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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설교문

[이사야 3] 이사야 4:2-6 I 여호와의 싹이 희망이다 I 이동원 목사

by №1★↑♥ 2021. 7. 16.

[이사야 3] 이사야 4:2-6

여호와의 싹이 희망이다

이동원 목사

  아동문학가 김종순 씨가 쓴 시 가운데 '새 순이 돋는 자리'라는 시가 있습니다. '새 순은 아무 데나 고개 내밀지 않는다 / 햇살이 데운 자리 / 이슬이 닦은 자리 / 세상에서 가장 맑고 따뜻한 자리만 골라 / 한 알 진주로 돋아난다' 오늘의 본문 2절을 보시면 '그날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그날'은?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시는 그날, 메시아가 찾아오는 그날, 그늘에 그 주인공을 가리켜 이사야 선지자는 독특한 상징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분은 여호와의 싹이다.' 싹이라는 단어가 히브리말로 '제마크'입니다. 이것을 달리 번역하면 '순', '가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새로운 싹으로, 새 순으로, 새 가지로 불렀을까요? 새 싹은 새 생명.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표현에서도 희망이 있고, 없고를 말할 때 "싹수가 있다. 싹수가 없다. 싹수가 노랗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식물이 병들면 단풍이 들지 않는 이상 노래지고, 앞으로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싸가지가 있다. 싸가지가 없다."는 말도 본래 싹이라는 단어의 방언인 것입니다. "싸가지" 그러면 '싹 + 아지'가 결합된 것입니다. '아지'는, 새끼입니다. 그래서 '싹아지'하면, '어린싹, 새끼 싹'이런 뜻입니다. 나쁜 뜻이 아니에요. 옆에 사람에게 "당신은 싹아지이십니다." 인사해보시겠어요? "싹아지가 없다." 그러면 나쁜 말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싹아지는 좋은 말입니다. 그것은 생명, 희망을 상징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지금 이 예언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속한 나라는 국내외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고 왕권은 흔들리고 있었고, 아무것도 사람들은 믿을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깊은 체념과 절망의 익숙해지고 있던 그 때에 선지자는 예언을 시작하면서 그날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날' 여호와의 새 싹이 돋아 날 것이라는 희망을 선포하며,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동 문학가 김종순의 시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은 햇살이 데운 자리, 이슬이 닦은 자리, 지구촌의 한 모서리, 언약의 땅에서 그가 준비한 새순, 새 싹 되신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메시야가, 그리스도가 희망의 싹이 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 우리 마음에 계신 그리스도가 오늘도 희망의 새로운 싹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분은 우리를 성도로 기록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3절 '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록된'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예로 그들이 하나님의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거룩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이걸 달리 표현하면, 그들의 구원이 보장된다는 독특한 표현인 것입니다. 다니엘 12:1하 '..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모든 사람의 구원은 이루어진다. 틀림없다. 보장되어 있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이런 표현을 신약성경에서도 계속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 지어 내보냅니다. 그들은 전도지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신나서 돌아와 보고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다가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서 귀신을 쫓아내니 귀신이 나갔고, 병자들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겠습니까?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귀신이 항복하는 것 기적이죠? 병고침 받는 것. 기적이죠? 그러나 그 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있다. 그것은 너희들의 이름이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그것이라.. 

  바울 사도도 빌립보 교회를 향해 편지를 할 때, 빌립보의 사역자들이 서로서로 힘을 합하여 이 복음 앞에 헌신해야 할 이유를 격려하면서 이런 말씀을 남깁니다. 빌립보서 4:3하 '.. 그 이름들이 생명 책에 있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함께 영생을 상속받은 자, 천국에 영원히 거하게 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부터 우리는 바로 그 영생의 복음을 전하는 그 일에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분을 나의 구세주로, 나의 메시아로 알고 믿고 영접하는 그 순간 그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의 이름을 생명 책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기록해 주신다는 사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이름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나요? 이 확신 없으면 신앙생활하나 마나입니다. 내 이름이 분명히 하나님의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고, 그분은 나를 그분의 백성으로, 당신의 자녀로 기억하고 계시다. 그보다 더 위대한 사건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의 표현으로 돌아가서 다시 보자면 '너희의 이름이 기록된 모든 사람들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거룩함과 상관이 없는 인생을 그동안 살아왔습니다.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구세주로 믿는 순간 메시아가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 거룩하다고 칭함을 얻으리라고,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 아닙니다. 거룩하다고 칭함을 얻으리라. 그분의 은혜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하다고 칭함을 얻은 사람을 가리켜 신약성경에서는 '거룩하게 된 칭함을 얻은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뭐라고 쓰고 있죠? 예수님 때문에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그대들에게 편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본래 성도라는 부분에 영어에는 어떤 단어가 쓰였느냐? saint. 이 단어를 일반적으로 번역하면, 성자, 성인입니다. 여러분, 성도와 성자가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를 다른 말로 하면 성자입니다. 성인 조금 충격이 되지 않습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성도님~" 그러면 의례적으로 부르는구나? 받아들이지만 이제 옆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보시면서 "성자님~" 혹 여자분이 계시면 "성녀님~" 해보세요. 

  가톨릭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가운데 특별한 인생을 산 사람, 그리고 위대한 기적을 산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서 시성식을 합니다. 이제 이 사람은 '성인이다.' 선고되면, 성인이라는 호칭 붙습니다. 영어로는 'saint' 약자로는 s.t. 그런데 사실 성경을 통해 엄밀하게 고증하자면 잘 못 쓰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영접하는 자는 누구든지 성자요, 성인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은혜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거룩하다는 칭함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하다 칭함을 얻은 사건을 교리적으로 표현할 때 '칭의'라고 합니다. 의롭게 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의롭다고 칭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 값없이, 대가도 없는데, 자격도 없는데 의로운 자로 여김을 받게 되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Grace가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호의. 그게 바로 은혜란 말이지요.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우리가 의롭다고 칭함을 얻은 놀라운 사건을 가리켜서 오직 은혜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좌표 중 하나인 것입니다. '솔라 그라시아' 전적인 은혜. 정말 은혜 아닙니까? 나 같은 사람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고, 이것이 은혜가 아닙니까? 놀라운 은혜지요. Amazing Grace에요. 누구 때문에? 새 생명 되시는 예수님, 새로운 싹 되신 예수님. 그분 때문에 과거에 죄인이었던 내가, 우리가 성도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책에 거룩한 백성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자, 이 놀라운 사건을 가리켜서 원색적으로 표현하면 '예수 믿기 전에 싹아지가 없던 인생에서 싹아지 있는 인생으로 바뀌었다.' 옆 사람에게 "당신은 이제 싹아지가 있는 인생입니다." 할렐루야. 놀라운 은혜입니다. 

 

  메시야가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 청결함의 은혜를 입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존재로 칭함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선언적 과제는 우리가 청결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모두가 불결한 죄인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메시아가 오실 때 받게 되는 또 다른 은혜, 입게 될 은혜에 대해서 본문 4절은 어떻게 표현합니까? 4절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죄는 우리의 영혼 속에 깊은 죄책감을 남기게 됩니다. 그 때에 우리의 영혼은 정결함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혹시나, 혹여나 그 은혜를 주실까 정결함의 희망을 안고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옛 찬송가의 가사처럼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를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가지고 날 태우던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1700년대 중반 영국 변호사요 시인이었지만 정신병과 더불어 싸우고 있었던 윌리암 카우퍼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수시로 환시와 환청을 듣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향해서 들려오는 소리가 "너는 더러운 존재야. 너는 저주 받도록 태어난 존재야~" 다행스러운 것은 이 분을 아끼던 분들이 있었고, 그중 한 분이 Amazing Grace 찬양을 지으신 존 뉴튼 그레이스 목사님이 이 사람을 아주 아꼈어요. 또 그와 함께 더불어 몇 사람이 이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렇게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어느 날, 그는 로마서 3:25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하나님이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고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간고하시고,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 예수님이 화목 제물이 되셨다. 예수님이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의롭다 여기시는 놀라운 은혜를 묵상하던 그는 펜을 들어 찬송가를 작사하게 됩니다. 이 찬송가 250장, '샘물과 같은 보혈'입니다. '이 보혈의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3절에 보면, '죄 속함 받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 없이 크도다' 4절 '날 정케하신... 그 사랑 한 없네 살 동안 받는 은혜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 앞에 나오는 순간,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소멸의 영, 성령이 우리의 존재를 정결하게 하시는 그 은혜를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도 그 감격을 스가랴 13:1에서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이 거룩한 샘이 열려 우리를 씻어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사야도 메시아가 우리의 새 생명, 새로운 싹이 되셔서 그 은혜를 입혀 주시는 그 감격을 증언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사야는 뭐라고 합니까?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라고 했어요. 정결하게 하실 것. 그 은혜가 오늘 여러분과 저희에게도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메시야가, 그리스도가 우리에겐 생명의 싹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성도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본문 5-6절의 약속입니다. '5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6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쉽게 말하면 그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겠다는 것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더위와 풍우에서 안전하게 지키시는 피난처가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의 삶에서 모든 고난을 면제해주신다는 약속은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어떤 이유 때문에 고통과 환란, 더위와 폭풍우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은 무덥고 세차게 몰아세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야이신 그분이 우리를 지키시고 그래서 우리가 피하여 숨을 피난처가 되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영국의 변호사이자 시인이었던 샘물과 같은 보혈의 작시자, 윌리암 카우퍼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정신병과 싸우면서 자기 생의 전반기에 네 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살시도는 번번이 실패합니다. 한 번은 마차를 타고 마부에게 테임즈 강으로 가자고 합니다. 그 강에 투신할 생각이었습니다. 그 청년의 태도가 수상하다고 느꼈던 마부가 가지 않고 지켜보았어요. 그가 막 강에 투신하려는 순간 그를 붙들고 설득하기를.. "청년 그 용기를 가지고 인생을 살게~" 두 번째는 약방에 가서 그 약을 가서 먹고 죽을 생각했습니다. 음독을 했을 때 마침 이웃집 사람이 들어와 아직도 그가 숨기는 것을 보고 해독제를 먹이고 살렸습니다. 세 번째는, 자기 손목을 면도날로 그어서 죽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면도날로 긁는 순간 날이 부러져버렸습니다. 네 번째는, 목을 메어 자기 인생을 끝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웃집 사람이 들어와 매달려 있는 그를 풀어서 병원에 데려가 살렸습니다. 그는 비로소 "나는 죽을 수도 없는 운명이구나!"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났다고 정신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병에도 불구하고 69세까지 살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찬송 시만 67곡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문학사에 남길 수많은 시를 남겼어요. 영국의 쟁쟁한 시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구세주로 찾아오신 후에 지은 첫 번째 찬송가가 '주 하나님 크신 능력' 최근에 빠졌는데, 옛날 찬송가에 있었어요. 외국에는 굉장히 많이 알려진 유명한 찬송 시입니다. '주 하나님 크신 능력 참 신기하도다 바다와 폭풍 가운데 운행하시니 참 슬기로운 그 솜씨 다 측량 못하네 주님 계획한 그 뜻은 다 이루어지도다 검은 구름 우리들을 덮을지라도 그 자비하신 은혜로 우리를 지키네 어둠에서 소경같이 나 헤맬지라도 주 나를 불쌍히 보사 앞길을 비추네' 시인의 생애를 알고 이 찬양을 부르면 더 감동이지요. 그런데 이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충분히 살려내지는 못했어요. 이 시의 처음 화두를 우리 말로는 '주 하나님 크신 능력 신기하도다'로 번역했지만, 영어로 읽으면 뉘앙스가 훨씬 다릅니다. 'God Moves in a Mysterious Way' 하나님은 신묘하게 일하시는도다. 제가 원문을 나름대로 번역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신묘하게 일하시는 도다 그는 기사를 행하시고 바다의 그 자취를 남기시며 폭풍우를 타고 행하는도다 저 깊은 광산을 뚫는 신묘한 기술로 보물을 건져 올리시고 그 주권적인 뜻을 행하시는 도다 두려워하는 성도여 새 용기를 가질지니 짙은 구름을 깨트리는 크신 긍휼로 네 머리를 두르시는도다 불완전한 감각으로 주를 판단치 말라 그의 은혜를 신뢰할지니 엄숙한 승리 뒤에 미소 짓는 얼굴을 숨기시는 도다 그의 목적은 곧 열매를 맺을지니 매 순간 이를 펼쳐 보이시는 도다 그 싹은 비록 쓴 맛을 지닐지라도 그 꽃은 달콤하기만 하다네 맹목의 불신으로 그를 잘못 판단하고 그의 사역을 덧없이 탓하는 우리여도 하나님은 자신의 해석자, 마침내 모든 것을 분명하게 하실지라' 그가 노래했던, 그리고 그가 고통 속에서 붙들었던 그 메시아가 우리의 희망이십니다. 그 메시아가 오늘도 우리의 구원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새로운 싹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저의 마음 안에서 새 싹이 되신 그리스도가 자라게 하십시오. 그 생명이, 그 희망이 우리 안에 자라면 그의 생명이 우리를 다스릴 것이고 그의 은혜가 우리를 다스리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의 성숙이, 우리의 승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 은혜를 누리는 그 여호와의 싹, 그리스도의 생명이 오늘도 내 안에서 자라나는 그 은혜를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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