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story/설교자료

요한서신의 기록동기와 배경_요한일서(1)

by №1★↑♥ 2021. 4. 22.

  요한서신이라 하면 대개 사람들은 먼저 사랑을 생각한다. 사랑의 사도 요한이 교회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한 서신이 곧 요한 1, 2, 3서라는 것이다. 요한서신은 쉬우면서도 간결한 문장으로 사랑을 강조한 아름다운 서신임에는 틀림없다. 그토록 쉽고 평이한 단어들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형제 사랑에 댛대 이처럼 아름답게 서술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주신 특별한 달란트였을 것이다. 

 

​​

 

그러나 요한 서신은 막연하게 책상 앞에서 사랑을 노래한 것은 아니다. 또한 교회가 평안하고 은혜가 충만할 때 기쁨에 넘쳐 읊은 시도 아니다. 오히려 사도 요한이 관할하고 있는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겪고 난 후에 그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기 위해 쓰여진 편지이다. 즉 요한 1, 2, 3서 모두 큰 고통과 갈등 가운데 쓰여진 것이다. 얼핏 보아서는 이러한 사정을 알기 어렵지만 자세 살펴보면 이러한 복잡한 사정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일어한 사정을 알고나서 요한서신을 읽으면, 그것들이 새롭게 우리 앞에 다가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에는 막연하게 좋고 아름답고 은혜롭다고만 느껴졌던 말씀들이 구체적인 갈등과 고통 가운데 쓰여진 것을 알게 될 때,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더욱 깊어지고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서신에 대해 각각 그 쓰여지게 된 동기와 배경을 살펴봄으로 이 서신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한다. 

 

I. 요한일서

 1. 기록동기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말년에 소아시아에 머물고 있을 때(cf. Irenaeus, Adv. Hear. III,1,1), 그 지역의 교회(들)가 큰 시련을 겪고 난 후에 기록한 편이지아. 우리는 이에 대한 단서를 요한일서 2장 19절에서 찾을 수 있다. "저희가 우리에게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거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여기서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다."고 한 것은, 어떤 이단적 무리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발을 붙이고 있다가 또는 붙이려고 하다가 교회의 반대와 저항을 받아서 물러난 것을 말한다. 즉, 이 교회는 이단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결국 이 이단을 물리치고 승리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2:13)고 하며 또한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2:14)고 칭찬하고 있다. 또한 4장 4절에서도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말한다. 곧 그들이 이단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거하였기 때문이며, 그들 안에 계신 이(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있는 이(마귀)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에베소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편지에도 보면, "네가 내 행위과 수고아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라고 말하고 있다(계2:2). 에베소교회는 소아시아의 중심 교회로 아마도 요한일서의 수신자 교회이거나 또는 비슷한 상황에 있는 교회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에베소 교회는 그 교회에 들어온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물리쳤다고 한다. 곧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에베소교회는 모범적인 교회였으며 칭찬받을 만한 교회였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들의 진리를 위한 수고와 노력을 칭찬하고 위로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는 아직도 이단들의 영향이 아니라 교회 안에는 아직도 이단들의 영향이 여러 모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들의 잘못된 것을 다시 분명히 지적하고 경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교회에 물러가기는 하였지만 언제 다시 교회에 들어와서 성도들을 미혹할지 모르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은 이들에 대해 경계하고 성도들을 믿음에 견고히 서게 할 필요를 느꼈다(5:13). 나아가서 교회 성도들에게 형제 사랑을 강조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단과의 격한 투쟁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는 의심과 투쟁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는 의심과 투쟁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으며, 걸핏하면 상대방의 잘못을 꼬집고 드러내는 차가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에베소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처음 사랑을 버렸다."(계2:24)고 책망을 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그의 첫번째 편지에서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요일 2:10, 3:11, 4:7, 16, 21)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을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3:14, 4:20).

 

 2. 요한일서에 나타난 이단

그렇다면 소아시아의 교회에 들어온 이 이단적 무리들은 누구였을까? 사도 요한은 이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이름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는 않지만 2장 18절에 보면 이들을 '적그리스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적그리스도'란 말 그대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를 가리킨다. 4ㅈㅇ 1절에서는 이들이 '거짓 선지자들'이라불리고 있다. 그들의 가르침이 거짓이고 사람들을 미혹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거짓 선지자'이며, 그들이 결국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대적한다는 점에서 '적 그리스도'인 것이다. 

 

요한일서는 이들의 주장이 무엇인지에 대해 좀더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이심을 부인하였으며(2:22, 5:1),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였다(4:3, 4:15, 5:5).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였다(4:2). 이처럼 요한일서에서 말하고 있는 이단은 주로 기독론과 관련하여 잘못된 이단이었다. 그들은 또한 죄와 구원에서 대해서도 잘못되게 가르친 것으로 생각된다(1:5-2:6).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중요하시면서도 실제 생활의 죄 문제는 가볍게 여기도 등한시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어더운 데 거하였으며 형제를 미워하고 죄 짓는 생활을 예시로 하였던 것이다. 

 

​ ​

 

3. 고대 교회의 증거

그러면 이 이단들은 도대체 어떤 무리들이었을까? 이들이 주장한 것을 구체적으로 좀더 알 수는 없을까? 다행히 고대교회의 몇몇 교부들이 이에 대해 증거해주고 있다. 이 증거들은 신실한 교부들의 증거이기 때문에 신뢰 할 만하며 요한일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1) 이레니우스의 증거

  2세기 중후반에 활동했던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사도 요한은 1세기 말에 에베소에 활동하고 있던 케린투스(Cerinthus)의 가르침에 대항하였다고 한다. 케린투스라는 이름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증거되고 있으며, 그는 예수와 그리스도는 다르다고 주장한 이단이었다. 이레니우스의 증거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그(케린투스)는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그는(다른 사람들보다) 더 의롭고 더 거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후 만물 우의 지극히 높은 권세로부터 그리스도가 비둘기의 모양으로 강림하였으며, 그 때 그는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를 전파하고 이적들을 행하였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리스도는 예수로부터 떠나갔으며, 예수는 고난받고 부활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영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고난으로부터 자유로웠다고 주장하였다."(Adv.Hear.I26,1)

 

이처럼 케린투스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체계적으로 분리한 이단이였다. 예수는 보통 사람과 같은 인간에 불과했으며, 그리스도는 세례 시에 강림한 신적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신적 존재는 고난받을 수 없다는 그 당시의 철학 사상을 따라 그리스도는 예수께서 고난 받기 직전에 떠나갔다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고난받은 것은 인간 예수 뿐이었으며, 또한 세레받기 전까지의 존재도 인간 예수뿌니었다. 그리하여 케린투스는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을 부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신 것도 부인하게 되었다. 이것은 곧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부인하는 것이었다(요일 3:1 참조). 또 하나 우리가 생각 할 것은 케린투스는 예수님의 세례 시에 비둘기 형상으로 임한 성령을 그리스도라고 봄으로써 '그리스도'와 '성령'을 혼동하였다는 사실이다.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할, 하나님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 특별한 인물이었는데 비해, 케린투스는 이를 '성령'으로 오해하고 혼동하였던 것이다. 

 

  (2) 히폴리투스의 증거

  히폴리투스(Hippolytus)는 3세기 초반에 로마에서 활동한 교부인데, 그도 케린투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거해 주고 있다. 

 

"이집트의 학문을 배운 케린투스는, 세상은 첫째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으며, 원능력과 구별되며 만물 위에 뛰어난 하나님을 한 번도 안 적이 없는 능려게 의해 창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예수는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출생하였다. 곧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났으며,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의롭고 더 지혜로웠다. 세례 후에 그리스도는 원능력에게서 나와 그의 위에 비둘기 모양으로 강립하였다. 그 후에 그는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를 전파하였으며 이적을 행하였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리스도는 예수를 떠났다. 예수는 고난받고 부활하였으나, 그리스도는 영적이므로 고난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Refutatio omnium Haeresium VII, 33). 

 

여기서도 우리는 케린투스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날카롭게 분리한 이단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주장의 뿌리는 결국 이집트에서 배운 철학에 있음을 알게 해준다. 곧 당시 철학의 체계에 따라 물질인 세상은악하다고 보고, 이 악한 세상은 하나님의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 밑의 존재인 '능력'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본 것이다. 예수는 한 낱 인간에 불과하였다고 보았으며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였다. 그리고 세례 시에 임한 그리스도는 영적 존재이므로 고난받지 않고 다시 떠나갔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케린투스이단은 기독교 복음을 그 당시의 철학 구도에 그럴듯하게 끼워 맞춰서 사람들을 미혹한 이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에피니우스의 증거

  4세기 후반에 동방에서 활동한 에피파니우스(Epophanius)도 케린투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거해주고 있다. 

 

"그(케린투스)는 그리스도에 대해 카르포크라테스(Carpocrates)와 마찬가지로 참소하는 설명을 한다. 즉, 그는 마리아와 요셉의 씨에서 생겨났으며, 또한 세상은 천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의 가르침의 시작에 있어서 케린투스는, 이 한가지 곧 유대교에 대한 그의 부분적인 지지를 제외하고는, 그 전에 있던 카르포크라테스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율법과 선지서들이, 비록 율법의 수여자는 세상을 만든 천사들 중 하나이긴 하지만, 천사들에 의해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케린투스는 아시아로 옮겨가서 거기서 그의 가르침을 시작하였다.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 또한 세상은 첫번재의 천상의 능력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다고 가르쳤다. 그는 또한, 마리아와 요셉의 씨의 산물인 '예수'가 성장했을 때, 비둘기 형상의 성령을 의미하는 '그리스도'가 높이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요단강에서 그에게 내려와 알 수 없는 아버지를 그에게와 또한 그를 통해 그의 동료들에게 계시해주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능력의 일들을 행한 이유이다. 즉 능력이 높은 곳에서부터 그에게로 왔다. 그러나 그의 수난 시 위로부터 온 것이 예수에게서 나와 높은 곳에 있는 영역으로 날아갔다. 예수는 고난을 받고 다시 일으킴을 받았다. 그러나 위로부터 그에게 온 그리스도는 고난 받지 않고 날아갔다. 즉, 비둘기의 형상으로 강림했던 것이 날아갔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Panarion cara heareseoon XXVII,1,2~7)

 

여기서도 우리는 케린투스의 가르침이 잘못된 창조론에 기초한 잘못된 기독론임을 알 수 있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한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인데, 그 배경에는 신적이니 존재인 '그리스도'가 약한 존재인 인간이 될 수 없고  또한 고난받을 수 없다는 당대의 '이원론'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이러한 당대의 철학적 구도에 맞추기 위해 세례시에 강림한 '성령'을 '그리스도'로 보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케린투스의 이단적 가르침이 요한일서의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도요한이 케린투스 한 사람만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일어 났다.'(2:18)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다.(2:18)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님의 교회를 미혹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사도 요한이 대항하고 있는 대적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케린투스의 가르침이 자리잡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blble

4. 사도 요한의 대응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사도 요한은 무엇보다도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고 있으며(2:22, 5:1), 또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고 있다(4:15, 5:5). 예수와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은 서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글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사실을 강조하고 잇다(4:3, 요이 7). 왜냐하면 케린투스 이단들은 신적인 존재는악한 물질(육체)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단들의 주장은 곧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어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4:9).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으며(2:2, 3:16, 4:10).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하신다(1:7)

 

이 이단들은 또한 스스로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형제 사랑을 소흘히 여겼다(2:9, 3:13-19, 4:20).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형제 사랑을 반복해서 강조한다(2:7-11, 3:11, 4:7-21).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며"(3:10), "보는 바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4:20)고 말한다. 그러나 이단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2:4), 성결한 생활을 소흘히 하고(3:3), 죄를 경시하였다(1:6,8,10) 그러나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안(완료 사상)줄로 안다(현재 사상)."(2:3). 그러나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요(1:6), 진리가 그 속에 없으며(2:4), 지금까지 어두운 데 있는 자요(2:8),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33:8).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단지 믿는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실제 생활 가운데 '행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 행함의 중심은 형제 사랑이다. 물론 성도들이 모든 생활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단들이 주장하고 행하는 것과 같은 '지식'과 '행함'의 이원론은 벗어나야 하며, 생활면에 잇어서 그들보다 나은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 요한은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말하고 있다(3:6,9). 여기서 '범죄치 아니한다(현재 사상)는 것은 죄를 전혀 범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자들이 일상적으로 범하는 바와 같은 그런 죄들을 범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생활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과 분명히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