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 I 에베소서 4장 1-3절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설날 메시지 I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제 설 명절입니다. 명절이 되면 모든 가족 친치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데, 올 해는 코로나로 인하여 모임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대면해서 만날 수 없기에 더 그리운 마음으로 하나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족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되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하는 동시에 그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한 부르심이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일' 입니다. 가족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가족에 미쳐라, 에마 봄베크>
가족!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병을 같이 잃게 하고 같은 치약을 쓰게 하여, 디저트를 더 먹겠다고 다투게 하고, 서로의 샴푸를 몰래 훔쳐 쓰게 하며, 돈도 빌려주고, 아픔을 주기도 하면서 또 그 아픔을 달래주시고 하는, 울고 웃으며 사랑하게 만드는, 작고 신비로운 끄이다. 각자의 방문을 잠그고 살다가도 어려운 고통에선 모두가 힘을 합쳐 서로를 지켜주는, 그런 특별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 그것이 가족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획일화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부족함을 서로 채워주는 것이다. 없는 것을 보지 않고,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일을 할 때 누군가를 그리스도께 묶어둘 것이다.
둘째, 하나 되는 것은 헌신이 필요합니다.
하나 되는 것은 우리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2절 말씀에서 우리가 헌신해야 할 것 4가지를 언급합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 상대방의 모난 부분까지도 품을 줄 아는 온유한 마음, 상대방이 성화되는 과정을 끈기 있게 참을 줄 아는 오래 참음, 그리고 상대방의 허물을 용납하는 일입니다. 이 모두는 헌신이 없이느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녀가 부모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지든지, 아니면 부모가 자녀의 부족한 모습을 이해하려고 스스로를 낮추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녀가 십자가를 지든지, 부모가 십자가를 지든지, 최소한 둘 중의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보다 성숙한 사람이 십자가를 져야 하고, 나이에 불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희생과 헌신! 그것에 바로 삶의 의미가 담겨 있고, 감동이 담겨 있습니다. 희생과 헌신이 없으면 감동도 없고, 문제 해결도 없습니다.
셋째, 하나 됨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 됨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본문 3절에서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헌신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결국 우리의 가정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서로 하나가 되지 않았으니까 이제부터 하나가 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 주님을 고백하고 한 성령님을 모시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해주신 것이 사실인데 그것을 거부하지 말고, 이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거십니다. 하나 됨이라는 것은 새로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라면 이미 성령께서 이루어주신 일이며, 그것이 깨어지지 않게 힘써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어떻습니까? 이 말씀은 너무 좋은데, 내가 겸솜하면 저쪽에서 내가 겸손한 걸 모르고 자기가 잘난 줄 알며 더 기고만장하고 나오면 당연히 기분이 안좋습니다. 나는 말씀대로 살겠다고 온유하게 해주는데 저쪽에서는 나를 무시하고, 오래 참았더니 바보인 줄 알며 더 못되게 굴면, 그런 사람을 용납해주는 것이 엄청난 손해를 본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사실 예수님은 그 보다 더 손해보는 삶을 살다가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으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내가 손해 보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안하면 나에게 엄청난 손해입니다. 특히 용납하고 용서할 때 내가 삽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죽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손해 보는 게 아니고, 내가 손해 보고 내가 죽는 겁니다.
하나 됨이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이자 우리 가족의 중요한 사명임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우리 가족은 하나 된 모습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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