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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설교문

새벽설교 I 요한복음 9장 13-23절

by №1★↑♥ 2022. 12. 19.

[개역개정] 요한복음 9장 13-23절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 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보소서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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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장 13-23절 I 예수를 위한 증언

어제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한 걸인이 앞을 보게 된 일은 당장에 유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과연 누가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이 사람은 분명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분이 진흙을 만들어 그것을 내 눈에 바르고 실로암 샘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시 묻습니까? "글요? 그 예수라는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 사람은 "나도 그분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 예수라는 사람이 정말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했다면 하나님이 보낸 사람 아니겠어?"

결국 사람들은 이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가기로 결정을.. 이 말씀은 그 당시 바리새인들의 사회적인 위치가 어떠했는지를 말해줍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사회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라면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그리고 예수라는 사람이 정말 하나님이 보낸 사람인지 잘 판단해 줄 것으로 믿고 이 눈뜬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간 것입니다. 이제 이 사람에 대한 판단은 바리새인들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변수가 있었습니다. 14절입니다.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이라.'

예수님이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준 날이 하필이면 안식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이 사람에게 사실을 다시 확인합니다. "당신 전에 앞을 보지 못했던 그 거지가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습니까?" "예수라는 분이 진흙을 내 눈에 발랐습니다. 내가 (그분의 말씀대로 실로암 샘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한 바리새인이 소리쳤습니다. 16절을 보세요.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바리새인들 중의 한 사람이.. 물어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며, 그 예수라는 사람이 안식일에 그런 일을 했다는데,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느냐 거지요. 기본이 안 돼있는데.. 그 사람은 안식일도 지키지 않는 사람인데,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라고.. 소리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가 죄인이라는 말인데.. 죄인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바리새인들 사이에 예수님을 두고 서로 편하게 갈리게 되었습니다(9:16). 개역성경에는 "그들 중에 분쟁이 잇었더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을 두고 바리새인들 사이에 매우 심각한 논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싫어하는 바리새인들 사이에서도 예수님을 두고 서로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어요. 자기들이 지금까지 믿고 있었던 시스템에서 보면 예수라는 사람은 안식일 규정도 지키지 않는 죄인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지금 자기들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분명히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죄인이 그런 놀라운 기적을 행했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에게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17절을 보세요. '이에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더니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그 사람이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는데,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에게 이 사람을 데려오면 모든 문제가 속 시원하게 풀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바리새인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오히려 자기 앞에 끌려온 이 사람에게 예수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묻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나면서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짧고 분명한 목소리로 "그분은 선지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다른 때 같았으면 바리새인들의 비난이 쏟아졌을 텐데, 예수라는 사람이 선지자라는 말을 듣고도 바리새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눈앞에 이 사람의 기적의 증거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예수님께로부터 처음 들었던 말씀은 3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아마도 이 사람은 생전 처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의 불행은 너의 죄 때문이야!" 아니면, "너희 부모가 죄가 많아서 네가 이렇게 불행하게 된 거야!"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이 사람은 생전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바로 이 말씀 때문에 이 사람은 예수님과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분에 대한 신뢰가 시작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분이 땅에 침을 뱉어서 진흙을 만들고 그 진흙을 자기 눈에 바를 때도 가만히 이 분이 하시는 대로 몸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이 분이 "실로암 샘에 가서 씻으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분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너는 예수라는 사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라고 추궁합니다. 그의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다. 그는 "내 눈을 뜨게 해 준 그분은 선지자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대답은 그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의 부모를 불러 대질 심문을 합니다.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이 맞습니까? 당신 아들이 맞다면 나면서부터 보지 못했을 텐데,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습니까? 그의 부모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20-21절입니다. '21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2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우리 아들이 분명합니다. 우리 아들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내 아들이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또 누가 내 아들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 우리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들이 다 컸으니까 직접 물어보십시오.. 이런 의미. 22절입니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그의 부모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이미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나의 눈을 뜨게 해 준 그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도가 분명합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이 시람은 간단하게 "그분은 선지자입니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왜 우리가 신앙생활에 소흘 해집니까? 뭔가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생명과 소망이 엄청나게 크고 세상에서 제일 큰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지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보십시오. 사실은 코로나 바이러스 그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움츠러드는 것입니다. 실체보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항상 중요한 것은 어떤 일어난 사건 자체보다 사건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태도가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두려움으로 해석을 하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지금 이 부모도 고난을 당할 것이 겁이 났습니다. 알고 있지만 아는 대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무관심의 반응을 보였고 바리새인들이 불순종의 반응을 보였다면, 이 부모는 비겁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도 속으로 울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아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분명히 아들도 같이 있었는데 아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그런데 이 비겁한 반응이 사실은 우리의 모습과 가장 가깝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주님께 불순종하고 일부러 대적하는 사람이 우리 중에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 안에는 주님을 믿는 기쁨도 있고, 확신도 있고, 믿음의 고백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지 모른다는 유혹과 위협 앞에서는 자주 비겁해집니다. 그것을 대적할 용기가 나지 않고,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믿는 대로 행동할 자신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말 그렇게 비겁한 믿음 생활을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는 힘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가운데, 비겁하게 믿음 생활을 하지 않고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라는 핑계를 대지 않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 10:32-33절입니다.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옆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폴리캅은 황제 숭배로 인한 기독교에 대한 박해로 말미암아 순교한 초대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박해자들은 폴리캅을 믿음을 버리도록 회유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88년 간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나를 한 번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모든 사악한 것에서 나를 보존하시고 나를 구원하실 나의 왕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폴리캅 기념교회의 천장과 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폴리캅이 화형 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렇게 믿음을 지켜 온 분들의 신앙적인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박해 시대의 폴리캅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도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예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주되심(Lordship)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학문의 영역에서,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예술의 영역에서, 가정에서,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영역에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크리스천들에게 예수님을 인정하는 길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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