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본문에서는 야곱이 오랜 처가살이를 마무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자, 놀란 라반은 야곱을 붙잡으려고 '품삯을 더 줄 테니 좀 더 있어달라." 정식 고용계약 제안을 했고 야곱이 이를 수용합니다. 얼룩무늬, 점 있고, 아롱진 것이 태어나면 자신의 품삯으로 달라고 요구하자, 라반은 겉으로는 OK 했지만, 뒤로는 얼룩무늬나 점 있는 것들은 아예 야곱의 가축으로부터 격리시켜 버립니다. 그러니까 사실 라반은 야곱에게 품삯을 전혀 주지 않으려는 계략을 꾸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기적 같은 축복을 주셔서 평소에 태어나기 어려운 얼룩무늬와 점 있는 양들이, 계속해서 태어나게 해 주셔서 6년 반 만에 야곱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 31장 1-20절 I 또다시 도망가는 야곱
우리가 가난하고 어려울 때는,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어서 안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공해서 돈도 벌고 유명해지면 문제가 없어지는 것들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들이 더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별 볼 일 없을 때는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서 서러운데... 그때는 그래도 아무렇게 살아도 별로 비난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하면 갑자기 시기의 대상이 되어서 온 동네의 관심거리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 주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시기 대상이 되어 모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상에 서면 좋을 것 같지만.. 또 밑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공격과 어려움이 발생하는데, 지금 야곱이 딱! 그 상황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야곱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추적해 보니, 야곱의 처남들.. 즉, 라반의 아들들이었습니다. 항상 우리를 배신하고 뒤에서 시기하고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먼데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지요. 처남들은 야곱의 재산이 계속 불어나는 것을 보면서 질투도 나고 화도 났습니다. 아니 야곱의 성공이 부러웠으면 그 성공의 비결을 배우려는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음해합니다. "야곱이 부자가 된 것은,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뒤에서 다 빼돌렸기 때문이야." 그렇게 사실과 다른 말을 퍼트리고 다닙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그동안에 자기를 속이고 착취한 사람은 사실 라반이거든요? 결혼할 때부터, 레아와 라헬을 바꿔치기한 것도 라반이었고, 임금도 계속 변경하는데도 묵묵하게 라반의 집안 살림을 돌보아서 이렇게 부를 누르게 되었는데.. 거기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나 보상은 생각 못할망정.. 오히려 야곱이 부자가 된 것에 대해서 막 욕을 하고 있습니다.
당하는 야곱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20년 동안 뼈가 부서져라 일했는데 수고했다는 한마디 말은커녕 도둑놈 취급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억울했겠어요? 살면서 정말 견디기 힘들 때가 이런 때입니다. 뒤에서 내 험담을 전해 듣습니다. 그것도 라반의 아들들처럼 가까운 사람들이 그 말을 하고 다닙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고, 오히려 내 덕에 이익을 본 사람들이 나에 대한 악성 루머를 퍼트리고 다니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직장이나 교회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마음이 괴롭지요. 인생무상, 삶의 회의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죄로 물든 세상 속에서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아픔 중에 하나입니다. 다니엘, 다윗이나 바울과 같은 사람들도 보면 뒤에서 그들을 험담하고 시기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 주님도 뒤에서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들도 참 많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받아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만지시고 올바른 정의를 집행하실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하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든 상황을 또한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만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야곱은 처음에 이 소문을 퍼트리는 라반의 아들들이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소문의 진원지가 라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냐?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 대하여 전과 같지 않은 것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나 라반은 남 속이는 기술이 뛰어난 만큼 눈치가 백 단입니다. 이십 년간 함께 지내왔는데, 얼굴만 봐도 속내를 모르겠어요? 자신을 보는 장인의 얼굴이 완전히 이전과 달랐어요. 그래도 이전에는 딸을 둘이나 시집보내놓았기 때문에 장인으로서의 정이 좀 있었습니다. 또한, 야곱이 워낙에 일을 잘하잖아요. 야곱 덕분에 집안 살림이 풍성해졌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과 기특한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 6년 반 동안에 정시 고용 계약을 체결하고 나서 야곱의 재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보고, 라반의 생각이 달라졌어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태어나기 힘든 얼룩무늬 새끼들이 태어나면서 야곱의 재산이 마구 늘어나는 걸 보면서 '야곱에게 완전히 당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야곱을 보는 라반의 얼굴은 적을 보는 듯 견제와 미움의 기색이 완연했습니다. '안색'이라는 말을 영어 성경은 'attitude'로 번역하고 있더라고요. 라반이 야곱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왜? 야곱이 너무 커져버린 거예요.
오래전에 어떤 분의 간증입니다. 구조조정.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하게 됩니다. 이름도 없는 회사에 10년 넘도록 헌신하여 오늘의 회사가 있기까지 기여한 창립공신이기에 직원들 사이에 '전문님이 사장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도니까 사장이 자신을 보는 안색이 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회사를 떠나 달라."는 통보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회사가 성정하는 것이 자신의 성장과 동일시 여기며 기쁨이었는데.. 사장은 너무 커져버린 그를 의심하고 내친 것입니다.
지금 자신을 향한 삼촌 라반의 태도 변화를 보면서 야곱이 꼭! 그 심정이었을 거예요. 라반과 아들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야곱에게 했던 못된 짓은 생각도 안 하고 야곱이 뒷주머니를 차고서 돈을 빼돌린 것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야곱의 재산을 빼앗을 궁리 하는 이들을 보면서 야곱이 더 상처를 받습니다. 삼촌 라반과 아들들이 한 통송이 되어 못된 궁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야곱은 "빨리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마침 하나님의 말씀이 야곱에게 임합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에도 돌아가지 않다 보니, 라반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여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떠나야 할 땅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니까, 하나님이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수밖에 없도록 이끌어 가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야곱이 단순이 힘들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확인 도장을 받고 떠났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변 상황이 나빠지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합니다. 생존의 터전이 흔들리고 돈과 내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인생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타수를 꽉! 잡고 계심을 믿어야만 합니다.
예기치 않은 소용돌이와 같은 고난은 어찌 보면 우리의 복잡했던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미래로 우리를 보내시고 하시는 하나님의 싸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소용돌이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면 다음의 말씀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예레미야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우리의 죄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것을 영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곱이 라반으로부터 당하는 고난은, 그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물론 고향으로 간다고 해도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 에서의 분노가 사그라들었는지 모릅니다.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 찬 고향이지만..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니 야곱은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떠나기 위해서는 두 아내를 설득해야만 했습니다. 야곱에게 라반은 자신을 착취한 악덕 업주였지만, 두 아내에게는 아버지란 말입니다. 두 아내 중 하나라도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일러바치면 모든 것이 더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기도를 많이 하고 두 아내를 설득합니다. 4-5절입니다. '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장인어른이 예전과 달라졌다. 더 이상 사랑과 신뢰의 눈이 아니라 경계와 질투의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어. 그리고 처남들이 장인의 행동대장이 되어서 야곱을 압박해오고 있지만,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지금 야곱은 이 모든 상황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자기와 함께 있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인간적인 논리로 부인들을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가지고 야곱은 부인들을 설득해 나갑니다. 이것을 믿어야 폭풍 같은 현실을 이길 수 있습니다. 6-7절입니다. '6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었다."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의 열 번이 아니라, 강조법입니다. "내가 수천번 말했잖아~" 그런 거랑 동일한 표현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라반이 품삯을 변경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막았다."라고 했습니다. 라반의 변덕스러움이 야곱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그때마다 개입하셨습니다.
여러분, 라반을 믿지 마시고, 라반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라반의 태클이 들어올 때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으로 야곱을 성장시켜 주셨어요. 그래서 임금을 변경할 때마다 오히려 더 부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못 지킵니다. 그런데도 지키려고 하면 신경쇠약에 걸릴 뿐입니다. 오직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졸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의 지키심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선포하시고 안식하십시오. 8-9절 '8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야곱의 재산이 불어나는 것을 라반이 알고서 얼른 달려와 처음에는 점 있고, 얼룩무늬 있는 것 전부가 가지라고 했었지요? 워낙 태어날 확률이 적으니까 수락했는데.. 너무 많이 태어나니까, 안 되겠는지 "얼룩무늬 있는 것 만 네꺼해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전부 다 얼룩무늬 있는 것만 태어나는 거예요. 라반이 또 와서 안 되겠으니까, "이번에는 점 있는 것들만 가져라." 그다음 날부터는 또 점 있는 것들만 태어나는 거예요. 이것은 이성을 초월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반이 야곱을 코너로 몰아넣을 때마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상황이 역전되는 거예요. 이건 마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땅을 품삯으로 주었는데 그 땅에 신도시 개발이 발표되고 지하철이 지나간다 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어떤 아이템에 임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하나님은 항상 탐심으로 가득 찬 악인의 곳간에서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의인의 곳간으로 재물을 옮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사람들과 똑같이 욕심에 가득 차서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어요. 남을 넘어 뜨리고, 짓밟으면서 돈 벌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길을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라반의 것을 취하여, 자연스럽게 옮겨주세요. 야곱은 두 개의 꿈 이야기를 아내에게 해주는데, 첫 번째 꿈은 ㅏ반과 정식 계약을 체결하면서 꾸었던 꿈입니다. 10-11절입니다. '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 대도 확률적으로 양 떼는 흰 것이 많지, 얼룩무늬 있는 것들이 적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때 꿈을 통해서 "너의 품삯으로 정해질 얼룩무늬와 아롱진 것들로 가득 찰 것이다. 확률이 이제는 바뀔 것이다." 그리고 12절 끝에 말씀하십니다. "..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일을 내가 보았노라." "너의 삼촌 라반이 노동력 착취를 교묘하게 속여 가면서 온갖 음모를 꾸민 것을 내가 보았노라." 여기서 하나님이 '보았노라' 하시는 것은, 무기력한 방관자로 써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보고 개입하여 해결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속이 떠질 때가 있어요. 너무나 억울하게 힘 없이 당하고 있어 어디다 하소연할 곳도 없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보고 계신 하나님은, 그 상황을 역전시키실 수 있는 분이시고, 오히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편을 들어주시고 복 주시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야곱은 복 받을 만한 어떤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품적으로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야곱의 스토리에서 우리가 은혜받는 것은 야곱이 아주 만만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요셉 여호수아 이런 분 보면 예수님과 비슷해서 너무나 고결한 당신입니다. 그런데 야곱을 보면 만만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남 잘 속이고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하나님이 복 주신다면 나도 하나님이 복 주실 수 있겠다. 야곱이 복 받는 이유는, 야곱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복 주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멀쩡하듯 동물의 무늬도 막 바뀌어요.
여러분 환경이 불가능하면, 환경을 바꾸어서라도 우리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은 조건을 갖춘 사람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조건 없는 사람을 택하여 사랑하기로 작정하시면 그때부터 조건을 갖추어주십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하면서 일이 틀어지잖아요? 그러면 틀어진 데서부터 다시 시작하여 복을 또 주세요. 죄가 없어서 복 주시는 게 아니라 복 주시기 위해서 보혈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복 받을 만한 그릇으로 만들어 가시지요. 이것이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14-16절입니다.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이 말씀을 읽어보면,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을.. 평소에는 그렇게 사이가 안 좋던 두 사람이 위기에 놓이자. "아버지, 나빠!"하고 돌아서는 거예요. 우리가 야곱의 입장이니까 이해가 되지, 딸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야곱이 순식간에 아내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가장이 영적인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장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딱! 붙잡고 그 비전에 사로잡힌 사람, 늘 기도하는 사람은 영적인 권위가 있어요.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들의 존경과 순종을 이끌어 낼 수가 있지요. 드디어 야곱이 라반의 곁을 떠납니다. 17-20절입니다. '17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18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할새 19 그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20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탈출이 보통일이 아니지요. 눈치 빠른 라반을 속이고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온~ 식구 다 데리고, 많은 가축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데 들통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야곱이 또 보통 사람입니까? 유목민들이 양털을 깎는 날은 아주 큰~ 축제의 날. 천 마리 양털을 깍이 위해서 우리나라 옛날 모내기처럼 모든 사람들이 다 나가서 집중하는 그 시기를 잡아서 탈출을 감행합니다. 라반이 그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 데가 자기가 삼일 거리를 두었잖아요 야곱의 양 떼랑.. 그래서 3일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그래가지고 야곱이 모든 가족과 재산을 챙겨서 몰래 떠납니다. 야곱의 인생에 계속 나타나는 특징은, 떳떳하지 못하게 도망치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야반도주는 야곱의 운명..? 20년 전에 고향을 떠나서 이곳에 올 때도 형 몰래 야반도주했지요? 이제는 세월이 흘러 처자식도 있고, 나이도 있는데.. 다 데리고 또 야반도주를 합니다. 참, 야곱과 라반이 헤어지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픕니다. 사람이 만날 때보다 헤어질 때 더 잘해야 되는데.. 그게 맘대로 잘 안되잖아요? 제삼자들이 끼어들기도 어려운 게 며느리 말 들어보면 일리가 있고 시어머니 말 들어보면 이유가 있어요.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상처를 주고받는데, 내가 준 상처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받은 상처는 정확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같이 지냈던 부부가 갈라설 때, 동업자들이 갈라설 때 악감정을 가지고 갈라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곱과 라반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라반은 야곱의 외삼촌이자 장인입니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라반은 야곱을 사위로 보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불려주는 기계로 보았어요. 야곱 또한 라반을 장인으로 보지 않고 자기를 착취하는 이기주의자, 악덕 업주로 본 거예요. 그러니까, 서로를 믿지 않았지요. 누가 더 이익을 보았느냐?? 이것은 누가 먹고 먹히느냐의 싸움이었고, 팽팽한 긴장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어쩔 수 없이 견디다 못해 도망가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관계가 참 허무하고 힘듭니다. 야곱도 할 말이 많고, 라반도 할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 속고 속이는 관계에서 둘 다 자기가 피해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계속 자기를 속이고 착취하는 라반을 보면서, 야곱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 사람이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지? '나 이런 사람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한참 생각해 보니 자기 자신이에요.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굉장히 상처를 많이 주는데, 가만히 보면.. 여러분 안에 그와 비슷한 게 있는 거예요.
남 속이기 잘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속잖아요? 그러면 분노가 두 배로 드러난다고 합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속은 배신감에 치를 떨 때마다, 오래전에 자기에게 속아서 치를 떨던 에서가 이렇게 분했겠지? 그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든 우리 인생의 아픔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이건 교실에서 배울 수 없는, 백만 불짜리 수업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괴롭고 힘들지만, 우리도 남에게 이런 상처를 주는 옛사람을 회개하고 부서지는 연단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야곱이 아내들에게 들려준 말의 결론 부분을 가지고 저도 오늘의 설교를 결론 삼고자 합니다. 창세기 31장 13절입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12절까지의 꿈과 별개의 것으로 최근에 야곱이 꾼 꿈의 내용입니다. 장인 라반과의 관계가 너무 악화되어서 막상 앞길이 보이지 않아서 너무 괴로운 마음으로 잠들었을 때의 꾼 꿈이에요. 거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야곱은 20년 만에 벧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어요. '어! 벧엘 어디서 많이 들은 말인데..?' 20년 전에 도망자로 나와서 광야에서 돌베개 베고 잠들었을 때,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신 곳이 벧엘이었어요. 하나님은 그런데 왜 20년 전의 이야기를 지금 새삼스럽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벧엘의 예배를 기억하고 계셨어요. 그리고 야곱에게도 기억하기를 원하셨어요. 야곱은 그때 아무것도 없는 도망자 출신으로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가난하고, 부저 셨을 때 하나님을 만날 때 놀랍게 만나지요. 돈도 없고, 직장도 잃고, 주변의 사람도 다 잃고 나서 하나님 밖에 엎드릴 때가 없는 연약하고 가난하고, 부서진 심령에 하나님이 첫사랑으로 야곱을 만나주셨습니다. 그것이 벧엘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가 바로 그 외롭고 쓸쓸한 눈에 보기에는 최악의 자리지만.. 하나님의 눈에 보기에는 가장 최상의 컨디션. 가장 겸손하고 연약한 벧엘의 하나님으로 야곱을 다시 만나기 원하셨어요. 하나님은 야곱이 이 벧엘의 정신을 앉지 않기 원하셨어요. 처음 하나님을 만난 자리 벧엘.. 야곱의 인생이 처음으로 소용돌이치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항상 돌아오는 영적인 고향 벧엘에서 하나님은 항상 야곱을 기다리고 계셨어요. 초심을 회복하라는 거예요. 벧엘의 예배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벧엘의 예배의 핵심은, 예수님이십니다.
벧엘에서의 꿈을 기억하십니다. 하늘과 땅으로 이어진 사닥다리가 있고 그 사닥다리를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보면, 너무나 먼데 사닥다리가 자기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자기는 몰랐지만, 예수님을 본 거예요. 멀리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옆에 계시는 하나님, 천군 천사를 거느리시고 지키시며, 인도하시고, 떠나지 않으시는 그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야곱은 만난 거예요. 그 벧엘의 예배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예배를 20년이 지난 오늘 기억하기를 원하셨어요. 하나님은 벧엘의 예배를 기억할 뿐 아니라, 벧엘에서의 한 서원을 기억하라 하셨어요. 그때 야곱이 배게 삼았던 돌에 기름을 붓고 서원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너무나 중요했어요. 그래서 20년이 지난 지금 그걸 상기시켜 주시는 거예요. 그때 야곱이 한 서원이 무엇이었나요? 창 28:21-22,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 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 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벧엘의 서원은 첫째, 우상 숭배하지 않겠다. 하나님만 섬기는 삶을 살겠다. 둘째, 내가 지금은 도망자로 대충 돌을 쌓고 기름 붓고 있지만, 돌아와서는 반드시 예배처를 세울 것이다. 평생 나는 예배처를 세우고 예배하는 자가 될 것이다. 예배처는 하늘을 여는 문입니다. 땅에서 살지만 하늘을 여는 예배자로 살겠습니다. 세 번째로,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십일조를 최초로 드린 사람은, 아브라함이지요? 야곱은 아브라함의 후예입니다. 나의 재산, 나의 축복은 모두 하나님의 것임을 이 십일조로 선포합니다. 세 가지 서원인데, 이 서원을 20년이 지난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는 지금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벧엘의 예배를 기억하고, 벧엘의 서원을 기억하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의 야곱은 그냥 집이 그리워 돌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에 돌아가서 믿음의 후손으로서 해야 할 사명이 있는데.. 그 사명이, 그 비전이 벧엘의 서원 속에 들어 있는 거예요. 야곱은 그때 자기 개인의 기도를 드렸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성령의 감동으로 한 것이고 그 성령의 감동은 야곱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컸어요. 훗날 오랜 세월이 흘러 야곱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이루고 그들이 애급 땅에서 200만 백성이 되지요. 그들이 모세를 따라 나와 광야에서 십계명을 받으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울 때, 하나님이 이렇게 살라는 십계명의 정신 세 가지가 바로 벧엘의 서원입니다.
십계명의 첫 번째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너는 하나님만 섬기라. 둘째, 어디를 가든지 장막을 세우고,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이 돼라. 셋째는 십일조예요. 너의 모든 소유는, 너의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 너는 십일조를 드림으로 그 사실을 선포하는 백성이 돼라! 즉, 이것은 야곱 한 사람의 인생 코드가 아니라, 야곱으로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다 살아야 할 사명 선언문입니다. 비전의 코드입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내가 베델의 하나님이니 벧엘의 서원을 기억하라."라고 하신 거예요. 지금 눈에 보이는 모습은 야곱의 현실이 어려워 야반도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 야곱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한 새로운 시준,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하여 비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엘의 하나님의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이 벧엘의 하나님의 메시지가 없었다면, 벧엘의 하나님의 예배, 벧엘의 하나님의 서원이 없었다면.. 야곱은 지금 비참한 모습으로 도망치는 도망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지금 도망자가 아닙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히스토리 메이커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벧엘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소개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가 변하여 별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과거의 아픔을 디딤돌로 해서 미래의 비전으로 가게 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라반의 집에서 못해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라반의 집을 디딤돌로 해서 축복의 미래로 가게끔 연결하시는 분이 바로 벧엘의 하나님이십니다. 벧엘의 하나님은, 야곱을 넘어서 그 대를 잇는 열두 지파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생, 그리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끌고 가는 비전 코드.. '우상을 섬기지 마라, 어디든지 하나님을 예배하라, 십일조를 드려라.' 비전의 코드로 살게끔 그의 인생을 이끌고 계셨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관점에서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가실 줄 믿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 주변의 상황이 야곱처럼 소용돌이치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잡고 계십니다. 새로운 축복의 시즌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패배해서 도망가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축복의 미래로 도양하는 사람임을 믿습니다.
기도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괴로워서 도망치고 있었지만.. 실은, 벧엘의 하나님이 야곱을 인도하고 계셨음을 봅니다. 축복의 미래로, 새로운 시즌을 향한 기대로 인도하고 계셨음을 믿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이들 가운데 소용돌이치는 현실 때문에 괴로 하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미래를 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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