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I 은혜와 평강 I 빌립보서 1장 1-2절 I 송태근 목사
사도 바울이 신약의 많은 책을 쓰고, 자신이 '사도 직'을 억지로라도 표현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오늘 빌립보서는 그렇게 중요하고 강조해 왔던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 어떤 성경에는 '사도'에 대한 언급이 있고, 어떤 부분에는 없었냐?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시비가 있었던 곳에는 반드시 '사도'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대부분 유대인들이 모여 있는 경우일 경우, 그런 시비가 많았다. 왜? 사도는 예수님에 의해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거나, 임명을 받은 자만이 사도라고 알고 있었어요.
은혜와 평강 I 빌립보서 1장 1-2절
-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 -
그래서 사도 바울이 스스로를 자칭할 때, 이 문제를 굉장히 불편해했어요. "네가 무슨 사도냐?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으면서.." 이 문제가 가는 데마다 사도 바울의 괴로움이었어요. 그런데 분명 바울은 사도입니다. 어떻게? 다메섹 언덕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납니다. 그 부활의 주님으로부터 정식으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사도권의 기원의 현장이 어디냐? 다메섹 언덕입니다.
본인의 권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전한 복음 때문.. 만일 자신의 사도권이 흔들리면, 자신이 전한 복음마저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본인의 개인적인 권위를 높이거나 입장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자신의 사도 됨을 시비가 있는 교회마다 정확하게 인사말에 기록을 해두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갈라디아지역 그런 공격과 그런 시비가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그런 시도가 없냐?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놓고 시비했다는 이야기인가요? 안 했다는 건가요 안 했다. 왜? 이유를 신약의 교회사의 해당하는 부분을 통해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신약의 역사책은,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은 적어도 12제자를 통해서 열매를 나타낸 책이 사도행전. 유명한 현장인 빌립보교회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배경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6:11-14입니다. '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이 현장은 사도 바울이 그토록 아시아로 가기로 원했지만, 성령이 거듭 막으시는 바람에 방향을 튼 곳이 유럽의 관문인 마케도니아의 첫 성 빌립보에 도착을 한다. 11절, 드로아 → 네압볼리까지, 22km라는 짧지 않은 거리.. 그 당시 모든 배의 기능과 구조상으로 이 정도 거리면, 평균 5일은 걸린다고 해요. 5일 걸려 도착해야 할 길은 며칠 만에 갔냐? 이틀 만에.. 아무리 순풍이 불어도 불가능에 가까운 거리예요. 뭘 보여주는 그림일까요? 이 마케도니아 땅을 향한 하나님의 긴급한 마음이 보여주는 그림. 어떻게 밀어붙이셨냐? '직행하여' 직행했다는 말은, 'straight on!' 아니라, '빨리 갔다.'는 말이에요. 부모님들이 심부름시킬 때, "너 곧장 갔다 와!" 그러면 일직선으로 갔다 오란 말 아니잖아요? "한눈팔지 말고 빨리 갔다 와야 해" 그 말 아닌가요? 여기 '직행하다'는 말이 그런 의미예요. 그러니까, 아시아를 향한 꿈을 꾸던 바울의 의지를 내려놓게 하실 때, 환상까지 동원하셔서 그를 설득하여 주저앉힌 다음, 하나님의 원래 계획인 마케도니아로 밀어붙이신 거예요.
그래서 혹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논란을 일으키는 분들이 있다. "만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듣고 아시아로 왔다면.. 지금 세계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나님은 참 불공평하다. 아시아는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냐?" 성경을 마저 읽으면 아시아 베드로를 보내요. 베드로전서에 보면,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로 이미 베드로가 가 있어요. 거긴 바울이 그렇게 가고자 했던 아시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시아를 홀대하신 게 절대 아닙니다. 그쪽에는 보낼 사람이 따로 있었기 대문에 베드로를 본고, 이쪽으로 사도 바울을 보낸 거에요. 그런 곡절 속에 바울이 도착합니다. 사도행전 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마케도니아의 첫 성', 여기서 '첫 성'이라는 말이 무슨 뜻? 도착해서 첫 번째 성이란 말이 아니라, 으뜸가는 성이다. 가장 대표적인 성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숫자로 어떤 부분을 묘사하거나 수식하거나 설명할 때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순서상의 처음이 아니라, 가장 큰 상징적인 성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중요한 성입니다. '로마의 식민지' 사도 바울이 기도처를 찾고 있었어요. 원래 가던 곳마다 회당을 찾았어요. 기도처를 찾았단 말은 회당이 없었단 말입니다. 회당이 없었다는 말은, 유대 남자 열 명이 채 안 되거나, 아예 유대인이 거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회당이 없는 경우는 유대인들은 기도처를 반드시 만들어서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이 얼마나 유대인이 없는 지역인지 아시겠지요? 그러다 보니 사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서 시비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도'라는 표현을 바울이 쓰지 않습니다. 그런 논란 자체가 발생할 수가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사도행전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놀랍게도 이 여자를 빌립보 교회가 시작될 줄 바울이 알았겠어요? 이 루디아는 보통 이름인 줄 오해입니다.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예를 들어 안성에서 자라온 여인이 시집을 서울로 오면 "안성댁~"이라고 하듯, '루디아'는 그런 표현입니다. 사람 이름이 아니라, '루디아에서 온 여인'이라는 의미. 그때는 '리디아'로 되어 있어요. '리디아 지역에서 흘러온 여인' 그런데 이 '루디아'가 뜻밖에도 아시아에서 왔다는 것이 드러나요. 아시아는 사도 바울이 그렇게 가기를 원했던 땅이지요. 그런데 그쪽에서 흘러온 여인을 바울이 빌립보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노사연 씨가 부른 '만남'이라는 노래가 있지요.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루디아가 교회 개척하러 왔을까요? 돈 벌러 왔겠지요. 장사하는 사람인데.. 그런데 루디아가 이곳에서 교회 설립에 이바지하게 될 줄 본인이 알았을까요? 우리는 힘써 자기를 위해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타임 스케줄을 비켜 갈 수가 없어요.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사노라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타임 스케줄 대로 우리의 인생을 끌고 가세요. 바울이 이 사실을 염두에 두었을까요? 천만에요. 바울은 아직도 불편한 마음으로 이 성에 도착해서 구시렁대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아시아에서 흘러온 여자 하나를 만납니다. 그런데 이 분지 재력이 있는 분이었어요. 이것은 빌립보교회가 생성된 배경.
빌립보의 배경. 빌립보는 B.C 360년 경에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립 2세가 빌립보를 점령. 그런데 이 빌립보는 엄청난 야만족들이 모여서 험하게 살던 땅. 그 땅을 점령해서 알렉산더가 왕위를 물려받는다. 그 와중에 그리스가 이 빌립보 지역을 엄청난 문화 탈바꿈을 시킵니다. 철저하게 그리스 문화를 심기 시작. 그런데 그 땅은 오랜 기간 동안 야만인들이 거주하던 땅이었기 때문.. 힘의 논리에 의해서 점령은 당했지만, 야만 문화가 뿌리 뽑히지 않는 거예요. 알렉산더는 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모라와 그리스가 붙는.. 그리스가 로마에 지게 되고, 로마군에 의해 점령당한다. 제일 먼저는 필립 2세가 점령했고, 그래서 이 땅이 빌립보가 된 것. 빌립보라는 것은 '필립'이라는 말의 복수형. 우리말로 하여, '작은 샘들'이라는 뜻. 그만큼 이 지역 자체가 물이 좋고, 정말 탐스러운 땅이었다. 그리곤 그리스가 얼 동안 통치하면서 그리스의 문화로 바꾸려 시도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던 와중에 로마가 이 땅을 점령한 것입니다.
차지하면 될 줄 알았는데, 도대체 이 땅의 야만스러운 문화가 바뀌지 않는 거예요. 이때에 로마가 안 되겠다 싶어서 '퇴역 군인들이 국민의 절반 차지할 정도의 엄청난 숫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항상 군인일 수 없었겠지요? 퇴역 군인들에게 미션을 하나 줍니다. '빌립보 지역으로 집단 이주를 해서 로마의 문화와 로마의 정신을 꽃피워내면, 누구든지 로마 시민권 부여한다.' 그 당시는 로마 시민권을 얻는 게 온 세게 국민들의 열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의 최고의 목적은 로마의 시민권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시민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살지만.. 이 땅에서 하늘의 시민권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장 잘 설명하고, 설득한 논리가 빌립보서에 담겨 있다. 이것이 빌립보서를 쓴 가장 중요한 기록 목적입니다. 빌립보에 사는 사람들이 로마의 시민권자로써, 그 야만의 땅에 어떻게 로마의 문명화 철학을 심어내는가? 그것이 마치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 어떻게 어떻게 이 땅에서 하늘 백성답게 '하나님 나라의 문화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현하고 살아야 하는가?'를 빌립보 지역만큼 잘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가진 지역이 없기 때문에 그 말을 쓰는 거예요. 빌 3:17-20,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18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여기에 '하늘의 시민권'이 등장해요. 빌립보 지역의 야만의 문화와 야만의 땅에 살지만,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로서 어떻게 빌립보 땅에 로마의 문화를 꽃피워야 할 것인가?처럼..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가 이 땅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이 논리만큼 잘 설득할 수 있는 구조가 없기 때문에 빌립보서가 이렇게 쓰여진 것입니다.
30:35, 이후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