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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송태근목사

[새벽설교] 야고보서 5:13-20 I 기도의 6가지 원리 I 송태근 목사

by №1★↑♥ 2021. 7. 11.

  여러분 중에 복 받기 싫다는 분만 손들어 보세요. 한분도 없으실 것 같아요. 저도 많이 복 받고 싶어요.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이 복에 대한 사모함은 어느 민족 못지않지요. 그러나 이것은 인류 공통의 문제로 누구나 다 복 받기 원합니다. 표현도 다르고요. 우리 민족은 하여간 방 안에 생활필수품에는 복자가 거의 들어가 있어요. 베개, 주발, 숟가락, 심지어는 가느다란 젓가락에도 복자를 새겨 넣고..

기도의 6가지 원리

 

 

 

 

  그런데 우리가 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과연 뭐가 복된 것일까? 성경의 원문인 히브리어에서는 복을 '바라크'라고 해요. 이 단어를 공부해보면, 원래 어원은 이렇습니다. '무릎을 꿇다.'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복된 자는 누구냐? 무릎을 꿇는 자예요. 하나님께..  참된 복은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가 가장 복된 자입니다. 믿습니까? 오늘 이 서신을 쓴 야고보는 별명이 하나 있지요? 낙타 무릎.. 실제 그가 기도하던 마룻바닥은 움푹 파여 있다고 합니다. 하도 하나님 앞에 기도해서 마룻바닥이 움푹패여 있을 정도로 기도를 했다고 해요.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그 인생이 사실은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가 기도만 할 수 있다면 그건 복된 인생입니다. 

  경부고속도로를 내려가다 보면, 우측으로 큰~ 간판이 붙어 있어요.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우리에겐 기도할 수 있다면 그자는 복된 자입니다. 복이라는 것은, 내가 얼마를 소유했고 소유하지 않았고 가 기준이 아닙니다. 성경에 말하는 복의 가장 중요한 시작과 출처는 내가 하나님께 무릎 꿇을 수 있는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야고보고 기도에 대해서 강조하며 야고보서를 마무리합니다. 

 

  13절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여기 고난당하는 자와 즐거워하는 자. 두 종류의 인생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집단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고난은 인간의 보편적 상황을 얘기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가 사실은 고난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담에 넘어짐으로 이 땅은 근본적으로 다 뒤틀렸습니다. 그래서 이 뒤틀린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생 자체가 고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편 기자를 통해서 이런 기록을 남겨요. 인생을 영업하는 자는 바다의 풍랑을 만난 자와 같다. 인생을 그렇게 정의했어요. 우리의 삶 자체가 다~ 고난입니다. 제일 큰 고난은 외부적인 고난보다 내 안에서부터 제어되지 못하는 잘못된 가치들, 생각은 바르게 갖고 있지만 거기에 따라주지 못하는 내 욕망들.. 아닌 걸 알면서도 탐욕과 이익을 향해서 가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심지어는 사도 바울까지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ㅡ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소망을 그분께만 두는.." 진리를 우리에게 남기고 있지 않습니까?

  이 땅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난이에요. 그런데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잘못해서 겪는 고난도 있지만 애매히 겪는 고난도 많지요. 나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어려움 많지요? 이 세상 구조가 기본적으로 뒤틀려 있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겪는 고난을 누구나 다 겪고 살아요. 억울하지요. 분하지요. 

  스포츠 용어 중에 '초과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도 저 친구처럼 덩크슛을 하고 싶다." 그래서 덩크슛을 연습하다가 다리가 부러졌어요. 그 다리에 깁스를 한 거예요. 몇 달을 그러고 다녀야 하다보니까 나머지 한쪽다리에 두배로 힘을 주고 고생을 해야 해요. 그리고 몇달 지나서 깁스를 풀었어요. 그리고 다시 운동장에 나가서 덩크슛을 하려고 뛰었더니 단숨에 덩크슛이 되는 거예요. 한쪽 다리를 못쓰는 동안 나머지 다리로 2배의 힘을 주다 보니 더 튼튼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지지대가 되어서 점프를 했는데 두 다리를 다 쓸 때는 갖지 못했던 폭발적인 힘이 한쪽 다리에서 출현이 된 거예요. 이런 것을 초과 효과라고 합니다. 다쳤는데 회복되는 동안에 얘기치 못했던 기능이 발생하는 거지요.

  고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고난이 꼭 눈물짓고 한숨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불후의 명작들.. 천로역정 같은 책, 바울의 서신들 그렇게 생명이 되는 책들이 다 어디서 탄생이 되냐? 하나님이 책 한 권 필요할 때마다 바울을 감옥에 넣어요. 돌아다니면 책 언제 씁니까? 감옥에서 이번에 책을 쓰게 만드시는 거예요. 그래서 탄생한 성경을 옥중서신들 아닙니까? 그것을 초과 효과라고 해요. 돌아보면, 고난이 꼭 내게 불행으로만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아팠기 때문에.. 그때 가슴앓이를 했기 때문에 그 때 슬펐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고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영적인 부요라는 것은 내 고난의 가치와 맞바꿀 수 없는 어마어마한 영적인 눈금을 내 평생에 갖게 된다는 거지요.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기도 할 지니라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라' 여기서 즐겁다는 말은 엔조이의 개념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확한 개념은, '안전과 만족'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포만감이 있을 때, 평안함이 있을 때 모든 게 다 넉넉해질 때 그 때 뭐하라는 거예요? 찬송하라는 말은 사실 기도입니다. 문학적인 운율을 만드려다 보니 기도와 찬송을 번갈아 표현을 했을 뿐, 여기서 말하는 찬송은 곡조가 붙은 기도를 말합니다. 찬송가를 보면 기도의 내용이 많지 않습니까? 거기에 음악이라는 툴을 통해서 이 내용을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찬송하라는 말은 단순히 노래하는 개념이 아니고 곡조를 붙여 기도하라 그 말이에요. 즉, 당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까? 모든 게 만족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때에 더 기도하십시오. 그 말입니다. 

  여러분 제일 위험할 때가 언제입니까? 내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만족한다 했을 때 여지없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맞죠? 고난당할 때는 오히려 성도들이 더 기도합니다. 자동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어 있어요. 갈 데가 하나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제일 위기는 내게 모든 게 넉넉해질 때.. 만족할 때.. 이때 우리는 한마디로 기도를 덜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서서히 나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과 멀어지기 시작하지요. 그래서 이 고난이 내가 호흡하는 평생에 끝나지 않습니다. 산 넘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강이 나오고, 강 건너면 지난번 보다 더 큰 산이 나오고.. 이 놈 피하면 더 쎈놈이 오고.. 그러니까,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긴장을 놓치지 않고 항상 하나님 앞에 은혜를 목말라하고, 은혜를 구하게 하는 인생의 방식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찬송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편안한다. 안전하다고 할 때 더 하나님 앞으로 기도의 자리로 더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때가 진짜 위기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14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어떤 분들은 '병들다'는 것을 영적인 것으로만 해석을 하는데 정확하게 이 병은 육체의 질병까지를 포함합니다. 문맥과 단어의 용도를 보면, 육체의 질병까지를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모든 필요를 다 주관하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로'라는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오늘과 같은 장로님의 개념이 아닙니다. 목사는 말씀과 치리를 맡은 장로요, 시무 장로님들은 교회의 치리를 맡은 이들입니다. 치리라는 것은 성도들을 잘 돌보고 목양한다는 개념입니다. 그 책임을 맡은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합니다. 기름을 바른다.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성경에서 일관되게 치료의 행위를 말합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목자가 양 떼를 몰고 사망의 음침할 골짜기를 지납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의 집에 도착할 즈음에 내 머리에 기름을 바르셨으니.. 그게 치료하는 행위에요. 왜 머리에 기름을 바를까요? 양떼를 치다 보면 특별히 박하의 골짜기를 지나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 했어요. 거기에는 수많은 맹수와 해충들이 양 떼들에게 달려 붙어서 막 뜯어요. 우리가 여름에 제일 힘든 게 모기들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모기 물리면 붙는 사람도 있지요? 그렇게 험한 상처투성이로 집에 도착하면 주인이 머리에 기름을 바르면서 상처를 닦아주며 치료를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성경을 잘 보세요. 기름을 바르며 기도할 지니다. 첫 번째 목양의 일번지는 기도입니다. 특별히 영적인 지도자들. 장로님들, 목사님들, 간사님들, 목자들, 리더들,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양떼를 맡아서 돌볼 때에 가장 첫번째의 목양의 일번지가 기도입니다. 제가 언젠가 단언하여 이런 표현으로 말했어요. "기도하지 않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맞죠? 적어도 우리가 양떼를 사랑한다면 기도해야 해요. 그 양떼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해주어야 해요. 그것만큼 든든한 울타리가 없어요. 우리가 양떼를 위해서 걱정을 해요. 그거 어떻게 다 일일이 쫓아다니나요? 그런데 그들을 든든히 담을 쳐주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 기도해주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펜스를 쳐주는 거예요. 원수 마귀가 손대지 못하도록 기도의 담을 치는 겁니다. 이것이 양떼를 사랑하는 첫번째 과제여야 합니다. 

  여러분들, 영적인 최고의 전성기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따라서 합니다. 지금! 지금이 여러분들의 영적인 최고의 전성기를 만드셔야 합니다. 추억을 곱씹으면서 흘러간 물레방아를 돌리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아~ 그때 기도 뜨겁게 했지. 금요일마다 철야했지. 그 때 어마어마하게 모였지.. 눈물 콧물 쏟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거 다 지난 이야기입니다. 오늘이 전성기가 되어야 합니다. 흘러간 물레 방아를 돌리지 마십시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해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항상 그리스도인은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워지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는 늙어가면 안 돼요. 육신의 사람은 늙어가도 영의 사람은 해를 더할수록 새로워져야 합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의 영적인 전성기는 지금이어야 합니다.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믿음의 기도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뭐가 믿음의 기도일까요? 믿음의 기도는 의인의 기도입니다. 16절 '..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믿음의 기도, 의인의 간구. 같은 말입니다. 의인이 누구인지 알아야겠지요? 누가 의인입니까? 성경에서 의인으로 말할 때는 관계의 개념이 아닙니다. 행위적인 공로의 차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서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관계의 개념. 즉,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원천적으로 성경적 정의상 의인일까요? 아닐까요? 의인입니다. 롯도 하나님 앞에서 불편한 일들을 많이 했지만, 성경은 롯에 대해서 뭐라고 하냐?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그가 의로울 만한 구석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는 기도를 믿음의 기도라고 한다. 

  자, 그런데 여기서 영적인 혼란을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기도라는 것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냐? 오래 기도해얐나? 이것이 우선적 가치가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냐? 오래 기도했느냐가 일차적 근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15절 '..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근본적 치료의 주체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응답하시고, 주님이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시는 분들이 일으키는 특별한 혼선이 무엇이냐? "내가 이~만큼 기도했는데..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응답이 있다? 없다?" 그것은 내가 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들어주고, 이루시고, 결과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할 때 바르게 기도해야 합니다. 샘플로 제시하는 인물인 누구죠? 17-18절 '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다. 우리처럼 불완전하고, 연약하고, 실수투성이였다. 그도 신앙이 극치로 올라갔다가 로뎀 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뭐라고 항의하죠? "내가 열심히 특심이오니" "자기 열심히 했는데, 이게 뭡니까?!" 우리랑 비슷하죠? 틀리지 않아요. 그런데 그가 기도할 때 3년 6개월을 닫으시고, 그가 다시 기도하니까 하늘을 여시고 그 가문 땅에 단비를 내리시는 거예요. 우린 그 현장을 조금 더 세밀히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왕상 17:1 '길르앗에 우거 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을 인용하여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엘리야가 기도했기 때문에 비가 안 온건 가요? 하나님이 먼저 그 약속을 주신 건가요? 그렇지요. 엘리야의 열심인 기도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 시대의 고통을 고발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언약으로 약속을 주신 거예요.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그 약속 붙들고 기도한 거예요. 기도하는 게 중요합니까?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는 게 중요합니까? 

  18:1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하나님의 음성이 삼 년 만에 들려져요. 그런데 비는 얼마 동안 안 왔나? 3년 6개월 동안. 6개월 전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너는 아합에게 가서 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실 것을 온 백성에게 말하라."는 그 약속을 붙들고 6개월 동안 기도합니다. 그러자 3년 6개월 만에 하나님이 하늘의 창을 여시고 이 땅의 비를 내리십니다. 역시 일관된 부분이 무엇입니까? 그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합니다. 

  소명이 있고, 약속이 있는 자는 낙심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왜? 내 의지 때문이 아니라 그 소명과 약속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에.. 그 약속은 실체이기 때문에 포기될 수 없고, 낙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엘리야의 기도의 원칙과 특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에 붙잡힌 기도였다는 데 그 강점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누구를 씁니까? 어느 교회를 사용하십니까? 큰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있는 교회, 성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크기로 일하지 않습니다. 큰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희귀한 놀리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붙들린 인생만 하나님이 시대를 바꾸고 역사를 새롭게 하는 데 사용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도에 대해서 6가지를 주신 말씀을 통해서 간단하게 살펴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첫째, 기도는 지속적이어야 한다. 일관되어야 해요. 기도는 몸으로 익혀야 합니다. 평생 기도하는 자리를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자가 진짜 복된 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기도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이어야 한다. 두리뭉실하게 기도하지 마세요. 기도를 구체적으로 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 기도하는 시간이 너무 짧아요. 기도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으니까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거예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사랑하는 이와 대화하듯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뭐냐?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거에요. 

  세 번째, 기도는 책임을 대체하지 않는다. "하나님 좋은 자매 만나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고 끝? 자기가 좋은 자매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노력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미팅 자리마다 나가고, 미팅이 안 들어오면 거리라도 다녀보고.. 노력을 해야죠. 기도만 하지 마세요. 기도했으면 행동을 하라! '행함으로 너희 믿음을 온전케 하라' 믿고만 있으니까 안 되는 거예요. 

  네 번째, 기도는 완전한 자의 것이 아니라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엘리야도 응답하신다. 내 기도도 응답하실까? 아닙니다! 어제 욥의 이야기를 말씀드렸지요? 얼마나 불평 가득한 사람이었나요? 그 불평을 하나님께 쏟아냈어요. 그것도 믿음이라고 하나님이 들으셨어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얼마나 무궁하십니까? 믿습니까. 못난 모습도 오픈하고, 징징 짜면서 나아갈 수 있는 게 믿음이란 말이에요. 

  다섯 번째, 내가 기도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일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오래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에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내 열심히 응답의 조건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엘리야처럼 약속에 붙잡힌 기도를 하라. 

 

  오늘 이 여섯 가지가 여러분들의 영적 전성기를 가져오는 초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 369장

기도

주님 3주 동안 이곳으로 걸음에 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전 앞에 우리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렇게 살기로 고백하며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번 잡아주시고 걸음을 견고케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새벽마다 깨워 주님 앞에 부르짖었던 제목들을 일일이 기억하시고 응답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선한 때, 주님의 선한 방법으로 주시옵소서. 오늘의 말씀처럼 허물진 인생이지만 하나님의 자녀 됨을 믿고 주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오늘도 나옵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에 많은 젊은이들의 일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들에게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일터를 주시고, 그 일터는 평생 저들의 하나님의 미션의 현장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학업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그 학업이 세끼 밥만을 위한 준비가 되지 않게 하시고 평생토록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을 위해서 쓰이는 선한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특별히 지혜를 더하시고, 암기력을 더하시고, 분석력을 더하셔서 공부의 진보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배필을 구하며, 오랫동안 엎드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구하옵기는 먼저 아름답고 귀한 배필로 준비되게 하시고 그 자매나 형제에게 하나님께서 보시기 합당한 신부와 신랑으로 준비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자녀들 때문에 고통하며 오랜 세월 눈물로 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특새 동안 여러 가지 모습으로 애쓰고 수고하고 헌신한 눈물, 땀, 아름다운 마음들을 받으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평생의 즐거움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평생의 노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종을 붙들어주신 은혜도 감사드리며

 

  지금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 하심이 머리 숙여 경배를 드리는 모든 삼일의 성도들, 그리고 복중의 생명들까지 영원토록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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