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읽은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지적하는 것이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위선적인 종교 행위 중 하나가 금식입니다. 금식을 사례로 들어서 그들의 위선적인 신앙의 태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채우시렵니까?
제일 먼저 본문의 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과 관련하여 항변하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사야 58:3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금식하며 하나님께 메달리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우리의 열심을 알아주지 않느냐? 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항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을 하시냐? "니들이 하는 금식은 한 마디로 말해서 마음이 담기지 않은 금식이기 때문에 내가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금식하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습니까?" 이런 태도 자체가 그들의 금식의 문제점이 무어인지 드러나는 거 아닙니까? 금식이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거래 행위가 아닙니다. 내가 이만큼 하면, 당신은 이 만큼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러한 태도부터에서 그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금식에 임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식은, 신앙생활은 그런 거래 행위가 아닙니다. 제가 은퇴하게 되고, 제 생활 속에서 이런 공로 의식이 있을까 봐 늘~ 두렵습니다. 이런 생각이 정말 위험한 거 아닙니까? 신앙생활을 거래 행위가 아닙니다.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인격과 인격 안의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식이 뭘까? 금식은, 그릇을 마련하는 행위입니다. 금식 자체가 최종 목적이라기 보다는 그릇을 마련하는 행위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금식은 육신의 욕망을 비우는 행위 아닙니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에 대한 욕망을 잠재우는 것. 그래서 내가 육신의 욕망을 비우는 금식을 통해서 육신의 욕망을 내어 드리는 대신에 그릇을 하나 얻는 것이 금식입니다. 그릇을 얻는 것도 소중하지만, 마련된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이냐? 하는 것이 최종적으로 금식의 열매가 나타나느냐가 판가름이 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누가복음 18장 10절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데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지금 두 사람이 기도하는데, 그 기도가 너무 대조적이지 않습니까? 13절입니다. '세리는 멀리서서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나이다' 지금 스스로를 그렇게 고개를 못 드는 죄인으로 생각하며 회개하는 세리의 기도가 있는가 하면, 그 앞에 11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지금 이 바리새인은 금식을 통해서 얻은 그릇에다가 뭘로 채웠습니까? 교만과 우월감으로 채운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금식 행위 자체가 최종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금식을 통해서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걸 제대로 못하면 안 한 것만 못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절대로 여기에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 것인가? 오늘의 본문을 중심으로 몇가지 힌트를 드리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의 회복
첫째로, 하나님을 향한 굼주림의 회복. 지금 오늘 본문에서 금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서운하심이 무엇입니까? 5절 b '..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 될 날이라 하겠느냐' 너희의 금적인 행위 속에 너희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다. 우리가 금식을 하는 행위도 그렇고, 우리의 마음의 밭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추천도서로 권했던 존 파이퍼의 '하나님께 굶주린 삶'에 대한 책에서 금식과 관련하여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금식의 뿌리는, 하나님께 굶주린 향수다." "금식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행위에 도움이 된다. 하나님을 가장 중시하는 마음이 금식을 통해서 늘 민감하게 깨어 있는 것이다. 금식은 이 문제를 가만 두지 않고, 자꾸 질문하게 한다. 나는 정말 하나님께 굶주려 있는가? 그분을 정말 사모하고, 그리워하는가? 아니면 어느 부분의 선물로 만족하는가?" 오늘의 이 금식을 통해서 얻게 될 빈그릇에다가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의 회복으로 채워지기를 원한다면 내내 이 질문을 던지십시오. "나는 정말 하나님께 굶주리고 있는가? 나는 그분을 사모하고 그리워하고 있는가? 나는 어느새 그분을 선물로만 만족하고 있는가?"
교구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심방을 가서 들은 이야기를 제게 전했는데.. 다락방 모임에 왜 안나가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해요. "기대감을 가지고 갔는데, 시간이 아깝다. 낭비하는 것 같다." 무슨 의미인가? 했더니.. 이분은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어서 다락방에 갔더니 다락방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예요. 모든 대화의 주제가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건강, 부동산, 자녀 이야기만 나누어서 시간이 너무 아까워 다락방에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다락방이 그렇지 않다고 오해를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순장님이 계시면 여기에 순원들이 계시다면 여러분들이 마음을 모아서 이번 다락방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세상 모임에 가도, 동창회 가도 늘 나오는 그런 주제 말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 하나님으로 굶주린 모인 사람들로 충만한 다락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 제가 두 주간의 금식을 선포하고 마지막 단계로 오늘 다락방 개강을 앞두고, 다락방 순장 순원들이 이루는 금식 수련회를 가지게 되었을까? 여러분들이 충만한 금식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빈 그릇 하나씩 다 받으시고, 다락방에 가서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 하나님을 향한 관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락방 안에서 차곡 차곡 쌓아가는 그런 모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에 대한 단절
그런가하면 두 번째, 금식으로 마련된 그릇에 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한 것들에 대한 단절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에 대한 단절의 결단을 담아야 합니다. 금식은 죄악과의 싸움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강조하는 것이 뭡니까? 3절 하-4절 '3하 너희들이 금식하는 날 향락만을 찾고 일꾼들에게는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금식하면서 모양은 다 갖추고 있지만 바뀐 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쾌락을 추구하고, 여기에 나와 있는 일꾼들에게는 무리하게 일을 시킨다? 자기들이 부리는 종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착취하고 억압하는 짓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요지가 무엇입니까? 금식은 하지만 나쁜 행위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금식을 내가 어떻게 받겠느냐? 그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5절에서 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겠느냐 이것이 어찌 사람이 통회하며 괴로워하는 날이 되겠느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금식이 뭔가요? 괴로워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뭐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쾌락을 좋아하고 욕망을 추구하는 나를 괴로하는 날이 금식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한 인격으로 대우하기 보다는 얻을 것은 없는지.. 착취하는 대상으로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값질이라는 말에 해당이 될 수 있겠느냐고요. 아무리 담임목사 아니라, 담임목사 할아버지라도 제가 우리 전도사님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내 목회의 도구로 생각하면 이것은 오늘 내가 머리에 재를 뿌리며 고통스러워해야 합니다. 이런 썩어빠진 생각하는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그게 금식이에요. 이건 하나도 고치지 않고.. 이러한 금식은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식하면서 마련된 그릇에다가 여러분이 뭘 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한 행위에 대한 단절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가 악한 짓 하지 않겠다.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는 악한 짓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 다락방의 사람들 중 누가 유력한가? 누가 나에게 유익이 될 것인가? 해왔다면, 그것에 저울질하면서 아파하며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한 인격은 착취할 대상이 아니고, 내가 이용해 먹을 대상이 아니고, 그를 내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귀한 자로 그렇게 잘 섬기겠습니다. 그렇게 못한 것에 대해서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이게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인용해 드렸던 존 파이퍼 목사님의 책 중에 인상적인 소제목 하나가 있는데, "금식은 본래 죄를 굶기는 것이다." 그 내용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우리 삶에 해결되지 않는 죄가 있는데, 다른 문제로 금식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그 죄를 굶겨 죽이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해결되지 않는 죄가 있다면, 이것을 끊지 못하면서도 금식하면서 사업 잘 되도록 기도하신다면 하나님께서 뭐라 말씀하신다고요? '니 지금 사업 잘 되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보다 급한 게 있는데, 그것을 끊지 못하는 세상적인 죄를 놓고 기도해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금식은 본래 죄를 굶기는 것입니다. 저도 요즘에 금식을 한 끼 혹은 두 끼씩 하면서 계속 주님을 묵상하면서 죄에 대한 욕구가 다 없어졌습니다. 본래부터 제가 많지도 않았지만.. 다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용서 못할 사람들 리스트가 떠올라서 한꺼번에 용서하고.. 왜 그렇습니까? 금식을 통해 죄를 굶겼거든요. 죄를 굶겼더니 마음에 죄를 부추기는 것들이 힘을 잃어가지고 더 이상 저를 충동질을 못하는 것 같아요. 한번 따라 하시겠습니까? "금식은 본래 죄를 굶기는 것이다. 금식은 본래 죄를 굶기는 것이다." 이번 금식으로 마련된 그릇에다가 하나님 싫어하시는 악한 행위를 단절해야겠다는 결단으로 채우시는 저와 여러분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을 이런 차원에서 읽어야 합니다. 6절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 말씀은 3절의 대안입니다. 3b절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자기가 착취하고 억압하던 사람들이 무엇을 하냐?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행위가 뒤 따라올 때,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금식은 내 악한 행위를 단절하고, 결단이 포함된 금식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9절 하반절도 마찬가지입니다. '..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이 말씀이 왜 나왔는지 아시겠습니까? 4절 보세요.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패악한 짓을 하는 그 사람이 금식을 통해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는 열매가 나타나는 금식. 이런 금식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은 금식이란? 내 악한 행위에 대한 단절을 선포하는 행위예요. 이번 금식을 통해 아내에 대하여, 남편에 대하여 날마다 무시하고 자녀에 대하여 과도한 세상적인 방식으로 길렀던 것들을 향해서 회개하고, 단절해야겠다는 결단이 나와야 하나님께서 그 금식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3. 이웃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회복
마지막 세번째로, 우리가 금식으로 마련된 빈 그릇에 담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회복입니다. 방금 읽어드린 6-7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어떤 금식입니까? 6-7절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제가 이 구절을 보면서 놀란게 뭐냐? 금식이 영적인 행위기 때문에..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첫째, 뭐뭐뭐 둘째, 셋째.. 내게만 집중하라"는 식의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건 당연히 바닥에 깔고 이웃에 대한 배려 이야기 아닙니까? 제대로 된 금식을 행하려면 자기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는 이웃들을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품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금식을 단순히 하나님과의 영적인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으로만 몰고 가는 것을 원치 않으세요. 그것으로 시작이 되는데..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집중하여 굶주리는 마음으로 열망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랑으로 연결이 되도록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근본정신이 이거 아닙니까?
여러분, 아시는 마태복음 22장에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마태복음 22: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랬더니 3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율법의 정신을 이 만큼 잘 설명하는 구절이 있을까요?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걸 어디로 연결 시키느냐? 37-39절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당연히 율법의 근본정신은 하나님을 마음 다해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네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네 이웃에게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이게 지금 본문에서 금식의 정신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그대로 녹아져 있는 거 아닙니까? 이런 차원에서 6-7절 꼼꼼히 살피고, 묵상하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오늘 어떤 부분을 회개해야 하는가? 뭘 괴로워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금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6-7절의 내용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이러한 행위를 하는 자를 위하여 말씀하시는 축복을 보십시오. 8 절부터입니다. '8 그리하면..' 하나님을 향한 주림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이웃을 향한 사랑을 흘려보내면.. 그리하면..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앞에서는 암만 금식해도 외면하셨었는데, 여기서 보니까 "네가 부를 때에는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 내가 여기 있다. 그렇게 하겠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을 이웃을 향한 긍휼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연결시키면.. 그리하면 이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금식 수련회를 통해서 부부관계가 더 좋아질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상대방에 대한 허물이.. 제가 결혼생활을 해보니, 상대방이 불쌍해지면 모든 것이 행복해지더라고요. 신혼 때는 그냥 여전히 그 앞에 여자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 계속 비교가 되더라고요. 그 앞에 선본 여자. 매주마다 선을 봤기 때문에 선본 여자들과 비교를 많이 했어요. 요거는 우리 집사람보다 나은 것 같은데..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적을 많이 했어요. 하나도 안 바뀌더라고요. 요즘에는요? 제가 믿음이 좀 생겼어요. 저는 제 아내가 바뀌어서 가정이 회복된 것이 아니고 아내의 모든 연약함이 불쌍해요. 긍휼함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이 사람을 보면 20대에 만나서 50대가 되었으니 외모나 젊을 때 같겠습니까만은 저는 젊을 때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러워요. 왜? 긍휼 한 마음으로 보니까 장점은 너무 사랑스럽고, 약점이 보이면 주님의 사랑으로 긍휼 한 마음이 들어요. 너무 안쓰러워요. 저는 집사람이 신혼 때 홀쭉하던 몸매가 아니라도 전혀 괜찮아요. 딱!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은, 이러면 건강에 안 좋을텐데.. 그 염려 밖에 없습니다.
뭘 제가 말씀드리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깊어지면.. 그것이 아내에게 자녀에게로 흘러가는데..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 긍휼 하심 아닙니까? 나를 긍휼히 여기심. 부부 관계가 당연히 좋아지는 것 아닙니다. 제가 이런 다락방에서 마음이 아픈 게, 다락방을 개편하면 주로 교역자들이 몸살을 앓는 것이 다락방을 바꾸어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니까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꾸어 달라"는 모든 분들을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꽤 많은 분들이 그래요. 이를 악물고 다락방에 가셔야 해요. 이렇게 사랑이 많은 사람이 많은 이 교회에서 하필 그 사람하고 묶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니는 꼭 그 사람이랑 해야 한다.' 옮겨보세요. 그 사람은 이사해서 따라갈 거예요. 여러분이 꼴 보기 싫은 그 사람과 다락방 반드시 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그 사람을 붙여주심으로 이를 악물고 사랑할 수 있도록 그를 불쌍히 여길 수 있도록.. 다락방은 그런 실습 장소입니다.
이번에 다락방 개편되어서 갔는데 너무 좋은 분들만 있으면 딴데로 옮겨달라고 해주세요. 유익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보니까, 밉상스러운 사람이 있고, 입 열었다 하면 자기 말만 하고.. 그런 다락방에 가면 성령 충만한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 인간도 인내를 하며 참지 않으면 안 되고, 저 인간도 생각만 해도 꼴도 보기 싫고, 완전 밥맛인 여자도 하나 있고.. 그런 다락방으로 구성이 되면.. 하나님이 흡족하실 거예요. 니 진짜 하드 트레이닝을 하는구나! 다락방은 내 외로움을 충족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다락방은 훈련 장소입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물꼬가 흘러 흘러서 보기 싫은 저 사람까지도 품을 수 있도록..
저는 오늘 말씀의 결론을 이렇게 내리기 원합니다. 두 가지 더 말씀을 드리고 결론을 맺으려고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무엇으로 채우시렵니까?'입니다. 금식하면 영혼의 빈 그릇을 하나씩 받게 됩니다. 이번 학기에 받은 여러분들의 빈그릇에 무엇으로 채우시렵니까? 세 가지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을 향한 굶주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한 행위에 대한 단절 선포, 이웃을 향한 사랑의 회복. 이런 것들로 다 채워나가면 열매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 교역자 찬양팀 전도사님이 찬양을 부르는 데 눈물이 울컥하더라고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저녁 예배 때는 가족별 특송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구역 특송이 많았거든요. 내 좀 과장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다섯 가정 중 하나가 이 특송을 부르더라고요. 그 어른들의 얼굴이 막~ 스쳐 지나가는 거예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영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것 없이는 싫어하는 사람 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과 내일 이 금식 수련회에서 드려지는 찬양과 기도 등의 모든 행위가 하나의 열매로 맺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그런가 하면 하나 더 요한복음 21장 15절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여기서 영적으로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그거 아닙니까?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이 사람들보다 내가 주님을 더 사랑하시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영적으로 주님 사랑하는 마음을 뭘로 바꾸기 원하시는지를 느껴보세요. 16절 '두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르시되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조금 전 찬양할 때,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은 시몬에게 무르셨네' 저는 머릿속에서 계속 이렇게 바꾸어서 맴도는 거예요. '갈릴리 바닷가에서 주님은 찬수에게 무르셨네 사랑하는 찬수야 넌 날 사랑하느냐 오 주님 당신만이 아십니다.' 이것 말고는 드릴 대답이 없어요. 이번 금식에 하나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면 딱 이거 하나에요.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다락방에서 이 긍휼이긍휼히 상대방을 향한 이 애틋한 긍휼히 회복되고, 가정에서 부부 간데, 부모 자녀 간에 주님이 이 질문을 던지시고 또 양을 치라는 음성이 들려지는 가정, 그런 다락방, 그런 분당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양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저를 따라 큰 소리로 선포하고 주님 앞에 기도할 텐데요. "아버지 아무리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버지의 긍휼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그저 미운 사람은 미운거지, 그가 불쌍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금식합니다. 그 사람을 내가 용서하고 사랑하고 품기 전에 금식하며 주님을 향한 굶주림, 갈망을 채우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다짜고짜 '네가 나를 사랑하니? 그 양을 먹이라'라고 하지 않으세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사랑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연약함이거든요.'
저를 따라 큰 소리로 외치고 말씀을 기억하며 금식하며 기도하기 원합니다. "주여 은헤를 주옵소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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