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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예화&칼럼

[칼럼]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비판

by №1★↑♥ 2021. 3. 2.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비판

- 제임스 R.에드워즈 -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의 참가 자들은 그들이 공동 집필한 「다섯가지 복음」이라는 책을 통해 "신조와 교리로 치장된 예수는 이제 더이상 갈릴레오의 시각을 통해 하늘을 보아온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얻어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이 세미나는 이성의 빛으로 어둠의 시대를 몰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의기양양함은 멜로드라마틱한 동시에 오해를 일으킨다. 복음서 연구는 압제와 음모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개념과는 아주다르다. 예수 세미나는 지난 10년 간 나타났던 예수에 관한 연구들 중 가장 두드러진 형태이다, 이런 연구들은 의심할것도 없이 역사적 예수에 관한 새로운 탐구가 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탐구가 지닌 결함

이 새로운 탐구는 19세기에 알버트 슈바이쳐가 행했던 최초의 연구와 맥을 같이한다. 슈바이쳐의 목적은 수세기를 두고 축적된 교리와 의식이라는 지층 밑에 있는 실제 예수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슈바이쳐의 탐구와 오늘날의 그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전자가 이성주의를 표방하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 점화 되었던 반면, 후자는 사회과학 특히 해방신학과 인류학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예수는 누구인가? 오늘날의 탐구는 주로 예수 당시의 사회적 환경과 사회운동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자연히 그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전통적 지혜를 뒤집는 견해를 가진 예수, 급진적인 평등주의를 설교하고 실천했던 예수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예수에 관한 신약성서의 증언 대부분을 명백히 무시하고 있다. 우선 초자연적인 기적 이야기가 빠져있다. 메시야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자기 인식도 의도적으로 빠져있다. 부활도 빠져있다. 그의 부활과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에 관한 설명은 초대교회의 소망적 생각의 결과로 치부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새로운 연구의 가장 큰 결점은 그 연구자들이 예수가 성육하신 하나님이었을 가능성에 대해 개방적 태도를 지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수 당시의 사회적 환경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설명해 줄수는 없다. 예수가 농부 혹은 교사 혹은 운동의 창시자였다는 사실은 그가 성육하신 하나님이었다는 신약성서의 핵심적 증언에 비하면 오히려 부차적이다. 신약성서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8:29)이다. "너희는 나의 사회적 조건들로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다.

역사적 예수에 관한 비판적 탐구의 치명적인 결함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가 초대교회의 산물이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예수에 대한 현대의 비판적인 구별은 본질적으로 인위적이며 또한 지지할 수 없는 구별이다. 예수의 자기 인식은 예수 자신에 의해 제자들에게 전승되었다. 그것은 초대교회가 투사해서 만들어낸 산물이 결코 아니다.

○양날을 가진 고등비평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하에서 파악했다는 것을 복음서 이야기를 믿을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핵심이다. 예수의 자기 인식을 보여주는 많은 단서들이 있다. 우선 그는 자신에게로 제자들을 불러모았다. 예수는 당시의 랍비들처럼 토라를 가르치기 위해 학생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로 제자들을 불렀다. 둘째로 그는 "진실로(amen)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것은 과거의 선지자들이 "주께서 이르시기를"이라고 말했던 것과 구별된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을 습관적으로 `아바'(abba)라고 불렀다. 아바는 아버지를 지칭하는 친밀하고도 사랑이 담겨있는 단어다. 예수는 그의 행동과 자기표현과 말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인임을 드러냈다. 고등비평방법은 양날을 가진 검이다. 그것은 복음서의 기록들을 신뢰케도 할 수 있고 혹은 거부케도 할 수 있다. 예수 세미나가 신약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을 해치기 위해 채택한 이론과 방법 중 어떤 것들은 그것이 합리적으로 적용될 경우 오히려 신약의 정확성을 뒷받침해주기도 한다. 저명한 기독교 역사가 마르틴 헹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의 권위는 구약과 신약으로부터 나온 그 어떤 것들도 초월한다. 예수는 그를 현상학이나 종교사회학에 의해 제시된 어떤 범주 속에 가두려는 그 어떤 시도도 깨뜨린다." 복음서가 어째서 예수를 그렇게 묘사하고 있느냐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대답은 "예수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음서들은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남긴 기억을 충실히 보존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또한 능력을 부여받았던 자였다.

- 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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