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I 아가서 강해 01 I 아가서 1장 1-7절 I 신부의 노래 I 송태근 목사
아가서 강해 01 I 아가서 1장 1-7절 I 신부의 노래
-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 -
우리가 연인과 사랑을 나누어도 매번 뜨거운 건 아니지요? 상황에 따라서, 내면의 상태에 따라서 온도 차이가 납니다. 의외로 요즘 청년들 가운데 연애를 못하는 청년들이 그렇게 많다고 해요. 듣는 얘기가 모태 솔로니 이런 얘기를 심심치 않게 해요. 사실은 그 측면에서는 저도 비켜갈 수 없는 원천적인 죄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거의 평생 목회자의 삶을 살다보니까, 그런걸 잘 몰라요. 그래서 한번은 두 가지 프로그램을 보라고 추천을 해주었는데, 하나는 '연애의 맛', '동치미'에요. 그분 말을 듣고 '동치미'라는 프로그램을 몇회를 봤어요. 세상에 거기에 새로운 세상이 있더군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사람 사는 것이 참 간단치 않구나..
이 아가서라는 책은, 그런 세계와는 또 비교할 수 없는 너무너무 엄청난 세계가 이 안에 가득한 책 중 하나에요. '아가'라는 말은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이에요. 사람이 정서와 감성을 가장 극적으로 표출 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가 노래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래서 노래하는 분들을 자세히 보면, 전 인생을 담아 노래할 때 청자들의 마음이 바뀌고,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아요. 그런데 이 '아가서'라는 책은 뭐라고요? 원래 그 말 뜻을 보면, '노래 중의 노래' 의미에요.
그런데 열왕기상 4:32을 보시면, '그가(솔로몬) 잠언 삼천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편이며' 참 대단한 문예적 감성과 은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사소한 일부터, 인생의 엄청난 경험을 문장으로 풀어내고, 음악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요. 김훈희라는 소설가가 쓴 '칼의 노래'라는 책을 보면, 기가 막힌 문장 하나가 써져 있어요.
버려진 섬에도 꽃이 피었네.
참, 짧은 문장이지만 그 속에는 고독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또 희망도 있어요. 짧은 한 문장 속에 인간이 겪어낼 수 있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그 한 문장에 다 담아냈습니다.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이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제가 좋아하는 시집 중 하나가 '소를 웃긴 꽃'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시인이 봄에 아지랑이가 풀밭에서 열매를 터트리고 피어오르니까 소가 기우뚱 했데요. 그게 참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묘사거든요.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를 언제 한번 깊숙하게, 세포 하나하나를 느끼도록 경험해 봤을까? 우리의 신앙생활은 주마간산으로 휙휙 지나가는 느낌은 없는가?를 돌아보면서 이 아가서를 통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그리스도의 사랑의 부요함을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로 풍덩 빠져보는 경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은 천 다섯 개의 노래를 썼어요. 이 아가서도 그중 일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예요. 어마어마한 노래를 지어서 불렀던 것 같아요. 자, 그러면 이 아가서라는 책은 요한복음의 어떤 부분과 맞닿아 있는가? 요한복음 17장의 한 부분을 읽어드릴게요. 요 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들로 하여금,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고, 내 사랑이 여러분 안에 있어서 또 여러분 사랑이 예수님 안에 있어서 서로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마치 부부가 삶을 사는 듯한 그런 아주 얇은 칼날도 틈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하나의 경험. 그걸 위해서 아가서가 쓰여진 거예요. 그런 신앙생활이 뭐냐?
1절, '솔로몬의 아가라' 2절, '2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연인끼리만 가능한 표현들. 19금에 대한 내용들이 좀 있어서 설교자가 표현하기에 거북스러운 부분이 나올 가능성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너무 어색해하지 마시고, 성경 말씀으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선, 고린도후서 11:1-2,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뭘 내요? 열심이요. 열심은 그리스도인들의 매우 자연스러운 덕목, 성향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의 언저리에서 발생가능한 아주 기본적인 열기입니다. 바울의 목적이 뭐냐? 열심을 내서 우리로 하여금 어디로 인도하냐?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남편인 그리스도께로..' 성경은, 그리스도와 우리를 부부관계로 계속해서 설명을 합니다. 그러니까, 아가서는 결국 하나의 유비인데, 신랑인 그리스도와 술람미 여인으로 묘사되는 우리와의 관계를 어느 정도까지 깊게 묘사하는 가를 유비로, 은유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책이에요.
한 군데 더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계시록은 결국 어린양과 우리의 혼인잔치로 완성이 됩니다. 성경의 전체 이야기는 웨딩 스토리예요.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첫 결혼을 하였는데, 이것이 무너져요. 깨져요. 망가져요. 병이 들어와요. 죄가 들어요. 그래서 이들이 동쪽으로 쫓겨나요. 그런데 그때부터 하나님은 온전한 부부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커다란 구원의 계획을 성경 전체에 설명하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몇번째 아담으로 오시나? 둘 째 아담으로 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와의 혼인잔치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함으로써 성경책이 완성되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2장에 첫번째 표적이 무엇이었나요?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표적이었는데, 그 장소가 어디냐? 혼인잔치에요. 거기서 포도주가 떨어진거죠. 포도주는 유대인들에게 2중적인 메시지가 있어요. 첫째는 기쁨의 상징인 동시에 독주의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철저히 금지를 명령했고, 특별히 혼인잔치때에는 기쁨의 상징으로 사용이 되었어요. 그런데 첫번째 표적인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짐으로써 잔치가 깨진거에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사실상 설명하고 싶었던 거지요. 예수님이 그 혼인잔치에서 떨어진 포도주를 회복해 냄으로써 중단되었던 잔치가 회복이 되고, 다시 기쁨이 찾아오지요. 그래서 이 첫번째 표적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요한복음에 7번 등장한 표적이라는 단어는 일관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십자가의 죽음의 때를 이야기 해요. 그 표적들은 전부 십자가를 향해 뚜벅뚜벅 진행되고, 확대되어 십자가의 실체로 드러내지요. 그러니까, 성경은 전부가 웨딩 스토리에요.
또, 하나 로마서 8:31-35,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무너진 결혼에서 완전한 결혼을 회복해 내는 모든 과정에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방해와 사탄의 음모를 다 끊어내고, 우리를 혼인잔치의 자리까지 이끌어 가시는 그 사랑은 능력의 사랑이다. 사랑은 능력이 있어야 진짜 사랑이에요. 우리는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능력이 안 따라주면 그 사람을 보호, 챙겨줄 수도 없고, 위험한데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은 전능하신 사랑이에요. 그래서 전능이란 말과 사랑이란 말은 같은 범주 안에서 해석이 가능해요.
자, 그러면 이 아가서에는 세 사람이 등장할 거예요. 첫째가, 솔로몬. 왕으로 등장합니다. 솔로몬의 그림 속에는 예수 그스도라는 상징성이 담겨 있어요. 두 번째는, 술람미 여인. 아가서 6:13,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여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님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여기에 '술람미'라는 여자가 등장을 하는데, 히브리 말이 참 재미있어요. '솔로몬'이라는 말은 '평강'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술람미'라는 말은 '그 평강과 맺어진 관계'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술람미는 누구를 대변하는 그림이죠? '성도'를 대변하는 그림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 등장하는 무리들이 있는데, '예루살렘의 딸'. 말하자면, '연약한 성도들을 묘사하는 예루살렘의 여인들, 예루살렘의 딸'. 세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평강과 관계할 때, 평화가 임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부활 후에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하셨던 발언이 뭐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 공동체는 이 땅의 교회로 탄생이 되지요. 이런 세 그룹이 등장을 하는데.. 혹시 솔로몬이 구약 성경에서 무슨 책을 썼는지 기억나시는 분? 잠언(다 쓴 거 아니고, 부분적으로), 전도서, 아가서. 이렇게 세 권의 책을 썼어요. 그런데, 잘 보시면 이 책마다 메시지가 정확해요. 성전을 놓고 보면, 크게 세 영역이 있어요. 바깥뜰, 안뜰. 그리고 제일 깊숙한 부분엔 지성소가 있어요. 아가서는 어느 부분에 해당이 될까요? 바로 이 지성소 부분입니다. 이 지성소는 우리에게는 신방 같은 영역입니다. 안뜰의 역할은 전도서예요. 저 바깥뜰의 역할은 잠언서가 해요. 잠언서의 여러 문장과 여러 언어들이 등장하는데, 고르고 뽑아서 한 단어를 선택하라면 어떤 단어가 걸러질까요? '지혜'가 잠언에서는 의인화 되어서 사용이 되지요. '지혜가 부른다. 지혜가 말한다.' 그 지혜는 사실상 하나님 말씀입니다. 전도서는요? 전도서는 결국, 인생이 헛되다. 허무주의를 노래한 책이 아니고, 그리스도 밖에는 우리가 손을 얹을 자가 없다. 이걸 설명하는 책이에요. 그리스도예요. 그리고 아가서는 그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신부인 성도가 어떻게 풍성한 교제와 삶을 나누어가는가? 이걸 소개한 책이 아가서예요.
2절입니다.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포도주 보다 낫다'는 말은, 과연 누구의 발언일까요? 이것은 신부의 발언입니다. 아가서를 읽으면서 혼돈을 일으킬 만한 문장구조가 뭐냐? 감독들이 영화를 찍을 때 영화의 모든 장면들을 시간대 별로 고대로 찍나요? 그렇지 않아요. 어떤 때는 결론을 먼저 찍어놔요. 이 스토리가 겨울에 끝나면 영화 슛 들어가는 계절이 겨울이라면 겨울 신을 먼저 찍어놓는 거예요. 그렇듯, 아가서의 문장들이 이런 식으로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이게 누가 한 말인지? 언제 한 말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조금 앞 뒤가 안 맞아 보이시면 그런 이유 때문이구나..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
우선 2절은 여인이 한 말이에요. 여인이 자기에게 누군가 입 맞춤을 하고 떠났는데, 곱씹어 봐도 그 입맞춤이 포도주의 진함보다 낫다는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예수님은 이미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에게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찐한 입맞춤을 하고 가신 거예요. 그분이 다시 오셔야 그 혼인이 완성이 됩니다. 그 사이에 놓인 성도들의 삶은 편안하고, 행복할까요? 고달프고, 힘들까요? 그래서 여기 나오는 여인의 얼굴이 검어요. 이 여인이 늘 땡볕 아래서 고생을 해요. 그 묘사를 어떻게 하는지 잘 보세요.
3절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술람미 여인이 다시 올 것을 기다리는 신랑을 추억하고, 기억하면서 혼자 독백처럼 쏟아내는 이야기예요. 4절이 중요합니다.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성도들의 삶은 결국, 이 왕을 향하여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는 삶이에요. 그런데 잘 보세요. '..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그 왕이 남기고 간 사랑의 흔적과 추억과 향기와 기억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향취 때문에..
마태복음 26:6-7, '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이 여인이 옥합을 깨트렸어요. 그러자 옥합에 깨트려져 쏟아진 기름이 예수님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리고 그 향기는 온~ 집안에 가득했습니다. 성경에서 향기라고 말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5:11-13,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에서도 자기 자신을 으깨어 부서지는 그런 묘사를 하셨어요. 떡을 떼어 주셨어요. '떼어'라는 말이,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으깨어 부서뜨려지다'. 예수님 스스로가 어떤 죽음으로 죽을 것을 암시하고 있는 메시지예요. 예수님 스스로는 부수어져서 우리에게.. 마치 여인이 옥합을 깨트려 향내가 온 집에 가득했던 것처럼 자신을 깨부수어서 자신을 통해 이 땅에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기 원하시는 거예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일부 교회가 향내는커녕, 악취를 드러내는 공동체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이 향내에 취해서 교회의 매력에 끌려 모이는 곳, 술람미 같이 고난하여 쉴 곳 없는 여인들이 찾아 들어오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문턱을 높이고, 담을 치고 있다면 언젠가 스스로가 그 담에 갇혀서 아사하는 결과가 생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옥합을 깨트렸던 그 여인의 행위가 왜 중요하냐? 헌신에도 메시지가 있지만, 옥합을 깨트렸다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어떤 죽음을 죽을 것인가, 장사 지냄을 묘사하고 있는 내용이에요. 예수님은 그렇게 요한복음의 기자가 떡을 떼어 오병이어의 기적이 났던 것처럼 자기를 으깨어, 부서뜨려서 향취를 교회에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로 예수님의 죽음 곁에서 교회 공동체가 생기잖아요.
그러면 교회는 오늘날 가장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뭘까요? 향내예요. 그리스도의 향내가 교회에선 드러나야 해요. 그리고 그 향내를 맡으면서 이 땅에 곤고한 사람들, 지친 사람들이 들어와야 해요. 5절은, 그 이야기를 이렇게 하고 있어요. '예루살렘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여기서 검다는 말은, 원래 피부색이 검은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이 여인은 밖에 나가서 햇빛 아래 계속 일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연히 그 뜨거운 태양 밑에서 얼굴이 검어지겠어요? 안 검어지겠어요? '.. 아름다우니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여러분 여기 게달의 장막이 뭘까요? 보통 이 시대의 유대인들은 유목민이 기본적인 삶의 원천이었어요. 그러면 유목민들이 돌아다니면서.. 창세기 25:13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여기 '게달'이 등장하지요? 이 '게달'이 유목민으로 삽니다. 돌아다니면서 살아요. 그러니까 정처가 없어요. 양 떼 소떼를 몰면서 임시로 짓는 집이 돌아다니다 보니까, 비바람에, 햇빛에 어느 정도 검어지냐? 검은색처럼 반들 반들 해집니다. 그뿐 아니라, 너덜너덜 해져요. 그것을 총칭해서 '게달의 장막'이라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그런 관점에서 보세요. '..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그러니까, 나중에는 술람미 여인이 어떤 은총 아래 들어가는지를 암시해주고 있어요.
그러고 6절입니다. '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여러분,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면 자기에게는 오빠 아닌가요? 그런데 '내 오빠들이'라 하지 않고,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라 했을까요? 친오빠가 아니에요. 배다른 형제들이에요. '..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자기들이 직접 수고하고 땀 흘리고 노력해야 할 포도원을 가련한 배다른 여동생에 맡겼어요. 그러니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 고단한 삶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정작 오빠들이 자기를 미워해서 맡긴 포도원을 돌아보느라고 자기가 정작 지켜야 할 포도원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러니 그 삶이 얼마나 피폐하고, 착취당하는 곤고한 삶이었겠어요? '7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이런 힘겹게 살아가는 술람미 여인의 고달픈 삶을 왕이 알아요. 사랑하는 신랑이 알아요. 그래서 어떻게 초대를 하냐, 두 가지를 말하라 합니다. 첫째는, 양 치는 곳. 이 양치는 곳은 이 여인이 매일 햇빛 아래에서 수고해야 하는 삶의 현장이에요. 그런데 이 양도 자기 양이 아니에요. 계속 남의 일을 해주는 거예요. 그다음에 이 여인이 짬짬이 쉬는 곳이 있어요. 이 쉬는 곳이, 이 여인에게 진정한 안식처였을까요? 그렇지 않았겠지요. 네가 이렇게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짬짬이 쉼터로 알고 있는 곳을 내게 말하라. 거기에는 네가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란 말이에요. 네가 쉴 곳이 어디냐? 거기를 말하라. 지금 이 왕이 술람미 여인의 고생스러운 일상을 아는 거예요.
배다른 오빠들이 가련한 여인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자기 삶이 없어요. 자기 포도원이 원래 있는데 그것도 제대로 돌보지 못해요. 어쩌면 우리의 삶과 하나님 떠난 안식을 찾지 못한 우리의 삶 아닌가요? 그러자, 신랑 될 분이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네 양치는 곳이 어디냐? 네 쉴 곳이 어디냐?" 거기가 네 진정한 안식처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리고 7절 하반절을 보세요. '..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 너의 고생스러움을 내가 다 알고 있는데, 어찌 내가 얼굴을 계속 숨기겠느냐? 그 말이에요. 그리고 8절입니다.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여러분 여기에서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라 했는데, 이 말을 지역 하면 '하이야파'로 '가장 어여쁜 자야'라는 뜻입니다. 지금 이 여인은 손도 거칠고, 햇빛에 그슬려서 새카맣고, 주근깨가 자글자글 했어요. 그런데 신랑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냐? '가장 어여쁜 자'로 보였다는 거예요. 이걸 뭐라 그러죠? 콩깍지라니요? 은혜지요. 그걸 은혜라 그러잖아요! 아, 그렇구나! 콩깍지가 은혜였구나! 여러분들이 맞는 대답을 한 거예요. 그런데 설마 콩깍지란 대답을 할지는 몰랐어요. 여기서 눈물이 나는 거에요. 정말 볼품 없자나요. 남의 집 살이 하면서 그리고 짬짬히 어딘가 그늘 밑에서 쉬는데 그게 안식이 아니잖아요. 거기가 자기의 영원한 쉼터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신랑이 찾아오는 거에요. 그런데 그 신랑의 눈에는 가장 어여쁜 자로 보는 거에요. 이걸 은혜의 콩깍지라 합니다. 할렐루야. 오늘 이 밤에 내가 아무리 망가져 있고, 옆에 주변 사람들과 비교를 해 볼 때, '나는 이 나이에 아직 뭐 하고 있나..' 그런데 누구 눈에만?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 눈에만 그렇게 보여진다면 그걸로 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두 가지를 말씀하세요. 8절을 잘 보세요. '여인 중에 가장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나를 찾아올 수 없거든.. 그 뜻이에요. 나를 찾지 못하겠거든. 지금 그런 마음으로 지금 여기 오신 분들 있을 수 있잖아요? 여기가 내 안식처일까? 예수 한번 만나면 내 팔자가 고쳐질까? 내 운명이 바뀔까? 그런 심정으로 오신 분들이 있을 수 있어요. 성경을 보세요. '..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일까요? 항상 우리 교인들, 청년들이 예수께로 나오는 과정들을 보면 만남의 복이 있어서 이 자리까지 온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왠지 저 형 얘기 들으면 귀가 솔깃해지고, 저분처럼 사는 흉내라도 내 볼까?" 그래서 금요일이면 이한데를 간다고 해서 쫓아와봤어요. 우리가 참된 신랑을 만나는 모든 과정 속에 반드시 그 중간에 누가 있어요? 목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분이 간사일 수도 있고, 리더들일 수도 있고 그래요. 여러분 새로 교회 오시는 분들은 누구를 보고 신앙생활을 배우죠? 자기를 데리고 온 그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을 배우고 믿어요. 우리 리더들이 조그마한 선제적 행동 하나가 내 뒤를 따라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오는 그런 어린 친구들이 그대로 배워요. 저녁 예배 빠지면, '아! 저녁 예배는 안 가도 되는가 보다?' 미쳤나 봐 저녁 예배를 또가? 그런데 가더란 말입니다. 그러면 '아, 이건 가야 하는가 보다.' 그렇게 배우는 거예요. 그러다가 저녁 예배 자리에 앉았는데왠지 눈물이 나고 저 말씀이 꼭 나한테 하는 것 같고, 어느 날 말씀이 그 영혼을 사로 잡는 거에요. 그래서 누구 만나게 되지요? 예수 만나게 되는 거에요. 8절을 그런 관점으로 한번 보세요.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이 말은 자기 주변에 좋은 신실한 선배들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알지 못하겠거든 그 신실한 신앙의 앞선 선배들의 걸음을 쫓아가다 보면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는 거에요. 오늘 금요일 밤도 우리 모두에게 그런 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 천번을 불러도 ♬우리 한번 눈을 감고, 오늘 말씀 붙들고 2020년에는 그 어느 해보다 주님을 깊이 사랑해서, 그 부요를 경험하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이 밤에 가지고 나온 기도의 제목들을 붙들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속으로 기도하다보면 졸음 밖에 오지 않습니다. 육체가 피곤해서 고단해집니다. 우리 온 힘을 다해서,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는 부르짖음으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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