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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송태근목사

설교문 I 송태근 목사 I 고향 소식 I 느헤미야 1장 1-11절

by №1★↑♥ 2023. 2. 6.

오늘은 고향소식이라는 제목으로 느헤미야 1장 1-11절의 말씀을 송태근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설교하셨는지 내용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원래 에스라와 한 권의 책입니다. 후대에 학자들에 의하여 저자별로 두 권으로 분리되어서 그렇지 원래는 하나의 책으로 되어 있어서 에스라의 내용과 얽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에스라서를 제대로 이해해야, 느헤미야가 정확히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문맥강 같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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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소식 I 느헤미야 1장 1-11절

느헤미야라는 이름은, '하나님은 위로자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위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유일한 위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느헤미야가 등장하던 시대는.. 느헤미야를 묵상하면서 등장했던 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전부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한 유명한 왕 기억하십니까? 고씨? 그렇습니다. 고레스 왕입니다. 고레스 왕이 이때로부터 90년도에서 100년 전에 포로 귀환을 명령합니다. 그러니까, 느헤미야는 굉장히 포로기 마지막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차 포로 귀환이 있었고, 2차 포로 귀한이 있었습니다. 1차 포로 귀한 때 돌아왔던 유명한 인물이 스룹바벨이고, 그는 총독으로 부임을 했지요. 이렇게 1, 2차 포로 귀환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느헤미야는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의 작함이 무엇이었느냐? 11절, '술관원'입니다. 이 당시는 정변이 자주 일어나고, 정치체제가 중앙집권적 체제이다 보니 왕의 자리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암살이나 독살의 위험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황제와 왕은 신변의 위협을 항상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하들 가운데 성품이 돈독하고, 신망이 두터운 사람을 뽑아다가 이들에게 먼저 왕의 음식과 왕의 상에 올려지는 술을 검사하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사람들은 적어도 하루에 두세 번은 반드시 왕을 직접 알현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독자 국가일수록 직위가 높은 것이 아니라, 누가 왕을 자주 만나느냐가 곧 권력이었던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느헤미야는 굉장히 높은 위치에 있던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 느헤미야가 1, 2차 귀환자 명단에 포함되지 못하고 이국 땅에 남겨지게 됩니다. 이 사람은 앞뒤 문맥상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조국에 대해서 굉장히 돈독했던 사람입니다. 왜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어요? 사실 포로기 이후에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모국어도 서툴렀을 것이고 그 나라에서 뿌리내린 삶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해방이 되고 나서 전 세계에 흩어져 징용 및 노동을 하던 동포들 중에 못 돌아온 사람들이 꽤~ 많이 있지 않습니까? 왜 못 돌아왔을까요? 고국으로의 귀환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돌아오지 못하고 남은 자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도 '왜 나는 그때마다 빠질까? 왜 나는 남겨질까? 왜? 나는 항상 나머지가 될까?' 이런 서글픔으로 자기 인생을 돌아보거나, 안타까워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이 사람이 돌아가지 못하고 남겨진 데에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밖에는 다른 이유로 설명할 길이 없어요. 결국 이 남은 자에 의해서 후에, 52일 만에 누구도 손댈 수 없었던 성벽 재건의 역사가 완성이 되거든요. 이 일로 주변 나라도 깜짝 놀라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와~ 저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구나!' 모든 주변 나라에서 놀랄 정도로,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었던 성벽 재건의 역사를 52일 만에 완성하게 됩니다. 방해도 있었고,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더 큰 어려움은 무너진 유다 민족의 정서와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느헤미야서는 다시 세우고, 다시 일으키는 데 굉장히 중요한 교과서와 같습니다. 

 

 

 

여러분, 집을 새로 짓는 게 편할까요? 고쳐서 새로 만드는 게 편할까요? 새로 짓는 게 훨씬 편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땅 파고 기초를 놓아서 새 집을 짓는 게 편하지, 허물어진 집에 자시 그림을 그려서 뜯어고쳐 새 집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무너진 경험이 있고,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좀처럼 회복하거나 일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서나 신앙의 내용면에서.. 그래서 지금 어쩌면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성벽 재건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한편에 느헤미야를 감추어 두었다가 역사 위에 툭! 드러내셔서, 사용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나는 준비가 다 되었다'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왜 나를 부르시지도, 쓰시지도 않을까?' 이렇게 본인 스스로 낙심해서 지금도 기도를 하고 있고, 기다리고 있고, 애타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분명 이 중에 이 시간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간을 꾸준히 기도하는 기도하는 가운데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잠시 후, 멀지 않은 어느 날.. 느헤미야처럼 딱! 등장시키심으로.. '아! 하나님께서 이때를 위해서 나를 감추어 두셨구나!' 그래서 숨겨 놓으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렇게 숨겨두고, 은밀히 여김을 받을 때에는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습니다. 정말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요. 주목하지도.. 관심도 받지 못하고, 항상 나머지 취급을 당하고.. 그런데 하나님의 시간표가 점 점 다가아고, 이때다!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표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이제 전면으로 세워내실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가 다 놀라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저 사람이 누구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시간 속에 역사 속에 드러나서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을 받게 됩니다. 느헤미야가 정확하게 그 형국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수산궁입니다. 고향 땅과 거리가 1000킬로도 넘게 떨어져 있는 어마어마 한 거리입니다. 자, 보세요.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 재건의 역사와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어디서부터 시작하시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페르시아 어느 궁궐 안에서.. 고향 땅의 소식을 가지고 고통하는 한 영혼으로 준비시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놀라운 방식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여겨짐을 받을 떼가 있습니다. 저 멀리서 벌어지는 일들을 위해서.. 누군가 그 일에 마음을 품고, 통증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거리와 상관없이 기도하는 그 사람의 가슴에서 하나님은 역사를 준비하십니다. 믿습니까? 저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 무너진 성벽 재건을 위해서 페르시아 궁궐 안에 남겨졌던 느헤미야의 가슴에.. 울분과 슬픔을 준비하셨던 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1-2절입니다.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 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여기서 '하나니'는 느헤미야의 친 형제입니다. '..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앞서 포로귀환 때 돌아갔던 사람들입니다. 고향 땅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이 다시 수산궁으로 자기 형제를 찾아서 무슨 일 때문에 와서 이야기합니다. '..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 즉' 포로에서 끌려오지 않고, 고향 땅 사람들의 형편을 물어본 것입니다. "사람들 사는 건 어떻습니까?" 고향을 그리워했던 마음을 가지고 물어본 거예요. 그래서 고향 소식이 전해집니다. 3절,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들려온 소식이 좋지 못했습니다. 아주 슬프고 안타까운 비통한 소식이었습니다. 그 지방에서 큰 환란을 당하고, 환란이 안팎으로 주변 국가들로부터의 공격을 의미합니다. 국가의 존폐위기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다 보니 엄한 나라에서 다 집적거렸겠지요? 참, 슬픈 역사를 이어오고 있었던 거예요. 게다가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여러분, 느헤미야는 어쨌든 그때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도 아니고, 포로 이후에 이방 땅에서 태어난 2세입니다. 2세를 미국에서는 '바나나'라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겉은 한국 사람인데, 속은 미국 사람인 거예요. 2세들이 부모와 갈등을 겪겠지요? 겉모습은 한국 사람이지만, 모든 의식구조와 삶의 패턴은 미국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뼛속까지 한국 사람인 부몬미과 갈등을 겪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느헤미야도 이와 같이, 포로로 끌려온 조상들이 이방 땅에서 난 2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느헤미야는 부모의 신앙의 유산 때문인지..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목마름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 소식을 듣고 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정서적으로 얼마나 먼 거리입니까? 게다가 자신은 페르시아 수산궁. 즉, 휴양지에서 술 맡은 관원입니다. 모든 생활이 사실상 최고급의 궁궐에서 생활입니다. 삶이 보장되고 안정되어 있는데.. 이때에 '고향 땅이 불탔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고생을 하건.. 내 알바 아니지..' 이럴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어땠냐? 4절입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그냥 보통 운 게 아니에요. 단순히 슬퍼서 운 정도가 아니라 '.. 수 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대단한 사람 아닙니까? 역시 하나님은 왜 이런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귀향시키지 않으시고, 남겨두셔야 했는가를.. 하나님의 길고 길었던 기다림의 시간과 히든 데이, 감추어진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꼭! 이런 시간이 있습니다. 감추어진 시간.. 이 표현은 유대인들이 잘 쓰는 표현입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식을 신랑 집에서 한번 하고, 그에 앞서 신부집에서 하는데 1년 간에 걸쳐 결혼이 진행됩니다. 두 번째 결혼이 진행될 때는 신랑 측에서 하게 되는데, 일주일 동안 신부가 방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이 기간을 'hiddedn day'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랑 친구들과 친척들이 신부 얼굴이 궁금해서 그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 신부가 등장하는 7일까지 그 집에서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벌입니다. 그 일주일을 유대인들은 히든데이. 즉, 감추어진 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인생을 살다 보면.. 꼭, 한번 내지 두 번의 감추어진 시간이 옵니다. 그 시간이 되면, 하나님이 덮어두시는 거예요. 이때는 그 시간을 겪게 되는 당사자는 죽을 맛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캄캄하고, 답이 없고.. 앞이 안 보이고,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덮어진 시간입니다. 그러다 서서히 고향 소식으로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이제 네가 일할 시간이다. 이 시간을 위해서 내가 너를 감추어두며, 준비했단다. 그동안 힘들었지? 고향 땅 많이 생각했지? 너도 돌아가고 싶었지?" 결국 이 일 때문에 다음 장에 보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감추어진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감추어진 시간을 기도로 잘 견디셔야 합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뭐냐?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입니다. 이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때 믿음으로 잘 견디셔야 합니다. 조금만 더 버티고 견디면 되는데.. 그 순간을 견디고 버티지 못해서 그동안 덮어졌던 시간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리는 일들이 얼마든지 가등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신앙에 있어서 제일 만만치 않은 시간..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거예요. 특별히 청년의 피 끓는 나이에는 더욱 쉽지 않아요. 우리 청년들이 이 시간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히든 타임이 있다. "너 왜 맨날 그 모양이냐?" 그러면 누구에게든지 이렇게 말하십시오. "지금은 하나님의 히든 타임이야, 감추어진 시간입니다. 너 앞으로 내 인생을 통해서 어떤 일을 벌어질지 기대만 하고 있어. 기도만 해줘!" 이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웃을지 몰라요. 그 웃음을 넉넉히 받아넘길 수 있을 때 진짜 이기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 이 훈련을 받고 계신 분 있으신가요? 이 훈련의 과정 후에 하나님께서 덮어두셨던 것을 여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히든 타임.. 

 

 

 

자, 그래서 느헤미야가 제일 먼저 무너진 성벽 재건을 위해서 무얼 준비했는가? 안타까워하며, 울기만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로 준비합니다. 4절 끝에 보니까, '.. 하늘의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것이 제일 중요한 준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누가 일하시는 시간입니까?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일하러 나오신 거예요. 그런데 그 일은 내가 일하는 순서가 안 왔어요.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 내 인생의 경영을 하나씩 하나씩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으시고, 세워질 받침대를 만들어 놓으시고 세팅하신 다음에 기도하어 엎드려 있는 그 사랑하는 아들을 불러 세워 등을 내미시는 거예요. "네가 가라!" 기억하십시오. 느헤미야가 고향의 슬픈 소식을 듣고 나서 제일 먼저 준비한 것이 '금식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어떻게 기도했냐? 5절입니다. '이르되..' 기도하는 거예요. '..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뭐를 지키시며? '.. 언약을 지키시며..' 여기 언약에 동그라미 쳐보세요. '..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하나님의 뭐가 기초된 언약이냐? 하나님의 긍휼. 우리는 그분과 상호언약을 맺을 수준과 상대가 되나요? 안 되나요? 안 돼요. 오직 그분의 긍휼 하심이 기초가 되어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 인생에 개입하셔서 우리에게 언약을 하신 거예요. "내가 너를 아들 삼을 거다. 너는 이제부터 내 백성이다. 그러기에 너는 내 말을 듣고 지키며, 나아갈 때 이런 이런 길들이 준비될 것이다."라고 언약을 하셨어요. 

하나님은 이 언약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실까요? 성실하세요. 성실의 가장 첫 번째 개념은, 일관되시다는 거예요. 그 일관성 속에는 우리의 모습과는 전혀 관계없이.. 우리가 넘어져 있던, 자빠져 있던, 실패의 자리에 널브러져 있던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맺으신 언약에 대해서 일관되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절대 이 언약은 중간에 깨지는 법이 없어요. 우리가 죽어 있다면, 살려서라도 데려가실 거고, 다리 몽뎅이가 부러져서 갈 수 없다면, 고쳐서라도 데려가실 것입니다. 어디에 빠져 있다면 건져 내서서 데려가실 거예요. 그분이 언약의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그 언약은 긍휼 하심이 기초가 되는 거예요. 쌍방향에 맺는 언약과 개념 자체가 달라요. 하나님은 그 언약에 대해서 성실하시며 그 성실하심은 우리의 일생 속에 일관된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거예요. 

 

 

 

몇 가지 더 살펴볼게요. 6절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 한 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 하여' 여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기도를 지금 누가 하고 있죠? 느헤미야가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느헤미야는 포로 이후에 태어난 자입니다. 그것도 머나먼 타국 땅에서.. 무너진 고터에서 조상들이 지었던 죄악의 현장 가운데도 있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의 기도 속에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냐? 연대적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내 집과 내 아버지의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것이 장막 안에 벌어진 죄에 대한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내 죄로 여기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안에서 벌어진 모든 죄악들은 그 교회만의 죄악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악이요, 우리의 악함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직 의식 전환이 안된 사람들이 있어요. 여기에 저는 느헤미야의 놀라운 신앙을 발견할 수가 있어요. 그는 6절 끝에 이런 표현을 씁니다. '6...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 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지 않음으로 우리가 죄를 범하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느헤미야가 직접 지은 죄가 아니라, 조상들의 죄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우리의 죄악으로, 가해자의 입장에서 철저한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 주간 회개 기도했다고 그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는 가해자의 마음으로 한국 교회 앞에, 하나님 앞에서 이 죄를 계속해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믿습니까?

계속해서 8-9절입니다.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 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놀라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희가 잘못한 것은, 맞는데요. 우리가 다시 모세의 율례와 법도로 돌아온다면 용서해 준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우리를 부르실 것이고, 모으실 것이고,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하나님의 신실하신 성품과 언약에 다시 자비를 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볼까요? 10-11절입니다.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언제? 여기 중요한 단어 하나가 '오늘'입니다. 따라서 합니다. '오늘' 은혜받아야 합니다. 회개도 '오늘' 해야 합니다. 믿습니까? 계속해서 11절 하반절입니다. '..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이게 회상의 형식이니까.. 과거의 일들을 회상형식으로 지금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사람들 앞에서 뭘 받기를 원한다? 은혜받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반드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모든 우리 주변의 나와 만남이 이루어지는 모든 사람들은 누가 보낸 천사들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의 통로로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수단이요, 도구의 통로일 수 있다는 거지요. 

하나님은 그래서 시간을 통해 역사하시고,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고, 세계라는 무대를 통해 역사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지만.. 결국은 대부분의 케이스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은혜를 입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만남은? 원초적인 복입니다. 저는 그래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항상 만남의 복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하시고,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주 중요합니다. 만남은 하나님이 맺어주시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 만남을 통해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이렇게 기도 끝에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받아 2장에서는 귀환을 하여 52일 만에 누구도 손댈 수 없었던.. 안팎으로 욱여쌈을 당하는 방해공작의 속에서도 불구하고 넉넉히 회복을, 개혁을 이루어 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포로들이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왜 실패했는가? 제도가 없어서 일까요? 제도를 못 고쳐서 일까요? 아닙니다. 느헤미야 7-9장을 보면, 느헤미야가 본질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이 백성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구나..' 해서 학자 에스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 부흥회를 시작합니다. 엄청난 성벽 재건의 역사를 앞두고 부흥회를 시작합니다. 문제는 노동력이 아니라, 제도 개혁이 우선이 아니라.. 사람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근본적인 뒤집음.. 근본적인 새로움이 전제되지 않고는 진정한 개혁이란 존재할 수 없다. 느헤미야가 그 본질을 깨닫고, 백성들에게 에스라를 통해서.. 느헤미야는 사실상 행정관입니다. 에스라는 말씀을 잘 가르치는 학자입니다. 그래서 이 놀라운 개혁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1장에서 보여주는 기도의 제목들이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애끓는 기도 속에 굵은 기초와 원리로, 제목으로 여러분 속에 붙잡혀 지기를 기도합니다. 

 

 

 

- 적용찬양 : 여호와의 유월절 -

이 시간 눈을 감고 기도합니다. 먼저 기도해야 할 것은, 내 안에 무너진 것이 있습니다. 회복되어야 할 성벽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 보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고쳐지지 않았던 회복해야 할 무너진 성벽이 내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성벽이 회복되지 않으면 도시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성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벽이 회복되어야 도시가 완성이 됩니다. 그 성벽이 뭡니까? 내 안에 무너진 것? 다시 한번, 이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회복되게 하시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거울이 되어서 내 안의 저 깊은 곳까지 헤집어서, 들추어 내주시옵소서.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은 자신과 우리 교회 공동체와 가족만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통증을 가지고 아프더라도 주께서 지적하시고, 말씀하시는 그 부분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뒤집어엎게 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삼일교회

송태근 담임목사,선교하는 교회,다음 세대를 세우는교회,세상의 이웃이 되는 교회

www.samil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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