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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이찬수목사

설교문 I 고난주간 I 당신이 맺어야 할 세가지 열매(1) | 이찬수 목사 | 마가복음 11장 12-25절

by №1★↑♥ 2023. 3. 13.

고난주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후에 주님이 걸어가셨던 행적들을 돌아보고 점검하며 묵상하는 시간들로 보통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예수님께서 그날그날 행하셨던 행적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뽑아가지고 묵상하고 생각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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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맺어야 할 세 가지 열매 | 마가복음 11장 12-25절

 -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 - 

오늘은 첫날, 월요일입니다. 월요일은 예수님이 하신 중용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는 일이셨고, 그리고 또 주님이 하신 일은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일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기록한 본문을 보면 구조가 굉장히 독특합니다. 먼저 본문 11장 12-14저까지는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대한 심판 이야기가 나오고 그리고 바로 그다음에는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이 기록이 되고 그리고 다시 20-25절까지에서는 처음으로 돌아와서 열매 맺지 못하고 말라죽어버린 무화과나무 이야기로 전개가 됩니다. 이걸 샌드위치 구조라 합니다. 

왜? 마가는 무화과 나무 저주 사건 사이에 성전 청결 사건을 끼워두었는가? 보통은 한 사건을 마무리하고 그다음으로 넘어가는데 왜 이렇게 기록을 했을까? 이 두 사건이 연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계하신 그 사건을 통해서 그 당시 백성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무화과나무가 무슨 죄가 있었을까요? 마가가 기록하기를 '아직은 열매 맺을 때가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를 통해서 타락한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주는 경고가 있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를 예수님이 어떻게 상대하고 가 아니고,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가지고 경고하시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거를 샌드위치 기법을 가지고 마가가 기록하고 있다고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이 도대체 어땠길래?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면서 경고를 주시는가? 여러분 다 아시지 않습니까? 마가복음 11장 15절 부터입니다.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예수님 눈으로 보시기에 지금 그 성전의 강도의 소굴이라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늘 분당우리교회에서 드리는 이 본당을 보면서 여기를 강도의 소굴이라 평가하신다면 등꼴이 오싹한 거 아닙니까? 그 정도로 엄청나게 예루살렘 성전이 타락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무서운 심판을 경고하시기 위하여 무화과나무를 사용하고 계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유념하시고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될 메시지를 받아야 된다.

그중에서 첫 번째로 본문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네가 이 뭐냐 하면? 심판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고난주간 동안 우리가 왜 금식도 하고 저녁에 모여 집회도 하냐? 주님이 십자가 지실 수밖에 없는 인간의 죄성. 그리고 또 오늘 예수 믿는 우리 내면에 남아 있는 죄의 찌꺼기로 말미암아 언제든지 변질되고 타락할 수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경고. 이 두려움을 우리가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제저녁에  교단에서 신실한 부분이 코로나 19 와중에도 어마어마하게 모였습니다.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는 기도회가 열렸는데 그곳에 제가 강사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제가 사용했던 본문이 사데 교회를 향한 주님의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제가 오늘 서두에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너무나 갈망해서 모여든 그분들 앞에서 드린 말씀이 뭐냐? 제가 보기에는 좀 그래요. 여러 순서가 많고, 행사가 많고.. 그러다 보니 아쉬움에 제가 서두에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여러분이나 제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진짜 갖추어야 할 중요한 마음은 두려움을 갖는 것입니다. 마음의 두려움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데교회에 기록해 놓은 것은? 세상에 이렇게 타락한 교회가 있었음을 너희도 알아라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런 사데교회와 같은 타락의 가리로 갈 수 있는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으로 우리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길을 가지 않도록.. 

그래서 그 본문이 계시록 3:1, '1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분당우리교회는 엄청 화려한 교회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입니다. 그리고 내막을 잘 모르시다 보니 분당우리교회에 대하여 칭찬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뭘 두려워해야 한? 자칫 잘못하면 사데교회처럼 되기가 쉬운 거예요. 잎사귀가 엄청 무성한데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주님께서 경고하시는 말씀이 오늘의 본문이라면.. 오늘 우리가 모두가 다 뭘 두려워해야 합니까? 우리도 잎사귀만 무성하고 사람도 많이 모이고, 많이 알려져 껍데기는 화려한데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두려움을 가지고 고난 주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나님이 저희들에게 주시는 거 아닙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 3:17절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네 곤고한 것과 가려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오늘 본문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잎사귀가 무성합니다. 엄청 화려합니다. 그래서 자신도 속는 거예요. 우리는 부자라, 부족한 게 없다. 뭐가 모자라냐? 이게 인간의 죄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성경을 읽을 때마다 두려운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거예요. 항상 우리는 이러한 외화내빈. 껍데기만 화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고난 주간 집회 내내 우리 내면의 이런 건강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 내용을 묵상하다가 우연히 마태복음 18장  8-9절 말씀을 마음에 깊이 돌아보게 되었는데요.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 내 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 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게 일종의 과장법 아닙니까? 누가 이런 마음의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까? 심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건, 이 심판에 대한 두려움. 이 한국교회가 분당우리교회가 이 시대에 편승하 다 보니까 겉이 너무 화려해요. 집회를 다녀보면, 교회들마다 너무 시끄럽고, 악기도 너무 대단하고, 드럼소리도 너무 커요. 그래서 너무 시끌벅적한데.. 그 내면 깊이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없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저것들이 비판받지, 나는 영적으로 부자라. 육적으로 부요해서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럴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분당우리교회 예배도 너무 화려해요. 너무 다 갖추고.. 저는 이번 고난주간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내면에 이 두려움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항상 라오디게아 교회가 될 수 있고, 사데교회가 될 수 있고, 잎사귀는 엄청 무성한데 거기에 정작 열매가 없는 초라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이걸 우리가 기억해야 되고요. 

 

 

그런가 하면, 본문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기억해야 될 교훈이 있는데요. 이 회복에 대한 주님의 갈망. 이게 참 눈물겨운 이야기예요. 이 주님의 갈망하심. 우리가 얼마나 회개하고, 회복되어 되돌아서기를 주님이 갈망하시는지.. 12절을 보겠습니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제가 어느 글에 보니까 여기에 나와 있는 '시장하다'는 이 말이 중의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시장하다'를 헬라어로 보면, '간절히 열망하다, 바라다'는 뜻을 내포하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중의적인 표현, 우리나라도 많이 쓰잖아요? 그래서 제가 뒤져보다가 이런 머리기사를 보았습니다. '개열사 114 카카오 왕국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기사는 안 읽어봤습니다. 지금 개열사가 114개나 되는 거대한 기업이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는 것이 사장님이 일 많이 해서 짜장면 먹고 싶다는 뜻이 아니잖아요? 영어식으로도 이런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2002년 월드컵. 우리나라가 8강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잖아요? 한 번도 16강에도 못 올라갔는데 8강에 올라가더니 당시 감독이 "I'm still hungry" 이게 훈련 많이 시켰더니 배고프다는 뜻 아니잖아요? 오늘 예수님께서 이 중의적인 표현을 통해서 주님께서 시장하신 지라는 표현을 통해서 주님이 간절히 갈망하고 계시다. 간절히 열망하고 계시다. 

무엇을? 마치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하고 화려한데 내막을 들여다보니 열매가 없는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이 겉보기에는 엄청 화려하고 원근 각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북적북적거리는데 들여다보니까 영적으로 메말라 죽어 있는 상태더라.. 그래서 우리 주님은 그 무화과나무를 통하여 경고를 보내면서 그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복을 목말라 갈망하신 거예요. 이건 한국교회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저를 포함하여 너무나 변질되고, 무기력하여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네가 겉은 화려한데? 실상은 죽었다." 이런 극단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데교회처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오늘 한국교회를 향한 갈망, 목마름. 너무너무 주님이 탄식하면서 주님은 교회의 회복을 위한, 예수 믿는 심령들의 회복에 대한 주님의 갈망이 있다는 것.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마음에 뜨거움이 생기더라고요. 아버지가 자식들을 보면 참 안타깝잖아요. 지들 나름대로는 한다고 애를 쓰지만 조금만 더 방향을 좋겠는데.. 조금만 더 애를 쓰면 좋겠는데.. 이게 무슨 소용없다는 거 알면서 계속 잔소리하잖아요. 했던 말 또 하고.. 그러나 그것이 아비의 마음, 어미의 마음.. 사실 29 교회 목사님들께 인간적으로 미안해요. 목사님들은 잘 들어주셨는데, 진짜 저는 공포의 반복이에요.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미안해서 카톡 보내요. "앞으로 안 할 거라고.. 소집도 안 할 거라고.." 그래놓고선 오후에 또 불러요. 그리고 또 하고.. 우리 성도님들한테 잘 안 해주면 나 가만 안 있을 거라고.. 어떻게 해서 가는 성도인데? 사람 모으려고 애쓰지 말라고.. 했던 말하고 또 하고.. 어제 마지막으로 떠나보내기로 했는데.. 오늘 또 글 쓰고 싶은 거 얼마나 참았는지 모릅니다. 갈망이에요. 그 마음에 끓어오르는 갈망이 있으니까 체면이고 뭐고 없습니다. '아! 이 사람 싫어할 텐데..?' 그러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 그 무화과나무를 상대함으로 오해까지 받으시잖아요? 예수님 이상하시다고.. 지금이 때도 아닌데.. 열매 없다고 나무한테까지 저주를 내리시냐고? 그만큼 주님이 그 당시에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과 무기력하게 짝이 없던 이스라엘의 회복을 갈망하셨다는 거예요. 그 말로 다 할 수 없는 갈망이 있었다. 주님의 심정을 우리가 돌아보고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이 예수님의 사데교회를 향한 회복의 갈망이 눈물겨워요. 계시록 3:1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주님이 죽었다고 단언하시고는 2절에 이와는 너무나 모순된 말씀을 하십니다. 새번역으로 봅니다. '2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죽었다 그래놓고선.. 죽어간다면 모르겠지만.. 근데 제가 이 심정을 너무 잘 알아요. 죽었다! 그래놓고는 또 회개하라. 내 말 무시하지 말고, 귀담아듣고 회개하면 다 살아난다. 사데교회를 향한 주님의 엄청난 갈망이 거기에 담겨 있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이 고난 주간에 여기에 왜 모였습니까? 정말 우리의 영적인 회복과 교회의 회복을 갈망하시는 주님 앞에 은혜받으러 나온 거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 고난 주간 집회 내내 우리의 내면의 회복을 이토록 갈망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마음으로 계속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가 하면, 세 번째로 우리가 새겨야 될 메시지는? 신앙생활은 '열매 맺기'라. 이번 고난 주간의 가장 핵심은? 2부 순서가 중요합니다. 홈페이지에 매일 제공이 될 건데, 이 공란을 여러분들이 채우세요. 기도가 끝나고 나면, 30분 이상 꼼꼼히 적어보세요. 오늘 주신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스스로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깊이 묵상하실 때 예수 믿는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나는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영적 싸움이란 건? 딱! 이 싸움입니다. 마가복음 4:19절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이 세상 걱정과 재물을 대한 유혹과 그 밖에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와서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이 싸움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는 재물에 대한 유혹, 성적인 유혹, 거짓말 등등 여기에 넣어 보세요. 이런 것들이 말씀을 막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인데 그다음 20절 말씀을 보니까, '그러나 어떤 사람은 좋은 땅에 뿌려진 씨와 같다. 그런 사람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 이 싸움입니다. 

끊임없이 이 세상에서는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려고 온갖 것들을 다 동원하고.. 저는 우리 목사님들께 노래를 부르면서 잔소리하는 것이 그거예요. "목회라는 건, 지뢰밭 사이를 걷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서운 게 뭔지 아십니까? 하나만 잘못 밟으면 끝장이에요. 성적인 문제든, 물질의 문제든, 명예의 문제든.. 하나만 잘못 밟으면 끝잡입니다. 회복이 안됩니다. 얼마나 그 경고를 하는지 모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말씀을 막아 열매 맺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걱정과 유혹과 근심과 또 인간의 타락된 본능과 같은 것들이 열매 맺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이것들과 싸워, 뚫어내어 열매 맺는 것이 신앙생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7장 19절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아무리 대단한 칭찬을 받더라도 열매가 없으면 잎사귀만 무성한.. 그래서 저는 교역자들을 섬겨야 하니까.. 가혹한 편이에요. 살벌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만 잘하느냐? 당신이 설교한 거 십 분의 일만이라도 살아내려고 애를 써야 될 거 아니냐?!" 저에게 하는 경고이기도 하고요. 말재간을 평가를 받는 게 아니고, 그들의 열매를 그들을 알리라. 열매로..

그리고 요한복음 15:4, '내 안게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여러분 내 안에 그리스도가 거하는지, 아니하는지 영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열매를 얼마나 잘 맺느냐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열매가 어떤 것이냐? 에베소서 5:8-9,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지금 강조하는 것이 뭔지 아시겠지요? 지금 말로만 "나는 성령충만하다. 나는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간다." 하는데, 거짓말이 툭툭 튀어나고.. 여기의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대해서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면 그건 옳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부교역자들을 보시면 패턴을 아실 거예요. 저는 교역자 모집할 때,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봅니다. 그래서 뒷조사 얼마나 하는지 아십니까? 흥신소 차려도 돼요. 어떤 조사를 하느냐? 물론 말씀의 은사도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그 인격, 대인관계가 어땠는지.. 오늘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고, 성령의 내주 하심을 늘 경험한다면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도 추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러분 이 성령의 열매에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다 구체적인 인격의 열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신앙생활은 열매 맺기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열매가 계속 풍성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러면, 이 열매를 잘 맺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냐?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세 가지로 그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열매를 잘 맺기 위하여 우리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를 깊이 묵상하기를 바라면서 제가 간단 간단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첫 번째가 뭐냐? 놀랍게도 주님은 그것이 믿음이라고 말씀하셔요. 20-21절에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그러니까, 주님이 동문서답하듯이 세 가지 대답을 하시는 데 그중 첫 번째가 22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도 하나님을 믿으라' 열매가 없어서 저주를 받은 무화과나무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무슨 상관인지 아시겠지요? 왜 샌드위치 기법으로 설명을 하셨는지 아시겠지요? 여러분 열매 맺는 인생이 되기 원하시나요?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제가 지금 좀 아파요. 어제 얼마나 일만 성도 파송운동을 하면서 용을 썼는지.. 오늘 두통약도 안 통해요. 왜 이렇게 용을 썼나 생각해 보니 여러분 지난 10년 내내 일만 성도 파송 운동을 두려움으로 보내왔거든요? 안되면 어떡하나.. 그런 연약함이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올 때마다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10년 내내 두려웠거든요. 창고 물건 꺼내 보내는 것도 아니고, 1만 성도를 어떻게 파송하냐? 그래서 두려움이 자주 밀려왔는데요.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방어했던 말씀이 이런 것들이에요. 이건 내가 시작한 게 아니라, 주님이 시작하신 거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주님이 시작하신 착한 일을 변질시키지만 않으면 된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계속 하나님께 매달렸거든요. "이 일은 제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시작하신 것임을 믿습니다. 주님이 이루어 주실 것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내가 뭘 해보려고 애쓰기보다 주님이 시작하신 착한 일을 더러운 욕망으로 변질시키지 않는 것. 이것만 하면 되는 줄 믿습니다." 10년을 몸부림쳐왔는데.. 어제 왜 그렇게 용을 쓰면서 강조를 했을까요? 그러면서도 떠나가시는 분들이 너무 눈물겹게 아쉽고, 그렇게 힘들어가지고 두통약을 아침저녁으로까지 먹어 본 일은 개척하고 처음 있어본 일인 것 같아요. 뭘 강조하고 싶은가 하면? 10년 내내 싸웠던 것은 믿음의 싸움입니다. 어제 살펴봤던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세상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아들.. 갈대상자로 띄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이 믿음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아들을 갈대상자로 죽음의 강, 나일강에 띄워 보낼 수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뭘 강조하시는가? 대조를 한번 보십시오. 본문 22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믿음과 의심을 대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믿음과 관련해서 저와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질문하며 점검해야 합니다. 첫 번째, 질문 '나의 믿음이 자라고 있는가?' 본문 22절에 '하나님을 믿으라' 이 부분을 원어로 직역하면 '하나님을 믿으라'가 아니고, '하나님의 믿음을 믿으라'에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하나님의 믿음이라는 것이 내 의지로 만들어지는 믿음과는 차원이 다른 믿음이거든요. 그래서 주님이 아까 23절에서 비유하시면서 '감람산이 들리워 바다에 빠지는 일도 일어난다' 그거 우리 믿음으로는 안 되는 일 아닙니까? 하나님의 믿음이에요. 믿음이 다 똑같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매 맺는 인생 되시기 원하세요? 믿음이 자라야 해요. 내 믿음이 계속 자라야 합니다. 지금도 저도 믿음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20년 전 분당우리교회를 개척하던 때를 돌아보면, 제가 믿음이 자란 게 확실합니다. 물론 앞으로도 더 많이 자라야겠지만.. 왜 제가 29 목사님을 모아놓고 자꾸 잔소리할 수 있느냐? 적어도 개척하던 당시보다는 믿음이 자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믿음도 자라고 있는 줄 믿습니다. 믿음이 자라는 것을 날마다 점검하셔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의 믿음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런가 하면, 또 하나 질문하면서 점검해야 할 부분이 이겁니다. '내 믿음이 현재의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제입니다. 구하는 것. 일만 성도 파송에 운동에 대해서 10년 전부터 구했단 말입니다. 그것은 10년 전의 기도였다면.. 그것이 사실 이루어지는 것은 10년 후 아닙니까? 그런 것을 보면, 미래 시제여야 하는데 이 내용을 가만히 보세요. '..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현재성입니다. 불안할 때마다 하나님,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은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라고 믿음으로 구하면, 10년 뒤를 현재의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평안이 오더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나을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음을 얻었습니다. 믿음의 현재성입니다. 

 

 

오늘 여러분 이 두 가지를 스스로 질문할 때, 믿음이 막연한 미래에 얻게 되는 천국 가는 열쇠가 아니라 오늘 믿음이 내 삶에 영향을 주는 겁니다. 10년 일만 성도 파송운동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하면서 두려움을 가지고 왔지만... 지난 10년 일만 성도 파송운동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제 삶이 매일매일이 활력이고 매일이 매일이 기쁨이고, 매일매일이 하나님의 확신으로 충만한 그런 10년이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첫 번째,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믿음을 잘 구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기도입니다. 2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지금 앞에서 믿음을 강조하신 주님이 열매를 많이 거두기 위해서는 그 믿음을 재료로 해서 기도의 자리에 나와야 한다고 하시는 거예요. 

도널드 매김이 쓴 '칼빈과 함께 하는 매일 기도'라는 책에 보면,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믿는다.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을 구하려 할 때 우리의 믿음은 기도로 바뀐다. 믿음에 대한 진정한 시금석은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믿음이 얼마나 드러나는가? 에 있다. 당신에게는 기도의 확신이 있는가? 믿음으로 가득 찬 기도를 드리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더욱 신실한 믿음을 갖자. 그리고 그 믿음을 기도로 표현하자'

저는 이 글을 읽는데 제 아버지 생각이 나는 거예요. 얼마나 믿음의 찬 기도를 드렸으면 40일 금식기도를 작성하셨겠어요? 일만 성도 파송운동 이제 하나님께 파송 예배를 드리고, 이 글을 묵상하면서 제 모든 목회의 영향을 미친 게 아버지께서 믿음으로 드렸던 기도의 열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여러분 29 교회가 이제 이 기도의 열매로 흘러가는 줄 믿습니다. '기도발'의 사전적 의미 '열심히 기도하여 얻은 효험'. 엄청 감동을 받았습니다. 국어사전이 우리의 '기도발'을 인정해 주네요. 29 교회의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은 우리 아버지에게 감사해야 해요. 분당 우리 교회가 아버지의 기도발로 세워진 거든요. 이 기도발이 29 교회로 흘러가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윗대 어른들의 기도발만 의지하지 말고, 우리의 기도 발. 본문 24절에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걸 요약하면, 기도발입니다. 

 

마지막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고 기도하기 원하는데요.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중 마지막은, 용서입니다. 25절을 보니까, 기도를 용서로 연결하십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열매 잘 맺는 인생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이 성장해야 하고요. 그 믿음을 기도로 연결해야 하는데, 그 기도에 용서 있어야 해요.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서도 이 원리가 드러납니다. 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왜 영적인 열매를 맺는데 용서가 필요한지 아십니까?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 그것은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까? 죄가 모든 관계를 깨트리거든요. 목회하면서 만 명이 저에게 너무나 힘을 주고 고마운 분이었다면, 저에게 아픔을 주신 분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예요. 그런데 이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 몇 안 되는 분이 만 명이 저에게 주는 힘을 다 빼앗아 가버리는 겁니다. 저는 인복이 있어서 분당우리교회 개척 초기부터 너무너무 좋은 교역자들을 만나는 복이 있었거든요. 내 마음의 아픈 손가락 한 분이 있습니다. 그 아픈 한 둘이 저의 영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 나머지 수십 명, 수백 명. 교역자들로부터 공급받는 영적인 에너지가 아픈 손가락 한 둘을 생각하면 다 흘러가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태복음 5:23,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똑같은 원리 아닙니까? 성장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용서하셔야 해요. 이를 악물고 용서하셔야 해요. 쉽지 않습니다. 용서하셔야 합니다. 

결론을 이렇게 맺습니다. 열매를 잘 맺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세 가지를 주님은 믿음과 기도와 용서로 제시해 주셨는데.. 제가 오늘의 설교 제목을 '당신이 맺어내야 할 세 가지 열매'를 잘 맺기 위해서도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만 이 세 가지는 또한 우리가 맺어야 될 너무나 소중한 영적인 열매입니다. 따라 해 봅시다. 믿음. 기도. 용서. 고린도전서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인생이 아니라 믿음, 기도, 용서의 열매를 많이 맺어가는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우리가 눈물로 불렀던 찬양 온종일 맴돌아지는데, 오늘 고난주간 첫날 다시 한번 은혜를 구하면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 갖기 원합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칼빈과 함께하는 매일 기도:묵상과 기도로 배우는 바른 기도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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