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응렬 목사, 야고보서 3장 1-12절, 살아있는 믿음 6, 언어는 믿음의 품격입니다, 야고보서 강해,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류응렬 목사, 류응렬 목사 야고보서 강해
언어는 믿음의 품격입니다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류응렬 목사 -
탈무드에 보면, 한 임금이 요한과 시몬을 불러서 부탁을 합니다. 시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해오라."라고 하고, 요한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 하나 구해오라."라고 합니다. 시몬이 가장 귀한 것이라고 가져온 것은, 사람의 혀였습니다. 요한이 가장 나쁜 것, 가장 악한 것 역시 사람의 '혀'였습니다. 사람의 혀가 가장 귀한 것을 내기도 하지만, 가장 악한 것을 함께 낼 수 있다는 거예요.
한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지만.. 때로는 한마디 말 때문에 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사람의 특징을 두고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호모 로쿠엔스'. '언어의 인간'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 있다면 말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어떤 동물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사람에게 주셨다는 거예요. 사람이 깨어있으면서 1/5, 20%가 말을 하면서 보낸다고 해요. 하루 종일 한 말을 책으로 묶게 되면, 약 50페이지 정도 분량이 나오고 1년을 묶게 되면, 적어도 100권 이상의 책이 완성이 된다고 해요. 신자의 말에 대해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 잠언서에 보면.. 잠언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사람은 때로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려내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무너트리기도 해요. 30초 동안 내뱉은 말이 때로는 30년 동안이나 마음에 크게 상처가 되어 아픔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30초의 말 한마디가 사람의 가슴에 새겨져서 평생을 아름답게, 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말의 능력에 따라 나타나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성경은 여러 곳에서 강조를 하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를 하셨어요. "빛이 있으라." 하매 하늘에 빛이 있고, 태양이 있고, 수많은 별들이 나타나게 된 겁니다." 말로 말미암아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특권, 선물이 있다면 말이라 할 수 있어요. 그 말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 하도록 주신 선물이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대항했고, 하나님 앞에 범죄 했던 것이 말로 했던 거예요.
천지창조뿐일까요? 우리의 살면서 말을 하면서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을 무너트리기도 하며 살아가요. 최근에 뇌 과학자의 연구를 보면, 흥미로운 언어에 대한 연구가 있어요. 우리 뇌에 세포가 230억 개가 있다고 해요. 그중에서 98%가 언어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고 해요. 그래서 언어 중추신경이 우리의 온몸과 온 생각을 지배하고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언어 치료법'이 개발이 되었어요. 말로 말미암아 사람의 병도 때로는 고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한 마디 말로 말미암아 무너진 사람도 세우고 때로는 죽어가는 사람도 말 한마디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제가 목회를 하면서 참 많이 부족한 사람이 성도님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제 가슴속에 남아 있는 특별한 격려의 두 마디가 있었어요. 목회 초기 때 한 장로님이 오셔서 저에게 그렇게 말씀을 해요. "목사님, 목사님께서 마음껏 비전을 우리 교회에서 펼쳐 주십시오. 우리 교회는 목사님의 그 원대한 꿈, 비전을 이루어 드리기만 해도 최고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저는 부 목사까지 뿐이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고 목사로써 검증도 되지 못한 사람인데, 목사의 날개를 달아준 한 마디였어요. 그리고 제 가슴속에 따스하게, 생각할 때마다 힘이 되는 한 마디가 또 있어요. 어느 차가운 겨울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로비에서 권사님께서 장로님과 함께 찾아오셨어요. 손을 꼭 잡으시면서 귓 전에 대고 속삭이셨어요. "목사님,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우리는 목사님 참 좋아하고, 만족해요." 저는 제대로 교회를 섬기지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으로 성도님들을 대하는 데 부족한 종에게 주시는 그 격려의 말씀. 때로는 연약할 때마다 힘이 필요할 때마다 그 말씀 생각만 해도 새로운 힘이 솟곤 합니다.
한 마디의 말,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말, 하나님이 들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말. 오늘은 그 언어에 대해서 야고보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1: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나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여기서 '온전함'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텔레이오스'라는 단어로 하나님 앞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예요.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그때 사용된 '온전함'이라는 단어가 '텔레이오스'라는 단어예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온전함, 성숙함, 흠이 없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흠이 없는 온전한 사람. 말의 실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나요? 말을 통해서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에 속한 말을 하고 은혜로운 말을 하고, 올바르고 지혜로운 말을 하는 사람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말의 실수가 없는 자라야 온전한 사람이라.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그만큼 말에 실수가 많다는 거예요. 타락한 인류의 입에서 나오는 많은 것들이 때로는 사람을 헤치고, 사람의 기운을 떨어트리게 만들고, 말로써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하는지 몰라요.
말의 실수가 없는 사람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온전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오늘 그 야고보가 말에 대한 강조를 3장에서 길게 하고 있지만.. 사실 이미 1장 처음부터 말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있어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신중하게 잘 듣고, 말할 때는 조심히 하라는 거예요. 또한 1:26에서는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않은 사람은.. 혀를 절제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모든 경건이 헛것이라.'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든 경건도 말에 재갈 물리지 않으면 헛것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하다 보면, 이 말이 얼마나 실감 나는지 몰라요. 참 아름답게 주님 앞에서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말 때문에 때로는 한마디 말 때문에 그의 인격과 품격이 무너지는 것을 우리가 다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는 말,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인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걸까요? 많은 성경 가운데서 언어에 대해서, 많은 강조를 하는 잠언이 우리에게 뭐라고 권면하는지 보실까요? 잠언 15: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기쁨이 없는 이 세상 가운데서 말로 사람을 기쁘게 하고,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습니까? 때로는 말 한마디가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기도 하고, 상처난 가슴에 평강을 심어주기도 하고, 때에 맞는 한 마디 말이 무너져 가는 한 사람 한 가정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주님을 몰랐던 한 사람이 때에 맞는 그 한 마디 말로 말미암아 교회에 나오게 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기적을 만드는 것이 말의 능력입니다. 잠언 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말을 잘 함으로 말미암아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병상에 있는 사람과 심방하여 대화를 하다보면, 물론 병원에서 최고의 의술로 치료하고 있지만 때로는 기도 한 마디, 따스한 한 마디가 사람을 일으켜 세워내는 힘이 있음을 참 많이 봐왔습니다. 이토록 중요한 말, 하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는 말씀인데, 우리는 때로 말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도 아프게 만들고, 하나님의 마음도 힘들게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습니다. 열명이 돌아와서 했던 말이 "모세여~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저들은 철병거가 있고, 철옹성 여리고성이 있고, 거대한 장수 네피림이 있어서 저들에 비하면 우리는 마치 메뚜기와도 같습니다." 기가 죽어버린 사람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고,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벌벌 떨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우리가 저 애굽에서 죽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왜 하나님은 우리를 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서 거기서 적들의 칼날에 죽도록 하시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땅.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했던 그들을 일방적인 사랑으로 불러내시어 약속의 땅으로 들여보내시려는 하나님의 꿈을 무너트린 사람들의 불평과 원망.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그대로 다 들으셨어요. 민수기 14:27-28,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죄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어땠나요? 그들이 한 말 대로 광야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죽임을 당했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반드시 저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원망 불평이 아니라, 우리가 축복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사람을 세우는 언어를 한다면 하나님 동일하게 말씀하실 거예요.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말에는 귀소본능이 있다고 해요. '말의 품격'이라는 책에서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연어가 산란기가 되어 자신이 태어났던 고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라는 것은 한번 뱉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돌고 돌아서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귀로 돌아온다. 귀소본능이라는 말대로 말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 이 말을 가슴에 새긴다면 우리 언어는 많이 달라지게 되겠지요. 내가 하는 말을 하나님이 듣고 계시고 그 말이 언젠가 확성기처럼 상대방에게도 들려지고, 내 자신에게도 들려져 온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좀 더 한 마디 한 마디를 신중하게 하게 될 거예요.
유대인의 속담 가운데 돌아오지 않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활시위를 떠나 버린 화살. 그리고 흘러가버린 물 같은 세월. 마지막으로 입으로 뱉은 말 한마디라고 해요. 한번 물어보시기 바라요. 나는 어떤 언어, 어떤 태도로 말을 하는 사람인가? 나의 말을 통해서 옆에 있는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고, 세움을 입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말이 언제나 시니컬하고, 비판적이고, 날카로워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고 돌아서고 나면 차가운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가? 예수님께서 말에서 대해서 심각하게 하신 말씀이 있어요. 마태복음 12:26-27, 2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2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우리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으시고 말로 인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판단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라요. 특별히 말을 할 때에 조심해야 할 것이 있어요. 상대에 대해 말을 할 때에 상대방이 없을 때 그에 대해서 흉을 보거나, 비난하고, 불평하는 것은 아주 조심해야 하는 거예요.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더라도 예의가 아니지요.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정말 고쳐지기 원하는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아니라면, 정말 그분에게 필요한 말이 있다면 정직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들려주셔야 해요. 하나님이 듣고 계셔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의 언어는 너무나 달라지게 될 것이에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가지고 뭐라고 말씀하시냐? "비판하지 말라. 우리가 비판하는 잣대를 가지고 우리도 비판을 당하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신다면, 누가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있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품고 대할 뿐입니다.
오늘 야고보서는 이 말의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3가지의 비유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 그리고 거대한 배를 움직이는 배의 키 그리고 산의 불처럼 퍼져나가는 혀를 통해서 인간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혀를 어떻게 길들여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언어를 소유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1. 사람의 혀에 재갈을 물려서 길들이라
재갈을 물리라는 것은? 함부로 말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을 하도록 이끌라는 거예요. 야고보서 3: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거대한 말, 힘센 말에 재갈 물리는 것은? 그로 순종케 하려는 거예요. 말이 얼마나 힘이 셀까요? 제가 어릴 때 소를 몰아봤기 때문에 소의 힘이 얼마나 세었는지를 잘 압니다. 소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말의 힘 아니겠어요? 연구를 하나 보니까 사람 18명과 말 한 마리가 줄 다리기를 했을 때 속절없이 사람들이 끌려가는 연구결과를 보게 되었어요. 우리가 아무리 소가 힘이 세다 할지라도 우력이라는 말보다 마력이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엄청나게 힘이 센 말을 제어하는 것, 그를 순종케 하는 것이 뭐냐? 말의 입에 물린 재갈이에요. 말의 입 구조를 보면, 앞 니가 다섯 개 있고 아랫니도 다섯 개가 있고, 어금니가 있는데 앞 니와 어금니 사이가 비어 있어요. 그 비어있는 사이에 재갈을 물리면 그것을 움직일 때마다 말을 원하는 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의 혀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혀를 잘 다스리게 되면, 그 재갈 하나 가지고 전체 말을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 혀를 주님 앞에 드림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지배하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전 인격체를 하나님이 움직이시도록 드리는 시작이라는 거예요.
2. 배의 키를 조정하듯이 혀를 길들이라
거대한 배가 움직이는 것은, 조그마한 키 하나 때문에 움직이지요. 야고보서 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을 보면, 길이가 333m, 폭은 78m로 사람이 6천 명이 탈 수 있고, 항공기도 100대 탑재할 수 있는 거대한 항공모함이라 하더라도 키 하나 가지고 방향을 정하게 되어있어요. 그 키를 잘 활용하게 되면,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게 키의 역할이에요. 우리의 혀도 마찬 가지예요. 맘대로 두는 것 아니라, 우리의 혀를 하나님 앞에 잘 통제를 받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세움을 입고, 진리의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으로의 삶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3. 불과 같은 치명적인 혀를 길들이라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혀를 길들이라. 불과 같이 번지고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혀를 길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라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리라
혀의 권세를 지옥불에서 나는 것이라고 해요. 성경에 보면, 불에 비유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어요. 성령을 말씀할 때 불에 비유를 합니다. 사람을 살려내는 성령, 인생을 변화시켜 내는 성령을 불에 비유하는 것. 그리고 다른 것 하나가 혀의 권세를 이야기할 때 불의 비유를 말해요. 오늘 혀의 권세를 말할 때 우리가 이해하기가 어려운 표현이 나와요.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그 아름다운 언어를 두고 '지옥불에서 나온다'라고 할까요? 그만큼 사람들이 타락했고, 타락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언어가 그만큼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때로 자기 자신의 주장을 할 때 내가 의롭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내 말이 정당하고, 정의롭다고 생각을 해요. 우리 목구멍은 열린 무덤처럼 죄악을 토해내고, 우리의 혀가 지옥의 불처럼 사람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정말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한 마디 한 마디를 하더라도 신중하게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많은 죄를 지으며 살아가죠. 손으로 발로 짓는 죄, 몸으로 눈으로 짓는 죄. 그 모든 죄를 다 모은다 하더라도 말로 하는 죄만큼 많겠습니까? 매일 말로써 얼마나 때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힘겹게 하고, 사람을 세우지 못하는 모든 말들이 우리의 일상사가 되고 있지 않나요? 정말 심각한 것은? 다른 것으로 짓는 죄는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할 줄 알지만 그러나 언어로 짓는 죄는 너무나 무감각해 버려서 언어의 죄는 회개의 눈물도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을 신중하게 듣고 계십니다.
말의 힘을 이야기할 때 꼭 떠오르는 한 가지 사건이 있어요. 저희 집에 향나무 한 그루가 있었어요. 정말 제 멋대로 생긴 볼품없는 나무인데 그래도 향기를 품어내는 향나무를 지날 때마다 "이 향나무는 왜 이렇게 밉게 생겼냐?"라고.. 그래도 그 향나무는 그것을 참아내며 아름다운 향내를 오랜 세월 발했어요. 결국에는 향나무가 어느 날 죽어버렸어요. 저희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다닐 때마다 향나무를 향해 못 생겼다고 하니까 향나무가 존재하는 것은 기쁨을 위해서인데 못 생겼다, 밉다고 하니까 살아갈 이유가 어디 있겠냐?"라고 하셨어요. 그 나무가 있던 자리를 지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저희 아내가 이야기해요.
때로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세우는 말도 있어요. 한국에서 존경받는 외상외과의사 이국종 교수가 있어요. 때로는 한 사람의 외래비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드는데, 헬기를 타고 다니면서 사람을 살려내는 한 사람. 그가 그렇게 한 영혼을 위해서 투자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릴 때 참 가난하게 자라온 사람입니다. 아버님은 6.25 전쟁에서 다치셔서 상해 군인이 되셨어요. 너무나 가난해서 동사무소에서 밀가루를 배급을 받아서 먹었던 사람. 병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기 때문에 국가보훈처에서 정해준 병원에 따로 다녀야 했어요. 중학교 때 축농증이 너무 심해서 의료병원카드를 가지고 다니면 박대를 다니기 일 수 일 정도로 부끄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한 병원의 의사는 이 분을 특별하게 대해주었습니다. 너무나 부끄럽게 보험카드를 내며 "너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두었구나!" 이 한 마디가 이 소년의 가슴에 꿈과 소망을 심어 준 거예요. 김학산이라는 의사였어요. 그 한 분의 말이 소망 없던 아이, 부끄러움으로 좌절감에 빠졌던 아이의 가슴에 날개를 달아 준거예요.
한 사람의 말은 한 인생을 세우기도 하고 무너트리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말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세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6: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선한 말이 어디에서 나오나요? 선한 마음. 악한 말도 어디에서 나오나요? 악한 마음. "내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말을 그렇게 하는 것은, 마음이 그러하기에 그 말이 열매로 나온다는 거예요. 선하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사용될 수 있는 단어예요.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가득히 채우게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말이 사람을 세우는 말이 나온다는 거예요. 우리의 언어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 먼저 세워야 할 것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내 주인으로 바르게 모시는 것. 올바른 언어, 사람을 세우는 언어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성령에 내 자신을 쌓을 때, 채울 때 선한 것으로 내 속을 채울 때 그때에 선한 열매의 말이 나온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는 거기에 걸맞은 언어가 나온다는 거예요. 그리스도인에게서 나오는 언어는 내 속에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그래서 우리의 언어는 믿음의 품격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김범준 씨가 쓴 '50의 품격은 말투로 완성된다.'는 책이 있습니다. 부제목입니다. '핀잔이 아닌 격려의 말투를, 자만이 아닌 겸손의 말투를!' 1장에 보면 굉장히 가슴에 남는 한마디 말을 해요. "말이 곧 나다." 말이 내 인격이요, 말이 내 정체성이요, 말이 내가 누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자체다. 그리고 마지막 장 5장에 보면, "50이 되면 힘을 좀 빼고 말하라."
오늘 우리는 야고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어, 말에 대해 주시는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람을 무너트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는 한 마디 때로는 영혼을 변화시키는, 생명을 변화시키는 그 한 마디.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예수님의 마음에는 어떤 것이 있으셨길래 어떤 말씀이 나왔을까? 제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어요. 베드로와 그 제자들. 예수님을 만났지만 다 버리고 물고기 잡으러 도망갔을 때였습니다.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내리지만 한 마리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배고프고, 잠은 오고 지쳐 있을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려라."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예수님이시다." 그 한 마디에 바로 바다로 뛰어듭니다. 곁에는 숯불이 피어 있고, 생선을 구워놓으시고 따스한 떡을 준비해 놓으신 예수님. 베드로는 그 앞에서 머리를 푹 숙이고 고심에 젖어 있습니다. 바로 저 피어나는 숯불 곁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 사명을 다 잃어버리고 도망 와서 물고기나 잡고 있는데.. 예수님이 나에게 무엇이라고 책망하실까? 디베랴 바다의 새벽 공기를 가르고 예수님의 잔잔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베드로야, 와서 밥 먹자." 귀를 의심했어요. 베드로가 저지른 모든 과오, 실체를 심지어 예수님을 저주하신 것을 다 잊어버렸는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하나만을 물어보신 우리 예수님. 이 한마디가 무너졌던 베드로를 위대한 사도. 사도행전의 제자 베드로로 세우는 한 마디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뿐이겠어요? 주님 앞에 머리 들기 어려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감히 주님 얼굴을 쳐다보기 조차 힘든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하신 말씀은,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나에게 소중한 내 아들 딸이기에 내 상에서 함께 먹자."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골로새서 3:17,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얻은 것이 성령님의 통치로 말미암아 우리의 입술도, 우리의 언어도 구속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이 어느 정도 아름다운 말, 사랑의 말이 흘러나올 때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참 아름다운 말의 소유자다."라고 칭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입에서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님, 하늘의 사랑의 언어가 나오게 되면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될 것이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언어. 한 사람을 살려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언어. 그것을 두고, 거듭난 백성의 언어의 품격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 같이 일어나셔서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나의 기도는 이런 것입니다. 겸손하기 원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을 닮아가기 원합니다. 주님 내 기도는 이런 것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나에게 비춰주십시오. 소망 중에 주님 앞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어두운 세상의 등불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놀라운 언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 그 언어 말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직 말할 수 있을 때, 아직은 기력이 있고 의식이 있어 입을 열어 말을 할 수 있을 때 우리의 말 한마디 한 마디는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님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우리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흐르는 눈물을 닦는 치료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말 한마디 한 문장으로 말미암아 고통 속에 있는 한 영혼이 하늘의 평강을 누리게 하는 치료제가 되게 하옵소서. 말 한마디로 말미암아 소망 없는 자에게 하늘의 희망이 열리게 하시고, 때로 생명의 복음 한마디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기쁨을 맛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말 한마디로 사람이 세움을 받고, 들으시는 하나님께는 모든 영광이 돌아가는 그런 말, 그런 품격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하심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언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랑과 배려와 따스한 사람을 세우는 말로 사람을 일으켜 세워내고, 생명을 나누어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기 원하는 주의 백성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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