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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이찬수목사

설교문 I 고난의 광야에서 꼭 봐야 하는 것 | 이찬수 목사 | 출애굽기 15장 22-26절 I 분당우리교회 주일설교

by №1★↑♥ 2023. 5. 15.

2023-04-16 분당우리교회 주일설교 I 고난의 광야에서 꼭 봐야 하는 것 | 이찬수 목사 | 출애굽기 15장 22-26절 I 이찬수 목사 설교문 

출애굽기 15장 22-26절 | 고난의 광야에서 꼭 봐야 하는 것

-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 -

올해 초에 우리교회 청년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 마음이 아팠던 것이 청년들이 그렇게 사는 게 힘드네요. 이런 기도제목, 저런 기도제목, 그리고 "목사님 이것 때문에 마음이 힘들고, 저것 때문에 마음이 힘들고, 그래서 이것도 기도해 주세요. 저것도 기도해주세요."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 청년들은요? 우리 같이 이런 저런 경험을 해 본 기성세대와 달리 여리고 상처도 더 잘 받습니다. 이해를 해줘야 해요. 제가 청년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해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터널이 있잖아요? 우리나라는 산이 많기 때문에 그 터널을 뚫어서 기차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라면 꽤 많은 터널을 지나야 하잖아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떠너 사람이 서울역에 앉아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은 터널 만나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터널을 절대로 만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부산에 안 가겠다는 소리에요. 부산역으로 가려면 반드시 터널을 지나야 합니다. 제가 청년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해줘요. 맨날 기도할 때, 고난이 찾아 오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 내 인생에 터널이 찾아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건 그건 옳은 기도가 아니다. 응답될 수 없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요?? 전도서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인생의 서울역에서 출발해서 부산역까지 가는 데, 터널을 거쳐야만 도착해요. 기차길에 터널이 있다는 것은 돌아가지 않고 더 빠르게 간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허구헌날 기도회 나와서 터널이 없는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밝은 태양만 보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이 원리를 모르고서 하는 기도에요. 하나님은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 하시는데 왜 그러냐? '형통한 날에는 기쁨을 맞게 하려고..' 우리는 기쁨을 잘 누리지 못해요. 여러분 기쁨을 잘 누리십니까? 많지 않으세요. 형통한 날에는 기쁨을 느러내고, 표현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하며 감사하고, 사람들에게도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형통한 날에 주신 하나님의 지침입니다. 

그런가 하면,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되돌아 보라는 거에요. '네 인생의 지난 날을 돌아보고 지금 니가 가고 있는 길이 잘 가고 있는지.. 하나님이 또 너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를 기억하고 돌아보고,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라.' 이게 인생의 터널 을 지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거거든요. 그래서 금요기도회 오셔서 기도할 때 "하나님 저에게는 인생의 터널이 없게 해주시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인생의 터널이 찾아올 때, 그것을 잘 지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터널을 잘 지나오면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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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본문에서 다루고 싶은 메시지가 바로 이런 내용이거든요. 오늘 본문이 애스라엘 백성들 일생에 가슴이 터질 듯 기쁜 날이에요. 홍해를 건넜거든요. 400년 동안 종살이하며 살던 자기 민족이 해방되는 것도 감격에 겨운데, 그 과 정에서 드라마틱한 하나님의 인도하심.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 말씀이 출애굽기 15장인데요. 1절 출발부터가 그 기쁨이 잘 표현이 됩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리로다'  홍해를 갈라 놓은, 하나님의 크신 일하심에 감격하여 찬양하는 거 아닙니까? 이 찬양이 계속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22절 앞인 21절까지 찬양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가 다루려고 하는 본문은 그들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부분이에요. 22-23절입니다.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사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그래서 기쁨이 다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24절,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하나님의 일하심이 조금 아쉽지 않으세요? 기뻐하도록 내 버려 두시지.. 좀전의 큰 기쁨이 싹! 가셔 버렸어요. 한 사흘길을 걸었는데 목이 말라 죽겠거든요. 그 와중에 기뻐하겠어요? 한편으론 백성들의 모습에 공감이 가기도 해요. 그리고 제가 본문 전후 말씀을 자세히 보니까, 오늘 본문 앞서 노래하고, 오늘 본문 그 다음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엘림 동산으로 인도받은 기쁨이 나옵니다. 27절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느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이걸 읽는데, 중국에서 황사가 날아와서 그러다가 드디어 검색을 해보니까, 미세먼지 지수가 좋아지면 너무나 상쾌하고 기쁘지 않습니까? 지금이 딱 그 상황입니다. 엘림 동산으로 인도함을 받았는데, 요 가운데 부분만 딱 떼어내면 연결이 너무 자연 스러운 거에요. 홍해를 건넌 기쁨을 노래하고, 기적을 노래하는 상황에서 엘림 동산으로 인도함을 받았으면 얼마나 자연스럽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중간에 찬물을 끼얹는 일들을 허락하시는가? 제가 궁금해서 보니까 성경에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알려주시더라고요. 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무엇을 시험하셨냐? 26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께서 그 결핍의 상징인 마라의 사건을 두신 것은, 그들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고.."너희들 기억해라.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항상 봄과 같지만 않다. 고난도 온다. 그 때 너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너희를 방치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던져주시는 메시지가 이거에요. 왜, 항상 쾌청하고 행복하고 기쁘기만 한, 서울역~부산역에 이르기까지 터널이 나오는가? 그 때는 생각해보라는 거에요. 우리가요? 항상 잘 풀리고, 잘 되고 너무 기쁘기만 하면 그 일을 허락하신 이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잊어버러요. 그래서 고난이 찾아올 때,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경험하고 그것을 누리면서 '아 맞다! 여호와께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지?' 이걸 '여호와 라파'라 해요. 그래서 그분을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이런 일들을 허락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어려운 일이 찾아올 때는 이걸 항상 기억해야 해요. '하나님이 니도 한번 당해봐라.맨날 니가 행복한 거 내가 배 아파 못 살겠다.' 이게 아니에요. 때때로 우리 삶 가운데 고난이 찾아오면, 하나님이 이걸 기억하시기를 원하시는 구나! '여호와 라파' 여호와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제가 아까 '하나님이 테스트'를 하기 원하신다 했잖아요?

이제 이 사람들이 본격적인 광야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 때에 그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광야는 결핍의 상징이거든요. 가나안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결핍의 광야를 거닐 때 너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여호와께서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걸 반드시 기억하고 광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점검하고, 테스트 하신 게 마라의 쓴물 사건입니다. 그리고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25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말씀하시면서 나무를 도구로 사용하시는데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히 그 의미를 모르지요. 그러나 은혜의 시대.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나무'하면 떠올려져야 될 말씀이 베드로전서 2:24 아닙니까?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무를 가지고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십자가를 통하여 그분의 고난을 통하여, 아무 이유 없이 그저 긍휼히 여기시는 그 마음으로 나무에 달리셨기 때문에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의지할 때 쓴물이 단물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설교의 제목을 '고난의 광야에서 꼭 봐야 하는 것'으로 잡았는데요. 고난의 광야에서 여러분들이 바라봐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십자가.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고난을 통해서 내가 나음을 입었고, 지금 내가 상한 여러가지 일들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치료하신다. 이 것을 고난의 광야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많았던 옛날 어르신은 이 찬양을 달고 사셨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여기 큰 고통이 나오고, 결론은 기쁨을 빼앗기지 않았음을 노래하는 거거든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요. 나무에요. 저는 매 예배를 드리실 때마다 이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고, 광야 같은 한 주간은 살아갈 때에 이 십자가가 내 마음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라는 것을 늘 인식하고 그렇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하는 사실.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화임이라. 본문을 묵상하면서 모세가 그 일을 너무나 모범적으로 잘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22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홍해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세요.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인도했다고 기록하셔요. 뭘 의미합니까? 모세가 하나님이 맡겨주신 그 일을 위임 받아서 이스라엘을 지도하는 권세, 권한을 부여 받았음을 의미하는 거 아닙니까?  

지도자는 어떤 특정인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지도자세요. "목사님, 저 전업주부인데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세요. 여러분 가정에 너무나 소중한 아들, 너무나 소중한 딸을 위하여.. 전업! 모든 일을 그만두고 그 아이를 섬기는 지도자가 되신 거거든요. 여러분, 한 나라의 지도자, 대통령, 국회의원, 정치지도자들을 잘 만나면 모든 국민들이 편해요. 한 교회의 지도자를 만나면 모든 성도님들이 은혜를 받아요. 똑같습니다. 한 가정에서 우리 아들이, 우리 딸이 나 같은 지도자, 엄마 아빠인 나 같은 지도자를 잘 만나면 아이들의 인생에 혼란이 없습니다. 오늘 예배 드리시는 엄마, 아빠. 직장에서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 누구든 다 지도자인데요. 오늘 예수 믿는 사람으로써 어느 자리에 있든, 어느 가정에서든 좋은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지도자가 되시면 그 자녀들이, 그 구성원들이 혜택을 누리는 거에요. 오늘 모세가 바로 지도자로써 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본문에서 모세를 통해서 우리도 모세처럼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고난의 터널을 지날 때 모세가 했던 두 가지를 우리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치료자 하나님'을 기억하기

첫째,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거에요. 오늘 본문 23절입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그랬더니 백성은 인간을 상대하여, (24절)'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그런데  모세는 인간을 상대하지 않고, 모세는 하나님을 상대해요. 그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까요? 이미 모세는 하나님이 테스트 하시면서 궁금해 하셨던 걸 알고 있어요. 이 마라의 쓴물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했던 것이 뭐라 했죠?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라' 이걸 지도자 모세는 알고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백성들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하는데.. 모세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거거든요. 

저는요? 우리 어머님들, 아버지들이 그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모세와 같은 지도자이기를 바랍니다. 너무너무 당황스러운 일을 만나고, 난감한 일을 만날 때 맨날 "당신 탓이야! 당신 때문이야!" 서로만을 탓하면 아이들이 그것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무너져요. '나는 누구를 의지해야하지?' 사실, 제가 이 본문의 말씀을 전하기로 결심한 것은, 고난주간 목요일 저녁이에요. 목요일 저녁에 이 본문을 묵상하기 시작해요. 왜냐하면, 한 가정이 마라의 쓴물을 만나서 너무 너무 힘든 가정에 대한 간증을 들었잖아요? 서부 아프리카, 브리키나 파소라는 너무나도 생소한 지역에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에 복음 전하러 가셨는데.. 남편이 36살 되던 해에 너무나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거든요. 젊은 선교사님이 죽고 나니까 그 때 당시의 아들을 임신 중이었고, 큰 아이는 기껏 두돌 반이에요. 마라의 쓴물을 만난거 아닙니까? 그리고 제가 간증을 들으면서 마음이 먹먹했던 것이 자기를 다 오픈하시네요? 10대 때 아버지가 돌아기시고, 어머니도 돌아가시도.. 이분 표현을 빌리자면 "저는 고아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싶었고, 너무 좋은 남편을 만나서 딸 하나 낳고, 아들을 임신하여 너무나 행복한 단꿈을 꾸고 있을 때, 마라의 쓴물이 찾아왔어요. 그랬는데 이번에 간증을 듣는 내내 먹먹했던 것이 두 아이를 향한 어머니로써.. 아들이 방황을 많이 했다잖아요? 당연하겠지요? 내가 뱃속에 있는데 하나님은 왜 우리 아빠를 데려가셨나? 원망이 나오는거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제가 그 고난주간 목요일 저녁부터 어제 저녁까지 순간 순간 멤도는 선교사님의 간증이 이것이었습니다. 아들이 좀 방황을 한대요. 그래서 하나님 하시는 일에 대한 원망을 하다가, 갑자기 목소리가 확 커지면서.. 아들이 그렇게 방황하는 것을 보시면서 "아들아, 너 궁금한 거 어떻게 다 설명해 줄 게. 어떻게? 엄마의 삶을 통해서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내가 다 말해줄게.. 설명해 줄게.." 너무 제가 눈물이 나는 거에요. 너무 좋은 지도자 아닙니까? 그 어머니가 방황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머니도 같이 혼란을 겪는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래서 좋은 지도자에요. 좋은 지도자 어머니에요. 제가 어머니의 간증을 계속 되뇌이고 있는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그분을 만나보니 부끄러워하고 너무 수줍음이 많으세요. 그리고 얼마나 긴장을 하시는지 저녁 식사도 못하세요.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여린 선교사님으로 하여금 두 아이를 지키내는 용사가 되게 하셨냐? 놀랍게도 그렇게 남편 돌아가시고 약해지신 것이 아니라, 통합측은 여자 목사님이 계시거든요? 이분이 여자 목사님이세요. 도대체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길래.. 그 생각을 하다가 이지선 교수가 떠올랐어요. 그녀가 23살 때, 만취 운전자로 인해 사고를 당해서 온 몸에 중화상을 입는.. 수술을 40번 넘게 했데요. 그러면 어떤 상황인지 아시잖아요? 그런데, 이지선 자매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가 놀라워요. 미국으로 유학을 가셔서 명문 보스턴 대학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를 받고, 그리고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기독교 대학인 한동대학에서 교수로 역임하다가, 최근에 모교인 이화여대 교수로 간 거에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도 굉장히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관심을 가지고 이리저리 찾아보고, 자료도 보다보니까 사람들이 이지선 교수에게 붙여준 별명이 이거에요.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 우리는 잘 못 헤어져요. 그래서 10년 전의 상처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고,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 막 우울하고.. 상처가 올라오고 이러는데.. 이지선 교수는 자기 상처와 잘 헤어진 사람이래요.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냐? 

 

제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을 때, 저를 향한 완벽한 도움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그 손길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자를 아니까, 그 손길에 연결되지 못한 이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병원에 있으면서 그런 이를 돕고 싶은 마음에 공부해야 겠다 결심했습니다.

이분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을 때? 이분이 경험했던 완벽한 도움의 손길이 누구죠? 하나님. 절망적인 상황에서 만나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이 자리에서 간증했거든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을 때, 완벽한 도움을 주신 손길." 그게 우리 교회에서 간증하신 이후 20년 도안 쭉 계속되었구나! 그게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님으로 세움 받게 되었구나!

그러면 목요일 간증했던 여 선교사님이 그렇게 여리고 소심해 보이는 그 분이 두 아이의 지도자로써 그 아들과 딸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놀라운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의 답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누구의 도움도 받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인도하셨기에?' 그러니까, 아들이 방황할 때 자신 있게 말하잖아요. "엄마가 다 설명해줄게. 아빠가 왜 이렇게 일찍 가셔야 하셨는지.. 우리 가정에 왜 이런 마라의 쓴 물이 와야 만 했는지.. 엄마가 삶을 통해서 다 보여줄게." 저는 그게 뭔뜻인지 너무 잘 알아요. 저희 어머니가 그러셨거든요. 

여러분, 좋은 지도자, 좋은 어머니, 좋은 아버지가 되시기 바란다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이 마라의 쓴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내 인생에 닥쳤을 때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 나는 치료하는 하나님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기억해 내는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분당 우리교회는 박물관 교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박물관 교회가 되지 않고, 현상 유지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애쓸 것 많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실제 여러분들의 삶에서 그걸 경험하고, 체험하는 거에요. 오?! 진짜 하나님 치유자시네? 오? 진짜 하나님께서 날 위해 일 하시네? 이론이 아니라, 많은 성도님들이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소원하며 기도하셔야 한다는 거에요. 

 

 

2. 불 필요한 '에너지 낭비' 피하기

두번째로, 만나를 만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 피하기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24-25절입니다.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이것은요 인간의 본능에서 찾아오는 가장 무서운 거에요. 심리학자들이 이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이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투사심리라는 거에요. 뭔가 자신이 겪고 있는 불행하고 가슴아픈 원인을 남에게서 찾아내고자 하는 본능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투사라는 거에요. 지금 백성들은 뜬금 없이 모세를 원망해요. 모세도 자기들하고 똑 같은 처지에요. 하나님이 모세만 물을 주셨다면 이런 원망 가능하겠지요? 모세가 계획하여 인도했습니까? 오늘 우리가 너무나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고통 중에 있을 때 더 많이 낭비해요. 부부가 진짜 더 하나 되어야 할 때는 마라의 쓴 물을 만날 때에요. 돌아보세요. 그 때 가장 소모적이에요. "당신 때문이라고!" "무능한 당신 만나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그게 사실이라고 치자고요. 그렇게 무능하면 윽박지르면 더 무능해지고, 더 위축이 되어요. 숨이 잘 안 쉬어져요.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여야 해요. 더군다나 인생에서 마라가 찾아올 때.. 그 때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라고 하잖아요. 고난주간에 제가 만난 목사님 사모님이 한 분 더 계시는데요? 간증하신 분하고 큰 줄거리에서는 비슷해요. 이 분은 남편이 부교역자 시절일 때 교회가 분쟁이 있었나봐요. 여러분, 교회에 어려움이 생기면 담임목사님파 , 장로파. 이렇게 당회파로 나뉘어지면 죽어나는 것이 부교역자에요. 새우등 다 터져요. 제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멀쩡하던 남편 목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거에요. 제가 그 사모님을 고난 주간에 만났거든요? 이 분이 공교롭게도 분당우리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고 있어요. 그러면서 등록을 안 받아 주셔서 등록 없이 몰래 예배 드리고 있다. 너무 죄송했어요. 그런데 이 분을 고난 주간에 만났을 때 하시는 말씀이 저보고 "고맙다"고 해요. 이 분이 고난 주간에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매일 저녁 마다 마음껏 소리내어 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거에요. 그분을 지난 주에 또 만났거든요? 남편이 너무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서 아이들은 여전히 어린데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가 하나 있데요. 이스라엘 속담인데요, "사람 앞에서 웃으라. 하나님 앞에서 울어라." 이분이 하나님께 이 말씀을 받고, 두 자녀를 키우실 때 이 문구가 자신을 견고하게 만들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고난주간에도 하나님 앞에서 통곡을 하면서 그렇게 본인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내려놓으며 기도했던 것이 두 아이를 잘 기르고 계시거든요. 불필요한 에너지를 여러분 줄이셔야 해요. 

또 한분이 계시는데요. 이 목사님은 저 처럼 청소년 사역을 하신 분이신가 봅니다. 저는 너무나 착하고 온순한 중, 고등부를 했기 때문에 마음 고생은 별로 안 했거든요? 이 분은 소히 말해서 비행청소년들.. 그 때는 본드를 하고 그랬잖아요? 가출하고, 본드하고, 또 혼숙하고 이런 청소년들을 돌보는 일을 하셨는데요. 어느 날 이 목사님에게 상상하기 힘든 대 못이 박히는 일이 일어났어요.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섬겼던 여학생이 임신을 했는데요. 학교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 돌봐주는 목사님이 나 성폭행해서 내가 임신하게 되었다." 여러분 목사가 이런 모함을 당했다고 치면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한 거 아닙니까? 그러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임신한 학생이 괴로우니;까 목사님을 찾아 온 거에요. "목사님 제가 무서워서 거짓말 했어요."라고 고백을 하는 데.. 오히려 목사님이 "너 이 얘기 학교가서 하지 마라. 그러면 너 퇴학이야." 믿어지세요?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제가 대비해 봤습니다. 백 번을 더 생각해봐도 저는 그렇게 못해요. 

제가 이 본문을 묵상하다가 그 목사님이 떠 오른 이유가 이거에요. 상상이에요. 모세처럼 부르짖었겠지요? 죽을 것 같다고.. 하나님 도대체 목사인데 내가 미성년자를 성폭행해서 임신시켰다니 이게 무슨 일 입니까? 오늘 본문 그대로 말하자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듯이 부르짖었을 거에요.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치료하시는 여호와께서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다." 그래서 목사님 마음이 치유가 되었겠지요? 여러분, 마음이 치료되면 나타나면 증상은요? 가해자가 불쌍해져요. 부부싸움 하시고, 너무 치명적인 상처를 남편에게, 아내에게 받았는데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고 치유가 되면 그 사람이 불쌍해지는 느껴지는 경험 다 해보셨을 거에요. 

제가 이 목사님의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어요. 왜? 여러분들이 쓸데 없는 죄책감에 빠질까봐.. 죄책감에 빠지지 마라고 이야기를 드린 거에요. 저도 안 되요. 그러나 정답은 알고 있자고요. 이게 되는구나? 목요일 날 그 여 선교사님을 모셨던 것은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해요. 그래서 제가 모신 거 아니에요. 너무 과도한 자책감에 빠지지 마세요. 그러나 정답은 알자고요. 어떻게 하면 된다고요? 사람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이런 일까지도 가능하게 하시는 구나! 

 

 

 

결론을 오늘 이렇게 맺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고난의 광야를 지나실 때에 꼭 봐야 할 게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요.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여러분 이 구원의 감격이 저와 여러분을 기쁨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오랜 만에 이 찬양하기 원합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하나님 제 인생이 자주 자주 마라의 쓴 물의 골짜기를 지납니다. 그래서 지치고, 낙망하여 넘어질 힘이 없고, 나에게 실망하고, 내 자신 초라하여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오늘 배우셨지요? 그때가 십자가를 생각할 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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