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36장을 지나 37, 39장까지 현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35장까지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이야기를 미리 바라보면서 예언하는 이사야의 예언이었고요. 그 예언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왔는데 분명 예언에서는 하나님께서 마침내 승리하신다. 마침내 열국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이 구원하신다고 했는데 현실로 와보니까 바뀐 게 없어요. 여전히 두렵고,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위기 속에 놓여 있단 말이지요. 이럴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하나님이 있기는 어딨어? 기도하면 뭐 해?'
아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그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고, 수고하면 현실이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문제가 해결되고, 뭔가 나아져야 하는데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단 말이지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은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분명히 말씀을 받았는데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품었는데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을 때..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데 현실은 여전히 나에게 험하기만 하고 부딪혀 오고, 내가 이것을 어찌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예요.
오늘 37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히스기야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네 가지의 동사가 나오는데.. 이것이 히스기야의 현재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듣고, 찢고, 입고, 갔고' 히스기야 왕이 들었다고 해요. 무엇을 들었나요? 앗수르의 적장 랍사게가 "너희가 믿는 게 과연 뭐냐? 너희 뭘 믿고 그렇게 까부냐? 애굽이냐? 그거 믿으면 다쳐. 아니면 하나님이냐? 하나님 별거 아니잖아.."라고 비웃는 거예요. 너희가 믿는 이방 나라도, 너희가 믿는 하나님도 별거 아닌데 왜 버티냐? 이제는 그만 항복해라"라는 하나님의 모욕을 해요. 그랬더니, 히스기야 왕이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자기 옷을 찢었어요. 옷을 찢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했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땅에 떨어졌을 때 안타까워하며 옷을 찢고 있는 거예요. 히스기야 왕은 지금 앗수르와 이스라엘의 싸움을 바라보는 게 아닙니다. 지금 히스기야 왕은 저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습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거예요. 지금 왜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으로 갔는가? 전쟁의 승리를 달라는 거 아니에요. 내 목적과 욕망을 이루어달라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이 현실을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참을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왕의 옷을 찢어버리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히스기야의 믿음과 우리와의 차이예요.
히스기야는 적어도 왜 한탄하고, 분노하는가? 우리가 지기 때문이 아니에요.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그는 지금 한탄하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연 그런가요?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으로 인해 견딜 수가 없습니까? 내가 손해 보는 것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우리는 안타까워하고 속상해고 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눈물로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이름, 영광과는 상관없지 않습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욕망이 아니고, 내 목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에요. 그것을 우리 삶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가?라는 것을 두고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2절입니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옷을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지금, 왕만이 아니라 왕궁 맡은 자와 제사장과 서기관들도 굵은 베옷을 입었다고 했어요. 왕이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것,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 받는 것에 대해서 분하고 원통해하니까 중신들도 동일하게 안타까워하며 베옷을 입은 것입니다. 이것이 리더의 중요성입니다. 리더가 과연 무엇을 가슴 아파하는가? 무엇을 지금 견딜 수 없어하는가? 가 중요한 거예요. 왕이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니까 그 밑에 있는 신하들도 그렇게 똑같이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사야에게 보냈습니다. 3절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왕의 말씀을 전하는 거예요. 왕의 마음이 뭐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오늘은 어떤 날? 환난과 책벌과 능욕이라.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받는 날. 그리하여 오늘 큰 환란과 책벌이 임할 것이다. 우리가 어쩌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렇게 능욕하는 자들이 되었는가?라는 것을 호소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지금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저 랍사게를 당장 벌하고 그 앗수르를 물리쳐서 하나님은 이렇게 강하시며, 살아계신 분이시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드러내고 싶은데 힘이 없는 거예요. 당장 그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드러내고 싶은데 자신들에게 그 힘이 없는 거예요. 그 안타까운 마음을 이런 표현으로 이사야에게 전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네가 믿는 하나님 어딨냐? 하나님이 있냐? 보여줘 봐라, 하나님이 있다면 네가 그 꼴로 사냐? 하나님 살아계신 거 맞냐?"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당장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지만.. 아이를 낳아야 하는 해산할 힘이 없는 여인과 같이 내가 너무 약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닌데.. 내가 너무 연약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지 못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마음을 지금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4절입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랍사가게 하는 저 모욕의 말을 분명 들으셨겠지요?라고 하는 거예요. '.. 그가 그의 성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나 하니라' 하나님께서, 랍사게가 모욕하는 마음을 듣고 마음이 상하셨을 것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견책하실까? "왜 너희가 이것밖에 안 되냐? 너희가 왜 이렇게 살아서 내 이름을 땅에 떨어트리느냐?"라고 하나님이 견책하실 것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올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 수 있는 주의 백성 되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라는 것과 같아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전쟁에서 지고 이기고 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게 하여 주옵소서. 여기에 초점이 있는 거예요.
5절 '그리하여 히스기야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이 말 전하러 갔더니 이사야가 이렇게 말합니다. 6절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이사야를 통해서 선포됩니다.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히스기야 왕에게 가서 전하라는 거예요.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너희 마음 속에 저 랍사게의 말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받는 것으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지 않느냐? 그 마음을 지금 하나님이 풀어주고 계시는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성령께서 그의 안에서 역사하실 것이라는 말이에요. 여기서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비웃으며, 거역하고, 조롱하는 사람이에요. 그러한 사람의 속에 성령께서 들어가실 것이다. 그러면 '그의 속'은 누구인가? 앗수르 왕이에요. 그러면 그가 어떻게 될 것이냐? '..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지금 전쟁하러 왔는데 예루살렘만 무너트리면 끝인데 그가 소문을 듣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서 분명하게 예언을 주시는 거예요. 그가 그의 종을 통하여서 이스라엘을 모욕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성령의 역사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돌아갈 뿐만 아니라 고국에서 칼에 죽을 것이다. 너희가 걱정하는 그 일, 두려워하는 그 일은 누구 해결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확언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과연 앗수르 왕이 소문을 듣고 돌아가서 고국에서 엉뚱한 자의 칼에 죽임을 당할까요? 말씀대로 됩니다.
이사야 37:36-38, '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십팔만 오천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군대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밤새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중에서 병사들을 쳐 죽였다는 거예요. 아침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에요. 그랬더니, 37절입니다. '37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자기의 성이 있는 도성으로 돌아간 거예요. 말씀대로 그가 돌아갔죠? 18만 오천의 군대를 잃었어요. 그리고 무슨 소문이 돌았을까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지금 예루살렘은 완전히 포위되어서 대적할 아무런 힘이 없는데 누가 이 일을 행했느냐? 여호와의 사자가 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고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랬더니 38절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이 왕이 돌아갔잖아요? 돌아가서 산헤립이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에서 경배했다. 분명 우리가 믿는 신이 살아있는데, 여호와에게 우리 신이 졌을까? 싶어서 자기 신에게 경배하고 있을 때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였다는 거예요.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고향에서.. 자신이 그토록 의지하고, 자신을 지켜주는 줄 알았던 신전에서 아들들의 칼에 의해 죽고, 그들은 도망하고 엉뚱한 아들이 왕이 되었다. 여러분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역사는 그렇게 기록할 거예요. 산헤립은 아들들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었고 다른 아들이 왕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알잖아요?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가 18만 오천명을 치고, 하나님의 예언대로 그를 거기서 죽게 하신 거지요. 어떻게 이 일이 벌어졌냐? 그 일의 동력이 무엇인가? 37:21절입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
이스라엘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냐?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기도하는 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가 모든 선한 일의 동력입니다. 기도할 때, "저를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그 이름을 높이 받으옵소서."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셨다는 거예요. 이 기도가 들려오니까,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셨다는 사실 기억하시겠어요?
여러분, 기도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한 절만 더 보겠습니다. 32절입니다.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안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과 주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그 열심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열심은 별 것 아닙니다. 우리의 열심은 오히려 일을 망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내 몸을 상하게 하고, 남의 맘 상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즉,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그 일을 반드시 이루어 내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기도하는 거예요.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여호와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면 그때부터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열심이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하나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상황은 정말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 히스기야가 아무리 대단한 군사를 거느리고 있고, 어떤 대단한 재주가 있어도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었어요. 그런데 그가 이 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했더니..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왕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 놀라운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해보려고 발버둥을 쳐보다도 별로 진전이 없을 수 있어요.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실 때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해 내시며, 역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게 임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오늘도 믿고 기도함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 들어주시고 우리 삶 가운데 온전한 승리로 임재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혀 주시옵소서. 우리의 막혀진 귀를 열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닫혀진 마음, 두려운 마음을 열어 주시옵소서. 주님여 오늘도 우리는 기도하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해보려 하고, 내가 노력해서 상황을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꺾이는 것을 한탄하면서 가슴 아파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어 가실 줄 믿습니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를 물리쳐 주시고, 히스기야의 나라를 구원해 주셨음을 기억합니다. 그 사실을 믿고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에 '네가 그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그것을 인정해 주시고 받아주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 우리 가운데도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우리의 모든 하나하나의 일들을 이루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복된 삶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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