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장 1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우리를 무엇으로 말하냐 하면? '유업을 이을 자'라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구원을 얻는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는 자가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는 자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가는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구원받은 이후에 이곳에서 이 땅에서 삶의 현장에서 이어가게 되는데, 중요한 것이 교회를 통해서 또 이어가는 부분이 아주 중요하게 있습니다.
하늘의 유업을 이을자로 살라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가고 유업을 이어가고 그 나라를 누리고 또 그 나라를 위하여 살아갈 때, 그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을 수 있는 복된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 얻은 자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잇고, 그 유업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성도는 그냥 거룩하게 사는 것도 있지만, 동시에 이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나라를 위하여 영혼들을 품고 사랑하기 위하여 열심히 쓰임 받을 수 있는 성도, 하나님 나라의 일꾼. 그래서 우리가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동시에 좋은 성도 좋은 일꾼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코로나로 인하여 많이 움추러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나라와 몸 된 교회를 위해 함께 쓰임 받는 복된 성도 될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오늘의 말씀 1절에 '..유업을 이을 자는 모든 것의 주인이나..' 이것은 유업을 이을자가 온전히 유업을 잇고 완성된 모습, 온전하게 된 모습을 가리킵니다. 장차 우리가 주님과 함께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주님의 통치에 동참하게 될 때 모든 것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되지요. 그런데 '.. 어렸을 동안에는..' 이것은 하나의 비유인데, 고대 로마나 그리스나 이런 곳에서는 명문 가문의 자녀가 성년이 되기 전에는 합당한 명분, 권리를 갖지 못합니다. 그리고 유업을 이으려면 그 만한 자격(교양이나, 지식, 정의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 등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가르치고 그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하지요? 그래서 어렸을 동안에는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보면, '..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이어주겠다고 결정할 때까지 후견인. 우리에게는 후견인 개념이 생소할 수 있지만.. 외국에는 유업을 이을 때 그가 온전히 유업을 이을 수 있도록 돕는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하는 법정 대리인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후견인이지요.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 그리고 그 후견인 청지 아래에 있다고 하는데 이 아버지가 의탁한 유업을 자녀가 잇기 전까지 유업을 잘 관리하고 지키고 보호해 주었다가 이 아이가 잘 훈련받고 양육받고 준비가 되어서 온전히 그 유업을 계승할 준비가 되었을 때에 이어 줄 수 있는 사람. 이것을 청지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정해준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의 감독과 지도 아래 있다는 것이지요.
계속해서 3절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우리가 어렸을 때에,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 학문 아래에서 종노릇 했다고 하지요. 여기서 초등 학문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스토이케이아'라고 해서, 옛날 헬라시대에는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우주의 4 원소(불, 공기, 흙, 물).
이 세상의 철학과 학문을 따르며 살았지만.. 4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예수님을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다는 것은? 유대인으로 낫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뭐냐?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 율법의 조항에 갇혀서 사람들을 정죄하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잆는 이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 아래에 꼼짝못하고 갇힌 우리들을 위하여 율법 아래에 나셔서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그 아들의 명분. 명분이라는 말은 권리를 말합니다. 아들의 권리를 얻도록 한다. 여기서 특별히 '아들의 권리'가 뭐냐? 입양의 권리를 말합니다. 입양의 권리라는 것이 뭐냐? 우리에게 입양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이전에는 정치적인 후견인 같은 경우에는 이 아이를 우리 집 아이로, 양자로 들이겠다고 하면 그 가문의 유업을 이어가는 자. 그래서 로마 황제들도 보면, 상당 수가 명문가로 입양이 돼서 가문을 빛내는 황제로 있던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입양이 많이 있었고, 명문가문의 자녀들을 황실에서 입양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을 입양하기 위해서 그 아들을 먼저 보내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 하게 하고, 그다음에 우리를 구원하셔서 아들의 명분. 양자의 권리를 얻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양자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도록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보내서 그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한 권리를 소유하게 되면, 그 아들로써 살아갈 힘과 능력을 얻게 되는데 제일 근본적인 변화는 6절에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우리가 아들이기 때문에 무엇을 보내주시느냐? 아들의 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아들의 영을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이라 부르지요.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셔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면 하나님을 무엇으로 고백하느냐? "아빠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가 되는 역사가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할 수 없고, 하나님을 아빠 하나님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뭐가 되냐?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유업을 얻을 완전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7절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그래서 로마서 8:15을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을 다른 말로 하면, 양자들의 영. 양자들에게 주시는 영. 아들의 영.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 아버지가 양자에게 허락하시는 권세. 사실 양자에게 허락하시는 권세는 그 아버지의 모든 유업을 받고,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는 그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주의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이상 우리에게는 무엇이 주어지느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온전한 권세를 누리게 된다. 그것을 예수 이름으로 구해서 받게 되지요. 여러분 카드 사용하면 카드 혜택들이 있는데, 이런 거 무시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그런 혜택을 잘 활용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전한 양자의 권세를 주셨으면 그 권세를 갖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고 예수 이름으로 구할 수 있지요. 그래서 그 권세를 우리가 잘 사용을 해야 하는데 그 통로가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양자의 권세를 기도를 통하여 누리고 얻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 나중에 천국에 갈 때에 내가 많은 것들을 기도해서 하나님 이 땅을 살면서 하나님 자녀 됨의 권세를 많이 맛보게 됨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를 이 땅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이 하나도 도와준 것 같지 않고 왜 이렇게 찌질하고 힘들게만 살게 하셨습니까? 가 아니라, 하나님 제가 이 땅을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믿고 의지하여 기도했더니 이렇게 놀랍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ㅋ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의 한계가 어디일까? 그건 기도의 지경을 넓힌 분들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한계도 넓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역사하시는 걸음걸음의 손길을 많이 경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자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이 아침도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에 대한 많은 기대와 많은 소망을 품고 나아가야 될 줄로 압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 앞에 기도하는 거지요.
자 8절에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그때라는 건,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종 노릇 했을 때지만, 그때와 대비되는 '이제가 나오지요. 9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여러분 이게 너무 귀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바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고,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갈 때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시고 응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하나님이 내게주신 양자의 권세. 그 권세를 가지고 주님께 의지하고, 신뢰하고 나아가야 하는데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여기서 초등 학문은 세상적인 법칙입니다. 여러분 세상적인 법칙에 가장 대표적인 게 인과응보지요. 한대로 받는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인과응보가 아니라 은혜로 보응이지요.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인됨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구원해주시지요. 구원은 내 힘과 능력으로 얻는 게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얻는 것이 되는데 반대로 세상에서는 그래도 네가 뭔가를 해야 구원을 얻지?! 이게 세상의 초등 학문이 추구하는 중요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지역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이 바로 이런 걸 요구한 것입니다.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말이 되냐? 할례도 해야지..
계속해서 10절입니다.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날, 달, 절기, 해는 유대교에서 지키는 절기를 말합니다. 이런 것들을 '삼가 지킨다. ' 지킨다는 말은 현재형으로 지금도 계속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케 된 것인데,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식으로 유대교의 율법을 따라 그대로 살아가니까 더 이상 아들 됨의 양자됨의, 믿음으로 구원 얻은 자의 삶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11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이게 아닌데 왜 다시 돌아가느냐?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얻고, 믿음으로 양자의 권한을 얻어서 믿음으로 구하며 주 앞에 살아가는 데 왜 다시 애쓰고 노력함으로 너희의 인생과 구원을 위해 힘쓰는 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찾아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나님이 자녀 삼아주셨는데 그다음에 내가 다시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기도하며 믿음으로 시도하며 소망 가운데 나아가야 하는데,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해놓고 다시 모든 염려와 두려움을 내가 가지고 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다 보면, 내가 다시 이 모든 문제를 끓어 안고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도의 자리보다는 고민의 자리로 더 많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자의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권세를 의지하여 날마다 우리 삶의 무거운 짐과 우리 삶의 고민을 의뢰하고 맡기며 나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우리를 위하여 응답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 내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를 수 있으나 하나님 나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들의 명분을 주신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역사하실 것을 신뢰하면서 성령을 의지하여 충만하게 당당하게 세상 사람들이 염려하던 방식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새 소망을 두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성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로 양자의 권세를 주셨으니 담대히 주를 의자하여 나아가는 믿음의 성도 되게 하시고 오늘 이 아침에 주 앞에 기도함으로 하늘 보좌를 흔드는 복된 성도 삼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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