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story/설교문

[설교문] (룻 1:1-8)아, 슈브.. 슈브!

by №1★↑♥ 2021. 6. 5.

룻기 1:1-18

아, 슈브... 슈브!

4page preaching

1P.

  일이 이렇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남편에 이어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연달아 죽어나가다니요! 사람이 안 죽어 나간 집은 없다지만 그렇다고 남자가 모조리 죽어나간 집은 또 어디 그리 흔하단 말입니까?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을 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잘 살아보자고 그 먼길을 달려 이바인의 땅 모압까지 왔는데 여기서 죽다니.. 떡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들레헴이, 떡 집은커녕 가뭄으로 인해 굶어 죽게 되었을 때, 걱정하지 말라며 이곳 모압까지 데려오더니, 그렇게 허무하게 혼자 가버리면 나는 어찌 살란 말이오! '당신 이름 나오미의 뜻이 희락과 기쁨이니 내 평생 당신을 기쁘게 해 주겠고!' 약속하더니 기쁨은 고사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개 만들다니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과부가 된 박복한 여인 나오미! 정말 못 살 것 같고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그나마 살아야만 했던 이유가 두 아들 말론과 기론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아들을 이름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큰 아들 말론이나 둘째 기룐, 모두 태어날 때부터 건강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이름을 짓는 습성 기은데 하나는, 태어나는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이름에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의 장자 에서는 몸이 붉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고, 차남 야곱은 자기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해서 야곱이라고 이름 붙였던 거거든요? 오죽 약했으면 연약한 자라는 뜻을 가진 말론이라 불렀겠어요? 오죽 몸이 약했으면 '폐병'이라는 뜻을 가진 기룐으로 지었겠어요 두 아들 모두 변변치 않았기에 나오미는 연약한 두 아들을 돌봐야 한다는 강한 모성애로 남편 잃은 슬픔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연약했지만 그럭저럭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죽은 뒤 10여 년이 지나 청년이 되었을 때 장가까지 보낼 수 있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의 풍속을 따르자면 이스라엘 여인 중에서 며느리를 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풍속을 따르자면 이스라엘 여인 중에서 며느리를 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여인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으니 어떡합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나오미 편에서의 이야기이고, 사실 솔직히 말하면 사정이 궁한 것은 과부댁 나오미 집이지요. 남편이 있길 하나요, 재산이 있길 하나요, 지위가 높길 하나요! 다행히도 모압 사람 중에서 딸을 주어서 두 아들이 장가를 들 수 있었습니다. 큰 며느리의 이름은 룻입니다. 작은 며느리는 오르바입니다. 둘 다 모압 여인들입니다. 이방인이 아니냐? 이런 거 따질 때가 아닙니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집에 시집와준 롯과 오르바에게 감사할 뿐이지요.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일이란 말입니까? 결혼해서 잘 사는가 싶더니 아들 둘이 한꺼번에 아버지 뒤를 따라가는 게 아닙니까? '이게 무슨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제 나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남편 떠나보내고 그나마 두 아들 믿고 살아왔는데 이제 살 이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자 셋이 죽어나가고 과부 셋만 남은 집을 상상해보십시오! 누가 보아도 벼락 맞은 집 아닌가요? 재앙 맞은 집 아닌가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표현대로라면 재수 옴 붙은 집 아닌가요? 슬퍼하는 자가 어찌 시어머니뿐이겠습니까? 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롯과 오르바도 슬프기는 매한가지지요. 웃음꽃이 피어야 할 집안은 눈물과 슬픔만 가득합니다. 한 집안이 이렇게 처참하게 결단이 났습니다. 그리고 나오미 룻 오르바 세 여인의 인생도 절단이 났습니다. 

2P.

    어디 절단 난 집이 나오미 집뿐이겠습니까? 어디 절단난 인생이 나오미와 룻 그리고 오르바 뿐이겠습니까?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진 희생자들의 인생이 절단이 났습니다. 생떼같은 자식을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떠나보낸 가족들의 삶이 절단이 났습니다.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하고 모든 생업을 포기한 채 진도 앞바다에 머물고 있는 가족들의 삶이 절단 났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절단 났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아십니까? 6.25의 참화를 딛고 60여 년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입니다. 들어보세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지! 외화 보유고 세계 7위인 대한민국, 자동차를 8백만 대를 제작하여 230개 국가에 수출하는 대한민국. 세계 조선소 1등부터 6등까지를 가진 나라 대한민국, 인도네시아 국산 초음속기 T-50 16대를 직접 몰고 가서 수출하는 나라 대한민국, 외국에서 90조 원 공 사를 따내는 대한민국, 전 세계 평균 3명 중 1명이 사용하는 휴대폰을 생산하는 나라 대한민국, 전 세계 바다에 떠다니는 대형 선박의 43%를 만드는 대한민국, 서울의 지하철이 세계 1등 지하철인 나라 대한민국, 8년째 세계 1등 공항 평가를 받은 인천공항이 있는 나라 대한민국, 세계 기능올림픽 대회에서 8년 연속 1등을 차지한 나래 대한민국, 반도체 1등 국가 대한민국, 유엔에 세계 1위의 전자정부 기술을 가진 나라로 선정한 대한민국, 세계에서 인터넷의 속도, 기술, 보급률이 가장 우수한 나라 대한민국, 세계 전문기관들이 2030년 안에 세계 5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나라 대한민국. 타이어를 연간 1억 개를 생산하는 타이어 3대 강국 대한민국. 세계 5대 잠수함 생산국 대한민국. 세계 3대 교육용 로봇 수출국 대한민국. 심지어 공중 화장실 평가에서 까지 세계 1위에 오른 대한민국!

  놀라셨지요? 말 그대로 위풍당당 대한민국입니다. 언제 우리나가 이처럼 눈부신 발전을 했는지 어안이 벙벙할 정도입니다. 지방을 한번 다녀보십시오. 옛날에는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시골에는 차 구경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곡물 실어 나르는 대한통운 트럭이 흙먼지 날리며 가면 시골 아이들이 그 먼지를 뒤집어쓰고 차 꽁무니를 따라다니곤 했지요. 그때 아이들 몸에 회충이 많았는데 이 회충이 기름 냄새를 좋아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그런 때가 어제 같았는데 천지개벽을 했습니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도로가 얼마나 잘 놓였는지 몰라요. 축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더욱 실감하실 겁니다. 세계 최고의 영국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보면 국내 기업들 광고판이 버젓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 선수들 유니폼에도 우리나라 기업의 로고가 새겨져 있습니다.

  한 십여 년 전만 해도 미국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현대차가 가뭄에 콩 나듯 아주 드물게 보이곤 했어요. 이국 땅에서 우리가 만든 차를 보면 얼마나 기쁘던지요. 지금은 너무 흔해서 별 감흥이 없어요.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주요 도시엘 가보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가장 높고 번듯한 건물에 한국 기업의 광고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지은 '애국 시'가 있어요. '겨레여 우리에겐 조국이 있다. 내 사랑 바칠 곳은 오직 여기뿐, 심장의 더운 피가 식을 때까지 즐거이 이 강산을 노래 부르자!' 애국 시의 구절처럼 심장의 더운 피가 식을 때까지 노래하고 싶은 자랑스러운 조국입니다.

  그런데 이면을 들여다보면 자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나라 전체가 부실 공화국입니다. 나라 전체에 비리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겉은 멀쩡한 데 한 꺼풀만 벗기면 사회 구석구석이 부패해서 썩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그래서 부실-비리-부패의 3B 공화국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시중에 떠돌아다닙니다. 실력이 있으면 출세한다고 합니다. 정직한 사회에서는 그것이 정답이지요.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실력보다 더 높은 게 있어요. 그게 바로 능력입니다. 실력으로 안 되는 데 능력으로 됩니다. 연줄이 있으면 됩니다. 배경이 있으면 됩니다. 이게 다 능력이라고들 합니다. 각 기관마다 관피아가 판치고 법관의 전관예우가 관례가 된 나라,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적당주의 이기주의 배금주의, 한탕주의가 브랜드가 된 나라,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급격하게 물질적으로 부유해져서 위세를 부리며 그것이 부끄러운 것인지도 모르는 국민이 산다고 외신이 비아냥 거리는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이것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이면의 자화상입니다. 원인이 무엇인가요? 언젠가부터 대학에서 철학과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철학과 나와 봐야 취업도 안 되고 학교로서도 학생들도 잘 오지 않고 한마디로 돈이 안 되는 과라는 것이지요. 김대중 정부 때에는 BK21이라 하여 석, 박사 과정생 및 신진 연구 인력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고등교육 인력양성 사업을 실시했습니다. 여기에 채택된 대학은 엄청난 돈을 교육부로부터 지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지원분야가 거의 대부분 이공계입니다. 핵심기술 신성장동력 등 돈 되는 분야가 대부분입니다. 문학 역사 철학 소위 사회의 사상과 정신을 주도하는 분야는 거의 전멸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문사철 분야는 당장 돈이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뭡니까? 정부마저 경제논리에 함몰되어 오직 돈돈돈 돈 되는 분야만 지원하는 겁니다. 대학은 사람 만드는 교육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대학 평가에서 주요 지표가 취업률입니다. 아니 취업은 정치를 잘해서 경제가 잘 풀리면 자동적으로 되는 건데 그 책임을 대학에 묻다니요! 교육의 최고 기고 기관인 대학마저 직업훈련소로 전략되고 돈의 논리에 매여 버렸어요. 그러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돈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잖아요? 거기다가 우리가 민주공화국이라 하는데 도대체 민주공화국에 사는 민주 시민으로 산 날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과 역량을 키울 시간이 우리에겐 절대 부족했습니다. 왜곡된 정치 때문에 정치적 감각은 엄청나게 발달했지만 민주시민의 역량과 소양을 숙성시킨 시간과 경험은 절대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참담하지요. 공권력을 가진 자는 공권력을 남용합니다. 일반 시민들은 공권력을 우롱합니다. 경찰이 두들겨 맞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할 겁니다. 나와 우리 마을에 이익이 안된다 싶으면 법이고 질서고 상관없습니다.

  요즘 거리를 지나다 보면 젊은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노골적으로 키스를 합니다. 누구도 그걸 보고 아무런 말을 안 합니다. 그게 보기 좋아서일까요?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이기에 존중해야지!', 그래서일까요? 그런데, 마음이 별로 편치 않아요. 왜냐하면 그런 행동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일반적인 정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어른들 앞에서 스킨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기류라면 문제 될 거 없습니다. 아직 아닙니다. 젊은 세대만 그런 거 아닙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동들을 많이 압니다. 저도 한국사람이고 함께 지탄의 대상이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 젊은 세대, 늙은 세대 할 것 없이 많이 무례합니다. 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마음이 무거워지지요? 부인하고 싶은데 이것이 오늘의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3P.

  개인이든 가정이든 나라든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작은 문제냐 큰 문제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문제가 커도 그렇다고 그냥 앉아서 죽을 수는 없지요. 나오미 가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마침 베들레헴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곳에 풍년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지,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의 뜻이 떡집인데 달리 떡집이겠어? 돌아가는 거야! 거기 가면 내 친척들도 있으니 의지도 되고 늘그막에 외롭지도 않을 거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갑자기 나오미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찾은 살길은 귀향! 슈브였습니다. "얘들아, 나는 이제 내 고향땅으로 가련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너희들도 이제 그만 너희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희들은 아직 젊고 미래가 창창하잖니? 좋은 사람 만나서 새 가정 꾸리고 잘 살아야지." 시어머니가 이리 말씀하시면서 작별의 입맞춤을 하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시어머니의 이별 통보에 두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만류합니다. "아닙니다. 어머니 우리도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아가들아, 아서라, 다 부질없는 것이야. 나를 따라가서 뭘 어찌할 건데? 내가 애를 낳을 수도 없는 거 너희들도 알잖나? 설사 애를 낳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어느 세월에 키워서 느그들 신랑으로 준단 말이고? 그렇잖아도 하나님이 치셔서 남편과 아들 둘 다 잃었는데 나를 따라와 봐야 너희들만 불행해져. 너희들 볼 때마다 내 가슴이 미어져. 그러니 너희들 갈 길을 가도록 하거라!"

  이스라엘에는 형사 취수 제도가 있어요. 그래서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거두어 아이를 낳습니다. 그렇게 해서 형의 핏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늙다 보니 애를 낳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 어머님 말씀이 일리가 있어. 시어머니 따라가면 유대인 세계로 들어가는 건데, 우리 모압 사람들에게는 이방민족이지, 남편을 다시 얻을 가능성도 없고 그냥 저 노인네 수발이나 들면서 늙어가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러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깝지. 그래! 나는 할 만큼 했어. 어찌 보면 나도 상처 입은 피해자야! 나도 이쯤 해서 내 인생을 찾아야지. 또 내가 떠나는 것이 어머님이 새 출발을 하시는데도 도움이 될 거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둘재 며느리인 오르바는 주저 없이 일어나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녀는 자기 민족에게로 슈브, 귀향한 겁니다.

  "얘 큰 아가야! 너도 둘째처럼 네 백성에게로 돌아가려무나!" 시어머니 입장에서 사실 이리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법적으로도 엄연한 며느리입니다. 나오미 자신은 이미 늙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첫째 며느리마저 떠나면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어머니, 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란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저는 어머니와 함께 갈 거예요. 어머니가 가시는 곳 머무시는 곳 어머님이 묻히시는 곳, 거기가 어디가 되든 저는 항상 어머니와 함께 할 거예요. 어머니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거예요. 그러니 저보고 돌아가라는 말씀은 더 이상 하지 마세요!"

  귀향, 슈브의 목적은 9절에 나오는 평안함(메누하)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지금 여기에 없는 메누하 즉 평안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나오미는 세 번째 아들을 낳을 수 없을 만큼 늙었습니다. 거기다 법적인 보호나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닙니다. 그녀를 따르면 거렁뱅이로 살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또 이국땅인 이스라엘에 이방인으로 남겨져서 많은 고생을 겪을 것입니다. 당연히 거기 평안함을 기대할 수 없지요. 그러면, 귀향의 방향이 틀린 걸까요? 새롭게 출발하는 방향이 잘못된 걸까요?

  우리가 알 드, 오르바는 자기 겨레와 신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귀향 슈브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르바가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은 일견 매우 현명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분명 그녀는 젊은 나이에 재혼해서 한 아비의 아내로 아이들을 낳고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겁니다. 비극이랄 것도 없고 희극이랄 것도 없습니다. 그녀는 팔레스틴의 어려운 삶을 피했다는 소득이 있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집에서 명단이 삭제되었습니다. 더 이상 성경은 오르바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르바의 선택은 올바른 선택인가요?

  반면 나오미 집안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오르바가 떠난 것을 나오미의 가문 입장에서 말한다면 떠나보내야 할 것을 떠나보낸 것이지요. 마음 없이 억지로 붙어 있을 뻔한, 그래서 가족이면서 원수처럼 살아야 하는 거추장스러움을 정리한 것이지요. 돌봄이 필요한 시어머니를 놔두고 자기 미래를 위해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가족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르바가 간 것은 새 출발하려는 나오미 집안으로서는 잘 간 것입니다.

  반대로 룻은 오르바가 떠나는 것을 보고도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녀가 남는 것은 자기 생을 포기하는 것이지요. 자기 민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포기하는 것이지요. 자기 민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의 종교와 신을 포기하고 이제부터는 베들레헴의 과부 나오미의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오미를 따라간다는 것은 생활과 거주뿐 아니라 유다 백성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 즉 여호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래가 창창하고 새로 개가하기에도 충분한 여인 입장에서 이것은 실로 바보 같은 짓입니다. 오르바와 달리 룻은 나오미가 안식처라고 추천해준 곳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곳을 선택했습니다. 오르바는 자기 자신을 위해 선택했는데 룻은 시어머니를 위해 선택했습니다. 이런 선택은 누가 보아도 멍청한 것입니다. 자기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봅시다! 그녀가 택한 불확실한 곳이 바로 여호와의 인도를 받는 것이라면 그것을 멍청한 짓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오르바는 익숙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귀향 슈브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룻은 어머니의 귀향에 동승했습니다. 어머니와 하나 됨을 선언한 룻이잖아요? 이 하나 됨을 근거로 이것을 귀향이라 부를 수 있다면 룻의 귀향 슈브는 전혀 새로운 곳으로 귀향입니다. 오르바와 룻 두 사람은 새로운 출발을 귀향 슈브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룻기 1장에만 슈브라는 단어가 12번 나옵니다. 그중 여섯 번은 모압으로의 귀향에 쓰였어요(8, 11, 12, 15, 15, 16) 나머지 여섯 번은 베들레헴으로 귀향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6, 7, 10, 21, 22, 22) 여섯 번씩 공평하게 사용되었지만, 결과는 전혀 판이하게 다릅니다. 룻의 귀향은 어리석은 바보 같은 선택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땅으로의 귀향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생명이 보장된 살아있는 미래로의 새 출발입니다. 모압 땅으로의 귀향을 택한 오르바는 현명한 귀향인 것 같지만 여호와를 잃어버린 가장 멍청한 슈브였습니다.

  여러분, 이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듣습니까? 2차 대전을 치른 후 독일은 완전히 폐허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의 한 사회학 교수가 조교와 함께 지하실에 살고 있는 독일의 한 가정을 방문하여 인터뷰 시간을 가졌습니다. 폭격으로 허물어진 건물 밑에 어두침침하여 사람이 살기에는 최악의 조건인 지하실이었지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수가 조교에게 물었습니다. "저들이 나라를 재건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조교는 고개를 저으며 답하였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니야, 나는 저들이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교수의 말에 조교가 의아해서 묻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교수가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 어두운 지하실의 탁자 위에 무엇이 있었는지 자네는 기억하는가" "생화가 꽂힌 꽃병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걸세, 최악의 재난을 당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탁자 위에 꽃 한 송이를 놓아둘 수 있는 민족이라면 반드시 나라를 재건할 수 있을 것이네. 아직도 희망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한 송이 꽃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하게 헌신하는 분들이 바로 꽃입니다. 문제는 다시 일어서는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겁니다. 우리가 오르바의 길을 갈 것인가? 룻의 길을 갈 것인가? 1960년대와 70년대 국민들의 다수가 끼니 걱정을 하며 지나던 시절에 "잘 살아 보세"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잘 살게 되었습니다. 잘 살게는 되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잘' 사느라고 '바로' 사는 길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만일 다시 일어서겠다는 우리가 여전히 물질적인 잘 살아보세를 향해 나아간다면 우리는 오르바의 선택을 하는 셈입니다. 만일 다시 일어서는 대한민국이 바르게 살아보세를 향해 일어선다면 우리는 룻의 선택을 하는 셈입니다.

  그래요. 진정 우리 민족이 다시 사는 길은 과거로의 귀향 슈브가 아닙니다. 자기만을 위해 가족을 맺어진 연을 스스로 끊고 나만 살겠다는 이기적은 오르바의 슈브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다른 신에게로 달려가는 오르바의 슈브가 아닙니다. 룻이 보여준 것처럼 자기가 아닌 어머니를 위해 그의 고향으로 동반하는 새로운 귀향 새로운 슈브여야 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슈브여야 합니다!

4P.

  아마 여러분 가운데 그룬투비(Nikolai Grundtving)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의 신학과를 수석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할 만큼 수재였습니다. 그가 유명한 것은 신앙으로 나라를 바꾸는 일을 한 것입니다. 당시 덴마크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새 프러시아(지금의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고 유럽 대륙 북부의 곡창 지대인 슬레스빅 홀슈타인 지역을 넘겨준 상태였습니다. 남겨진 무성한 황무지였습니다. 국가 경제는 당연히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덴마크 국민은 좌절과 실의에 빠졌습니다. 어두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알코올 중독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그룬트비는 덴마크 국민의 의식을 일깨웠습니다. 국민이 실의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하는 의식개혁운동을 주창했던 것이지요. 그 바탕은 루터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이념이었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이여, 덴마크(땅)를 사랑하자. 덴마크 사람들이여, 백성(이웃)을 사랑하자.

  그룬토비는 또 덴마크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선 스칸디나비아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새로운 낙농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룬트비는 '국민의식 구조가 개혁돼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덴마크 역사상 최초의 성인 기숙교육 학교인 국민고등학교를 세웠습니다. 이 학교가 덴마크 전역으로 확산돼 덴마크 국민의 의식을 크게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룬트비는 낙농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전국의 목사들이 주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전령이 돼야 한다며 3애정신과 함께 낙농기술을 가르쳤습니다. 각 지역의 교회는 낙농기술을 가르치는 주민 센터가 됐고 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농업 운동이 확산됐습니다. 덴마크의 위대한 중흥이 시작됐던 것이지요.

  그 결과가 뭔지 아십니까? 흔히 한 나라가 '잘 사는 나라'라고 말할 때 '어느 정도 잘 사는 나라인가'라고 하는 것을 정하는 잣대는 첫째, 의료보험제 둘째, 퇴직수당, 셋째 교육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요. 덴마크는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의료보험제도가 발달되어서 누구든지 병이 나면 한 푼의 돈도 지불하지 않고 병원에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으며 약을 먹습니다. 퇴직수당이나 실업보험도 국가에서 인수하였습니다. 그래서 덴마크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직장에서 퇴직한 후에는 어떤 종류의 보험 불입 여부를 막론하고 65세 이후부터 연금을 타서 죽을 때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 줍니다. 

  덴마크에서는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학교에 등록금, 수업료를 내지 않습니다. 아니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충당합니까? 여러분 노라지 마십시오. 세계에 오직 이 나라만 십일조 세가 있습니다. 이것이 복지기금을 충당하는 핵심입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1982년 당시 통계로  6만 명 넘게 덴마크로 입양되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입양된 나라가 덴마크입니다.

  덴마크는 9세기 초에 복음을 접한 이후 개신교 국가가 되었는데 교회는 국가에서 설립하며 장관 중 교회 장관 제도를 두어 종교분야를 관장합니다. 목사의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나 발령을 내는 것도 국가에서 합니다. 농촌이나 도시나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목사의 대우가 똑같습니다. 현대 덴마크 국공립학교의 50%가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신앙으로 이룬 나라, 기독교 신앙과 나라사랑이 이런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호국의 달 6월의 첫날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덴마크 보다 더 기구하고 더 비참했던 우리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겉은 화려한데 속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오르바가 택했던 슈브,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죽는 길입니다. 우리의 길은 룻이 택했던 귀향, 슈브입니다. 바로 다른 사람을 향한 나의 희생과 봉사입니다. 우리의 길은 룻이 택했던 귀향, 슈브입니다. 바로 다른 사람을 향한 나의 희생과 봉사입니다. 제대로 바르게 살아보자는 슈브입니다. 하나님만 모시고 사는 신앙의 슈브입니다. 이것이 우리 만족을 살릴 것입니다. 이 슈브가 대한민국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적인 나라로 만들 것입니다. 이 멋진 내 조국을 마음에 그리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힘차게 일어납시다.

 

정인교 교수_서울신학대학교 설교학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