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열국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한 나라 한 나라를 심판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걸까요? 애굽을, 구스를, 바벨론을, 앗수르와 같은 열방들을 하나하나 심판하시는 걸까? 그것은 바로 22장 때문입니다. 오늘의 22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시면서 그전에 미리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믿던 나라는 결국 다 망하게 된다."는 거예요. "너희가 의지하는 나라는 다 망한다. 나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마다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말씀하신 이후에 비로소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세요. 우리가 의지할 것들이 남아 있으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뭐 하나라도 건질 게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했던 것들,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다 제거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오늘 하나님은? 정말 하고 싶었던 본심을 말씀하십니다.
1절입니다. '환상의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지붕에 올라감은 어찌함인고' 환상의 골짜기는 이스라엘을 의미해요. 그런데 왜 이스라엘이라 하지 않고, '환상의 골짜기'라고 하는 걸까요? 21장에서는 바벨론을 '해변광야'라고 불렀어요. 그들은 스스로를 '해변 민족'이라 불렀어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워낙 광대해서 "이건 바다야, 우리는 해변이야." 그렇게 불렀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니! 너희는 해변이라고 자랑하지만, 물이라고 자랑하지만 너희 속에는 정말 누려야 될 은혜가 없어. 나를 인정하지 않는 너희는 광야야." 그래서 해변 광야라는 모순된 별명으로 부르셨어요. 오늘 22장도 마찬가지예요. 환상의 골짜기도 말이 안 돼요. 환상은 보는 거예요. 골짜기는 깊어서 아무것도 안 보여요. 환상의 산이라고 해야 멋진 경관이 내려다 보이는 거잖아요. 그런데요. 예루살렘이 시온산 위에 있다고 말하지만 골짜기에 있는 지역이 예루살렘입니다. 기드론 골짜기, 힌놈골짜기 사이에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은 환상을 본다. 놀라운 이상을 본다고 하지만 너희들은 싫은 골짜기에 있다. 아니 아무것도 못 보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예루살렘 사람들, 가장 자부심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지금 모순된 상황 속에 있다. 환상 골짜기." 여러분 환상 골짜기를 우리 식으로 바꾸면, '우물 안 개구리'에요. 이 개구리들이 우리는 세상을 다 본다. 우리는 다 알아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우물 속에 있다면 그들이 보는 것이 얼마만큼이겠어요? 그들이 본다는 것은 일부예요.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환상골짜기에 갇혀 있어요. 거기서 자신들은 "환상을 본다. 미래를 본다. 우리는 다 안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거예요. 그들이 알았던 것이 무엇입니까? 앗수르를 의지하는 것, 바벨론을 의지하는 것, 애굽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줄을 대면 살 수 있을까? 그 환상은 실제로는 골짜기와 같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며 살고 있습니까? 무엇을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 가정의 부흥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리 민족의 내일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내 인생 나를 가로막고 있는 골짜기들 가운데에서 내가 정말 바라보아야 믿음의 환상은 무엇인가? 내가 보고, 기뻐하며 찬양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오늘 환상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하나님의 무거운 경고가 이렇게 시작되지요? "네가 지붕 위에 올라감이 어찌함인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뭐 한다는 거예요? 2절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들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라' 왜 지붕 위에 올라가서 소란하게 떠들며 즐거워했을까요? 이웃나라들에게 조공을 보냈기 때문이지요. 강대국의 신하들에게 조공을 바치고, 자신의 나라를 맡겼기 때문에 '아! 됐다. 우리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평안할 것이다.'라며 잔치를 벌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잔치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슴 아픈 거지요. 곧 망할 텐데.. 저들에게 기대는 것이 하나도 소용이 없는데.. 도리어 적들이 빼앗아 간 조공을 불량미로 해서 더 쳐들어 올 텐데, 그들에게 망할 텐데.. 그러니 하나님 너무 마음이 아프신 거예요. '그들은 칼에 죽은 것도 아니고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라' 그러면 어떻게 되었다는 거예요? 3절입니다. '너의 관원들도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들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포로로 끌려갔다는 거예요. 칼에 죽지 않고, 전쟁에 사망하지 않은 게 좋은 게 아니에요. 포로로 끌려가면, 내 자녀까지, 내 자녀의 자녀까지 대대 손손으로 포로가 되는 거예요. 차라리 칼에 죽거나, 전쟁에서 사망하면 나만 죽고 끝나는데.. 이렇게 결박을 당하여 끌려가면 그 민족자체가 다른 나라의 노예가 되어서 희망이 꺾어지는 더 슬픈 현실이 다가오는 거예요.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냐? 관원들이 다 함께 도망하였다. 그 민족을 지켜야 할 자들이 다 함께 도망했다. 도망한 것도 아니고, 활을 버리고.. 싸울 의지가 없는 거예요.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저기로 도망한 자들이 발견되어서 그들도 다 결박당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마지막 날에 얼마나 기강이 해이해지고, 얼마나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사회가 무너질지를 보여주고 계시는 거예요.
그날을 바라보는 이사야의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이렇게 말합니다. 4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망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너무 괴로우니까, 이사야가 그날을 바라보기만 해도, 그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괴로운 거예요.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나라의 멸망을 보는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 위로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이 말씀이 과연 나는 혼자 울 테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돌이켜서 통곡 가운데로 같이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이 시대가, 환경이, 우리의 공동체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웃을 때인가? 울을 때 인지 바로 알라는 거예요. 나 자신을 돌아볼 때, 나의 현실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시대를 바라보며 울어야 하는 때가 아닌가? 무엇 하나도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없고, 정치가 무너지고, 경제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이렇게 까지 우울증이 많고,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청년들의 미래가 없고, 점점 빈부격차는 더 심해지고, 분노로 가득한 사회 가운데서 울어야 한다는 거예요. 결국은 사회 문제가 인간의 문제 아닌가요? 인간의 문제는 나의 문제 아닙니까? 결국은 내가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때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왜 이런 심판이 벌어질까? 5절입니다. '환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이르는 소란과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쳐 부르짖는 소리로다' 이스라엘이 소란과 밟힘과 혼란이 찾아오는데 누구로부터 온다고요?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온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가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가 도리어 이스라엘의 혼란의 날을 가져오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은 절대로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에요. 절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에요. 왜 이 골짜기가 환상의 골짜기가 되었습니까? 왜 하나님의 환상을 볼 수 없는 막힌 눈이 되어버렸습니까? 바로 그들에게 신앙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적들이 쳐들어 올 때 그들이 가만히 있나 아닙니다. 8절입니다.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그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거를 보았고 ' 솔로몬 때 병기고를 만들었거든요? 이 병기고를 보면서, 여기에 병기가 있었지 찾게 되었다는 거예요. 9절입니다.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랫뭇의 물도 모으며' 물도 모으면서 싸울 준비를 합니다. 10절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하게 하며' 집을 허물어서 그 집의 돌을 가져다가 성벽을 보수한다는 거예요. 11절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저수지까지 파고서 오래 싸울 준비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까지 준비하는 건 좋아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나'에요. 여러분 '그러나'가 모든 것을 뒤집는 거예요. 이렇게 열심히 준비를 하는데도 그러나 뭐가 문제인가? 진짜 준비는 무엇인가? 11절 하반절입니다. '..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게 문제인 거예요. 전쟁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병기고를 모으고, 물을 모으고, 성벽을 보수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다 했음에도 진짜 문제가 무엇이냐?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이. 바로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 너희들을 끌어오신 이. 여기까지 끌어오신 이를 공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병기고가 아니고, 물을 파는 것이 아니고, 성벽을 견고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살길이요. 그분이 우리의 참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놓치고 나면, 다른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나서도요.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거예요. 하나님 아닌 것, 하나님 보다 의지하는 모든 것. 애굽처럼, 구스처럼, 앗수르처럼, 바벨론처럼 다 사라진다. 결국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마음만 남는다. 그것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그 백성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왜 하필 가나안인가? 우리는 그 땅을 일컬어 흔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하잖아요? 가나안 땅이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여러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신명기 11장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사야 22장의 심판을 우리에게 말씀하신가?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하신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11장 10절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가나안은? 애굽 땅과 같지 않다. 애굽 땅은 파종한 후에 발로 물을 댔어요. 나일강이 너무너무 풍족하니까 발로 물을 대면 물이 부족하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채소밭에 물을 대기가 너무 쉬웠어요. 정말 농사짓기 너무 쉬운 거예요. 그런데 너희가 들어가는 땅은 어떤 땅이냐? 11절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라고 합니다. 여기는 저수지도 없고, 물을 저장할 수가 없어요.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에요. 여러분, 그러면 어느 땅이 농사하기 좋습니까? 언제나 물이 가득해서 원할 때면 언제든지 물을 댈 수 있는 땅인가요? 물을 흡수하는 땅인가요? 애굽 땅이 훨씬 좋지요. 진짜 이름을 붙이자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애굽이에요. 가나안은? 비가 와도 사라지기 때문에 물을 모을 수가 없으니 여기야 말로 척박한 땅 아닌가요? 그런데 이러한 땅으로 인도하신 이유가 뭐냐? 12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그 땅은 물을 저장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늘만 바라보는 거예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 그게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나일강이 아니에요. 어떤 방책이 아니라, 하나님만 바라보는 땅. 그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땅. 연초부터 연말까지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는 땅. 그 땅으로 너희를 인도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가나안의 젖과 꿀은 뭐예요? 하나님의 돌보심이에요. 하나님의 눈이에요. '연초부터 연말까지..' 일 년 내내 하나님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눈을 바라보면 어떻게 하신데요? 13절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이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이것이 이사야 22장 11절의 '앙망과 공경'이지요. 하나님을 앙망하여 바라보고, 그 하나님을 공경하여 섬기는 것. 그렇게만 하면 어떻게 하신다고요? 14절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즉, 너희가 이 땅에서 어떠한 방책을 세우지 않아도, 못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왜? 하나님이 너희를 바라보시고, 너희의 앙망과 공경에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적당한 때에 내려 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쁨을 가득 얻을 것이다. 그다음에 15절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하나님이 풀도 나게 하시어 목축도 잘 되게 하신다. 얼마나 좋아요? 하나님이 일일이 보시고, 다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고 채워주시는 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왜 오늘 이사야 22장 같은 일이 왜 벌어졌습니까? 16절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너희가 그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앙망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17절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여러분 오늘 이사야 22장은 이미 예언되었어요. 신명기 11장에서요. 아직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도 전에.. 이스라엘 나라를 설립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벌써 모압 평지에서 그들의 미래를 보여 주셨어요. 그런데 그 미래를 이스라엘은 잃어버렸어요. 왜요? 그들의 교만과 아집 속에 빠진 환상 골짜기에 살았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자기들의 환상에 갇혀서 하나님이 주신 이상을 바라보지 못했어요. 결국 그들은 주신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속히 멸망하고 말았어요.
오늘 하나님의 백성들이 걸어온 이 역사를 오늘 우리에게 돌아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내 자신을 돌아보라 하십니다. 과연 지금까지 내 인생을 이끌어 온 것은 나의 준비인지? 내 땅의 비옥함인지.. 아니면 누가 나를 도와주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의 선한 능력으로 내가 여기까지 하나님의 손에 그 품에 안겨서 온 것인지를 하나님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하십니다. 언제나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다시 한번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러한 나를 보면서, 눈물 지으시는.. 그리고 나를 다시 한번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이 예배의 자리로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닥칠 미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른 비와 늦은 비입니까? 아니면, 속히 멸망하는 소란과 분냄과 혼란입니까?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주님께서 선한 능력으로 안아주셨고 그 크신 능력으로 나를 붙들어 주셨음을 다시 한번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절망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랑하는 주의 얼굴을 구하며 온 것을 주님 앞에 찬양드리면서 다시 한번 우리의 삶도 선한 능력으로 일어설 것을, 주만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것을, 주님 오실 그날을 고대할 것을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에 새겨 넣는 복된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찬양 '주 선한 능력으로..'
"이 시간 기도하겠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나를 이끌어 온 것은 무엇인가? 물질인가? 성공인가? 안도감? 아니요. 그것은 하나님이 손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눈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채우시고, 내 가축들을 위해서 풀이 나게 하시고 하나님 나를 여기까지 돌보아주셨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나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배반했지만 하나님의 눈이 나와 함께 하셨고, 나를 도와주셨고, 여기까지 오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마무리 기도 : "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셨는데, 저희들은 하나님의 눈길이 아니라 다른 준비로 나를 채워보려고, 나를 만족시켜 보려고 내 환상을 따라 살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 그 안에 갇혀서 환상골짜기가 되어버린 우리의 삶 가운데 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말씀으로 다가오셔서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시고, 다시 한번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앙망하게 하시고 주를 공경하게 해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여 우리를 연초부터 연말까지 세미하게 지켜오신 하나님, 이른 비와 늦은 비로 가장 적당한 때에 우리를 채우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그렇게 많이 하나님을 실망시켰고 하나님을 떠나 살았는데 하나님은 신실하신 그 손길로 우리를 오늘까지 지켜주셨습니다. 돌아오라고, 다시금 내 뜻으로 나아오라고 주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셨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앙망하기 원하고, 주님을 공경하기 원하오니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다른 어떤 준비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만 의지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새 해를 준비하는 우리 모둔가 믿음의 준비로 든든하게 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 해를 맞이하게 해 주시고, 올 한 해를 온전히 감사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저희의 삶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지키시는 하나님 신뢰합니다.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하여주시고, 저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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