위가 없습니다. 그중에서 입안의 혀를 왔다 갔다 내 맘대로 해보세요. 지금 하고 계시네요. 이 혀가 참 신기해요. 이 혀에 모든 부위보다 근육이 가장 발달해 있다고 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연구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혀는 우리 몸에 비하면 극히 작은 지체에 불과해요. 그런데 이 작은 지체가 잘못 사용하면, 성경은 이런 결과를 경고합니다. 결론입니다.
6절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첫번째, 온몸을 더럽혀요. '..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여기 온 몸을 더럽힌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지체가 되는 교회 공동체를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어떤 몸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교회 공동체를 이야기해요. 특별히 우리는 행사를 하고 선교를 나가보면 서로 말 몇 마디에 내가 좀 부드럽게 할 것을 공격적인 말투로 선교도 깨지고 마음도 불편해서 내내 무거운 마음으로 있다가 돌아오는 경우들이 가끔이 있어요. 서로가 짜증 나고 힘든데 말마저 공격이 되어버리면 비수가 되어서 상처가 되지요. 온몸을 불살라요. 교회 공동체를 깬다 그 말이에요. 게가다 온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느니라.
제가 알고 있는 경찰관 한분인데 고위직에 계셨던 분이에요. 마지막으로 왜 옷을 벗었는가 하면, 말 실수로 옷을 벗었어요. 대변인도 말 잘 못했다가 옷 벗는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화병이 나서 잡게 된 것이 화투, 도박에 빠지게 됩니다. 옷 벗고 나서 계속 도박만 하는 거예요. 화투를 치면서 "에이~ 더러운 넘의 세상" 저주를 퍼붓다가 안면 암에 걸린 거예요. 결국 그걸로 돌아가셨어요. 끔찍한 일이지요. 마음에 있는 게 입으로 나와서 온 인생을 불사릅니다. 오늘 이 새벽에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나와 기도할 때, 두 가지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 나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 내 언어마저도 주의 보혈로 구속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살리는 말을 연습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선교의 현장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시는 아침이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