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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설교문

새벽설교 I 요한복음 6장 1-15절

by №1★↑♥ 2022. 10. 14.

요한복음 6장 1-15절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 하사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고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한으로 떠나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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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 1-15절

요한복음에서 나타나는 많은 기적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창조주이시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실 많은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적을 일으킨 예수님이 더 소중한 것이죠. 오늘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적도 소중하지만, 사실 그 기적을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더 큰 기쁨의 시작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하나님을 더 기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2절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예수님을 따르는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죠. 그들이 예수님을 따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해서 쫓았는가? 또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말로 소망했기 때문에 따랐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쫓았던 이유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기적을 보고자 함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떤가요? 우리의 믿음은 어떤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 예수님이 주시는 기적을 보기 위해서 그분을 따르는가? 아니면 그분 자체로 그분이 나의 생명의 구세주이시기 때문에 그분으르 너무 사랑해서 그분을 쫓아가는가? 우리의 삶에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야 될 이유가 있다면 그분이 주시는 선물 때문이 아니요. 그분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는데, 그 무리를 예수님께서 외면치 않으시죠.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이 많은 사람들의 어떻게 먹일 수 있을까? 예수님의 마음은 긍휼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상황이든지 예수님께 달려갈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큰 무리에게 먹이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빌립 제자에게 질문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6절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어보신 이유는 이 빌립에 믿음의 성장을 도우시고자 함입니다. '..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여기서 시험은 빌립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하는 예수님의 의도가 아니라 그를 돕고자 하는 예수님의 선한 뜻이 담겨 있는 거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실 때가 있어요. 그것은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함입니다. 살면서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마치 제자들이 받아 든 예수님의 질문처럼 말입니다.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느냐'란 질문은 제자들의 실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감당하지 못할 일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상황이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는 절호의 기회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7절 말씀에 보니까,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

빌립은 이 질문을 받자마자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얼마만큼의 비용이 소요될 것인가를 정확하게 산출해 내었습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은 들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한 일군이 하루 품삯으로 받는 보편적인 임금이 한 데나리온이었으니까, 약 7개월 여의 임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수학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정확하게 판단하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념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는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8절을 보세요.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그런데 거기 또 다른 제자 안드레가 나아와 예수님께 아뢰기를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적어도 그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드레의 태도는 빌립보다는 훨씬 더 믿음의 사고에 가깝습니다. 물론 안드레도 크게 거기에 희망을 걸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느냐?"(9절)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이 도시락의 발견과 헌신이 기적의 계기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어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사람,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도가 불가능한 사람도 일단 찔러보는 것.. 그것이 기적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 그래도 일단 기도하고 지금의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이 해결의 시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10절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이 당시에 정말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남자의 수 5,000명이었으니, 여자와 아이들 수를 합하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숫자가 모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사람들로 앉게 하라." 이 말씀에서 앉는다는 것은 그냥 단순히 '잔디 위 풀밭에 앉으라'가 아니라, '이제 밥 먹을 준비를 하자''라는 의미가 이 말씀 안에 담겨 있습니다. 

아직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제자들에게도 많은 망설임이 있지 않았을까요? "아니, 이렇게 기대를 주었다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등등의 새각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해 온 예수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들은 순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한 것이지요.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순종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런 양식 없이 대책 없이 감사기도를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나 순종했을 때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순종을 실천하는 그 순간~ 기적이 시작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본문에 나타난 기적이 일어났을 때 제일 신나고 제일 감격한 사람이 어린아이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드린 도시락으로 이런 기적을 행하시다니!!"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감격이었을까요? 감동이었을까요? 그러나 그것이 바로 성경의 역사요, 기독교의 역사요, 하나님 나라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모세의 손에 있던 작은 지팡이.. 그 지팡이가 홍해 바다를 열지 않았습니까? 다윗의 손에 있었던 작은 돌 맹이.. 그 돌 덩어리 몇개.. 그것이 적장 골리앗을 쓰러트리고 이스라엘에 승리를 가져다 주지 않았습니까? 마리아이 손에 들린 옥합 병 하나.. 그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역사적이고 기념비적 헌신이 되지 않았습니까? 작은 액수였으나 과부의 손에서 드려진 그녀의 생활비 전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시대에 걸친 성도들의 헌신을 자극하는 헌신의 모범이 되었습니까? 

유명한 전도자 무디는 별로 배운 것이 없으신 분이셔서 말과 글이 서툴렀다고 합니다. 초기 전도 집회를 인도할 때 그의 서투른 문법이나 철자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어느 교회에서 집회가 끝난 후 누군가가 무디 목사님에게 한 번의 설교에 얼마나 많은 문법적인 오류가 있는 단어들을 사용했는가를 지적했을 때 무디는 감사를 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사용하시는 주님의 은혜가 신기하기만 하답니다. 그런데 궁금해서 묻습니다만, 선생님은 그 정확한 문법으로 얼마나 복음 전하는 일에 쓰임 받고 계시는지 궁금하군요?" 아무 대답이 없는 그에게 제발 그 좋은 달란트를 주신 주께 드려 쓰임 받으시는 인생 사시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무디는 종종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 도착할 때 유일한 후회는 "내가 만일 헌신만 했더라면 이렇게 쓰임 받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실현되지 못하고 사장당한 가능성에 대해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닙니다. 그 가진 것을 어떻게 드려 쓰임 받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12-13절입니다.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정말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또 건강을 주셨고, 시간도 주셨습니다. 재능도 주셨고, 물질도 주셨고,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여러분 낭비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 정도는 뭐 그냥 흘러 보내도 돼' 이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감사함으로 여기며 소중하게 여길 때 모으면 12 광주리가 모여졌던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도 소홀히 여기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으셔서 놀라운 또 다른 하나님의 선물로 기적으로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15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여러분 사람들이 열광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예수님께서 그들의 배고픔을 정말 놀라운 기적으로 해결해 주셨으니까요.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이제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겠구나. 로마에 의해서 지배를 받으며, 큰 아픔을 받고 있는데 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겠구나! 그런데 이 사람들의 요청을 피해 산으로 혼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 온전히 거기에 목적이 있으셨어요. 오늘 이 하루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지 사람에게 기쁨을 구하는 인생보다 하나님께 기쁨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내 인생 가운데 필요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 닮기 원합니다.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과 놀라운 사랑의 관계에 빠져드는 축복이 오늘 하루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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