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I 개역개정 성경 마태복음 2장 1 - 11절 I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오아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성탄절 설교 - 별을 따라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 밤 중에 작은 배 한척이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풍랑이 일어 배가 위태로워 보입니다. 금방이라도 파도가 배를 삼킬 듯 무섭게 달려듭니다. 그러나 항해자는 캄캄한 밤하늘에 뚜렷이 빛나는 하나의 별, 북극성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 귀가 적혀 있습니다. '내가 저 별을 잃어버리면 나를 잃어버린다.'
별이 없으면 배는 방황하기 쉽습니다. 그저 제 자리를 맴돌거나, 어디를 향해 가는 줄도 모르고 항해하기 쉽습니다. 자식을 얻지 못해 낙심하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장막 밖으로 나가서 밤하늘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아브라함은 반짝이는 별들이 아니라 꿈꾸지 못했던 주옥같은 하나님의 미래를 마음에 한 아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여전히 밤과 같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현실과 미래를 왜곡시키는 인생의 장막을 벗어나 하나님이 바라보라 하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별은 배고픈 배를 채워줄 수도 없고 따다가 예븐 목걸이를 할 수도 없고 모아서 불을 밝힐 수도 없습니다. 별은 세상살이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별은 우리 마음을 밝혀 주고 동심의 꿈을 꾸게 합니다. 이제 성탄의 계절입니다. 성탄절이 어떤 날입니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있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어요. 그것도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동정녀 탄생, 그러니까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에게서 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성탄의 사건을 이 세상에 알리시면서 별을 보여주셨습니다. 신비는 신비로만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1-12절입니다. '11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는 아니되었나니 12 무릇 잇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태복음을 이해하는 데 어려운 단어가 '천국의 비밀'이라는 '비밀'입니다. 여기의 '비밀'은 조금 잘못 번역되어서 오해를 합니다. 비밀의 원 뜻은 미스터리입니다. 그리고 미스터리(mystery)와 시크릿(secret)은 다릅니다. '비밀'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안 보여 줘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시크릿이라면 보여주는 것을 봐도 모르는 것을 미스터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있는 자'라는 말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깨닫는 자, 볼 수 있는 자가 그것으로 인해 이익을 다 취할 수 있지만, 볼 줄 모르는 자는 모르기 때문에 몽땅 놓치게 됩니다. 그것이 천국 비유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누가 봅니까? 거듭난 자만 봅니다. 천국은 거듭난 자만 보는 것입니다.
2000년 전 성탄의 계절에 밤하늘에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별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그 별을 보고 예수의 탄생을 보았던 사람들은 오직 동방의 박사들 뿐이었습니다. 이 별을 보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별볼일 없는 성탄절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이 별을 보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이 별을 볼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주의 비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나타난 동방 박사들의 그 모험, 동바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향해 베들레헴을 향해서 찾아오는 이 여행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어느 날 하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별을 본 것입니다. 이 별을 보자마자 그들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별이 그들의 인생에 새로운 목표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삶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주님의 비전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 중에 어떤 한 분을 붙들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가정을 해보세요. 형제님 당신은 최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계십니까? 정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계십니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들 가운데 상당한 사람들이 이 질문 앞에 당황할지 모릅니다. 왜 보편적인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인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특권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인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특권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구체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의 무의미한 반복적인 사이클에 너무나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익숙해져 있는 까닭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린 이렇게 사는 거예요. 이 세상만 바라보다가..
꿈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경쟁과 상관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가장 가치 있게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끝까지 가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성공과 실패의 평가로 그 가치가 높여지거나 깎일 수 없는 고유한 초월적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영혼의 존재로서 창조주께로부터 받은 소명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추구합니다. 힘을 가지면 더 잘 살고,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요? 힘이 있으면 어떨까요? 기다림이 사라집니다. 힘이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그냥 해버리지요. 그래서 안타까움, 설렘, 감격이 없어요. 진장한 사랑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해주고 싶으나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 바로 거기에서 사랑이 나옵니다.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자.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물려받은 좋은 시계가 있었으나 시계줄이 낡았다. 아내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있었으나, 빗이 없었다.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를 위해 빗을 샀다. 아내는 머리카락을 팔아 시계줄을 샀다. 그들의 선물은 서로에게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했다. 그들은 깊은 사랑을 체험하고 있었다. 진정한 사랑은 연약함에 있는 것이다. 연약한 사람은 기다린다. 그리고 꿈꾼다. 그것이 행복이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위해서 하늘의 별을 걸어 놓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믿으십니까? 성경에 보시면 주께서는 끊임없이 약속을 되풀이하십니다. '말세에 내가 나의 종들에게 성령을 부어주리니 그러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늙은 이들은 꿈을 꾸리라'
꿈을 주시는 하나님,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찬란한 꿈과 비전을 바라보고 인생의 길을 달리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눈을 들어 보십시오. 어두운 하늘, 저 높은 곳에 하나님이 걸어 놓으신 의망의 별을 그리고 비전을 볼 수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먼저 이 비전을 봐야 돼요. 그리고 이 비전을 보는 순간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주님은 아직도 내 인생에 대한 기대를 갖고 계시다. 내가 살아야 할 그리고 내가 걸어가면서 해야 할 내 인생의 마지막 plan이 남아 있다. 이 하나님의 꿈을 보는 순간 사랑하시는 여러분, 좌절은 이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의 인도를 기대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동방의 박사들이 어떻게 해서 주께서 하늘에 보여주시는 이 별이 메시아의 별인 것을 알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이 박사들의 ㅈ어체를 좀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동방박사. 무슨 박사일까요? 이 박사라는 말이 영어 성경에 보시면 magi라는 단어입니다. M.A.G.I. mage. 그 말하고 가장 가까운 영어 단어 하나를 우리가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요즘 최고의 과학... 천문학, 우주를 연구하는.. 그 당시에도 하늘을 연구하는.. 별을 보며.. 이 땅의 일어날 일들을 연구하는 점성술. 최고의 과학. 다니엘 2장 48절을 읽겠습니다.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자, 다니엘이 왕의 꿈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 어떤 지위가 주어졌습니까? 총리가 된 거예요.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했다. 도지사들까지 다 감독하는 최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이 48절의 마지막 부분에 보시면 그는 이 다니엘은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까 다른 박사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다른 박사들이 바로 점성술을 취급하고 그러는 사람들이죠. 그들 중에 우두머리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그들에게 주어진 직책을 보면 그 당시에 이런 점성술사는 일종의 그런 마술사 정도가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의 엘리티들입니다. 그만큼 존경을 받았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주어졌습니다. 자, 그런데 이 박사들 가운데서 다니엘은 뭐가 됐어요? 우두머리가 됐어요. 최고 두목이 되었습니다. 자, 그들이 풀 수 없었던 왕의 꿈을 풀었습니다. 도대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느냐 사람들이 물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지혜를 주고 있는 놀라운 책이 하나 있습니다. 틀림없이 다니엘은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이 중요한 책을 소개했을 것입니다. 뭘까요? 성경. 그래서 바벨론이라는 외국 땅에 이 성경이 역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박사들은 바빌로니아에 살고 있는 페르시아나 이쪽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성경을 접하면서 그들은 성경의 중요한 예언 하나를 주목했을 것입니다. 민수기 34장 17절 상반절입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땡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어느 날 출현할 것이라는 말씀을 알았을 것입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이 말씀을 전해 듣고 이 말씀을 받고, 그리고 동방의 박사들은 하늘의 천체들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별이 하나 나타났어요. 이상한 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스러운 별의 어떤 변화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별의 등장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나타난 별이에요. 강력한 빛을 발하면서 하늘에 등장한 혜성같이 유성처럼 등장한 이 한 별의 출현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이 박사들은 다 메시아다. 메시아가 오셨다. 그리고 그들은 여행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인생이 뒤바뀌는 놀라운 순간이에요. 그들의 삶을 바꾸는 놀라운 journey가, 여정이 그들의 인생에서 새롭게 시작된 찰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매우 크리스천들이 오해하는 대목 중 하나가 있어요. 그 오해가 뭐냐 하면, 주로 이것은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찬송가 때문에 오는 오해예요. 우리가 지금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도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별 따라왔다. 그러니까 이 별이 한 번 딱 나타난 다음에 그 다음에 그 별을 계속적으로 박사들의 걸음을 인도하면서 그들은 사막을 건너고 강을 건너고 들을 지나서 별 따라 드디어 예루살렘까지 왔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다시 본문을 조심스럽게 보면 이 별이 나타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별은 아마도 사라집니다. "그들은 단지 이 별의 출현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셨다 그는 당연히 이스라엘 땅에 나셨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의 수도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 수도가 어디예요.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오는 동안에 그들은 별을 보고 찾아온 것이 아니고 그들은 말씀을 붙들고 찾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그 말씀 하나 붙들고 이 말씀의 주인공이 당연히 있어야 할 팔레스타인 땅을 향해서 그들은 찾아온 것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왔어요. 그리고 당연히 있어야 할 팔레스타인 땅을 향해서 그들은 찾아온 것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왔어요. 그리고 사람들을 붙들고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어디 나셨습니까? 아니 인류의 왕이 인류의 소망이 될 메시아는 어디에서 나셨습니까?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도움을 통해서 성경에 의하면 그분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다. 그래서 드디어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은 아주 가까운 거리예요. 먼 거리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보면 마포에서 부천정도 밖에되지 않는 거리에요. 동방의 박사들이 가다가 갑자기 다시 그 동방에서 보았던 별이 출현합니다. 그때 비로소 출현한 것이에요. 마태복음 2장 9절입니다. '박사들이 왕이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여기서 '동방에서 보던' 이란 말이 과거 시제입니다. 보았던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기 위해서 기적적으로 출현했던 하나의 별, 그 별을 보았어요. 보았던 그 별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상에서 도대체 베들레헴 어디 계실까? 당황하며 찾아가던 그들에게 갑자가 별이 다시 출현한 것이에요. 그것은 얼마나 감격이었을까요? 10절입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뭐~ 별 따라 계속 왔다면 이제 와서 뭐 놀랠 필요가 어디 있겠어요? 근데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베들레헴 상공에 갑자기 나타나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얼마나 기쁨이고 감격이었을까요? 그들은 놀라기 시작합니다. 근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어요. 그러므로 그들이 팔레스타인까지 걸어오는 그 과정에서 그들이 줄곧 그들을 인도한 것은 별이 아니라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고 그들은 쫓아온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좇아 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기 위해서 의지해야 할 그 중요한 source, 방편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탄의 별은 말씀 속에 있습니다. 엉뚱한 데서 찾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 신앙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신앙의 근거는 언제나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신뢰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행진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믿음은 어디에서 나냐?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무엇으로 말미암았다고 합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내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념하지 마십시오. 이 어두운 밤 중 기적이 없는 어두운 밤에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이, 메시아가, 이스라엘에서 탄생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땅 어디엔가 나셨을 것이다. 말씀 하나, 그 말씀을 붙들고 사막을 건너고 강을 건너고 들을 건너던 동방의 박사들처럼 내 인생이 사막을 헤맬 때 내 인생이 캄캄한 어둠을 헤맬 때 내 머리 위에 기적의 별이 나타나지 않아도 여러분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의지하고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주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을 배우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예배를 통하여 비전을..
예배의 마음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자, 이 동방의 박사들, 그들은 처음부터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은 이 메시아를 만남으로 그들이 출세할 것에 관심 있지 않았어요. 물론 그런 기대도 은근히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한 한 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이 지금 여기까지 예루살렘까지 찾아왔던 목표가 무엇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2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2절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느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뭐 하러 왔다고요? 경배하러 왔노라. 메시아가 나셨다. 이 순간, 이 동방의 박사들을 지배한 가장 커다란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일까? 역사의 소망, 인류의 소망, 우리들의 소망이신 Messia. 그분을 그 분 앞에 엎드리고 싶다. 그 분을 경배하고 싶다. 그들은 이 경배의 소원, 경배의 열망을 가지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열망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주님은 이 박사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늘의 별을 통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를 통해서 그들을 마침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그 분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메시아를 만나는 감격의 장면을 오늘 본문은 어떻게 묘사합니까? 11절입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자, 집에 들어가서 이 동방의 박사들은 맨 먼저 무슨 일을 했습니까? 경배했습니다. 누구에게 경배했습니까? 아기께 경배하고.. 여기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박사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별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이 박사들은 이 별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별을 쓰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신 별이 경배의 대상이 되면, 별은 그 순간부터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서 마리아를 쓰셨습니다. 마리아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 점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11절에 보시면 이 접에 들어가서 이가 예수가 있는 집에 들어가서 박사들은 누구를 경배했다고 그랬어요? 아기께.. 자, 그 옆에 누가 있었어요? 마리아가.. 그 모친 모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그러나 경배의 대상은 한 분이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아기께 경배하고.. 어떻게 해서 이 아기가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그 아기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인간을 위해 오신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셨습니다. 바로 그분 앞에 엎드립니다. 엎드려서 경배합니다.
경배의 초점은 뭘까요? 경배의 초점은 드리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배를 생각할 때 예배를 통해서 좀 이익이 있어야.. 어떤 축복이 있어야지.. 축복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선된다면 그것은 예배 정신의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 자신이 예배의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나를 구원하신 주님, 그 분 앞에 사랑을 드립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찬양을 드립니다. 기도를 드립니다. 헌금을 드립니다. 예배 정신의 핵심은 드림입니다. 그들은 받은 것에 관심이 있지 않았고,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뭘 드렸습니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목에서도 사람은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는 부분에 이상한 관심을 가져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뭐의 상징일까? 뭐 이런데 관심을 가져요. 정답을 말씀드릴게요. 황금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황금은 황금을 상징합니다. 유향은 유향을 상징합니다. 몰약은 몰약입니다. 필요 없는, 의미 없는 해석을 여기다 붙일 필요가 없어요. 그들은 최선의 것을 바쳤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준비한 최선의 것을 드렸습니다. 최고의 왕 되신 그분께, 구세주께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 중 최선을 다해 드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를 보세요. 12절입니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
자, 아기 예수를 경배한 다음에 그날 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계시를 주십니다. 어떤 계시입니까?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 헤롯을 만나지 말라. 다른 길로 네 고국으로 돌아가라.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가 있었습니다. 특별한 인도, 돌아가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루살렘으로 가면 헤롯은 서둘러 이 박사들과 그리고 모든 아기를 죽이는 일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배했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계획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의 인도가 있어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역사의 어두움 속에서 내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 겸허히 엎드려 경배하는 자들에게 인생의 새로운 길을 우리 인생의 미래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주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주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민족이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새로운 날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앞날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비전의 시작..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왕의 왕이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시고 이 땅에 오신 주님. 그리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 구원의 주님, 그 주님 앞에 엎드려 내 최선의 사랑의 사랑을 드리며 감사를 드리며, 주님 감사합니다. 경배를 드립니다. 이 예배를 배울 때 그리고 예배를 배우는 성탄이 될 때 우리 민족에게는 새로운 내일이 내 인생의 장에 새로운 하나님의 인도가 함께하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 2022년 12월 9일 서부교회 금요열정예배, 말씀 : 임채영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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