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I 아가서 강해 02 I 아가서 1장 8-17절 I 은혜의 콩까지 I 송태근 목사
아가서 1장 8-17절 I 은혜의 콩까지
-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
지난주 아가서 첫 시간 했었는데, 몇 가지 내용만 복습해 보십시다. 아가라는 말이 무슨 뜻이라 했죠? 그렇지요. 노래 중의 노래. 그러면, 조심스럽지만 놀랍게도 아가서는 전체 성경 66권 책 중의 책이라고 불려도 결코 틀린 고백이 아니란 말이 됩니다. 사실 아가서를 쭉~ 읽다 보면, 어떤 느낌이 드냐?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신부격인 우리가 이 이상의 언어로 하나 됨을 어떻게 노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상 표현대로라면 에로틱한 묘사로 하나 됨을 긴밀히 표현하고 있어요. '시 중의 시', '노래 중의 노래'
돌발퀴즈, 아가서는 솔로몬 왕의 일생 중에 초창기 작품일까요? 훗날의 작품일까요? 아가서 6:8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솔로몬의 여자들의 숫자가 소개되고 있죠? 왕비가 60명, 후궁이 80명이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합계와 차이가 있어요. 열왕기상 11: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이 기록을 비교해본다면, 왕의 초창기 때에 아가서를 기록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이쯤에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을 해볼까요? 아무리 여자를 좋아해도 그렇지, 어떻게 솔로몬은 평생에 이렇게 많은 여자를 계속 맞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거지요. 솔로몬이 세 가지 책을 썼다고 했어요. 잠언, 아가서, 전도서를 썼어요. 전도서 7:28 '내 마음이 계속 찾아 보았으나 아직도 찾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내가 찾았으나 이 모든 사람들 중에서 여자는 한 사람도 찾지 못하였느라' 이 말이 섬광처럼 지나갔어요. 솔로몬은 결국 그 수많은 여인들을 계속 찾고 찾고 찾아서 맞이할 때마다 놀랍게도 가장 이상적인 한 여자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여자가 오늘 아가서의 기록에 의하면, 술람미라는 여인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중요한 사실 앞에 직면해야 합니다. 일단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죠? '은혜의 콩깍지'. 아주 천하의 멋쟁이에다가, 평생 불나방처럼 여자만 찾아서 헤매는 멋진 남자가 있어요. 그런데 이 인간이 결혼한다는 청첩장이 돌아 돌아다니는 거예요.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여자를 찾았길래 종착역 역할을 할까? 궁금해서 결혼식장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어요. 궁금해서.. 그랬더니 모든 하객들의 실망을 안겨주었어요. 도저히 일반인들의 시선과 시각과 상식 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여자였기 때문이에요. 외모도 별로인 것 같고, 키도 작고, 얼굴도 자유롭게 생긴 이런 신부를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 "네가 돌고 돌아 결국 정착한 여인이 어디가 그렇게 좋았냐?" 어디가 좋았을 것 같아요? 경험 안 해보셨어요? 보통 우리는 마음이 이뻐서 그런 대답을 기대하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냥~ 다 예뻐!" 이 친구의 눈에는 일반인들의 시선으로는 정말 아닌 신부인데, 다 예쁘다는 거예요. 그걸 뭐라고 해요? 뭐가 씌었다는 거지요. 근데 정말 뭐가 씌운 걸까요? 아니지요. 드디어 자기 짝을 만난 거예요. 자기 짝을 만난 거지 잘 못 본 게 아니란 말이에요. 콩깍지가 씌었다는 것은 살짝 잠깐 잘 못 보았을 가능성을 함의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뭐가 살짝 씌워서 우리를 잠깐 잘 못 본게 아니란 말이에요. 여러분 이걸 언제 경험하냐? 자기 자식을 낳아 보면 알아요. 수천 명이 앉아 있어도 내 새끼만 눈에 들어와요. 이걸 택함 받은 존재라 해요. 그거는 두 글자로 밖에 논리가 설명이 안 돼요. 은혜. 여러분들이 예수님에게 하나님께 그런 상대로 택함 받은 자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표정을 지금 그러고 앉아 계세요? 놀랍지요? 나 자신을 보세요. 뭐 하나 변변하고 완성된 게 있다고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 주시는 값을 지불하시면서까지 하나님 아파하시면서 우리를 구속하셨을까요? 우리를.. 이 아가서는 그것을 넘어서 어떻게 신랑과 신부가 하나 되어가는 과정을 이렇게 밀도 있게 기록한 성경이 없어요.
김희보 교수님이 쓴 '아가서 죄'라는 책이 있어요. 그분이 '아가'라는 책 이름을, "책 중에서 최고의 책이라는 뜻이다."는 설명을 하시더라고요. 거기까지는 미처 이해를 못했어요. 노래 중의 노래는 지난주에 했었는데, 66권 중에 최고의 책이더라고요. 이 아가서를 조금 더 영적인 깊이로 들어가면 이 이상의 주님과의 교제를 배우는 현장은 더도 덜도 존재할 수 없어요.
8절,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여러분,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이 말은 양 떼를 먹이는 선한 목동들을 말합니다. 그 옆에 있으면.. 건강한 성도 옆에 있으면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향내를 찾아갈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누가복음, 마가복음에 보면 유월절이 다 되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령을 하나 하지요? "유월절 먹을 것을 예비해 놓으라." 그랬는데, 제자들이 어디다가 준비할까요? 장소를 물었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 기억하세요? "성 안에 들어가거든 물동이를 들고 가는 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이상하다, 예수님은 어떻게 성 안에 물동이 들고 가는 사람을 만날 것을 아셨을까? 독자 입장에서 궁금증이죠? 예수님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그렇게 초월적으로만 이해하셔야 할까요? 그건 그 당시 유대인들 사회의 절기 전후로 해서 일어나는 사회적 풍습을 알아야 해요. 그런데 물동이를 들고 가는 한 사람을 만날 것이라 했는데, 그 한 사람이 원문에 보면 문법적으로 '남성 주격 단수 대명사'에요. 그럼 더 이상하잖아요? 원래 유대인들은 상식적으로 남자가 물동이를 들고 다닐 수 없어요. 요한복음 4장에서도 수가성 우물가에 물을 구하러 왔던 이가 누구인가요? 여자예요. 그런데 어떻게 물동이를 들고 가는 한 남자를 만날 것이라 했을까요?
우리말 성경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도록 번역이 되었지만, KJV, 원문 자체는 '남성 주격 단수 대명사'로 되어 있어요. 남자란 말이에요. 남자가 물동이를 들고 다닐 경우가 있어요. 그 사람은 틀림없이 '엣센에파'에요. 그들은 바리새인 못지않게 초 경건주의자들이에요. 그들은, 바리새인들처럼 도시에서 사는 게 아니라, 광야에 나가서 살아요. 그때 추정 숫자를 당시 문헌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이 한 6000명, 엣센에파가 성내에 2000명, 그리고 광야에 은둔해서 세상의 쾌락과 단절하고 말씀공부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말씀을 기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4000명 정도 되었어요. 이 사람들에게는 세례를 주어야 하는데, 아무나 주지 않아요. 세례 받기 위해서는 1년 동안 지켜봐요. 이 사람이 이 정도면 엣센에파로 정식 가입할 수 있겠다 싶으면 두 가지 서약을 해야 해요. 첫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 번째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평생 살기로 서약해야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절기가 오면, 이들이 다 성내로 들어와요. 성 안에 사는 엣센에파 회원 중의 한 집에서 머물거나 유월절 준비를 그때 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엣센에파 회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싱글이에요.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어요. 그래서 이들은 물을 대신 길러다 줄 여자들이 없다 보니 남자들이 대부분 유월절 준비를 위해서 물을 준비한 거예요. 유월절 절기의 가장 핵심을 정결의식입니다. 특별히 엣센에파는 정결의식을 목숨만큼 중요하게 생각을 해요. 그건 우리하고 차원이 조금 달라요. 스스로의 정결의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어요. 내가 더러워지고, 내가 불결해지면 엣센에파 공동체가 함께 더러워진다는 개념 때문에 타인을 위해서 자기를 정결하게 해요. 우리와 같은 차원이 아니에요. 우리는 보통 나 자신을 위해서 정결을 하곤 하지요. 그것도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엣센에파 정도 되면, 초경건주의자들이다 보니 공동체와 타인을 위해서 자기를 정결케 하는 정결 의식을.. 특별히 절기 앞두고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수님이 그것을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만약에 장소가 필요할 경우에는 성 안에 들어가면, "물동이를 들고 가는 남자를 만날 것이다. 그 사람을 따라가서 유월정 장소를 제공받으라."
또, 한 가지 이상해요. 자기 집을 아무한테나 공개하고 내주나요? 네, 이 당시에 아시는 것처럼 나그네 환대법이라고 있어요. 예를 들어, 그 마을에 한 사람이 거리에서 자거나, 한 사람이 굶으면 그 공동체의 수치예요. 이것이 그 당시 경건주의자들의 통념이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대 사생아라도 입양을 안 보냅니다. 자기 민족이 어떻게든 책임져요. 제가 그 일을 읽다가 참 부끄러웠어요. 아직도 우리나라는 그 오명을 못 벗어나고 있어요. 어쨌든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불가항력적인 사정 때문에 키우지 못할 일들이 인간이니까.. 기독교인들이 천만이라면서요? 그런데 아직도 그런 아이들 수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잖아요. 그들은 어떤 이가 마을에서 공간을 요구하거나, 또는 필요가 발생할 때는 당연히 열어주고, 내주고, 함께 해주는 것이.. 특별히 엣센에파 그들이 세례 받기 전에 두 가지를 맹세한다고 했지요? 여러분, 이 장황한 설명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8절에 보면,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우리 교회도 진장님들 못지않는 훌륭한 간사님들이 굉장히 많아요. 물질적인 생활이나 경건적인 생활에서나 '야~ 어떻게 직장 다니면서.. 내가 평신도 입장이라면 저 간사님처럼, 청년처럼 저런 헌신과 삶과 나눔을 정말 할 수 있을까?' 정직히 얘기해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참 귀한 직분자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우리 교회에 남게 된 사연들이 어떤 간사님의 영향을 받았다는 간증이 굉장히 많아요. 간사 스스로는 나는 내 삶을 살았다고 하지만.. 그 삶 자체가 연약한 양 떼들에게는 모델이 되고, 표본이 된 거예요.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한 주간 힘들었을 텐데.. 금요일에도 빠지지 않는 모습이 연약한 양떼들에게는 메시지인 거에요. 8절이 그런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본문입니다.
9절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아가서를 읽으면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내 사랑아' 할 때는, 남자의 고백임을 기억하세요. '내 사랑아'라는 표현은 고대에서 여인에게 하는 표현이었어요. 그냥 준마도 아니고, 병거의 준마예요. 말들이 여러 종류가 있어요. 말 잔등에 올라가 보신 계신가요? 의외로 굉장히 높아요. 그래서 올라앉으면 무서울 정도에요. 몽골 말은, 그 종자가 제주도에서 왔다고 해요. 그래서 키들이 크지 않아요, 대신 힘이 좋아요. 어마 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도 잔등에 올라 앉으면 높더라고요. 최고의 말이 준마입니다. 그리고 아랍 사람들은? 동물 중에 가장 아름다운 동물을 말로 비유를 합니다. 그중의 준마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말을 뽑아서 병거를 매게 합니다. 열왕기상 10:26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천사백 대요 마병이 만이천 명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원래 신명기의 율법에 보면, 이스라엘의 왕은 앞으로 금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 병마는 군사용이죠? 그 이면의 진의는 이스라엘의 안보는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거지, 이런 무기와 병마가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로써 병마를 두지 말라고 하신 거예요. 솔로몬은, 말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말에 대한 비유가 참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병거를 이끄는 말은 준마가 이끌게 해요. 그래서 아랍사람들의 이미지 속에 동물 중에 최고로 아름다운 동물을 말로 치자면,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의 자태를 자기 삶의 이해를 투영시켜서 준마로 묘사하고 있는 거에요.
10절,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꿰미로 아름답구나' 제가 주해를 하면서 본문을 보는데, '머리털'이라는 단어가 없더라고요. 의역이 된 것 같아요. '머리털'로 번역을 했지만, 원어에는 '금사슬'로 되어 있어요. 아마도 고대 시대에 사랑하는 신부에게 드리우는 어떤 장식용 같아요. 그다음에 '.. 네 목은..'이라 했지만, 여기서 '목'은 정확하게 '뒷 목'이에요. 목걸이를 사랑하는 이에게 메어 줄 때는 목 앞에서 메 줍니까? 목 뒤에서 메 줍니까? 목 뒤에서죠? 원어에는 '뒷 목'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여기 보세요. 11절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이것은, 금에다가 다트 모양으로 박혀 있는 장신구를 의미합니다. 정확히 어떤 모양인지는 글로만 봐서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으니 넘어갈게요. 12절 왕이 어디에 앉았을 때에? '침상에 앉았을 때에..' 그러면 아가서 독자들은 성경을 읽다가, 결혼식은 4장에 나오는데 벌써 동침을? 혼전순결을 강조하면서 이건 뭐지? 오해를 할 수 있어요. 왜? '침상'이라는 단어 때문에.. 그런데 여기서의 '침상'은 잠자는 침상이 아니에요. 이 침상은 식탁을 얘기하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식탁에서 어떻게해서 밥을 먹지요? 누워서.. 그래서 아마 침상이라고 조금 심하게 번역을 한 것 같아요. 오해하지 마세요. 이건 침상이 아니라 둥근 두레상. 식사를 하는 상을 정확하게 묘사한 거에요.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어떠한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성경에 보면, 'until' 앉아있을 때까지, 또 'while' ~동안에. 왕이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있는 동안이라는 거에요. 그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세요. '.. 나의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기름 이름이 '나도 기름'이에요. 인도에서 온 수입품을 말해요. 성경에는 이 기름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굉장히 고가의 기름이에요. 수입품목 중 최고의 물품이에요. 여러분, 요한복음 15장이나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한 여인이 이 기름을 예수님의 발에 붓습니다. 유대 여인들은 평생의 사랑을 만났을 때 그 사랑에 대한 헌신의 표현으로써 향유를 붓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향유는 사랑과 헌신을 상징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신랑의 식탁에 앉아 있는 동안 신부는 향기로써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거에요. 제가 지난주에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솔로몬, 샬롬이라는 말은 평화라는 뜻이에요. 평강. 그런데 술람미는? 그 평강과 언약을 맺은.. 그래서 아가서 전체는 그 평강의 솔로몬과 그 솔로몬이 찾고 찾던 그 한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서 맺어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깊은 하나 됨을 은유적으로 설명한 책입니다. 조금 더 보실게요. 그러니까, 우리 성도는 누구하고 있을 때만 참된 향내를 낼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 떠나면 악취를 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찬송가 가운데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그때부터 냄새나고, 썩고, 악취 토해내게 되어 있어요. 그 왕이신 나의 신랑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동안..
여러분 유대인들이 식탁에 앉는다는 것은? 새로운 가족이 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요한복음 13장에서 그 제자들을 식탁을 같이 하고, 발을 씻기는 것은 너희와 내가 새로운 가족이다. 그것을 본격적으로 천명하는 사건이에요. 그래서 누구와 밥을 먹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13절 '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유대 여자들은 몰약 주머니를 목걸이를 만들어서 가슴 사이에 차고 다녀요. 그러면, 필요할 때마다 사용도 할 수 있고, 늘 여기서 몰약 향내가 나는 거예요. 이 몰약은 몇 군데 중요한 것에 사용돼요. 성전에 성물을 구별할 때 몰약을 발라요. 또 왕의 새로운 옷에 발라요. 이 몰약의 냄새가 나는 옷은 왕의 옷이에요. 그리고 이 신부는 몰약 주머니를 목걸이로 만들어서 가슴 사이에 차고 다닙니다. 항상 그 중심에 그 향내를 잊지 않기 위해서.. 14절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여기 엔게디라는 지역은 요단을 갈라서 서편에 있는 한 도성을 말해요. 여기는 이스라엘 땅 가운데 유일하게 포도가 무성히 자라는 오아시스 지역이에요.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보세요. '노벨화'는 성경에 몇 안 되는 꽃 이름인데, 포도가 엄청나게 진분홍색으로 열렸어요. 그 포도 사이사이에 '노벨화'라는 관목이 피어서 함께 어우러진 것입니다. 이런 상상을 하면 딱 맞을 것 같아요.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봄이 오면, 산등성이의 색깔이 변화하기 시작하고, 봄의 절정기에 달하면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어울려서 펴요. 그 광경이 오묘하리 많지 아름답지요. 그처럼 자줏빛 포도가 터질 듯 열렸는데 그 사이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꽃이 피어올랐는데 그것이 장관을 이루고 있단 말이에요.
15절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혹시 여러분, 비둘기가 갖는 상징성에 대해서 아세요? 비둘기는 정절과 순결의 상징이에요. 비둘기는 보통 전쟁 때 다리에 묶어서 전달용으로 쓰곤 했어요. 그만큼 귀로 본능이 어떤 새보다도 대단합니다. 그래서 이 비둘기는 회개와 돌아옴의 상징이에요. 예수님도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라고 말할 정도로 순결과 정절의 상징으로 언급하셨는지 아십니까? 놀랍게도 짝을 이루면, 다른 짝을 찾지 않아요. One love. 그렇다고 재혼한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살다 보면, 그럴 순 있어요.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참된 신랑을 만난 신부가 평생 어떤 고백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지를 비둘기의 정절과 순결, 회기 본능을 통해서 설명하고 싶었던 거예요.
16절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사람은 잘 생긴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매력 있는 사람이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잘 생기면, 밋밋해요. 말 한 마디를 해도 따스하게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써 향기가 베어 있고, 매력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우리 삼일교회 성도들이 그런 화창한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매력 있는 성도. 사람은 매력을 따라가게 되어 있지, 잘생김을 따라가지 않더라고요. 아닌가 봐요?
17절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경사진 부분이 서까래예요. 지붕을 횡으로 떠 받치는 아주 중요한 곳이 들보예요. 대들보란 말 들어보셨죠? 그 지붕 중앙을 가로지르는 것을 도리라고 해요. 그러면 뭔지 알았어요. 들보는 상징적으로 임팩트 있고, 굵은 것을 의미해요. 확실한 거, 중심을 잡아 주는 거.서까래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들보가 받친 지붕을 잔잔하게 작은 나무로 이어서 완성하는 역할을 해요. 이걸 어느 학자는 이렇게 묘사를 했더라고요. 레오 나르도 다빈치의 예화를 들어요. "화가의 완성은 노을을 제대로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무슨 말이냐? 노을을 그릴 시점에는 은근히 자리매김하는 시간이에요. 이것은 신앙의 균형을 얘기한다고 해요. 보통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 신앙의 극단적인 사람들.. 원래 종교라는 것은, 심화되면 극단이 되게 되어 있어요. 이 극단이 차짓 과잉과 과열로 나타나요. 이건 건강한 신앙형태가 절대 아닙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균형이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신앙을 자꾸 원리로만 이해해요. 정말 필요한 들보가 있으면 서까래가 그것을 완성하듯이 균형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오늘도 우리가 주님 앞에, 주님을 깊이 만나고 사랑한다는 것은? 열렬함도 필요하지만, 군불을 때듯 따뜻이 녹아들어 가는 그런 깊은 사랑도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지요. 오늘 이 밤에 앉아서 기도하다가 차 놓치면 목사님들한테 데려다 달라하고.. 개인기도를 길게 하다가 일어서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 주 사랑이 나를 숨 쉬게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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