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다 귀하고 소중하지만,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되냐 하면? 성경에는 꼭 필요한 말씀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아브라함의 일생을 볼 때에 그의 모든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굉장히 중대한 사건,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 속에서 일어났던 아주 정점이 되었던 사건 위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출애굽 하는 데 있어서 여기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꼭 필요한 열 가지 재앙, 홍해 도하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린 사건과 아주 중요한 사건들 위주로 성경은 기록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출판 기술이 없었고, 성경이 수십수백 권 될 수 없다 보니.. 하나님께서 말씀의 선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꼽으라면 십계명이라 생각합니다. 이건 성경 전체의 요약이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고요.
출애굽기 20장 12-17절, 새벽 설교
높은뜻정의교회
특별히 이 십계명은 모세가 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친서로 써주셨거든요. 성경 중에 하나님이 직접 손으로 써주셨다는 언급이 있는 것은 성경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써 주셨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단 말씀이지요. 성경에서 중요한 말씀의 기준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직접 하셨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저는 주기도문을 꼽고 싶습니다. 주기도문 역시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잖아요. 제자들이 쓴 게 아닙니다. 신약시대의 예수님께서 다시 재해석하신 것이 산상수훈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첫 설교입니다. 처음으로 하신 설교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 산상수훈을 예수님의 첫 수업이었다고 재미있게 표현하시기도 하셨더라고요. 그 산상수훈의 첫대목이 팔복입니다. 그 말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팔복의 사람으로 만들어 갈 텐데 이 팔복의 사람이 산상수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모습입니다. 내가 너희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겠다. 이걸 선망하고 살아라. 이게 산상수훈이고 그 첫대목이 팔복입니다. 팔복은 존재론입니다. 우린 이런 사람으로 처음부터 지음 받은 것입니다. 그걸 알려주는 것이 팔복입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중요한 핵심 교리들만 추려낸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마틴 루터는 성경 66권이 꽃밭이라고 한다면, "이 사도신경은 그 꽃밭에서 꿀만 모아놓은 것이다."라고 했고, 또 어떤 분은 더 나아가 "그중에 로열제리다."라고 했거든요? 인생을 떠 받치는 열개의 기둥이 있는데, 그 열개의 기둥이 든든히 서 있다면 우리는 잘 살 수 있다. 십계명이 열개의 기둥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교제, 주기도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약 행복하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다면 이것부터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섯 개의 기둥이 온전히 서 있는지.. 이웃을 사랑하는 기준이 온전히 서 있는지.. 신문 사회면을 보면, 다 이웃 사랑 못해서 불행해진 결과잖아요? 누구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 이하에.. 특별히 마태복음에만 이렇게 표현되어 있는데요.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여기 중요한 말씀입니다.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라고 했어요. 이 두 개가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은 이웃과의 관계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어제는 1-4 계명,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고요. 오늘은 5-10 계명으로 이웃 사랑에 관한 말씀입니다.
첫 번째로, 오계명은 12절에 보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 라' 했어요. 부모는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제일 처음 만나는 이웃입니다. 1-4 계명을 보면, 하나님 사랑에 대한 말씀이기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요. 반면 5-10 계명까지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이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지만 유독 5 계명만큼은 '하나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왜 하나님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이 5 계명은 단순히 부모에 대한 공경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공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함으로,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도 포함. 그러면 교만에서 떠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왜 어른들은 공경해야 할까요? 그것은 어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어른을 공경할 수 있을 때 나는 교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이들이 알아야 하거든요. 요즘 아이들이 검색으로 지혜를 얻기 때문에 옛날처럼 웃어른으로 지혜를 전수받지 못하기 때문에 공경이 아주 취약해졌는데? 그러면 교만해집니다. 윗사람을 윗사람이기 때문에 공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교만에서 떠날 수 있고, 겸손할 수 있습니다. 이 5계 명의 정신은, 하나님께 겸손과 복종으로 자유함을 얻는다는 진리입니다. 부모를 공경함으로 그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 라'
6 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네 이웃의 생명력을 죽이지 마라. 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웃의 생명력을 크게 할 때, 나의 생명력도 커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이웃의 생명력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시자,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살인하지 말지니라. 즉, 서로의 생명력을 크게 하라. 이웃의 생명력을 쇠하게 하지 말라. 적극적으로 하자면 이것이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적인 문화에 반대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 그게 십계명의 말씀입니다.
7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인데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적인 존재로 만드셨어요. 성은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전인격적으로 하나가 되는 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닮은 형상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가장 아름다운 것을 훼손시켜놓거든요. 성을 아주 아름답지 않게 만들어놓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성교육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성에 대해서 교회가 너무 쉬쉬했다. 그 결과 우리의 아이들이 이렇게 되었다. 여러분 아이들 탓만 해서는 안됩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아이들이 당한 거예요. 아이가 성적으로 좀 선을 넘었다고 했을 때, 아이에게 엄청 실망할 수 있는데요? 책임은 사실 부모에게 있습니다. 안 가르쳐 주었거든요. 성에 대해서 우리가 바른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성은 한 사람에게 헌신적으로 나 자신을 나누어 주는 것이고, 그 결과 귀한 생명을 얻는 것이고 그 결과 가정을 이루게 하시는 놀라운 기적과도 같은 것이거든요. 그래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대로 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적인 존재가 될 때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7 계명이 오늘 이 사회에서 얼마나 많이 어겨지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을 어떤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추악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인생을 떠받치는 10개의 기둥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성은 동성애도 그렇고 왜곡된 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정상적으로 이 성 하나가 열개가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삶이 빈약한 것입니다. 성적인 유혹이 힘들다. 내 삶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9개를 풍요롭게 하면 됩니다. 성교육은 7 계명만이 아니라, 나머지 9개의 계명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여러 가지로 풍요로우면, 기본적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내가 충만하고 내가 풍요로운데, 뭐가 아쉽다고 그런데 골몰합니까? 뭔가 공허하니까.. 클럽 가서 찾는 것입니다.
8 계명은, 마틴 루터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서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 안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살고 사랑을 통해 이웃 안에 산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믿음을 통해 그는 자신을 초월해서 하나님께 사로잡힌다.' 우리가 왜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께 사로잡히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삽니다. 중립적 존재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히지 않으면 다른 것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통해 그는 자신 아래로 내려가서 이웃 안에 다가간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 안에 언제나 거한다.' 이걸 그리스도인의 자유라고 루터가 요약을 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은? 이웃의 소유를 지켜주라. 그럴 때 네 소유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기서 주어지는 자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9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에게 손해를 주기 위해서 거짓 증거 하지 말라. 긍정적으로 말하면 '네 이웃의 명예를 소중히 여겨라.' 우리는 서로의 명예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말을 참 조심해야 합니다. 잠언에 보면, '남의 이야기하는 것은 뱃속 밑으로 들어가는 달콤한 간식과 같다'라고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교황은, '험담만 안 해도 성인이 됩니다.'라는 책도 썼습니다. 우리는 남의 명예를 소홀히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남에 대해서 험담을 즐겨해서는 '니 인생이 견고해질 수 없다. 남의 명예를 소중히 여겨줄 때 네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그런 말씀이고요.
마지막 10번째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마라'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는 탐심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웃의 생명을 탐하는 것이 살인이지요. 이웃의 성을 탐하는 것이 간음이지요. 이웃의 소유를 탐하는 것이 도둑질이거든요. 탐심이라는 것이 다 달려있습니다. 탐욕스러워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 사랑함을 포함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업을 하든, 공부를 하든, 거기에 하나님 사랑함이 결여되어 있으면 우리는 탐욕에 빠지게 된다는 말씀으로 십계명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십계명은 한 마디로 1 계명으로 대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길 때 우리는 사실 인생이 열개의 기둥이 견고하게 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제오늘 십계명의 말씀을 간략하게 살펴보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렇게 살아야 너희가 자유하고 행복해, 아니면 협박당하는 것 같습니까? 그래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아! 이럴 때 우리가 정말 자유로울 수 있는 거구나! 우리가 이렇게 못해서 자유롭고, 행복하지 못했구나~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에 대해서 사랑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생만 주셨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인생을 살 때 자유하고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주 요기하게 필요한 말씀. 십계명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출애굽 이후에 시내산의 정점에서 하나님이 직접 써서 주신 말씀이 십계명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으로 인생을 더 견고히 세워나가면서 더 자유하고 행복하게 살 때, 우리가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해 드리라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이렇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시고 우리에게 이렇게 참 하나님이 인간에게 잔소리를 하시고, 이렇게 살아야 너희가 행복할 거라고 이렇게 살아야 너희가 자유하다고 그 사랑의 음성을 우리는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이 새벽에 우리가 그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그 누구의 말을 떠올리기 전에 우리가 가장 먼저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십계명의 말씀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자유하고, 행복하게 살고 나서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가서 "네, 하나님. 당신이 주신 인생을 이렇게 자유하고 행복하게 잘 살다왔다고"라고, "감사했다."라고 그렇게 정겨운 담소를 주님과 나누는 그날이 오기까지 이 땅에서 주어진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얘들아 이렇게 살아야 행복하단다 그 말씀을 우리가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말씀을 놓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유하고 행복할 수 없는 길로 가는데 이 십계명의 말씀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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