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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설교문

[새벽설교] 잠언29:15-27 I 오직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I 삼일교회 황근배 목사

by №1★↑♥ 2021. 6. 25.

[새벽설교] 잠언29:15-27

오직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삼일교회 황근배 목사

  오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잠언서는 히스기야 왕이 신하들을 시켜서 수집하고 편찬한 솔로몬의 잠언 25-29장 가운데 끝 부분입니다. 특별히 29장 같은 경우는 말씀에 따라서 세 가지로 다시 세부적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15-20절, 자기 절제와 훈육

여기에서 저자는 훈육의 대상으로써 자녀와 백성과 종에 대해서 말씀. 이러한 훈육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 

2. 21-23절, 죄의 본성 때문.

  하나님의 율법을 통한 반복적인 교육이 인간의 죄성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3. 24-27절, 혼탁하고 불의한 세상 가운데서 절대주권자이신 분은 오직 한분 하나님.

여호와의 경외성에 대한 필요성 강조.

 

결국 히스기야는 그의 신하들을 통해서 편찬된 솔로몬의 잠언집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복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말씀에 보니까, 본문의 첫 구절인 15절과 17절에서는 '자녀에게 채찍과 꾸질함을 내려야만 올바로 교육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기쁨이 있다'고 성경을 통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체벌에 대한 말씀은 여기에만 있지 않습니다. 잠언 13:24, 19:18, 22:15, 23:13-14에 보면, 자녀에 대한 체벌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에서 말하는 '채찍과 교육'은 물리적인 체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7절에 보니까, '평안'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여기서 평안은 정처없이 떠돌다가 한 자리에 정착하였을 때 쓰는 단어입니다. 곧, 평안한 쉼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그러한 평안한 다음에는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이란 '나단'이라는 용어로, '맛있는 음식' 곧 진수성찬을 뜻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징계를 통해서 자녀를 키운 부모는 마음의 근심을 덜고, 평안을 누리는 동시에 진수성찬을 먹을 때와 같은 기쁨과 감사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말하는 '채찍과 교육'은 물리적인 체벌이 아니라, 바르게 가르키기 위한 훈육의 한 과정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18절에서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사야 1:1, 호 12:10을 보면, '묵시'라는 말에 대해서 원문상 '꿈, 환상' 등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로써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부분에서는 예언 뿐만 아니라, 율법과 교훈, 명령 등 하나님의 말씀을 종합적으로 표현하는 말로써 사용 된 것입니다. 또한 '방자히 행하다'는 말은 '파라'로 '굴레를 벗겨내고 느슨하게 행하다'라는 뜻입니다. 곧, 사람이 규범을 벗어나서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날 뛰는 행위를 표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18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굴레를 벗어난 망아지처럼 마구 날뜀으로써 혼란과 파멸을 가지고 오고, 망하는 길로 향하지만.. 율법을 지켜서 온전히 행하면 질서와 번영이 온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사기 2:10에 보면, 그 당시에는 하나님의 이적을 체험하면서 가나안을 정복하였던 모든 세대가 죽어서 더 이상 그 말씀이 전해지지 않던 세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야 말로 규범과 기준도 없이 모두 자기 뜻대로 행하던 암흑기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방자한 음부처럼 우상을 섬기며, 망령되이 행하여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에스겔 16:30에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공동체와 우리가 속한 모임과 교회가 더 나아가서 국가가 올바르게 운영이 되려면,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에게 예언과 율법. 즉, 하나님을 따르는 삶의 원리에 대해서 가르쳐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 어떤 부작용이 따르냐? 19-21절을 보니까, 이러한 공동체의 교육이 이뤄지지 않을 때에 당하는 피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21절,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 여기서 곱게 양육하다는 말은, 지나친 사랑으로써 애지중지 키운다는 말을 담고 있습니다. 항상 낮은 자로써 굴복해야 할 종이 주인의 사랑이나 호의를 받는 것은 축복되고 감사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줄 착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엄한 훈계와 적절한 말로 가르치지 않으면 그 종은 나중에 성인이 되기까지 통제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살아야만 합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을 통하여서 예수님의 삶을 사시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섬김의 모습이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가르침입니다.

 

  이어서 22-24절까지의 말슴을 보니까, 공동체의 교육에 있어서의 실제 사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2절,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고 하면서 분노를 다스리는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허튼 분노는 공동체 안에서 다툼을 발생하게 하고, 더 나아가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23절을 보니까, 교만과 겸손함에 대해서 강조하면서 이러한 허다한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서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겸손하게 사는 성품을 교육시키라고 합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24절, '도둑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그는 저주를 들어도 진술하지 아니하느니라' 여기에서 '도적'이란 악행을 일삼는 죄. 다시 말해서, 영혼을 미워한다는 것은 자기의 생명이 위중하게 됨을 뜻한다. 곧 악행을 일삼는 죄인은 자기의 생명이 위중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단의 함정과 계략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악은 처음부터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내 자신을 정결케 할 수 있는.. 그리고 은헤의 자리에서 온전하게 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죄의 자리에서는요? 결코 속하지 않는 삼일의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훼방하는 말들과 이방에 대한 방해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함으로써 온전한 분별력을 갖고자 우리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곧 믿는 자들이 지켜야 할 믿음의 신의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25-27절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적 관점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한번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25절에 '안전하리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높다. 미치지 못한다'는 동사입니다. 곧 하나님만을 경외하면 망대나 요새나 높은 곳에서 안전히 거함으로써 평안케 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26절에 보니까, '주권자에게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으나 사람의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여기서 은혜를 구한다는 것을 직역하자만 '낯을 구한다'는 것으로 환심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행위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어떤 중대한 문제나 고민에 직면했을 때는 사람을 바라보기 보다는 영적인 눈으로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진정한 재판의 결과를 이끌어내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친구와 영향력있는 인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다시한번 강조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잠언 29장 전체의 마지막으로써, 27절은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곧, 의인과 악인은 서로를 미워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의로운 사람과 악한 사람은 함께 동행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을 교육함에 있어서, 또한 그곳에 속함으로 인해서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중에 반드시 하나를 택하여야 하고, 그렇게 가르쳐야만 합니다. 이는 관점의 차이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 땅 가운데서 어떤 관점을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세상적인 관점과 즐거움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갈 것인가?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지 마시고 우리 삼일교회 성도라면 하나님의 관점으로써 온전한 의인으로써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귀한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에 소흘히하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공동체가 무너지고, 지혜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로지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다시한번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곧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 가운데서 얼마나 지금 시끄럽습니까? 질병 문제 때문에.. 그리고 연이어 발생하는 가문과 사건과 사고들 때문에 혼탁한 이 세상 가운데서 불완전한 삶의 환경 가운데서 오직 여호와만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경외하는 삶을 가르치고 배우고 따르는 것만이 이런 삶 가운데서 안전하고 온전하게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혼탁한 세상 가운데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써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가운데 점차 공의가 사라지고, 정의성을 잃어버리고 욕망과 탐욕이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는 이런 악한 세대에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써 참된 길을 걷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 되어 이 땅에서 자정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아버지 하나님, 모든 특생의 기간, 3주차의 기간을 잘 마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가운데 큰 은혜를 받았사오니 말씀으로 산 소망을 깊이 체험하였사오니 이런 특새의 은혜가 선교의 감동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오직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고민과 걱정이 넘친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함으로써 옳은 길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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