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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설교문

새벽설교 I 사사기 7장 1-8절

by №1★↑♥ 2021. 11. 3.

오늘의 본문 말씀은 기드온의 300 용사에 관한 말씀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미디안과의 전쟁을 나서게 되는 것이지요.

 

사사기 7장 1-8절

  기드온을 따르는 군대의 숫자가 32,000명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고도로 훈련된 군사는 아니었지요. 반면에 싸워야 할 미디안의 군사는 13만 5천 명이었다고 합니다. 단순히 숫자로만 비교해보아도 미디안 군대가 네 배나 많은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방식은 상식을 뛰어 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오늘의 본문에서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군대의 수가 많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돌려 보낼 사람과 남길 사람을 구분할 방법을 알려주시는데요. 처음에는 두려워서 떠는 자들은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전쟁에서 중요한 부분이 무엇일까요? 사기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적들을 향하여 전진하는 용기 이게 중요한 거예요. 사기가 충천하면 몇 배 되는 적들도 전쟁에서 이기기도 한 것을 보면, 단순히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려보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들을 돌려보내라고 하신 더 중요한 있어 보입니다. 두려움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적들이 강하기 때문에 싸움 가운데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 두려움의 근원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의 반대가 불신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니까 두려움이 온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돌려보내라고 하시는 것은, 어느 정도가 이해가 됩니다. 

  이 때 돌아간 사람이 2만 2천 명입니다. 그렇게 1만 명이 남게 되었고, 적국 미디안의 군대의 수이 차이가 10배 이상으로 벌어졌는데,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1만 명도 많다." 그래서 더 돌려보내라고 하시는데 그 방법으로 제시하신 것이 무엇이냐? 물을 마시는 방법으로 구분하라고 하십니다. 남은 만 명의 군사들을 물가로 인도하여 물을 마시게 하는데 물을 손으로 떠서 개처럼 핥는 사람과 무릎을 꿇고 땅에 손을 짚고 직접 마시는 사람을 따로 구별하여 세우라는 것입니다. 물을 손을 떠서 마시는 사람이 300명이었는데 이들이 바로 기드온의 300 용사가 되는 것이지요. 물을 떠서 손으로 핥는 사람과 물에 입을 직접 대고 마시는 사람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경계심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싸울 준비가 된 자와 그렇지 못 한 자를 보고자 하셨다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는 사람들이 주의력과 경계심이 있어 싸울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반대로 무릎을 꿇고 물에 입을 대서 직접 마시는 사람은 주의 경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싸울 준비가 전혀 안된 사람이기 때문에 정말 싸울 준비가 된 사람 300명이 선택되었다고 해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이런 해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유형의 사람들의 차이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이렇게 숫자를 줄이라고 하신 이유는 정말 강하고, 용맹한 병사들을 따로 구분하기 위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실까요? 그들을 약하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숫자를 줄이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 줄이는 방법으로 선택으로 사용하신 것일 뿐이고, 적은 무리에 속한 사람이 300명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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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숫자를 줄이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인간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군대를 왜 약하게 하신 것일까? 2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숫자가 많으면 우리가 강해서 이겼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이런 자랑을 파하시기 위하여, 꺾으시기 위하여 이렇게 줄이고 줄이고 줄여서 300명만 남기신 것이다. 300대 13만 5천의 군대와의 싸움에서 승리가 가능한 전쟁입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우시지 않으신다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추구해왔던 것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이 왜 하나님을 떠나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는가? 풍요와 번영을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숫자가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지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적은 숫자만으로 아주 적은 숫자만 가지고 13만 5천의 우상숭배자들을 다 꺾어 버리심으로 정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구원이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300명으로 한 민족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어디 그 뿐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단 한 분으로 세상을 구원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완전한 실패처럼 보이는 십자가를 통해서 지옥의 멸망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해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전 생애를 통해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또 보탤 것이 없을 정도로 완성하셨다. 그런데 실제로 구원이 임하는 것. 어떤 방법을 하나님께서 택하셨는가? 인간의 행위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구원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뭔가를 하는게 아닙니다. 믿음은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물론 순종이 따라오지만 구원을 얻는 믿음은 행위가 포함된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셨는가? 그 이유가 에베소서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왜 이렇게 하셨는지 아시겠습니까? 인간의 자랑을 꺾어버리기 위하여.. 내가 뭔가 한게한 게 있지.. 자격이 있지.. 내 힘으로 한 게 있지.. 그러한 엉뚱한 생각을 파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 다르게 말하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송하시기 위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믿으십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숫자가 우리를 구원한다고 여전히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힘과 권력과 풍요와 번영을 쫓아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공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1등만, 성공만을 추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풍요와 번영을 쫓아서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그거 아닌가요?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1등이 좋다. 성공해야 좋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하는 것이다. 

  반대로 돈 없고, 힘 없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세상 못 산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좀 부족한 거예요. 가난을 사람들을 가리켜 뭐라고 합니까? 못 산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다고 해서 정말 그들의 삶이 못 살까요? 그 표현이 정말 맞습니까? 부자이면서 못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돈은 많아 그런데 정말 돈을 가치 있게 쓰지 못하고 도덕적으로나 못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잘 산다. 못 산다는 것의 기준이 경제력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아가라고 하신 2만 2천명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힘으로 싸우는 줄 알고.. 군사력 없으면.. 인원이 적으면.. 두려워서 떨던 사람.. 그런 사람들하고 다를게 뭐가 있어요? 하나님의 구원은 숫자에 달려 있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과 사람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 바울. 목숨 걸고 헌신하지 않았습니까? 물질의 헌신, 순종의 헌신이 필요하지만 그걸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한 민족을 구원하는데 300명으로도 충분하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한 사람만 있어도 되고, 아무도 없어도 무엇이든지 자기 영광을 위하여 다 하실 수 있으시지요.. 그러기에 풍요와 번영이라는 우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원합니다. 숫자와 성공이라는 허상에서 깨어나기 바랍니다. 

약해지는 것, 두려워하지 않기 바랍니다. 주가 구원하신다. 주가 복이시다. 주가 힘이시다. 주가 하신다. 이 믿음으로 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일을 행하실 줄로 믿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세상의 원리와 반대로.. 300 용사처럼 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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