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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설교자료

생명의 삶 I 예레미야애가 1:1~11 I 영광의 자리에서 멸망의 자리로 떨어지다

by №1★↑♥ 2023. 5. 3.

생명의 삶, 20141201, 영광의 자리에서 멸망의 자리로 떨어지다, 예레미야애가 1:1~11

 

 

예레미야애가 1:1~11 I 영광의 자리에서 멸망의 자리로 떨어지다

 

예레미야 애가는 슬픔의 노래라고 불리는 책입니다. 멸망한 조국을 바라보면서 선지자의 비통에 빠진 노래가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애가는 큰 좌절과 절망적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어떻게 믿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성경 본문이 됩니다. 혹, 여러분의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애 가서를 함께 묵상하면서 모든 위로자가 되시는 위로의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회복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원전 586년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예루살렘 성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지요. 그리고 예루살렘 성은 짐승들의 소굴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에게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택한 도성이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곳이고, 하나님은 당신의 도성을 영원토록 지키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주께서 다윗의 위를 영원토록 보존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다윗의 왕조가 붕괴된 것은, 유대인들로써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때때로 우리의 인생에도 믿기 어려운 일들이 현실로 닥쳐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때가 때때로 있습니다. 이럴 때는 선지자는 1절처럼 고백하고 있습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이 선지자는 지금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슬프다' 괴로움을 토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공주 갖고, 열국 중에 크던 예루살렘이' 지금은 어찌하여.. '노동하는 노예가 되어버렸고, 과부처럼 외롭게 되었는가?' 예루살렘에 사는 거민들과 선지자들은 멘붕 상태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여러분, 예레미야애가는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극심한 좌절을 겪을 때 어떻게 믿음으로 일어설 수 있는지, 어떻게 이것을 받아들일지를 가르쳐 주는 중요한 성경 본문입니다. 먼저 여기서 받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이해할 수 없는 슬픔과 고난, 좌절 앞에서 슬픔을 토설해 내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겁니다.

때때로 생각하기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애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슬픔을 토설하는 내용을 다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슬픔을 다 토설하고,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을 주께서 기록을 남기셨고, 그것이 성경의 한 부분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보좌 앞에 엎드리고, 성소에 엎드려서 자신의 어려움과 고난과 아픔을 토설해 내는 그 하나하나를 다 성경에 담아 두셨고, 기록에 담아 두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에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뜻하지 않은 고난을 맞닥뜨린 사람이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토설하기 바랍니다. 있는 대로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슬픔은 토해내야 합니다. 괴로움은 풀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것을 귀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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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 같았던 예루살렘도 그들의 죄가 극심해지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고, 멸망받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누구도 영원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의 삶이 죄악과 방종과 반역의 길로 치우친다면 하나님이 선택하신 예루살렘이라고 할지라도 패망의 길을 걸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거스리는 삶을 살게 되면 심판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반복하고 있는 극심한 죄는, 끔찍하고 참혹스러운 죄의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입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하고 무서운 교훈을 주는 것이에요.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았다는 구원의 확신을 미래적 보장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지 두려운 마음으로 나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땅한 태도이고, 구원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합당한 태도가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그 확신만 가지고 우리의 삶을 방종으로 살아간다면 어찌 그가 감사함으로 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애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내 삶과 공동체에서 죄악으로 무너져 보수가 필요한 부분은 어디인가요?

선지나는 예루살렘의 절망적 현실 앞에 비통하면서 지난날의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여서 과거는 너무나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해 내는 것이지요. 7절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다윗 왕조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 그 율법이 그들의 삶의 기초가 되고 그들의 법 조문이 되었을 때.. 성전에서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예배가 날마다 드려졌던 그 시절 예루살렘은 열방의 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말씀을 거스르며 우상 숭배와 악에 빠지게 되었을 때 그들은 열방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삶도 이와 흡사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구원의 감격에 사로잡혀 있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살아갈 때 우리의 영혼은 온 세상을 향한 구원의 등불이요, 세상을 향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복음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짝하고 이기심에 노예가 되고 돈의 노예가 되고 명예와 권력의 노예가 되어갈 때.. 우리의 영혼은 황폐화되어지고, 마치 바벨론의 군대에 예루살렘이 짓밟힌 것처럼 거룩한 성전인 우리의 심령과 깨끗한 양심은 죄악과 탐욕에 짓밟혀서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영혼은 무너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양심의 조소를 받고,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어지고 마는 것이지요. 형제자매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의 영혼은, 다윗의 시절에 예루살렘과 같습니까? 혹은 예루살렘의 황폐화된 예루살렘과 같지 않습니까? 

저는 저나 여러분의 영혼이 예레미야애가를 묵상하고 묵상하면서 영혼의 영광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해지고 예배가 살아나고 말씀의 진리가 우리 가운데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 때에만 우리는 영광을 회복하는 열방의 꽃이 될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는 이 영광을 잃어버리고 황폐해진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비통한 마음이 실려 있습니다. 이 선자자의 비통한 마음은, 문진 성전을 바라보는 성령님의 마음과 일맥상통할 것입니다. 2절, '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4절,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큰 슬픔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죄악의 길로 갈 때, 우리의 영혼과 육체와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죄 가운데 빠져갈 때 영혼의 성소인 예루살렘은 무너져가고 성령은 탄식하고 슬퍼하며 우리 안에 계시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을 잃어버릴 때 갖는 영혼의 현상인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선지자는 이것이 자신들의 죄 때문이며 이 하나님의 심판이며, 진노로 인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것이 5절과 8절에 나와 있습니다. 8절,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범죄함으로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짓고, 영혼이 타락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양심은 우리를 조소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조소합니다. 세상은 우리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며, 자기와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알게 되지요 그때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의 역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우리를 회복하기 위하여 징계의 채찍을 드시는 것입니다. 

징계가 엇으면 사생아라고 말합니다. 징계가 없으면 허물과 죄가 반복되어서 결국은 마침내 버림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우리 영혼의 어둠이 엄습하고 마음이 황폐해져 갈 때.. 이것이 하나님의 징계인 것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삽니다. 그래야 우리 가정이 삽니다. 그래야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징계가 잠시 잠깐은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럽게 보일지라도 징계로 말미암아 영혼이 연단받고 새롭게 되면 징계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때때로 원치 않는 마음의 정욕과 세상의 욕심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주여 우리 영혼이 황폐해져 갈 때.. 주여 우리를 돌아보시사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깨끗하게 하여 주시고,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죄악의 길로 걸어갈 때 하나님 우리를 향한 주의 사랑의 매가 우리 가운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그 사랑의 메를 달게 받고 주 앞에 돌이켜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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