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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설교문

설교문 I 신명기 1장 1-13 I 그 땅을 차지하라 I 이재훈 목사

by №1★↑♥ 2023.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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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장 1-13 I 그 땅을 차지하라

-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  - 

 

신명기 모세의 긴 설교입니다. 호렙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율법을 다시 설교해 주는 모세의 강해 설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신명기는 한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때의 신자는 여러 의미를 가지는데, 그중에 '거듭'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신당부한다는 말은, '거듭거듭'의 의미가 있는데, 그때의 '신'이에요. 그러니까, '신명기'는 '거듭당부하는 계명'이라 해석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의 제목은 이와 달라요. '책의 첫 단어가 제목'이 되는데, '이것이 말씀이다'라는 뜻의 '드바림'이 신명기의 제목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과거 호렙산에서 주셨던 계명을, 다시 반복해서 거듭 당부하여 설명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모세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다시 설명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의 중요한 전환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평지, 아라바 광야라는 곳에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출애굽 한 지 40년이 지나서, 광야의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있는 그 백성들에게 모세가 호렙산에서 과거에 받았던 그 법을 다시 설명해주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입니다. 1장 1, 5절의 말씀을 보면 그들이 처했던 환경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절,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사이에서 이스라엘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5절, '모세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모압의 영토, 요단 동편 아라바 광야에서 율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다시 설교, 설명해야 할 첫 번째 이유는,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호렙산에서 율법을 받았던 대상들은 애굽에서 자라난 출애굽 1세대들입니다. 그들은 광야 40년을 지나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습니다. 모든 세대들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할 이들은, 출애굽 2세대들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태어나서 자란 젊은 세대들입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그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교육할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율법을 받았던 자들이 아니라, 이제 새롭게 광야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호렙산에서 받은 율법을 다시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서 먹을 것을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서 주셨고, 때로는 반석에서 물을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서 살아왔습니다. 유목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정착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는 만나가 그치게 됩니다. 자신들이 시를 뿌려, 농사하고 수고하여 얻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해설하여 적용하며 살아가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필요성은, 지도자가 바뀌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모세는 여기까지가 끝입니다. 그는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들어갈 수 없는 땅이지만, 여호수아를 통해 그 땅을 올바로 정복하고 차지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은 자신이 호렙산에서 받은 율법을 그들에게 다시 설명해 주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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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 땅에 들어갈 백성들을 향하여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준비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율법을 그들에게 다시 설명해 주는 일입니다. 그들이 이 설명과 설교를 얼마나 마음 깊이 들었는가?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이 리더로서 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명기가 나온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얻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어야만 했다는 것이지요. 땅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땅은 물질이요, 말씀은 영이요, 정신입니다.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영혼을 차지해야만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물질이 정신과 영혼보다 앞선 때에는 언제나 역사의 멸망을 가져왔습니다. 영혼이 물질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역사는 실패로 끝이 나고 맙니다. 모세는 그 백성에게 그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땅을 왜 주셨고, 그 땅을 차지함으로 어떻게 관리하게 될지를 아는 그들의 영을 새롭게 하는, 그들의 영혼을 깨워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땅이 주어진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땅을 관리할 수 있는 영혼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만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을 그들에게 다시 말씀해우저야 했던 것입니다. 신명기 1-3장까지 내용은, 호렙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 모압 광야에 이르는 40여 년 동안 압축, 요약해서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과거를 기억하는 내용입니다. 40년의 역사를 3장 동안 짧게 회고하니, 모든 이야기를 다 기록할 수 없었겠지요? 선택적으로 중요한 사건들만, 다시 회고합니다. 

4장부터가 율법을 다시 해설하는 설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1-3장까지가 신명기의 서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서론을 잘 읽어야 4장부터 나오는 율법이 왜 주어졌는가? 뜻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장의 내용은, 40년의 역사를 3장으로 압축했으니 모세가 필요한 기억과 사건들만을 선택했겠지요? 그리고 그 시각이 모세가 지금 이 차세대를 교육하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모세의 관점을 통해서 선택하고 해석한 일들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나오는 내용과 약간 상이하게 보이는 기록이 있습니다. 

1장 후반부에도 그가 첫 번째 기억하는 것은 지도자들을 세우는 일이었다는 것을 회고합니다. 첫 번째 과거를 회상할 때 모세 혼자 할 수 없었습니다. 함께 지도자들을 세워서 함께 이루어갔다는 것을 먼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충고해서 혼자 할 수 없으니 사람들을 뽑으라는 충고가 먼저 나와요. 민수기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 앞에 불평합니다. "제가 어찌 이 짐을 혼자 질 수 있나요?" 사람들을 세우라고 해서 한 것으로 나오는데, 신명기는 모든 것을 종합하여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과정을 거쳤든 간에 모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혜롭고 현명하고, 존경받는 리더십들과 함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역사적 사명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함께 협력하는 리더십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모세의 기억이 중요한 기억으로 남은 것입니다. 

모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결론적인 기억이 이렇게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역사를 바라보는 그 해석하는 기억의 틀이 중요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은퇴 후 회고록을 작성할 때, 모든 일들을 다 기록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의 기억 속에 역사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은 기억을 가지고 기록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때로 해설의 틀을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동일한 사건, 동일한 현장에 있었던 일이라 할지라도 해석의 틀에 따라 다른 사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 신명기를 기록하면서 광야 40년을 지날 때, 지도자의 입장에서 하나님과 가까이 동행했던 지도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기억의 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도자에게 있어서는 역사의식이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를 해석하는 기억의 틀이 무엇인가? 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도자를 뽑을 때, 어떤 전과가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머릿속에 어떤 역사관이 있는가? 어떤 역사의식이 있고, 그 역사를 보는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기억의 틀이 있습니다. 그것을 분별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모세를 보라. 그가 과거의 역사를 해석하는 중요한 틀이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게 된 실패의 기억이 모세에게 가득 차 있습니다. 2-3절,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니'

 

 

 

 

 

 

호렙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의 거리면 11일이면 충분했습니다. 그 거리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11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 걸려서 간 경험이 있나요? 어떤 프로젝트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이동이에요. 우리는 1시간 걸려 갈 길을 때로는 길이 막혀서 하루 종일 걸리면 아주 통탄해합니다.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4-5시간이 걸리니까, 너무 힘들고 절망적이더라고요. 그러니 11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입장에서 볼 때는, 가장 중요한 역사를 보는 해석의 틀입니다. 왜 우리 민족이 이래야 하는가? 모세는 이것을 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새, 백성들은 왜 광야를 돌아야 하는지.. 설교를 듣는 다음 세대들은 광야에서 태어나서 그냥 자라왔기 때문에 왜 우리가 광야에 있는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냥 광야에 있다는 실제가 중요하고, 현실이 중요하지.. 왜 우리가 광야 40년을 지내는가? 40세 된 사람들은 그냥 광야에서 태어나서 광야에서 자라온 거예요. 광야에서의 삶이 익숙한 거예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심각한 역사의식이 없는 거예요.

그러나 모세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거예요. 11길이면 길을 40년을 방황하니 모세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뼈아픈 기억이겠어요? 모세의 기억 속에는 그다음 세대들과 다른 기억이 있는 거예요. 과거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 조상, 선배들이 가졌던.. 역사의 기억과 우리 다음 세대들이 가진 역사의 기억은 다른 거예요.

그것을 잘 전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예요. 그것은 교과서를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 우리의 삶 속에서 과거의 역사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는 기억의 틀을 전해주는 것이에요. 모세가 만일 이 실패의 역사를 잘못 기억했다면.. 모세는 이렇게 긴 설교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음 세대들에게 또 다른 실패를 남겨주게 되었을지도 몰라요. 여러분, 과거의 역사는 분명히 실패이니다. 11일 길이면 갈길을 40년을 방황했다는 것은 공동체 전체의 실패예요. 이것을 기억할 때, 사람들은 잘못 기억할 수 있다는 거예요. 마음의 깊은 상처와 미움과 분노와 적개심과 그런 것을 기억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과거 역사를 기억할 때, 잘못된 기준으로 기억할 수 있어요. 잘못된 해석으로 상처와 절망으로만 기억할 수 있어요. 그러면 또 다른 불순종을 가져오는 거예요.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상처 속에서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해요. 잘못 기억하는 것이지요. 예일대 교수인 '미로슬라브 볼프'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분이 최근에 낸 '기억의 종말'이라는 책을 썼어요. 그 책의 토대는 자신이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유고 슬라비아 군대의 군인으로 있을 때에 부인이 미국 시민이었어요. 그래서 미국 부대의 첩보원이라는 누명을 쓰게 돕니다. 교묘하게 전 부대원이 그를 행정병으로 앉혀 놓고 그가 쓰는 펴지, 그가 사용하는 대화의 내용을 짜깁기해서 그를 첩보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수개월 동안 심문을 받아요. 그 수개월 동안에 계속된 심문이 상처가 깊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해요. 그리고 그 기억과 싸우는 거예요. 그 자신을 고문하고, 심문했던 사람들을 향해서 적개심과 분노와 상처 속에 그가 자기가 헤어 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해요. '내가 이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있는 그대로의 기억이란 없다는 것이지요. 있는 그대로의 기억만이 아니라,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해석하는 거예요. 그것을 미움과 적개심으로 해석하면, 그 기억이 나로 하여금 더 분노에 젖게 하고, 적개심으로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게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망각할 것인가? 섵부른 망각은 또 다른 잘못을 인정하게 되고 불의를 용납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과도한 기억 또한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올바르게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그 책을 쓴 거에요.

그러면서 이 분은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방식이 가장 역사상 가장 바람직한 기억의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유대인들이 수많은 학살을 당한 기억이 있어요.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분노로 적개심으로 역사를 향한 어떤 미움으로 가져가는 대신에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정의로운 삶과 교훈으로 바꾸었다는 거에요. 올바르게 기억하라. 

우리는 기억에 의존하여 살아갑니다. 기억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합니다.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보면, 기억의 신비에 대해서 한 챕터를 썼어요.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것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에요. 우리가 무엇을 잘 못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회개는 할 수 없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을 통해서 만나 주시고 기억을 통해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심지어 그는 기억을 마음과 도일하다고 고백하기도 했어요. "마음과 기억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을 마음이라고 까지 부릅니다. 기억이란 마음의 위장과 같습니다."

또한, 인간은 망각의 존재예요. 잊어버림을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어요. 그런데 과거와 함께 과거의 교훈까지 망각하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반대로 망각해야 할 것을 기억하면 그 기억은 새로운 미래를 가로막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르게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불필요한 것은 망각하면서, 동시에 과거 실패의 교훈을 올바르게 기억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게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망각의 기술과 기억의 기술을 잘 배워야 합니다.

왜 이렇게 기억에 대해서 장황하게 말씀드리냐? 이것은 모세가 율법을 다시 설교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바른 기억을 심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의 새로운 기억을 교정시켜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자란 기억만으로는 그 당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는 거예요. 광야에서 자라난 백성들에게 올바른 기억을 심어 주는 것.. 그 기억은 무엇인가? 우리가 왜 광야 40년을 지내야만 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써만 우리가 잘못되었음을 기억하며 반성하게 되는 거예요. 그들의 선택으로 인한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왜 광야 40년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 자녀들이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실패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억을 교정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광야의 기억만으로는 가나안 땅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과거의 약속을 왜 주셨고? 왜 그 땅으로 들어가라고 했는지..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면.. 광야 40년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 무의미한 시간이 되는 거예요. 왜 광야 40년을 해석할 수 있는 기준이 없는 거에요. 그 땅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말씀의 기준이 있어야 40년이 우리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시작된 실패의 역사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하고도 소중한 기억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 우리가 지난 수년간 살아온 인생만 기억합니까? 그러면 우리의 역사는 또다시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기억하고, 우리에게 주신 그 말씀의 기준을 기억할 때 우리의 인생과 역사가 해석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해석하고, 역사를 해석하는 중요한 역사의 틀을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12장은 '너는 아직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 왜 미래를 향한 새로운 꿈을 꾸라고 하지 않고, 너희의 기억 속에 창조주 하나님을 넣으라.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있을 때, 미래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현재가 해석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새로운 세대들에게 설교하여 가르친 것처럼..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질 때에 개혁이 일어났어요.

유대의 역사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전반적인 개혁을 일으킨 왕이 요시야 왕이에요. 그 왕의 개혁의 동기가 무엇이냐? 어느 날 성전을 관리하던 자가 모세가 전해준 율법책을 발견하고, 그 책을 읽음으로 인하여 개혁이 일어납니다. 모든 학자들은 그 율법책이 신명기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신명기의 말씀, 모세가 다음 세대에게 전해준 그 말씀을 백성들이 왕으로부터 읽고 그 말씀 대로행하기를 결단했을 때, 종교 개혁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개혁이 일어나는 거예요. 

포로 후에 백성들이 돌아왔을 때에, 개혁이 또 일어났어요. 학사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백성들에게 가르쳤을 때에 그들도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이키는 개혁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 책도 동일하게 신명기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를 설교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다시 들어야만 했던 말씀. 모세의 율법을 하나님의 율법책을 모세가 다음 세대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말씀을 다시 해석하여 설교했던 이 설교를 우리가 들음으로써.. 오늘 우리도 돌이키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돌이켜야 되는지 이 역사가 어디로 지금 흘러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함으로써.. 우리의 과거의 실패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상처와 분노와 적개심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교훈으로 그리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기억으로 우리 삶 속에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된 기억을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서게 하신 것처럼.. 2018년도 신명기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인생의 기억 속에 역사를 해석하는 기억의 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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