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삼 목사의 매일만나 하나님의 숨결 묵상집. 요한복음 11장 1-6절, 기다릴 줄 아는 사람.
대기실은 기다림의 장소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그곳에서 우리는 한 없이 낮아짐을 경험합니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대기실에 머물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강력한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인생의 대기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절실하게 찾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계획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소명을 이룬다'는 말을 능동적인 의미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나를 맡기는 수동적인 행동을 통해서 소명이 이루어질 때가 더 많습니다. 가장 수동적인 것 같지만, 가장 능동적인 방법입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조차도 가장 중요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 내셨습니다. '부활'로 가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오로지 '십자가'를 통해서만 갈 수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기다림을 가장 잘 설명합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야 오신 예수님께 '너무 늦으셨다'라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살리심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을 기다리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다림은 무능력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는 순간입니다.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우리 삶에 닥쳐올 때, 그 인생의 대기실에서 마주하는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경험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완벽하게 돌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의 진정한 의미는 그 시간을 통해 우리 내면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영적 변화가 일어나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능력은 기다림의 시간이 끝난 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다림 가운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들의 삶에서는 기다려야 하는 순간들이 참 많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다림의 시간들의 저주의 시간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 기다림의 시간이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인내는 여러분들의 삶의 큰 축복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말씀을 함께 묵상하면서 기다림의 시간이 참 복된 시간이구나!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참 풍성함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인내'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합니다. 토끼가 거북이에게 진 이후로 토끼는 열심히 연습을 하여 다시 도전을 합니다. 그런데 경주를 벌인 결과 또 다시 거북이의 승리로 돌아갑니다. 그 결과 토끼는 고개를 푹 숙이고 집에 가고 있는 데 그 앞에 달팽이 한 마리가 나타난 거예요. 달팽이가 이야기합니다. "너 또 졌다며?" 열받은 토끼가 온 힘을 다해서 달팽이를 발로 찹니다. 달팽이는 저 멀리 산기슭까지 날아가게 됩니다. 일 년 후 토끼가 쉬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문을 열어보니 자신이 일 년 전에 발로 찼던 달팽이가 서 있었습니다. "네가 지금 나 쳤어?" 달팽이는 일 년 동안 참고 참고 달리면서 토끼를 찾아온 것입니다.
참 미련한 것 같은데, 일년의 시간을 걸어서 토끼의 집 앞에 이른 달팽이. 때때로 기다림은, 절망처럼 느껴질 때가 많이 있어요.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많이들 우리의 기다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 기다림이라고 하면 그것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의 기다림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들이 해야 될, 우리들이 가야 될, 우리들이 견뎌야 될 기다림을 기다리고 있다면 우리 인생의 기다림의 대기실은 결코 우리들 인생의 헛된 시간,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다림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가기까지 때때로 기다리며 인내해야 되는 그런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계획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참 지름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있어 지름길은 없다. 그 말은 꼭 지나가야 되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승리를 얻었지만, 예수님의 부활이 십자가가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음을 종종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부활에게는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만 가는 거예요. 우리들이 꼭 지나가야 하는 길이고, 참으라고 한다면, 우리는 참고 인내함으로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일을 이루게 하기 위하여 불의한 길로 가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비전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길을 통해서 가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 길이 기다림의 시간일 수 있어요. 왜? 시간이 더 걸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세상은, 우리들에게 왜 이렇게 바보 같이 사냐고 물어볼 거예요. 그러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그 길을 가는 사람이에요. 그 길을 가야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우리가 무기력한 것 같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결국 일하신다는. 하나님의 최후 승리를 믿기 때문에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남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할지 몰라요. "왜 이렇게 바보 같이 사냐고, 왜 이렇게 무식하게 살아갑니까? 왜 그렇게 무의미하게 기다리십니까?"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다림의 길이라면 그 길을 공의롭게 갈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본문 가운데 죽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주 흥미롭지요. 나사로의 누이였던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우리 오라비 좀 고쳐주세요. 많이 아픕니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 너무 늦게 오셨어요. 예수님을 바라보며 말하기를.. "예수님 늦게 오셨군요?" 그 질문에 예수님 답하십니다. "아니, 늦지 않았다. 나는 너의 오라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거야." 그 죽음의 시간은, 늦은 시간이 아니라 주님께서 기다리신 시간이었고, 그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시간이었어요. 때때로, 우리의 인생에 죽음과 같은 시간을 지나갈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때가 있어요. "하나님 늦으셨군요?" 그럴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요. "아니, 늦지 않았단다. 내가 함께 하는 중이야." 기다림은 무능력한 시간이 아니라, 영적 충만을 이루는 시간이라면 이 기다림은 능동적 기다림입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그런 말이 나와 있더라고요. 가장 작은 동물인 쥐가 임신을 해서 새끼를 낳는데, 보통 12-22일쯤 되면 새끼를 낳기 때문에 번식력이 굉장히 빠릅니다. 그런데요 코끼리가 임신을 하면 새끼를 낳기까지 보통 520일에서 730일쯤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죄끄만 쥐새끼를 낳는 것과 커다란 코끼를 낳는 것은 다른 차원이구나! 기다릴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결과는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다릴 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그리스도인 능동적 기다림으로 충만한 시간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가끔 스포츠 중계를 보면, 해설자와 아나운서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됩니다. 지고 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절대 포기하면 안돼요. (이기는 사람을 향해서는) 방심하면 안 돼요." 참 힘든 시간을 지나는데, 해설자의 말을 들으며 끝까지 기대를 가지게 되지요. 한낱 경기를 하는 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그 경기를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들을 만들어 주고 있는데 하나님이 부르신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영적 유익을 얻게 돼요.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 가운데 들어가게 돼요. 그래서 이 기다림의 시간은 큰 축복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결과를 이뤄내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있는데 그 기다림의 시간을 통하여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긴밀한, 친밀한 교제 가운데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11장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우리 주님께서 하셨던 일에 대해서 기억하십시오.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님 늦으셨군요?" 주님, "아니다. 네 오라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함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들이 기다리는 그 자리,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 자리. 여러분들이 인생의 대기실에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나타내실 능동적 기다림이 여러분들을 붙들어 줄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승리의 고백과 간증을 만들어내는 기다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오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있는 성도들 가운데 힘들고 지겹게 기다려야 하는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시간이 인생의 복이 되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하옵시고,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충만함 가운데 거하는 시간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주님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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