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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조정민 목사

아침예배 I 이사야 14장 24-32절 I 반드시 이루리라 I 조정민 목사

by №1★↑♥ 2023. 9. 11.

베이직교회 아침예배, 이사야 14장 24-32절, 반드시 이루리라, 조정민 목사, 이사야 설교, 이사야 14:24-32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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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4징 24-32절, 반드시 이루리라

이사야서 13장~ 23장은 열방, 이웃나라에 대한 심판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라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심판하실 것인가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고 살아가지만, 점점 나이 들고 살아가면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나거나, 결정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삶을 통해서 점점 체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역사는 어떻겠습니까? 한 나라의 운명은 어떨까요? 우리는 이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신앙이 점점 깊어져야만 합니다. 깊어진다? 성숙해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궤적들, 흔적들을 돌아볼 때 후회가 남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했을까? 이 시점에 와서 보니 그때의 결정이 잘 못되었음을 깨닫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언의 말씀은 미래에서 다시 한번 오늘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현실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점을 보러 다니면서 닥칠 미래에 대해서 궁금히 여기지만 성경은 그런 뜻에서의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신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정하신 바가 무엇인지를 알면 이 시점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분명한 길이 보이기 시작하고, 답을 얻고 시작하는 삶이 된다는 것이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답을 알고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답을 알고 살면, 현실이 해석이 되고, 해석이 되면 힘들지 않아요. 몰라서 힘들지 않습니까? 오늘 바벨론에 대한 심판에 이어서 앗수르와 블레셋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둘러싼 강력한 나라들로, 늘 이스라엘을 힘들게 하고, 괴롭힌 나라들이에요. 앗수르는 워낙 강력한 나라여서 친 앗수르 정책을 펴야 하나? 반 앗수르 외교전략을 펴야 하나? 남유다 안에서도 힘든 고민 앞에 놓여 있었어요. 마치, 우리나라가 친청이어야 하냐? 친일이어야 하느냐? 친러야 하느냐? 그것 가지고 나라가 시끄러웠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디에 등을 대야, 나라의 안전이 확보되느냐? 여기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때가 있지 않았습니까?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까? 중국, 일본, 미국 어디 친화적인 정책을 펴야 하냐? 그러나 믿음의 관점에서,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냐? 누구도 믿을 나라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듯, 어느 나라도 믿을 나라가 없습니다. 저는 오늘날 이 시점에서도 믿음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예언의 말씀 앞에 다시 서게 하셨는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을 다시 읽는 까닭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미래 때문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미리 안다면 이 시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기준점을 위해서 읽는 것이지요. 

24-25절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연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앗수르는 그야말로 강력한 외쇠였습니다. 앗수르를 반드시 징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오늘 특별히 중요한 단어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데 그것이 뭐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경영하신다는 거예요. 경영이란 무엇입니까? 가용한 자원을 가지고 목적을 이루어 가는 것 아니겠어요? 하나님께서 경영하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경영자라 말씀하시는 것은? 이 땅에서 보이는 모은 것들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그분의 경영, 그분의 주권, 그분의 섭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걸 우리가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걸 놓치면 눈에 보이는 것들에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모릅니다. 보이는 것들이 두렵습니까? 보이지 않는 게 안 보여서 그런 거지요. 어린아이가 아버지와 걸어가다가 아버지가 안 보이면 두려움에 빠지는 것이지요.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 있다가 갑자기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게 되면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아이가 어머니 품 안에 있으면 안심하듯이,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걸어가면 안심하고 가듯이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 품 안에 있다는 믿음 안에 있을 때 비로소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신앙은 특별히 주님 안에 거하는 것, 그 안에 머무르는 것. in christ. 예수님 안에 있는 것. '네가 내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극단적인 말씀을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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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주님께서는 내가 생각한 것이 있고, 내가 반드시 이루게 될 것이고, 내가 경영한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이 땅을 하나님이 경영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때를 따라서 우리에게 고난도 주시고, 축복도 하시지만, 하나님께서 나라와 민족에 대해서도 경영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보면, 때론 답답한 마음을 갖게 되지만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위해서, 믿는 자들을 통해서, 믿는 자들에 의해서 이 나라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하나님께서 내다보고 계신 것이지요. 그래서 사실은, 믿음의 사람들이 중요해요. 저는 이 땅에 어려움이 있다면 교회 때문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하냐?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 때문에 모든 성경의 역사서를 읽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땅에 들어가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냈어야 합니까? 그러나 그대로 살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결국은 그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포로가 되어야 합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그 이유에 대한 답이 성경 곳곳에 있지만, 정작 우리는 믿음의 길을 가면서도 그 답을 알면서도, 그분의 뜻을 알면서도, 그분의 계획을 알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내 뜻과 내 계획, 내 상각대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인생의 막대기와 채찍을 들어서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지요. 저는 어떤 때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은, 믿는 사람들이 잘 못 믿어서 그런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믿는다면 그들의 고생이 줄어들터인데.. 우리가 잘못 믿는 것 때문에 그들이 인생의 채찍, 인생의 막대기 노릇하느라 그들도 고생이라는 겁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경영하신다. 계획하시고 생각하신 것을 이루신다는 것. 그냥 이루지 않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알려주세요.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반복해서 듣는 것이지요. 들은 대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러분들이 매주 이렇게 모이는 이유가 뭔가요? 들은 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 

한 주간 죄만 짓다가 왔습니다라는 기도하는 사람을 보거든요. 여러분, 죄만 짓다 와서 드리는 예배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한 주간 주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다가 간혹 실수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한 주간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다 왔습니다가 이게 우리의 삶의 자세여야 하지 않을까요? 한 주간 세상대로 살다가 오늘 탕감받으러 왔습니다가 아니란 말이에요. 신앙의 진보가 왜 없습니까? 믿음이 왜 깊어지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신앙 안에서 성숙하지 못합니까? 말씀 다르고, 내 생각 다르고, 교회 다르고,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살기 때문 아닐까요? 그리고 목사님 설교 들으면서 "목사님, 한번 살아보세요. 그게 됩니까?" 저는 살아봤거든요? 힘든 거 알아요. 믿음 없이 사는 것보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훨씬 힘듭니다. 그러나 견딜만한 힘을 주십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이 넘어질 때 우리는 넘어지지 않는 까닭은 고난이 작기 때문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서 견뎌낼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믿음의 능력을 갖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니까.. 그 앗수르를 의지하지 마라. 바벨론? 별거 아니다. 바벨론 왕, 지금은 그렇게 보여도 그도 결국 썩어질 시체가 되리라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26-27절입니다. '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라' 누가 하나님의 경영, 하나님의 섭리를 대적하겠느냐? 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표를 놓고 보면, 하나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뜻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지만 긴 역사를 놓고 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 이루어져가고 있는 중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하나님의 경영, 하나님의 섭리라는 구속사적인 역사적 안목과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이 시대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에요. '누가 그것을 폐하겠느냐?"는 것이에요. 사도 바울이 또 그렇게 절규했지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런 것들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의 관계에서 끊어지겠느냐? 그런 것이 온다고 해 도 결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그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여전히 나를 붙들고 계신다. 그분의 사랑, 끊어질 수 없는 사랑에 묶여있다는 사실을 붙들고 안심하고 걸어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8-29절입니다. '28 아하스 왕이 죽던 해에 이 경고가 임하니라 29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여러분, 아하스 왕이 남유다에서는 고약스러운 왕이에요. 북이스라엘 왕과 같은 하나님의 진노와 불의를 불러일으키는 일을 골라서 했던 왕이에요.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은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왕이 죽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블레셋에 대한 심판을 말하고 계신데, 앗수르 다음에 블레셋 "너희들 앗수르가 망한다고 그리 기뻐하지 마라.. 30절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궁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네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네게 남은 자는 살육을 당하리라' 블레셋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나라예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진멸하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말씀하고, 예언하신 대로 '가시가 되고 너희들의 옆구리를 찌르는 찔레가 되실 것이다.'라는 말씀처럼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31절입니다.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리로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대열에서 벗어난 자가 없느니라' 북방에서부터 내려오는 강대국의 침범에 맞설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은 블레셋도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32절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 블레셋이 남유다에 대해서 앗수르의 반하기 위해서 함께 화친의 조약을 맺지 않겠냐? 고 합니다. 그 블레셋도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인데.. 그리고 그 멸망한 백성들은 결국은 시온으로 피하게 될 것인데.. 이방 족속들도 결국에는 시온으로 피하게 될 것인데 그들에게 무슨 도움을 청하겠느냐? 그들과 무슨 연대가 되겠느냐? 화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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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이야기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상황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과 우리가 처한 환경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말씀이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족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단 한 번도 의식이 바뀐 적이 없습니다. 죄성의 뿌리가 뽑힌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의 말씀 앞에서 요한일서의 말씀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잇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눈앞에 있는 것들은 단 세 가지로 압축이 됩니다.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는 것들, 우리 눈앞에 정욕을 자극하는 것들, 인생의 자랑거리들 때문에 우리가 기를 쓰고 살아가지만 그것은 다 지나가고 없어질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들, 진리에 거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자들 정의를 실현하려는 자들은 영원히 거한다고 말합니다. 무릇 저와 여러분들이 믿음의 길을 가면서 영원한 생명이 이미 와 있다면, 이미 우리의 생명이 사망에서 옮겨졌다면 저는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세상을 이기고 살아가는 자들인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기고 살아가는 것과 이길까? 질까? 염려하며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이겼기 때문에 십자가로 걸어가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저와 여러분들이 이겼기 때문에 고난 가운데 뛰어들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라요. 우리는 피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피해 가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고난 넘어 계신 하나님의 경영, 하나님의 몰약,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를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완성된 역사를 가지고 계십니다. 거듭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에게는 과거와 현재 미래로 구분되지만 주님께는 한 시제입니다. 주님께서는 과거가 곧 미래고, 현재가 곧 미래입니다. 주님께는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지만 주님의 생각과 계획 속에는 미래까지도 그분의 경영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말씀 따라 결단하며 살아갈 때 오늘 주신 말씀은 결국 이웃을 의지하지 말라는 거예요. 강한 것을 의지하지 말고, 강해 보이는 것들이 결코 강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연약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믿음의 사람들. 그들이야 말로 진정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약해지셔야 합니다. 이 세상은 강함을 추구하지만 그 강함 때문에 오히려 부러질 것입니다. 저는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주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약함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 앞에 다시 한번 우리의 전부를 드리는 믿음의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제 인생 주님께서 쓰십시오. 제가 써봐야 제 수준정도 인생에 지나지 않을 것을 제가 잘 압니다. 주님 제 인생, 제 시간, 제 삶을 드리오니 주님의 수준에서 제 인생 빚어 써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람들이 이 땅을 통치하는 것 같지만 이 땅을 내가 경영하는 것이다. 이 땅을 내가 통치한다. 섭리한다고 말씀하셨사오니 오늘도 주님의 주권을 바라보며 통치자 되신 주님, 경영자 되신 주님을 따르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렵고 힘들 때마다 사람에게 물어보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물어보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다시 한번 믿음으로 선포하고, 이 전쟁의 시대를 이기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십자가에서 이기신 전쟁을 선포하신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령의 이기게 하시는 인도하심이 오늘 말씀을 따라 블레셋이든 앗수르건, 바벨론이건, 다 지나가는 것이요. 지나가지 않는 영원하신 한 분 바라보며 그분 따르기로 결정한 이 자리에 고개 숙인 모든 지체, 참 다운 교회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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