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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옥한흠 목사

옥한흠 목사 명설교 I 누가복음 2장 8-14절 I 구주가 나셨으니 I 옥함흠목사 I 성탄절 설교문 I 성탄절 설교

by №1★↑♥ 20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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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가 나셨으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크리스마만 되면 다시 읽으며 감동을 받는 아름다운 서사 시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제일 많이 인용하면서 설교한 본문 아닌가 싶습니다. 볼 때마다 의미가 다르고, 은혜가 새로워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핵심이 뭡니까? 베들레헴 근교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서 이런 메시지를 주고 있죠? "무서워 말라! 보라 네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크고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때까지 이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가장 큰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뭐냐?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한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세상을 구원하실 그리스도가 세상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온 세상의 깜짝 놀랄 정도로 받아들여야 할 큰 기쁨의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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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구주가 진짜 태어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천사가 지시합니다. "너희는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너희에게 표적이 되리라" 당시에 유대사람들이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마구간이 얼마나 많았어요. 그러나 어느 아이치고 마구간에 태어나서 여물통에 누워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아이를 찾으라. 그 아이를 찾으면 그 아이가 바로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임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라는 거예요. 천사들의 말을 듣고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서 찾아봤겠지요? 정말 여물통에 누워있는 아이가 있는가? 진짜 투박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목자들은 경배하고, 찬양하면서 돌아왔어요. 구주가 나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만날 때마다 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구주라는 말은? 원래 로마 황제 가이사 아우구스도에 붙이는 이름이었습니다. 황제가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고 개선할 때 온 로마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서 외치는 것이 "구주 가이사" 그러니까, 자기를 구원할 자라는 것이지요. 황제를 그렇게 신격화시켰습니다. 그런데 황제는 로마 제국의 정치적인 평화를 가져다주었을지는 모르지만 말 구유에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주시는 진정한 평화는 주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어떤 평화입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의 평화입니다. 죄로 인하여 원수가 되었던 우리들을 예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되게 하시고, 언제든지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나갈 수 있는 마음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나 자신과 양심과의 평화입니다. 우리는 항상 죄에 대한 자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공포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말끔히 씻어 주심으로 우리는 양심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과 양심으로부터 평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나 자신과 이웃과의 평화입니다. 지금까지는 서로가 원수처럼 생각하며 살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다음에는 내 몸처럼 사랑하는 관계로 변하는 평화입니다. 이런 평화를 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모든 사람에게 평화로다. 이 평화를 예수님이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이사랴 아우구스도의 평화는 가짜고, 사이비 구조지만 예수 그리스도만은 진짜 구주요. 우리에게 진짜 평화를 주시는 영광스러운 구원자 되심을 우리 모두가 믿어야 하겠습니다. 

천사들이 목자들을 만나서 준 메시지 가운데서, 오늘은 특별히 두 가지를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주님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우리가 들은 소식 가운데 가장 기쁜 복음이 될 수 있기 위해서 두 가지를 주목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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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유에 누인 아기.

첫째는, 구유에 누인 아기에 담긴 말 속에 담긴 은혜를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거예요. 어떤 저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창조자가 지구상에 피조물 가운데 한 부분이 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광대하신 창조자 하나님이 작아지고 작아져서 마침내 난세포가 될 정도로 작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거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광대하신 창조자가 마침내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이 시골 뜨기 아이가 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어요. 우리가 입는 옷을 입었어요. 우리가 신는 신을 신었어요. 우리가 사용하는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잡수셨어요. 그리고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같이 흘리셨어요. 사람이 되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동병상련이라는 말을 아시죠? 서로가 같은 병을 앓고 살아갈 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말이지요? 처지가 같으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지요? 위해 주죠? 하나님이 구유에 누인 아기가 되셨다는 것은? 동병상련의 법칙이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이 되셨습니까? 내가 너를 좀 더 알고 싶어서.. 그거 아닙니까? 사람이 되신 거예요.

좋은 신화가 하나 있어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연재되었던 신화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재혼한 부부가 딸을 찾고 있었습니다. 12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딸을 찾습니다. 그 딸은 부인이 한국동란에서 전사한 전 남편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는데 재혼하기 4년 전에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처음 한 일 년 동안은 소식이 왔다 갔다 했어요. 노래를 잘해서 성악 레슨을 받고 있다느니 이런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괜찮았는데.. 그 이후로는 소식이 딱 끊어졌어요. 12년이 지났어요. 아무리 수소문하고 찾아도 아이의 행방을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애를 태우가 있다가 우리나라 말로 문제 해결사라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찾아달라고, 아이의 인적사항을 적어서 부탁합니다. 문제 해결사 쉐이드가 미국 전국을 뒤지면서 비슷한 아이가 있는지를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L.A의 나이트클럽에서 밤이면 노래를 부르는 여성 가운데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름도 '글로리아' 똑같았어요. 그래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내가 언제쯤 당신을 찾아가 보고 싶다.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애를 쓰고 싶어 하니 나를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편지 보내고, 그다음에 찾아갔어요. 공연이 끝난 다음 무대 뒤로 돌아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가씨가 뜨개질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왔다고 인사를 하니까, "예, 선생님~ 편지 잘 받았어요. 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거든요? 그래서 저의 매니저가 선생님의 편지를 읽어주었어요. 저는 어머니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 어머니는 내가 8살 때 고아원에 버린 나쁜 여자예요. 내가 왜 그 여자를 만나야 해요? 내가 어찌 그 사람을 어머니라 부를 수 있겠어요? 절대 안 만납니다."

쉐이드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설득을 했습니다. 겨우 설득해서 어느 날 만나게 되었습니다. 호텔로 찾아갔습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데 여자에는 우아하게 생긴 여인이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랬더니, 그 부인이 "얼마만이지? 네 목소리는 예전과 똑같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입이 안 떨어지네?"라고 어머니가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자 이 아이가 거기서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고아원에 나를 던져 놓고 이때까지 돌보지 않은 사람이 뭘 어머니고 싶어 하느냐? 난 그 소리 듣고 싶지 않다."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랬더니 그 부인이 그 말에 상관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이리 가까이 오렴. 내가 너를 좀 더 찬찬히 보고 싶다." 그래서 문제 해결사가 딸 애를 어머니 앞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두 손을 들고 딸 어깨에 손을 얹더니 그다음으로 얼굴 쪽으로 손을 더듬으면서 만지기 시작했어요. "야~ 정말 많이 컸네, 정말 이쁘네?" 그러자 이 딸이 너무 놀랐어요. 어머니가 자기 얼굴을 더듬는 거예요. "아니 엄마도 나처럼 못 보는 거예요?" 어머니가 "그래~ 나도 너처럼 앞을 못 본단다. 그러나 네가 세상에 어디 있든지 너는 내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 말을 듣고 딸 애가 어머니 품에 쓰러져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가졌던 마음의 원한, 분노, 불평, 모든 감정이 녹아내리는 시간이었어요. 어머니가 자기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모든 원한의 감정이 풀어진 거예요. 어머니는 자기에게 눈병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조금 지나면 맹인이 된다는 사실을 의사로부터 선고를 받았어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딸에게도 똑같은 유전성 눈병이 있는 것을 알았어요. 둘이다 봉사가 되어 고생을 하느니 딸 애를 고아원에 맡겨서 좋은 양부모 만나서 딸의 앞길을 열어주고 싶어서 눈물을 머금고 고아원에 보냈던 거예요. 딸은 그걸 몰랐지요 

여러분, 구유에 누인 아기. 그 구유를 붙들고 하나님도 나처럼 사람이 되셨나요?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그래, 나도 너처럼 사람이 되었다. 내가 너를 알고 싶어서.. 네가 짐을 지고 고통할 때 얼마나 괴로운가를 한번 맛보고 싶어서 사람이 되었다. 네가 가난의 짐을 지고 한평생 눈물 겹게 인생을 사는 맛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가를 내가 맛보기 위해서 내가 사람이 되었다. 네가 세상에서 사랑하는 자를 여의고 고독하게 눈물지으면 하루하루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내가 좀 맛보기 위해서 나도 너처럼 사람이 되었다. 세상에서 겪는 실패, 허무, 불안, 공포가 어느 정도로 무서운지.. 세상에서 너희들이 겪는 것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를 내가 친히 맛보기 위해서 나도 너처럼 사람이 되었다."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바로 그겁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마음에 깊이 담으면 세상에 오신 주님이 나를 위해 엄청난 감격과 감사와 엄청난 기쁨을 안겨 줍니다. 할렐루야! 

 

 

 

 

 

 

 

 

2.  가장 기쁜 소식을 목자들에게 먼저 알려주셨다.

하나 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천사들이 찾아와서 가장 기쁜 소식을 목자들에게 알려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소홀하게 다루고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이건,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소식을 세성에 전하는 거예요. 천사들을 통해서 알리는 거예요. 우리 생각에는 임금을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헤롯 왕이어야 하지 않나요?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지성인들을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니고데모와 같이 아리마대 요셉과 같이 부자로 사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이 귀한 소식을 전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하나님은 거꾸로 하시네요? 목자들을 제일 먼저 찾아가셨어요. 당시의 목자의 신분은, 천대받는 자들이었어요. 본래 유대인들은 목축업을 하기 때문에 목자를 천대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세상이 자꾸 바뀌면서 예수님 태어나실 당시에는 목자들이 천대받았어요. 그래가지고 남의 집 양이나 염소를 돈 받고 밤새도록 쳐주면서 잠 못 자는 직업이었으니 천대받는 직업이었어요. 가난하게 살았어요. 그리고 성전에 가면, 사람들하고 나란히 제사 못 드리고 바깥 마당에서 서성이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이에요. 법정에 가도 증인으로 증언할 만한 자격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에요. 이런 목자들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가셨다. 여러분 이거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우리는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기독교는 요즘 말로 코드로 말하면 좌파 성향을 가진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이 가난한 자를 찾으셨어요. 병든 자를 앞 세우셨어요. 그러니까, 요즘 코드로 말하면 분배정책을 앞세우고, 가난한 자, 장애인들을 먼저 정책에서 우선순위에 두시고 서로가 나누어 먹고 서로 평등하게 살자는 식의 사고를 가질 여지가 기도교에는 상당히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약자의 편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약자의 편에 서 있어야 해요. 성탄의 메시지를 보면 이걸 부인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 마리아와 요셉과 같은 초라한 시골 나사렛의 처녀 녀, 총각을 하나님이 주목하셨겠어요? 평생 목공소나 운영하면서 이름 없이 살다갈 평범한 처녀 총각인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결혼하고 나서 9년밖에 살지 못하고, 80년이 넘도록 과부로 사는 팔자 나쁜 안 나와 같은 여자를 주목하셨겠어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까, 기독교는 진보 성향을 가진 것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요. 그것이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정치하는 사람들하고 동조를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목표는 좋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선택하는 정책이라든지 방법이나 동기가 성경과 거리가 멀 기 때문이에요. 원수 갚자는 마음으로 한쪽을 두들겨 패는 정책을 펴면 안 되지요. 한쪽을 완전히 파괴하고 싶은 생각에서 정책을 펴면 안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치에 동조하지 못하지만.. 저는 정치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저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에요. 양쪽의 좋은 것을 다 받아들이고자 하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러나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하느냐? 약자 편에 서야 하는 거예요. 왜? 하나님이 세상에 오실 때부터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에요. 

이런 이유로 예수의 이름이 증거 되는 곳마다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개인이 변화되고, 가정이 변화되고 국가가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되었습니다. 만일 여러분 120여 년 전에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예수를 몰랐다면 이조 시대의 쌍놈들, 이조 시대의 역적들, 정치에서 몰린 사람들이 지금처럼 사람대우받는 사회가 되었겠어요? 목자를 찾아가셨던 하나님이 이 땅의 구주로써 영광을 받으시는 영광스러운 날을 우리가 맞았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가난하십니까? 비관하지 마세요. 여러분, 실패했나요? 좌절하지 마세요. 내 가난, 내 좌절이 얼마나 대단히 좋은 거냐 하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먼저 나를 주목하게 되시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먼저 나를 찾아오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제가요, 지나 간 세월을 테이프로 잘 들어요. 제가 설교한 내용을 산책을 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듣는데.. 가끔 들으면 간증을 많이 했잖아요? 간증을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 있어요. 전부다 고통당하는 과정 중에서 주님이 자기를 찾아왔음을 간증하는 거예요. 만약에 그런 고통이 없었더라면 절대 예수 믿을 사람 아니에요. 이 가운데 그런 분들 많을지 몰라요. 내가 너무 가난하다고요? 그거 너무 탓하지 마세요. 가난 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는지 아세요? 가난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먼저 주목하셨어요. 믿으십니까? 나의 실패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먼저 나를 주목하시는 거예요. 내가 남보다 뒤 떨어지고,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눈물 흘리는 나를 먼저 주목하시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이 놀라우신 하나님을 내 마음에 맞아들여서, 어려운 여건도 받아들이고, 하늘의 복과 땅의 복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세상에서도 사람 구실 하실 수 있도록 세상에서도 높이 들어주셨어요. 그래서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구유에 누이신 예수는 누구야? 모든 역사의 축이요 전환점입니다. 인류는 그가 나시기 전인 B.C와 그가 나신 후의 A.D를 연대기로 매겨야 할 만큼 세계 역사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His story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만큼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이 역사의 주가 되십니다. 그래서 역사에 담긴 온갖 신비들을 푸는 열쇠가 되셨어요. 예수님을 빼면 역사를 설명할 길이 없어요. 그래서 빌립 샤프라는 교회사 역사학자는 이런 말까지 했어요. "때가 차매 과학과 예술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 시들고 세상이 절망의 가장자리에 섰을 때 그 동정녀의 아들이 인류의 병을 고치려고 태어나셨습니다. 생명의 창조주로써 세상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우리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리신 하늘의 포도나무시여 /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시요 참 하나님의 꽃이요 사람과 하나님의 꽃이요' 

세상은 공동묘지와 같이 살벌한 곳이지만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이 세상의 꽃으로 오셔서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꾸어 주신다는 거예요. 그 꽃이 우리 가슴속에 피어 있어요. 사랑을 통해서 성탄을 통해서 사람이요 하나님이신 꽃인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기뻐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만 기뻐해서는 안 돼요. 우리 주변을 돌아보세요. 예수님만 만났다면 저렇게 눈물 흘리며 앉아 있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예수님만 만났다면 저렇게 증오를 가지고 남을 해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예수님을 만났더라면 목자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이 품에 안기는 것을 맛보았더라면 저 형무소에 가 있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이런 사람들에게 사람이요, 하나님이신.. 꽃 예수 그리스도.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도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바뀌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의 교회를 통해서 이와 같은 놀라운 부흥의 은혜를 이 땅에 펼쳐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만 기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놀라우신 주님, 사람으로서 나를 더 알고, 동정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주님. 가장 가난하고 세상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자들을 먼저 찾아오기 위해 오신 주님으로써 세상에 오신 주님. 우리가 이 주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그 예수님의 이름을 듣는 자마다 가슴에 큰 역사가 일어나고, 혁명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손길이 될 수 있기를 오늘 모두에게 특별히 은혜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구유에 누이신 주님, 목자들을 찾으신 주님. 오늘 우리의 구주로써 세상에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과거와 같이 살지 아니하는 새로운 피조물로써 한 생을 살게 하심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를 동정하기 위해서 몸을 입고 오신 주님. 세상에 오시면서도 가난한 자, 약한 자의 편에 서셔서 그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을 알려주신 주님.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심을 찬양합니다. 이 주님께 경배합니다. 경배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여 복을 주시옵소서. 하늘의 복과 땅의 복으로 채워주시옵소서. 아직도 우리 주위에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을 주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어서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는 새로운 부흥이 이 땅에 일어날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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