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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설교문

고난주간 I 설교문 I 05. 험한 십자가의 영성 I 로마서 8장 31-39절

by №1★↑♥ 2023. 2. 16.

십자가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거실 장식장의 크리스탈 십자가.. 도시 야경에 나오는 운치 있는 네온 십자가..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십자가 목걸이... 주변에 많은 십자가들이 있습니다. 잡지에 나오는 모델들의 목에서도 십자가 목걸이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더 반짝거리고 멋지게 만들어 값비싸게 보이게 하고, 십자가 목걸이를 한 모델들을 더 돋보이게 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십자가는 인간의 탐욕을 더 부채질하는 장식품으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결코 장식품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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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험한 십자가의 영성 I 로마서 8장 31-39절

 

예수님이 지셨던 십자가는 그 당시 최악의 사형틀.. 예수는 당시 로마의 관행에 따라 양쪽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양팔이 묶인 채 처형장소로 걸어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이때 예수가 진 십자가는 34-57kg 정도인, 횡목(십자가의 가로)이었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주장이니다. 또 학자들은 예수에 사용한 못은 길이 12.7~12.8cm, 지름 1cm 정도인 끝이 날카로운 철 대못으로, 예수의 손바닥이 아니라 팔뼈 끝 부분과 손목뼈 사이를 관통했을 것으로 추측하는데요. 왜냐하면 예루살렘 근처에서 발견한 에수 시대의 유골들에서 이런 공통된 흔적이 드러나고, 손바닥에 못을 박았다면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에수의 발은 겹쳐진 채 십자가의 수직 기둥 정면에 고정됐고, 못은 발 중앙 둘째와 셋째 뼈 사이에 박았어요. 이 때문에 예수는 양손과 발의 주 신경들이 끊기는 고통 즉 손과 발이 잘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을 것이고, 더욱이 십자가 형에 앞서 받은 채찍질로 출혈과 쇼크, 혈압저하 현상, 못을 박으려고 눕혔을 때 채찍질 당한 등에 재차 가해지는 통증, 십자가 위해서 숨을 쉴 때마다 찢긴 등과 거친 나무기둥이 부딪치며 생기는 고통 등 예수는 매 순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왜 이렇게 예수님은 굳이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을까요? 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내가 큰 죄인입니다.

저는 잔인한 채찍질로 인하여 피투성이가 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어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과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고통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그것도 내가 아주 큰 죄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내 죄가 얼마나 크기에 우리 예수님께서 저렇게..' 내 죄가 저 엄청난 대가를 치르어야만 사해질 수 있는 큰 죄라는 것을 정말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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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참으로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기 마련이니다. 그와 같은 고난과 역경을 당할 때마다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억울해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자기는 마치 그와 같은 고난을 당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죄 없이 억울하게 고난을 받는 것처럼 대부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상에서 회개를 하였던 강도를 기억했습니다. 그 강도는 십자가 위에서도 예수님을 빈정거리고 있는 강도를 향하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누가복음 23:41을 보세요.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에 대하여 그것을 억울해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당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과 자세가 바로 십자가 상에서 회개를 하였던 강도의 생각과 자세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두 번째,  나는 확실히 구원받았습니다.

저는 처참하게 피 흘리시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시하면서 새삼스럽게 제가 구원을 얻었다는 확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치르신 값이 너무 엄청나서 사탄도 어떻게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롬 8:32-34,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저는 처참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오' 하신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사람됨과 죄와 허물을 그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탄이 우리의 죄를 고발하지도 못하고 송사하지도 못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치르신 대가가 너무도 엄청난 것이어서, 사탄이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그와 같은 죄를 다 용서해 주실 수 있느냐고 송사할 수 없다는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사탄이 우리의 죄를 송사할 수 없다면 누가 우리의 지를 송사할 수 있겠습니까? 저와 그와 생각을 통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얻은 우리의 구원이 완벽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깨달음을 통하여 저는 고난과 역경을 당할 때 원망을 해서도 아 되겠지만 절망을 해서도 안 되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처절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눈도 감지 않고 직시하면서 저는 제가 죽고 망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세상의 이러 저런 일로 죽고 망할 사람이라면 우리 예수님이 저렇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참한 십자가를 눈 감지 아니하고 직시하니 십자가 속에 구원이 있었습니다. 부활이 있었습니다. 구원과 부활은 논리적인 필연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시고 부활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에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 속에서 정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했을 때, '이처럼'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저렇게 사랑하시는데, 저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세상에 없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 이하에서 바울이 고백한 고백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롬 8:35-39,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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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다시 한번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사랑에서 저와 여러분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환난을 당하고 계십니까? 핍박을 당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지나쳐 곤고하고, 곤고함이 지나쳐 완전히 적신으로 벌거벗겨진 것과 같이 되셨습니까? 그것도 모자라서 칼과 위험이 승하여 죽임을 당케 된 도살할 양같이 되셨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와 같은 환난과 역경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그와 같은 환난과 역경을 끊어 낼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세상의 고난과 역경 속에 죽고 망할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입으로 가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셋째 그러기에 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처참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직시하면서 저는 제가 큰 죄인이라는 것도 깨달았지만 동시에 제가 참으로 대단한 존재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값을 많이 치른 것은 비싼 것이고 귀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에 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 제 목숨을 읽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하시며 우리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 하신 말씀의 의미를 십자가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귀한 사람은 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밥이나 먹겠다고 아무렇게 몸을 굴리고 살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하찮게 여깁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은 너무 하찮게 여기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생각하고 함부로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친히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을 대가로 치르시고 구해주신 생명인데, 정말로 온 천하보다 더 크고 귀한 존재인데, 밤낮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 까만 생각 하며, 그것도 그 때문에 온갖 비열한 생각과 죄를 지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우리의 인생의 목표를 정말 보다 높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 즉 뜻을 구하고 그것을 실현하는데 두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몸 값이 예수님의 피 값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시고 그 값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심을 받은 그런 존재들입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세상에서 건짐을 받았는데 다시 세상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세상 식으로 세상 사람과 함께 살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역행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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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구원 얻은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하늘과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을 얻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과 같이 욕심부리며 죄를 지어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의 구원을 바라보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깨끗하게 사십시다. 정직하게 사십시다. 반듯하게 사십시다. 거룩하게 사십시다.

저는 거룩이 능력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거룩함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결함이 주님과 동행할 수 있고, 만국을 다스릴 통치권을 소유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원하시는 거룩과 성결함으로 옷 입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과 다르고, 세상에 있지만 세상과 짝하지 않고,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깊이 생각하면서 우리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할 말은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 말씀들을 다시 한번 우리의 육체에 새기는 귀한 부활 주일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0-04-12 서부교회 고난주간 온라인 저녁기도회 다섯째날

 

푸른교회 서부교회입니다.

이웃에게 가까이 다가가 소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대답이고,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여러분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 봉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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