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story/설교문

진재혁 목사 I 야고보서 강해 I 야고보서 1장 19-27절 I 성장하고 있습니까? I 설교문

by №1★↑♥ 2024. 3. 27.

지구촌교회 2011년 8월 14일 주일설교, 야고보서 강해(5)

성장하고 있습니까?

- 지구촌교회 진재혁 목사 -

아이들이 자라면서 귀엽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습니까? 자녀들, 손주들 보면 정말 귀엽고 자랄 때 보면 얼마나 큰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기쁘고 이쁜 모습이지만 그대로 자라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멈춰 있다면 좋아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얘가 무슨 문제가 있어서 성장하지 않는가? 걱정하며 여려 병원을 찾아다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예쁘고 귀엽지만 성장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걱정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믿음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는가? 내가 머물러 있었다면 성장하지 않는다면 내 신앙이 바른 신앙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8.15 광복 기념주간으로 저희들이 예배드리지만 한국이 얼마나 성장하고 발전한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모릅니다. 특히 연세가 있는 분들은 우리나라가 전에 얼마나 힘들었고,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발전과 성장이 얼마나 큰 기쁨과 감사가 되는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장은 기쁨이 되고, 성장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 과연 우리는 성장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하나님 앞에서 성장하고 있습니까? 내 믿음이, 내 신앙이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내 인생의 세월을 지나가면서 더 깊고 풍성한 교제 가운데로 나는 과연 성장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자라 가야 하고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통해서 성장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중요한 세 가지 영적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반응형

 

 

 

 1.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라!(19-21절)

 

첫 번째,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야고보서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 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여기서 '온유함'이라는 단어는? 겸손함이라는 단어입니다. 겸손하게 말씀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내 것으로 받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받지 않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말씀을 듣고 접하면서도 다 아는 것인데, 옛날에 들었는데, 뻔 한 건데, 누가 몰라라고 한다면 그 말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겸손히 받지를 못합니다. 세상에서도 그런 사람을 향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 남의 이야기를 청종하지 않고, 겸손하게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듣지 않고 겸손하게 듣지 않는 모습을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접하면서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지 못하고 그럴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이 하와이로 목회지를 옮겨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가서 보니까, 그 작은 교회에서도 두 패로 나뉘어서 성도들 간데 싸우고 있더랍니다. 그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열심히 기도하고 용기를 내서 회개에 대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간에 "회개하라"는 말씀을 강하게 선포했는데 말씀 내내 온 교우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밝은 표정으로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회개의 열매를 주시는구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서 성도들이 인사를 하는데 한쪽에 있는 사람들만 나오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 너무 좋았습니다. 저 사람들 저런 설교 들어야 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또 다른 분들이 또 나가면서 "목사님, 은혜로웠습니다. 저 사람들 정말 회개해야 합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목사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말씀을 들었지만, 겸손하게 자기의 것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우리가 말씀을 많이 접합니까?  설교를 얼마나 많이 듣습니까 훌륭한 분들의 설교가 인터넷에 늘 있습니다. 말씀의 홍수 가운데 내게 주시는 말씀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떠한 말씀이 선포된다 할지라도 그 말씀이 우리를 성장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아! 저 말씀 우리 남편이 좀 들어야 되는데..  우리 애가 좀 들어야 하는데.. 저 인간이 좀 들어야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내 것으로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야고보서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듣기를 속히 하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잘 들으라는 거예요. 열심히 먼저 들으라는 겁니다. 중요하게 들으라는 겁니다. 귀를 솔깃하며 새겨들으며 귀 담아 들으라고 듣기를 먼저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말씀이 전달되고 선포되지만 그 말씀을 정말 듣고 있는지 새기고 있는지 정말 경청하고 있는지 내 말씀으로 받고 있는지 성경은 돌아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말하기를 더디 하라'라고 합니다. 끊임없이 말하면, 들을 수 없습니다. 내 것을 이해하게 하고, 내 생각과 내 계획과 내 의견을 정신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나를 향해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네 이야기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라고 합니다. 경청하기 위해서 때로는 내 입을 다물 때가 필요한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속히 듣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성내기도 더디 하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화를 내고, 하나님 말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입니다. 분을 품고는 말씀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오늘 이 예배에 나오면서 주차장에서 식구들과 함께 한 번 화가 나서 성질나고 여기 지금 앉아 계신 분이 있다면 말씀 잘 안 들어옵니다.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이 내 마음에 차면 하나님 말씀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 귀에 더러운 것과 악한 것을 내어 버리고' 여기서 '더럽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귓밥'이라는 뜻입니다. 그게 귀에 꽉 막혀 있다면, 더러운 것이 막혀 있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잘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빼내 버리라고 그리고 말씀을 네 것으로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저희 집에서도 제가 아이들의 귀지를 파줍니다. 예배 때 지저분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애들도 좋아하고, 저도 좋아합니다. 지저분한 데 꼭 손을 내밀어 손에 떼어 줍니다. 그러면 바로 버리지 않고 큰 게 걸릴수록 더 좋아합니다. 아주 큰 게 나오면 엄마한테 보여준다고 뛰어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꽉 막혀 있으니까 잘 들리지 않습니다. 들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심긴 하나님의 말씀을 너의 것으로 받아들이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설교를 마치고 나니까 인사를 하는 데 한 권사님이 오시더니 뜬금없이 그러시더라고요. "목사님, 어젯밤에 저희 집에 오셨었죠?" 깜짝 놀랐습니다. 첫 번째 생각은 '아! 어제 그 집에 심방 가야 하는데 비꼬는 말로 하는가?' 걱정이 덜컥 들었습니다.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오늘 목사님이 말씀이 어젯밤에 우리 집에 와 계신 것처럼 정확하게 맞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 말씀에 주시는 말씀을 왜 그렇게 고상하게 표현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여러분,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말씀에 겸손함으로 내 것으로 받으라. 그때에 우리가 성장한다고 말씀합니다.

 

 

 

 

 2. 말씀대로 움직여라!(22-25절)

두 번째입니다. 말씀대로 움직여라. 야고보서 1:22(쉬운 성경),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행하십시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앉아서 듣기만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가르쳐 주신 대로 행하십시오. 앉아서 듣기만 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성경은 말씀하기를 '말씀을 내 것으로 받은 후에 실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내 마음의 감동이 내 신앙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가르쳐 주신 대로 행하십시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자기를 속이는 겁니다. 내가 많이 듣다 보니까 내가 마치 그걸 행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신앙생활 오래 하다 보니까 마치 훌륭한 성도가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성경공부 많이 하니까 다 훌륭한 성도의 모습을 가진 것 같습니다. 착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기를 속인다는 겁니다. 진정한 변화는 말씀이 내 삶 가운데 부딪혀서 말씀이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이 움직여지는 것. 오늘 성경은 우리의 성장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서 바로 그다음 절에 좋은 예를 하나 들고 있습니다. 23-25절입니다. 야고보서 1:23-25,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오늘 성경은 말씀을 보고 행하지 않는 자를 보고서, 마치 거울을 보고 잘못된 것을 찾아놓고도 하나도 고치지 않고 그냥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거울을 얼마나 자주 보십니까?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사춘기가 될수록 거울을 보는 시간이 길어지더라고요. 또 어떤 분들은 자기 자신을 보면서 좋아하는 자뻑 파들도 있습니다. 거울과 사진은 다릅니다. 똑같은 대상이지만, 사진은 잘 나온 것을 찾습니다. 요새는 포토샵을 해서 웬만하면 옛날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처음 부임해서 교역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이름하고 얼굴 외우려고 사진보고서 갔는데 전혀 못 찾겠더라고요. 이름과 사진이 매치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교적부 사진도 보면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사진은 잘 보이고 싶은 겁니다. 좋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거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거울의 목적은 내가 있는 모습 그대로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이 거울입니다. 그 모습 그대로 실상과 현실과 나의 상태를 보도록 하는 것이 거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내면에, 우리 영적 생활에, 우리 인생의 영적 거울입니다. 나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나의 연약함을.. 나의 모습을.. 나의 교만을.. 우리의 어리석음을.. 나의 시기하는 모습과 이기심과 증오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을 보고 고치지 않는다면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가 된다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거울을 보면서 치아에 큰 고춧가루가 꼈는데, '어머! 고춧가루네!' 그러고 그냥 가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자기의 모습을 보고도 고치지 않고 잊어버린다면.. 말씀을 앉아서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과 같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듣고 말씀을 행하라고 합니다. 가르치시는 대로 움직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신발 나이키의 중요한 광고 문구가 뭡니까? Just do it. 그냥 그대로 하십시오. 내가 용서하고 싶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Just do it. 순종하십시오. 내가 불평하고 싶은 마음이 여기까지 올라와도 불평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Just do it. 내가 기도 하고 싶지 않아도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내 무릎을 꿇고 Just do it. 순종하십시오. 내가 누구를 도와야 한다고 내 마음에 부담을 주시면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순종하고 따라갑니다. Just do it.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삶 가운데 부딪히고, 행동으로, 실천으로, 순종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문제가 뭡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았다고 이야기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은혜받은 자들의 삶의 실천과 행동과 순종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좋은 성경공부가 얼마나 많습니까 필요합니다. 말씀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많은 성경공부를 했다고 많은 과정을 이수했어도 내가 말씀대로 살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게 지식에 불과합니다. 교회에 있는 제자 훈련의 가장 큰 문제가 뭡니까? 한 과정이 끝나면 2단계로 갑니다. 3단계로 갑니다. 교재도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교재가 바뀌지만 내 신앙의 깊이가 내 신앙의 성숙도가 그 책의 단계와 함께 같이 갑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말씀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말씀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설교하다 보면, 영어권 친구들은 굉장히 격려를 많이 해줍니다. 설교자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아주 좋았다고 감사를 표합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격려가 됩니다. 그런데 한쪽에는 이런 마음도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즐기라, 그냥 좋았다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씀 가운데 부딪히고, 내 삶 가운데 부딪혀서 실제로 내 삶 가운데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변화가 우리 가운데 필요합니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나가수' 등을 보면서 감동의 물결이 있는 것을 찾습니다. 감동 필요합니다. 감동이 좋은 동기가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감동을 받았다고, 은혜를 받았으나 그것이 삶으로 실천되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를, 진정한 성장을 우리는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감동과 더 많은 은혜를 갈구하지만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성숙과 성장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1: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움직이십시오. 성경은 성장의 모습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3. 말씀으로 성숙하라!(26-27절)

마지막으로 세 번째, 말씀으로 성숙하십시오. 야고보서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오늘 그렇게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이제 성장을 넘어 성숙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성숙을 오늘 본문은 '참된 경건이 무엇인가? 경건한 모습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성경을 옆에 아름답게 끼고, 큰 십자가를 배지를 하고, 할렐루야를 외치고 쉰 목소로리로 말하는 것이 경건입니까? 기도 열심히 참석하고 또 얼굴에 그런 모습을 가지고 성경 이야기만 하는 것이 과연 경건입니까?

그러면 참된 경건이 무엇일까? 한 번은 제가 어느 신학교에 채플에 설교하러 갔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학생들과 함께 통성기도를 하는데 그 중간에 쇳소리가 갈라지는 듯한 쉰 목소리가 기도가운데 나오는 거예요. 깜짝 놀라가지고 기도하는 중간에 살짝 눈을 떠서 봤습니다. 그랬더니 나이 드신 분이 아니고, 대학생이었습니다. 저분들이 기도를 많이 해서 그런 목소리가 되었다면 참 좋겠는데 어디서 마치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훌륭한 교역자인 것처럼 저런 목소리를 내며 기도한다면 그건 참된 경건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평소에 그냥 얘기하다가도 설교 단상에만 올라가면 홀리 톤으로 바뀌는 분도 있습니다. 갑자기 목소리가 떨리고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바뀌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게 경건입니까? 오늘의 말씀에서는 경건이 무엇인가를 설명합니다. 야고보서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참된 경건은 내 입술의 영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내 말이, 내 표현이 어떻게 나가느냐가 진정한 경건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아도, 기도를 많이 해도, 내 입술에 파수꾼이 서 있지 않으면.. 하는 말마다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다면.. 그것은 경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숙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 기독교는 영성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는 나머지 말 가운데 실수하고 하지 않아야 말 들.. 함부로 상처 주는 말들을 하면서도 기적이 있고, 기사가 있고, 또 말씀의 은사가 있는 분이라면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적과 기사가 있고,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있다 해도 내 말 가운데 파수꾼이 세워지지 않고 은혜로 말씀이 전파되지 않고, 실수가 적다면 그것은 경건과 성숙한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상처받았다고 합니까? 초신자들이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래 신앙생활 하던 분들 때문에 상처받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오늘 내 입술에 재갈을 물리지 아니한 사람은 그의 경건은 헛것이다. 어떤 분들은 그냥 막 해댑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뒤 끝이 없다."라고 합니다. 뒤 끝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폭행을 한 것보다 자녀들에 폭언을 한 것이 더 오래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내 말의 열매. 성경은 경건과 성숙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또 한 가지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참된 경건은, 힘들고 어려운 자를 돌아보는 겁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배려. 남을 위한 배려입니다. 존중해 주는 배려입니다. 정말 생각해 주는 배려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나보다 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려. 우리가 은혜받았다고 하면서 그러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수련회 가서 은혜받았다고 회개하며 눈물 콧물 다 흘렸어도 버스 탈 때는 서로 좋은 자리 타겠다고 싸우는 모습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일날 예배에 은혜의 감사하다고 하면서 엘리베이터 탈 때는 서로 밀치고 빨리 타려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자들을 향한 배려.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있다고, 조금 더 가졌다고 배려하지 않는 것. 경건의 모습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27,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관 대로 사는 자의 모습을 성경은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받으십시오. 말씀대로 움직이십시오. 그리고 말씀대로 성숙하십시오. 어느 한 분이 마을에 이사를 하여 섬길 교회를 찾고나 한 매점에 가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묻습니다. "이 지역 교회에서 어떤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제일 잘하십니까?" 그랬더니 어디라고 알려주셔서 "아주머니도 거기 교회 다니세요?", "아니요, 저는 교회 가까이 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이 설교 잘하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외상 안 하고 꼬박꼬박 돈 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은 여러분과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말씀으로 참된 경건, 성숙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가? 성장하고 있습니까? 오늘 그렇게 주님 앞에 자라, 성장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의 주님,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많이 듣고, 말씀 가운데 있지만
정말 말씀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주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제 주신 말씀을 마음에 받고 말씀대로 살고자 주님 앞에 몸부림치며
순종하기로 나아가는 저희가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참된 경건, 진정한 성숙의 모습이
우리 안에 있도록 하나님 도와주옵소서. 
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