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정리한 것이 십계명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명, 율법 하면 우리가 자유케 된다기보다는 뭔가 좀 제한되고 얽매인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요. 그런데 사실 십계명은 진정으로 우리로 하여금 자유한 삶으로 인도해주시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11, 새벽말씀
높은뜻정의교회
여러분들은 어느 때 가장 자유함을 느끼고, 어느 때 가장 행복을 느끼십니까? 우리들의 느낌이나 경험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유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행복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런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를 잘 모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이것은 비단 수천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주신 다음에 십계명을 주셨습니까? 출애굽 전에 주셨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해주시기 전에 십계명을 주시고, '너희들 이 열 가지 계명 지키면 구원해주마! 지키지 않으면 구원하지 않겠다!'라고 한다면, 이 십계명은 복음이 아니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십계명을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다음에 주셨다는 것입니다. 구원해 주신 다음에 십계명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건 복음입니다. 430년 동안 노예로 살아온 이스라엘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자유로운 삶인지를 모르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 전까지 어떤 삶이 자연인의 삶인지를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믿지 않으시는 분들을 보면, 여러분 자유해 보입니까? 겉으로는 그래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자유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때만 하나님 앞에서 자유할 수 있기 때문이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오늘 우리가 자유함을 느끼는지.. 진정으로 행복함을 느끼는지.. 한번 돌아보십시오. 만약에 그렇다면, 분명히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같은 것으로 보거든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십계명은 가치론이 아니라, 존재론이고 관계론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자유함을 느끼고 있지 않다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어떤 부분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이웃을 사랑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고요. 오늘은 4 계명까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부분은 하나님 사랑의 부분입니다.
첫 번째는, 3절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 말씀을 좀 더 쉽게 풀면, '너희는 이제 나의 백성이 되었다. 그래서 자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 외에 다른 것을 나만큼이나 의지하고 섬기면 너희는 자유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너희는 나 여호와 외에 다른 것에 나만큼 자리를 내어 주지 말거라.' 그런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어구는 '나 외에는'인데요. 이 말은 '나와 동등한', '나와 나란히' 그런 뜻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우리가 그런 잘못을 하니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과 동등하게 하나님과 나란한 선상에 놓고, 의지하는 대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1 계명 앞에 또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하나님만큼 의지하는 게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하나님 만큼 의지 하지 않지요? 오히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죠?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할 수 있습니다. 제가 결혼식 주례할 때마다 꼭 읽어주는 시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내게 가장 귀하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배웠을 때, 비로소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을 지금 보다 더 잘 사랑할 수 있었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줄어들고, 하나님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려고 할 때, 가장 사랑하는 그 사람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그 상태로 만들 게 될 것이라네. 첫 번째 것이 첫번째 위치에 놓였을 때, 두번째 것은 억압받는 것이 아니라, 더 증가하는 것을..' 그랬거든요?? 일계명이 바로, 첫번째 것을 첫번 째의 위치에 놓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의지하고,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했을 때 다른 모든 것들은 더 건강하게 섭니다. 그게 일 계명입니다. 여러분 사실 십계명은 일계명 하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2-10계명은 어찌보면, 1계명의 주석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강조하냐면, 우리가 이렇지 못하거든요. 우리는 자식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그 결과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첫번째 두고 있으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서 첫번째 것이 첫번째 자리에 놓여 있는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가? 그걸 한번 돌아보고 기도해볼 수 있어야겠고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때, 다른 모든 것도 더 잘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서 부부관계에 어려움이 있거나, 자녀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사람대 사람의 문제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우선 내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가? 그것부터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때, 집착에서 놓일 수 있거든요. 하나님께 맡길 수 있거든요. 배우자도 맡길 수 있고, 자녀도 맡길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랑이 아니라, 집착을 하지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모든 관계도 잘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2 계명은 4절입니다.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일계명이 왜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 한다면 2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 하나님과 동등하게 다른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더니,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다른 우상을 만들지 않았어요. 만들지 않는 대신에 하나님을 우상화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놋 뱀을 만들어서 그것이 하나님이라며 숭배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낳거든요? 그랬더니 그 지팡이를 섬길려 했습니다. 그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얘들아, 나랑 나란히 다른 우상 섬기지 마라" 그랬더니, 하나님을 우상화 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우상화하느냐? 내 맘에 드는 대로 하나님을 바꾸는 거예요. 하나님을 하나님 자신대로 보지 않고, 내 욕망을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으로 축소시킵니다. 그래서 왜 자꾸 우리가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서 알아가야 하냐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우상화시키고, 하향 조정하기 때문입니다. 시편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같은 줄 알았도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꾸 나 같이 만들어요.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하나님 되지 못하시는 거지요. 그러니까, 2 게명은 하나님을 우상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도널드 맥컬러 목사님이 '내가 만든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4살짜리 어린아이는? 아빠를 늘 사탕을 주는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어른이 되었다면 아버지를 좀 더 바르게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탕 주는 아빠 정도로 늘~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계명은, 너는 나를 욕망을 이루어주는 정도의 신으로 축소하지 말아라. 그리고 나는 그 이상인 줄 알아라. 그리고 더 신뢰하고 나의 통치를 받아라. 그게 바로 2계 명의 말씀입니다. 2계명의 말씀에 비추어서 나는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축소하고, 우상화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비추어서 점검해보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내 기도가 빨리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불만한다면, 내가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우상화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봐야 합니다. 하나님, 사탕 주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C.S 루이스는 '치과 의사와 같다.'라고 합니다. 아파도 고쳐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있는 것인가? 끊임없이 말씀으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3 계명은 7절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부정적인 표현으로는 '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이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부르라'는 뜻입니다. 이름은 존재를 내 앞에 현존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 내 앞에 하나니을 모시는 것이고, 그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존재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부른다는 것은 연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마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잖아요? 그것은 그 기도의 내용이, 예수님의 마음과 합하도록 기도합니다라는 뜻입니다. 만일 기도의 내용이 악하고 못 된 내용으로 가득하다면, 과연 그 기도가 예수님의 마음과 합한가? 그래서 3계명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부르는 만큼, 그에 합당한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1, 2, 3 계명이 전부 연관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불러놓고, 하나님 아닌 존재 앞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면, 그 이름에 합당하게 거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부르는 하나님. 그와 걸맞은 존재가 될 때 우리가 자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주 엄청난 내용을 요약하려니까 많이 힘드시죠?
4 게명, 8절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입니다. 1-3 계명까지는 사람은? 하나님을 등 뒤로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갈 때 자유할 수 없다. 하나님께로 달려가 안길 때 자유할 수 있는 그 말씀이라면 4 계명은? 자유하게 되는 구체적인 실천방법입니다. 안식일 게 명은, 출애굽기 16장으로부터 유래합니다.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잖아요? 그런데 꼭 하루치씩만 주셨습니다. 그 말은 매일매일 나를 의지하면서 살아라. 그 뜻입니다. 일곱째 날은 양식을 거두러 나가지 않게 쉬게 했습니다. 여기서 안식일 계명이 유래가 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매일 매일 나를 의지하면서 살라. 너희의 삶을 지속시켜주는 것은 너희의 하나님 나 여호와라는 것을 신뢰해라. 그런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두려움이 있거든요. 우리는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하고 싶어 합니다. 저축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의 안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 믿지 못하면 내가 내 안전을 확보하느라, 이웃의 것을 착취하고, 빼앗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너의 안전을 내가 보장한다는 것을 믿어라. 거기서 우리는 베풀 수 있고, 나눌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럴 때 진정 자유하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이 열 가지 계명에 다 저항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우리는 자유하고 행복하지 않거든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살 때 자유하고 행복할지를 잘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너희는 가장 행복하고, 자유하도록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라. 그게 바로 십계명입니다.
오늘 1-4 계명까지 보았는데요. 어떤 게 가장 크게 와닿으셨습니까? 그게 지금 내 영혼의 상태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그 부분을 놓고 기도하셨으면 합니다. 1 계명이 가장 크게 와닿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그 부분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축소시키고 있다고 느끼셨습니까? 하나님은 내 자식이 잘 되게 하시는 분 정도로만 축소시키고 있다면.. 그 부분을 놓고 기도하십시오. 세 번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 내용은 다 거룩하지 못한 것이라면.. 내 안전을 내가 확보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다 보니, 빼앗고 착취하면서 베풀지 못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지..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가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 지금 우리가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자유하지 못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입니까? 특별히 오늘은 네 가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분에 대해서,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 그 하나님보다 더 의지해서 그것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까? 그래서 자유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습니까? 첫 번째 것이 첫번째 위치에 놓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함으로 내 배우자를 더 잘 사랑할 수 있고, 자녀들을 더 잘 사랑할 수 있고, 내 웃을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그 자유와 행복함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하나님을 우상으로 축소시켜 좋고, 그게 내 하나님이라고 우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우상화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은 더 크십니다. 하나님은 내 소원을 들어주셔야만 내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면서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는데 그 내용이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치 않다면 자유하지 못하고, 기도를 해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거룩하게 부르는 만큼 내 삶의 내용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우리는 걱정 근심이 참 많습니다.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일들까지 끌어와서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5년 후에는 5년 후에, 내일은 내일 예비하신 은혜가 있는데 그걸 믿지 못해서 내가 내 안전 확보하느라고 자유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의 안전을 보장하심을 믿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움켜쥔 손을 펼쳐서 이웃에게 베풀 줄 알게 하시고, 이웃의 것을 빼앗지 않게 하시고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자유함과 행복함이 오늘 우리의 삶에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1-4까지 4가지 계명의 말씀을 듣게 하셨는데, 나에게 가장 사무치게 다가오는 그 한 말씀을 붙들고 이 새벽에 기도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사랑함으로 오늘 하루도 자유하고 행복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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