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개정 I 누가복음 2장 8-14절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힘든 시대에 임하는 평화 I 분당우리교회 I 이찬수 목사
보통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작품을 떠 올리라 그러면 '오헨리'의 '크리스마스의 선물'이라는 단편 소설과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데, 저는 올 해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레미제라블'이라는 말은 '불쌍한 사람들, 비참한 사람들'로 번역이 되는 프랑스 말입니다.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가난한 시민들과 혁명 중에 죽어간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요.
제가 나무위키라는 인터넷 백과사전에 찾아보니까,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주인공, 장발장은 가난으로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다가 5년 형을 선고받는데.. 구형 도중에 네 번의 탈옥을 시도한 것 때문에 19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는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들이 다 하나같이 너무나 불쌍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팡틴이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억울하게 공장에서 쫓겨난 후에 매춘부를 전전하는 너무나 비참한 삶을 살다가 죽게 되고요. 죽은 팡틴의 딸, 코제트는 파나르디에라는 부부의 핍박에 시달리는 가혹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외에도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번 성탄절이 다가올수록 레미제라블, 비참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소설이 생각났던 이유는.. 제가 아는 주변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장발장이 마지막 죽으면서 그 팡틴의 딸 코제트에게 자기 인생을 정리하면서 했다는 한 마디. 그 한 마디가 제 마음에 맺혔기 때문입니다. 장발장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증오로 가득한 자, 증오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죄인에게 사랑이 임했고.. 너를 통해 그 사랑을 배워 나갔다." 어려서부터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았던 코제트라는 여인 너를 통해 그 사랑을 배워 나갔다. 이 한마디가 제가 오래 여운을 남겨주는 감동이 되더라고요. "증오로 가득한 자, 증오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죄인에게 사랑이 임했고.. 너를 통해 그 사랑을 배워 나갔다." 이 말이 꼭 너무나 증오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여러분 너무 잘 아시는 로마서 5장 6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세상 사람들의 크리스마스와 그 사랑을 경험한 우리의 크리스마스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세상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밖에 모르는데요. 은혜를 경험한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자꾸 십자가가 떠올라요. 너무 기쁜데, 너무너무 가슴 벅차고 기쁜데..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그 기쁜 시간을 보냈는데.. 주님 나신 그 기쁨이 일어나는 동시에 십자가가 생각나는 거예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이게 바로 장발장이 고백하는 '증오로 가득 한 자, 그 증오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한 죄인에게 사랑이 임했다.'는 것.
그런가 하면, 그 장발장이 죽어가면서 코제트라는 젊은 여인에게 했다는 그 말이요. "너를 통해 그 사랑을 배워나갔다." 저는 이게 우리이길 바랍니다. 온~ 세상이 지금 너무나 분노가 많고 울분이 많고.. 대선이 가까이 올 수록.. 저는 너무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선거 끝나고 나면 이 나라가 반으로 쪼개질 것은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하나같이 후보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정말 그 후보 중에서 이 골을 매워주고..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자기를 찍어준 사람만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라.. 매번 그래 왔잖아요? 그래서 선거를 치르면 치를수록 골이 깊어지고, 분노가 깊어지고 나랑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나랑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분노가 넘치는 이러한 시대를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데.. 새로 당선대는 대통령에게서 그 화합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이번 후보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늘 그래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미미하고, 영향력이 별로 없지만 우리가 그걸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그거라고 생각합니다. '증오로 가득한 자, 그 증오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던 한 죄인에게 사랑이 임했고..' 이게 우리 아닙니까? 예수 믿는 우리를 향하여 너무나 분노가 많은 분들이 이런 말 하면 좋겠습니다. '너를 통해 그 사랑을 배워나갔다.' 저를 따라서 해보시겠습니까? '한 죄인에게 사랑이 임했고, 너를 통해 그 사랑을 배워나갔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탄절날 이 두 가지 균형이 이루어지는 인생으로 살고 싶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래서 주님, 그저 들떠 선물이나 바라는 꼬맹이들의 성탄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성탄절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묵상되는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풍성한 증오로 인해 죄인에게 임한 그 사랑이 너무나 가슴 벅차고, 그 은혜의 감격을 통해 '너를 통해 그 사랑을 배워나갔다.' 하나님 이러한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기를 결단하는 그런 성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저는 이런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장 8-12절에 보면, 성탄절의 기쁜 소식을 목자들에게 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 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읽을 때마다 감동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요 오늘을 포함한 19년 동안 성탄절날 가장 많이 설교했던 본문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읽을 때마다 감동이 되니까.. 그 당시의 목자들은 너무나 비천한 이들로, 멸시당하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렇게 비참한 신분으로 멸시당할 뿐만 아니고 본문에 나오듯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비천한 신분일 뿐만 아니라 하는 일 자체가 너무나 고단했던 인생이에요. 이것이 왜 저에게 매년 성탄절이 되면 묵상되는 본문인고 하니? 오늘 이렇게 실패한 자리, 초라한 자리.. 여러분 밤새 일해보셨습니까? 안 해본 분들은 말을 하지 마세요. 저는 23살 때 이민 가서 낮에 학교를 다니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주유소에서 3교대로 꽤 오래 해봤거든요. 그렇게 밤을 새울 때 다 자고 있는데 혼자서 주유소를 지키는데.. 잠을 못 자니까 힘든 것도 있지만.. 너무 적막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막 무섭기도 하고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 사건의 순간에, 그리고 모든 유대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며 기다리던 사건 중의 사건인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는 그 놀라운 탄생 소식이 당시 가장 비천한 신분이었던 목자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 자는 데 양들을 지킬 수밖에 없던.. 그렇게 사는 것이 힘든 이들에게 그 목자들에게 그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시기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배려. 그게 23살 때 제가 경험했던 너무나 밑바닥에서 경험했던 것입니다. 목사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생각도 없고, 애씀도 없던 저에게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으로 저를 만나 주셨던 그 사건도.. 최저 임금 받으며 밤새 일할 때 찾아오셔서 그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기 때문에 이 본문 말씀이 매년마다 저는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사실이 올 한 해 유난히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많은 성도들에게 위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최근에도 너무나 가슴 아픈 일들, 갑자기 아내가 돌아가시고 남편이 먼저 하나님 앞에 가시고, 너무나 중한 병을 만나 앞이 캄캄한 이런 상황을 겪고 계시는 많은 성도들을 알고 있습니다. 다락방에 잘 참여하지 않는 먼 지방에 사는 성도님이 교구 목사님이 심방을 했더니 그런 말을 하더래요. "과연 우리 담임목사님이 나 같은 거 위해서도 기도해주실까요? 과연 우리 담임목사님이 나 같은 것도 기억하실까요?" 그 말이 너무 아프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드려서, 전화로나마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분당우리교회 성도님들이 너무 많으셔서 담임목사는 물론이고, 교구 목사가 기억해줄까? 우리 교구 전도사님이 나를 기억이나 하실까? 그런 상실감을 가지고 살아계시는 힘든 성도님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인간은 한계를 가지고 목회할 수밖에 없지만..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신 놀라운 사건을 가장 초라하고 비천한, 그리고 가장 힘들고 험한 밤을 새워 남들 지킬 수밖에 없던 목자들에게 메시아가 오신 그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시기 원하는 따뜻한 하나님의 배려가 그런 상실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님들에게 감동으로 임하게 되는 성탄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겪어봐서 알지만. 최저 임금 받으면서 밤새 일하면 내 존재가 힘들면 자꾸 내가 초라해지고요. 나 같은 거 뭐.. 죽고 싶다는 생각도 이럴 때 들어요. '나 같은 거 죽는다고 누가 기억이나 해줄까?' 오늘 이 성탄절의 능력이 목자에게 가장 먼저 배려해주시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는 주님께서 그런 마음의 상실감을 한 번에 치유해주시는 능력의 주님을 예배를 통해 경험하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목자들에게 주님 나심을 소식을 전해주시는데요. 10절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나심이 왜 그 힘든 삶을 살던 비천한 목자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그 내용이 11절에 나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작년 이 시간에도 제가 이 단어를 소개해드렸던 기억이 나거든요? 여기 나오는 '구주'는 헬라어로 '소테르'라는 단어인데요. 중요한 게 뭐냐? 이 헬라어는 그 당시에 사용되던 '병, 전쟁, 사고 등과 같은 세속의 문제로부터 구원해주는 존재'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 단어가 '소테르'입니다. 그리고 자료에도 보니까, 이렇게 병을 만나고 전쟁을 만나고, 사고를 당할 때 엄청난 세속의 악으로부터 구원해주는 존재가 '소테르'인데, 이 단어는 당시 로마 황제를 가리킬 때도 사용되는 단어라는 것입니다. 저는 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랍니다. 코로나로 19로 힘들고 어려운 터널을 지나 시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소테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너무나 답답하고, '우리 담임목사가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 같은 거 기억이나 할까..' 그 가슴 아픈 상실감이 찾아올 때,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께서 병, 전쟁, 사고, 이런 세속의 악으로부터 구원해주시는 '소테르'. 주님이 내 인생의 황제가 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존 파이퍼 목사님이 쓰신 책에 보니까, '기쁘다 구주 오셨네.' 그 찬송 영어 가사 3절에 이렇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더 이상의 죄와 슬픔이 자라지 않으며 가시와 엉겅퀴가 땅을 오염시키지 않으니 저주가 발견되는 곳마다, 그가 오셔서 복이 넘쳐흐르게 하실 것이니'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소테르'의 존재로 다가오심을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더 이상은 죄와 슬픔이 자라지 않으며, 더 이상 가시와 엉겅퀴가 땅을 오염시키지 않으니 저주가 발견되는 곳마다 그가 오셔서 복이 넘쳐흐르게 하실 것이니.. 이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데요. 존 파이퍼 목사님이 책에서 강조하시는 것이 뭐냐? 모든 사람들에게 다 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나심이 이런 놀라운 능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 이런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냐? 소테르,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그분을 영접하는 자. 그분을 마음에 모시는 자. 그분을 실제적으로 내 삶에 모시고, 그분이 왕이심을 인정하는 자.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를 소테르로 모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이 성탄절 두 가지 선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그리스도를 정말 내 인생의 소테르로 모시는 모든 분들이 선포해야 할 첫 번째, 선포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1. 하나님께 영광
누가복음 2장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여러분 여기 나오는 영광은, 헬라어로 '독사'라는 단어인데요. 영어로 glory에요. 제가 국어사전으로 '영광'을 찾아보니까,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라고 되어 있었고요. glory라는 단어를 영어사전에 찾아보니까, '영광, 영예,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설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오늘 그리스도를 '소테르'로 모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선포되어야 할 두 가지 중 첫 번째, 하나님께 영광을 가지고 두 단계로 설명하기 원합니다. 첫 번째, 단계가 누가복음 2장 9절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저자 누가가 여기서 '주의 영광'을 범접할 수 없는 빛으로, 신적인 영광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가 먼저 이걸 누려야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사야 6장 1절이 떠올랐습니다. 그 어두운 시대에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하기를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가 위대한 선지자 맞습니다. 그러나 그 위대함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그 이사야 선지자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 영광을 경험했더니, 그 영광을 경험한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엄청난 능력이 뭡니까? '화로다 나요 망하게 되었도다'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고, 그리고는 그 악한 세대에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우리 하나님 탄식하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일만 성도 파송운동을 앞두고 있는 분당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에게, 저에게, 29 목사님들에게.. 우격다짐으로 되는 거 아닙니다. "가라." 그런다고 가지겠습니까? 아니, 내가 분당우리교회 정들었는데 아니 우리 아이들까지 분당우리교회에서 은혜받기를 원하는데,, 왜 자꾸 가라고 하냐?" 이거 등 떠민다고 가지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이사야 6장 1-3절. 지금 일 만성도 파송 운동을 놓고 기도하고 계시는 분. 이 이사야 6장을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타락했던 그 시대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던 그 시대에 온~ 세상이 악한 악취로 가득한 그 시대에 이사야가 경험했던 하나님의 영광.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더라' 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면은요? 사명이 생기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가장 충만할 때, 성령님께서 29살 되던 해에 저로 하여금 이민생활 다 정리하고.. 분당우리교에서 파송받는 게 쉽습니까? 온 가족이 이민 생활하던 중에 있는데 결혼도 안 한 총각이 그곳을 따나 보따리 두 개 들고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게 쉽습니까? 말하기 싫으시죠? 저기에 미끼가 있다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미끼가 있지요. 뭐가 더 어렵냐? 뭐가 덜 어렵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거예요. 영광을 경험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사명이 되고, 남아도 사명, 가도 사명. 동네에 작은 교회로 흘러가는 것도 사명.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유함을 가지고..
그런가 하면, 이 영광과 관련하여서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그 충만함으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이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라면.. 두 번째 단계는,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인생. 오늘 본문 14절을 다시 보십시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표현은? 왕으로 마땅히 받으셔야 할 대접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입니까? 교회들이 욕을 먹고 있는 이 시대에 당당하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엄청난 신앙고백입니다. 누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내가 무명시절에서부터 이 시상대에 서기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보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고, 그래서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이 모든 영광은 온전히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된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그런 고백 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여러분 생애에 첫 번째 단계.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영광을 많이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영광을 누린 자만이 할 수 있는 많은 복된 일들을 경험하시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는 그런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땅에서는 평화
그런가 하면 두 번째로 선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4절입니다. '..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진짜 중요한 것은요? 어떤 사람에게 평화가 임하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합니다. 뭘 강조하는 것이냐?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도.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많이 경험하고 있는 부분 일 것입니다. 내가 평화를 얻으려고 애쓴다고 되던가요? 돈을 모아보니까, 영예를 얻어보니까, 큰 교회 만들어 보니까 저절로 평화가 주어지던가요? 평화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으로 보면,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평화로다'라고 되어 있어요. 아무나 임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이것도 두 단계예요. 여러분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셔야 해요. 진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내가 아등바등 노력한다고 생기는 평화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평화라는 사실을 인식하시고요.
그런가 하면, 두번째 단계의 균형이 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목자들에게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평화는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주시는 것이지만, 또한 그 평화를 감 떨어지기를 입 벌리고 기다리는 거 그리스도인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그 평화를 얻기 위하여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본문을 다시 한번 보기 원합니다.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 천사들의 찬양을 들은 목자들이 그다음 15절부터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십시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그 다음 목자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평화는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지만, 감 떨어지기를 입 벌리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 목자들처럼.. 적극적으로 평화를 주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만나고, 그분에게 갈망하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앞부분인 교리를 잘 설명하고 마무리하면서 사도 바울이 했던 맨 마지막 말씀이 로마서 11:36 아닙니까?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가 이렇게 영광을 드린다고 하나님이 받으시고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안 드린다고 하나님이 못 받으시는 것 아닙니다. 바울에게 배우는 게 뭡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면 하나님은 그 영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그런 자에게 샬롬. 평화를 선물로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시작하시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이렇게 맺기 원합니다.
'울 곳'
- 김환영 시인 -
할머니 어디 가요? 예배당 간다.
근데 왜 울면서 가요? 울려고 간다.
왜 예배당에 가서 울어요? 울 데가 없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아이들이 아직은 어려서 이 시가 이해가 되지 않고, 와닿지 않는다 해도 저는 우리 자녀들 정말 축복하기 원합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할머니가 예배당에서 흘리신 눈물의 의미를 깨달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성경 구절 한 군데만 더 보기 원합니다. 민수기 6:25,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이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난 한 해 코로나로 19가 계속 연장되고 또 연장되면서 자영업 하시는 성도들을 위시하여 너무 많은 성도들이 지치고, 피곤하고 그리고 하나님 이 시대가 되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마음에 울분과 분노가 쌓여가는 많은 시간들을 지금 싸우고 있고, 이겨내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 하나님 철저하게 깨닫는 것은, 우리 인간들만의 몸부림으로는 결단코 이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님 인간의 지도자를 의지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하면서 오늘 하나님 이 땅에 오신 그 아기 예수 그분이 내 삶에 구원자로 구세주로 찾아오셨음을 인식하며 그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울 곳이 없다. 그래서 예배당에 간다는 그 할머니의 고백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험으로 깨달아지고 인식되어지는 고백이 되어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 이제 우리 대학 청년부 저들의 축복된 찬양을 들으며 헌금을 드리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고, 하나님 드릴 수 없는 어려운 과정을 지나고 있는 어려운 성도님들 마음의 부담 없도록 "너의 그 마음과 정성 내가 이미 다 받았다." 그렇게 위로해 주시는 그러한 시간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인도해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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