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43-54절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니 무엇을 구하시니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슴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글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살마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시는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롷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 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고 가시며 44 친히 증거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줄 알고 자기와 그 온집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새벽설교 I 요한복음 4장 43-54절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믿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그냥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결국 하나님을 예배하게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하나님을 예배했던 것처럼 믿음은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고 또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것을 너무나 기뻐하시죠.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이 점점 자라기를 바랍니다. 오늘 왕의 신하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는 그런 시간이 함께 갖기를 바랍니다. 43절을 보세요.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오 가시며'
이틀이 지난 시점은 사마리아 전도 사역을 마친 시점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건 길을 계속해서 가실 때에 한 격언을 말씀하셨습니다. 44절입니다.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가 자신이 배척당할 수 있는 지역임을 아셨음에도 전도 사역을 포기하거나 미루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포함해서 선지자들이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사명받기 전과 동일한 사람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말슴을 맡아 그 말씀을 전달하고 수행하는 하나님의 사자라는 점을 사람들이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단 선지자뿐이겠습니까?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옛날의 삶을 아는 가족이나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변화된 사람으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그 어려움을 잘 견디고 이겨야 하겟습니다. 주님이 갈릴리로 회피하지 않고 전도 사역을 하셨듯이 주변 사람들의 편견을 잘 이기며 주님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45절로 이어집니다.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도착하시기 전에 말씀이 무색하게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을 영접한 그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의 하닌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의 이러한 행동은 예수님의 행적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는 수준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된 자'임을 잊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46-47절입니다.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오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님께서 첫 표적을 행하신 가나에 도착하셨을 때에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당시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가 분봉왕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왕의 신하는 약 35킬로미터 떨어진 가버나움에서 왔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병들었는데 생명이 위태로웠습니다. 이 사람은 아들을 위해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어떤 문제를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깨달은 것입니다. 48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라히라'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서셔"라고 간구할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좀 의아한 대목입니다. 왕의 신하가 표적과 기사를 보여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으며,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한 것 뿐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시면 믿겠다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라고 말씀하셨기에 예수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이는 갈릴리 사람들이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믿지 않는 상황을 파악하고 하셨던 말씀입니다. 비단 갈릴리 사람들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에 기간에 유대인들에게도 길같은 말슴을 하셨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셔서 죽어가는 아이를 살려주시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기적만을 바라는 신앙은 바람지갛지 않습니다. 표적과 기사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더라도 그 이후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며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일마다 표적과 기사를 바라는 신앙은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요행을 바라는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49절입니다.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바라는 사람들을 훈계하셨지만, 왕의 신하는 조급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재촉했습니다. 부모의 애타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응급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얼마나 주님을 믿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살려달라고 강청만 하지 않으십니까? 응급상황일지라도 주님의 말슴을 들으려고 하는 마음의 여유는 얼마나 있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재촉하는 왕의 신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5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예수님께서는 재촉하는 왕의 신하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왕의 신하는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후 믿고 아이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을 재촉했던 모습과는 달리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순서입니다. 가보고서 믿은 것이 아니라, 믿고 가는 겁니다. 우리는 주로 결과를 보고 믿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믿음은 결과를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서 가보면 그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 시대에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자신의 나병을 고치기 위해 이웃 나라까지 능력있는 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가 환부에 안수하며 특별한 의식을 할 줄을 기대했었습는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는 말을 듣자 마음이 상했습니다. 요단강보다 더 깨끗한 강물이 자신의 고국에 있는데 먼 곳까지 와서 굳이 맑지 않은 강뭉에 몸을 담그라는 선지자의 말에 선뜻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믿고 가면 믿음의 결과를 볼 수 있어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염려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플도 아름답게 입히시거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야 그 얼마나 사랑하시겠는가'하는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지 결과에 대한 믿음이 아닙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다가 가버나움에서 가나로 오는 자신의 종을 만나셨습니다. 51-52절입니다.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 즉 어제 일곱 시에 열시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가버나움에서는 죽어가는 아이가 어느 순간 살아났습니다. 아프다가 서서히 회복된 것이 아니라 한 순간 아이가 회복되었습니다. 아이를 간호하던 집안 사람들이 모두 놀랐을 것이며, 이 기쁜 소식을 아이의 아버지에게 알리기 위해 급히 가나로 종을 보냈던 것입니다. 종을 만난 왕의 신하는 아이가 낫게 된 시간을 물으니 '어제 일곱시'였습니다. 여기에서 이 아이의 아버지는 그냥 기뻐서 재빨리 아이에게 달려간 것이 아니라, '그 낫기 시작한 때'를 확인합니다. 낫게 된 시간을 듣고 나서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아 있다.'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함을 알게 됩니다. 53절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우리가 주목할 것은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입니다. 50절의 '믿고 가더니'에 이어 53절의 '다 믿으니라'는 반응은 저자가 본 사건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홀로 집으로 내려갈 수 있었던 믿음은 말씀대로 이루어진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홀로 집으로 내려 갈 수 있었던 믿음은 말씀대로 이루어진 현장을 목격하면서 또 다른 믿음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대하는 일관된 태도가 믿음으로 나타나고 있스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적의 수단으로서의 믿음이 아닌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신회를 쌓아가야 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더욱 더 주님을 신뢰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 54절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예수님의 기적으로 사람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의 능력이 임해서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없어서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주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이전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믿었습니까? 처음에는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인의 증언, 즉 예수님께서 여인의 과거 행적을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은 아니지만 신비로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나중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 말씀을 들었을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표적과 기사는 예수님을 믿게 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가능합니다.
오늘 하루도 이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보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믿고 나아가는 그래서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기적을 경험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기에는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에게 표적을 통해 예수님을 믿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많이 베풀어주셨지만, 그 은혜를 깨닫지 못했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기적을 보고 주님을 믿거나 어려울 때 기적을 바라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옵고 표적이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들음으로 믿음이 성장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표적이 저희의 삶으로 드러남으로 주님의 구원의 통로로 쓰임받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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