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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기쁘게 여기라
- 송태근 목사 -
야고보서 전체에 관한 개론 시간을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행위 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기록된 목적을 보면 이 책은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기보다는 믿음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 쓰여진 책입니다. 혹자는 이 책을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얘기해 왔어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오직 성경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면 되지. 이러한 사소한 문제까지 서신을 통해서 거론할 필요가 있었겠는가?라는 이 책의 가치를 낮게 취급한 것입니다.
이런 예는 어떨까요? 신영복 교수라는 분이 오랫동안 감옥 생활을 했어요. 거기서 많은 책들을 썼는데, 그 책 하나를 보면 어느 날 같은 방에 노인 한분이 들어오셨어요. 종이에다가 뭘 자꾸 그리셔서 뭘 그리시나 봤더니, 종이에 집을 그리는 거예요. 유심히 보니까 이 어르신이 그리시는 집의 순서가 매우 특이해요. 일반적으로 집을 그리면 제일 먼저 지붕을 그립니다. 그리고 기둥을 그리고 벽을 그리고 제일 밑에 기초를 그려 넣지요. 일반적으로 집을 그리는 순서예요. 그런데 이 노인은 거꾸로 기초부터 그리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벽을 올려 기둥을 세우고 맨 마지막에 지붕을 덮더래요. 그래서 알았데요. '이분은 집을 직접 지어본 분이구나!' 지어본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순서대로 그리더라는 거예요. 야고보 서신은 마치 기초를 놓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바른 다음에 지붕을 덮어야 완성이 되지요. 만약에 지붕을 안 씌우면 바람이 불거나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도무지 그 안에서 살 수도 없고, 기둥과 기초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집으로써의 가치나 구실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 측면에서 야고보 서신은 짧은 5장의 성경이지만, 마치 우리 신앙생활의 지붕을 덮어 씌우는 역할을 하는 서신이라 생각하면 정확해요.
그래서 이 책은 기초에 관한 설명보다는 '복음이 무엇이고, 구원은 어떻게 얻는 것인가?'라는 문제이기 보다는 오히려 그 이후에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붙들고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것인가?'에 대한 삶의 문제가 전체에 걸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야고보 서신이 갖는 색깔이에요.
그러면 이 책은 누가 썼을까요? '야고보'가 썼어요.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 야고보가 4명이나 등장을 한다는 거예요. 어느 야고보일까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요. 그러면, 이 서신을 왜 기록했는가? 목적이 중요해요. 신학적인 이유가 있고, 신앙적인 이유가 있어요. 첫째, 이 서신은 사도 바울이 학자들의 추정대로라면 주후 36년 경 다메섹 언덕에서 회심을 해요.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복음의 사명을 받고 사도가 되지요. 그리고 그는 평생을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를 제일 먼저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에게 선포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가 전하는 복음이 곳곳마다 시비가 붙어요. 누구에 의해서? 흩어져 살던 유대인에 의해서. "어떻게 구원을 믿음으로만 얻느냐? 우리 조상들이 전통으로 물려 내려온 율법을 함께 지켜야 구원을 얻는 게 아닌가?" 이러한 신학적 논쟁과 시비가 붙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A.D 48-49년 사이에 이 문제가 복음을 전하는 데 난제로 등장을 하니까 예루살렘 교회에 와서 그 유명한 종교회의가 소집이 됩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최초의 '종교 회의'에요. 그 주제가 뭐냐?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느냐?' 아니면,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 초미의 신학적 이슈였어요. 그래서 강론 끝에 사도 베드로의 증언과 지지를 통해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습니다.'는 결론을 냅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해요.
그러면 '어쨌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한 번 믿고 구원을 얻었으니 그 구원은 절대 취소 되는 법도 없고 끝까지 완전하구나! 그렇다면 뭐 열심히 살 필요 있나? 적당히 살아도 구원은 취소되는 게 아니니까..' 해서 살금살금 어떤 오해가 벌어지냐? 행위에 대한 무용론이 벌어져요. 이런 문제가 오늘날에도 잘 못된 신앙을 가진 일부 신앙인들에게 나타나고 있어요. "한번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었으면 취소 안된 다면서요? 그러면 적당히 살아도 저는 양심에 가책이 되고, 거리끼는 것은 사실인데 괜찮지 않나요?" 그래서 '값싼 은혜'가 번지게 돼요. 이런 신앙의 불균형 스런 일들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잘못된 신앙으로 자리 잡게 돼요. 여기에 대한 방지책으로 야고보 사도가 펜을 든 거예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는 그 믿음의 실체가 뭐냐? 에 대해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린 책이 야고보서라는 책이에요. 그래서 야고보서는 오늘 이 시대의 '값싼 은혜' 속에 머물러 있는 잘못된 우리 신앙을 교정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데 도움을 주는.. 이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한 성경이라 할 수 있어요.
야고보서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여기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는 사실상 오늘날 성도들을 말하는 거예요. 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시험이 오는데, "할렐루야!" 그럴 사람 있어요? 저부터도 시험이 싫어요. 시험이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기쁘게 여기라고 해요. 이래야만 되는 분명한 하나님 입장에서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세 가지로 설명할 테니까 그 세 가지를 잘 들어보시기 바라요. 그다음 절입니다. 3절,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첫째가 믿음의 시련이라고 되어 있어요. 여러분 여기서 '믿음의 시련'이라는 말은 '검증하다, 진위가 드러나다'는 말이에요. 시험이 옵니다. 그런데 그 시험은 우리 믿는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에요.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시험이 와요. 어려움이 와요. 처음에는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별반 반응이 다를 게 없어요. 똑같이 울부짖고, 똑같이 부정하고 똑같이 고통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반항하고, 절규하고, 절망하고.. 그런데 밑바닥에 갈 때쯤 드러나는 게 있는 데 그것이 믿음이에요.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 속에 심어놓은 생명력이에요.
이게 처음엔 다 똑같아요. 믿음이 없는 사람도 울부짖고,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밑바닥까지 가요. 믿음이 없는 쪽은 궁극적인 파멸과 나락으로 떨어지지만.. 그때에 하나님이 은혜를 통해서 에베소서 2장 8절을 보면,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라고 했어요. 그 믿음의 선물을 마음의 씨로 담고 있는 자는 그때에야 비로소 반응이 나타나는데.. "그래도 하나님.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시잖아요? 살려주세요." 이게 믿음이에요.
이게 뭘 통해서 드러난다고요? 시험을 통해서 드러나요. 증명이 된다 말이에요. 저 사람이 믿음이라는 생명의 씨가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를 일상 때는 잘 몰라요. 그러나 시험이 닥치면.. 처음에는 절규하고 반항하고 부정하며 악을 쓰다가 마지막 단계에 탁! 붉어지는 거예요. "그래도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잖아요. 한번만 도와주세요." 그 사람 안에 믿음이 있었던 거예요. 그것이 비록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있었다는 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것이 시험이 갖는 궁극적인 첫 번째 이유예요.
그리고 두번째, 이제 내 속에 심겨진 믿음은 생명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시험이라는 어려운 과정들이 밀어붙여질 때는 이것이 진의가 드러나서 이때부터는 인내가 역사하기 시작해요. 말하자면 그 믿음이 역사를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자 보세요. 야고보서 1:3-4a,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4절에 등장하는 전반주의 '온전'과 후반부의 '온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어요. '인내를 온전히 이룬다.' 그리고 '온전히 구비하여 너희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한다.'는 말이 갖는 의미가 뭘까?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대장장이 쇠를 하나 가지고 궁리를 합니다. "멋진 모형 배를 한 척 만들자. 그래서 머릿속으로 배를 한 척 그립니다." 그러면 멋진 배 한 척을 만들기로 했다면 쇠붙이를 녹여야 해요. 녹였다가 식혀서 두들기고, 반복되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해요. 전반부의 인내는 그 자체가 갖는 인내를 '온전함'이라고 한 거예요. 그러면, 그 온전함을 견딜 때 마지막에는 배가 완성됩니다. 그냥 두들기다 보니 배가 나온 건가요? 대장장이가 배를 목적으로 두들겼기 때문에 배가 나온 거예요? 트레이너가 계속 운동선수들을 트레이닝시켜요. 평생 운동을 하는 선수들도 쓰러질 정도로 힘들지요. 이 과정이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건데 인내를 온전히 이루다 보니까 뭐가 온전해졌을까요? 심장이 두 개가 달린 사나이처럼 90분을 뛰어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갖게 되는 거예요.
그러기에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에는 두 스테이지가 있어요. 첫째는 목적지를 향해서 과정에서 겪어야 되고 인내해야 하는 온전함이 있어요. 그 인내를 온전히 감당해야 해요. 그걸 감당할 때는 미치도록 힘들어요. '하나님, 너무하신 거 아닌가?' 그런데 인내를 온전히 이루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강인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은 트레이너나 대장장이가 계획했던 거예요.
그러면 '시험이 올 때는 어떤 그림이 저 멀리 준비되어 있을까?'를 생각하면 기뻐할 수 있겠지요? 여러분 이 세상 자체가 시험이에요. 그래서 어떤 시험이 오거든 온전히 감당할 때 저 끝에 어떤 궁극적인 온전함과 하나님의 계획하신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분명히 그 계획을 하나님이 갖고 시작하셨단 말이에요. 믿습니까?
청년 시절에는 모든 게 답도 안보이고, 구름 속에 던져져 있는 것처럼 답답해요. 준비된 것도 없고 그리고 힘들기만 해요. 예, 그 인내를 온전히 이루십시오. 그러면 저 인내의 긴긴 코스 끝에 그 인내를 감당해야 되는 그 순간에 조차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목적한 선물의 온전함이 있어요. 없어요? 반드시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시험이 닥치거든 기쁘게 여기라. 하나님이 어떤 선물을 준비하셨을까? 내게 어떤 온전흠으로 준비하셨을까? 이 기대를 가지고.. 오늘의 말씀이 이 세파를 넘어가는 일상 속에 큰 능력과 은혜로 다가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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