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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설교문

[새벽설교] 왕상17:17-24

by №1★↑♥ 2021. 6. 27.

[새벽 설교] 왕상 17:17-24 

 

  오늘이 본문의 첫 시작이 어떻게 시작하나요? '이 일 후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일 후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해 통에 가루와 병의 기름이 다하지 않음으로써 엘리야를 포함한 사르밧 과부의 가족이 여러 날 먹은 일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배경을 두고 이 사건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당시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온 땅에 기근으로 고통당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의 가족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곡식과 기름이 끊이지 않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이러한 유일한 희망이었던 독자가 죽는 충격적인 사건이 오늘 발생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겉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던 가정에 이와 같은 불행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잘 대접하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가정 가운데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와 같은 성도의 고난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으심을 기억하고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지금 어떤 의도로 이와 같은 일을 행하시는 걸까요?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공급받은 가루의 통이나 기름의 병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즉, 그녀는 이전까지 하나님을 자기 삶에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 정도로만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녀에게 더 귀한 것을 공급해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아들의 생명을 잠시 취하여 데려가셨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겪은 후 이 여인은 하나님이 자기 삶에 필요한 것만을 공급하시는 분이 아니라,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을 통해 이 여인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아내요. 이 같은 시련을 통해서 사실 그녀가 잃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녀에게 임한 시련은 도리어 더 큰 것을 공급받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련과 고통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서 잠시 잠깐 시련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과 뜻하신 계획이 있으심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하신 뜻과 계획 속에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것으로 인해 그것은 결국 여러분들에게 축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 처럼 사르밧 과부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에 제일 먼저 엘리야를 찾아갑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했던 행동은 무엇일까요? 19-21절에 나와 있는데, 그때에 취한 엘리야의 행동을 단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두 말할 것 없이 믿음과 확신을 가진 기도였습니다. 즉 엘리야는 앞서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 했던 이 과부에게 하나님께서 통의 가루와 병에 기름을 공급하심으로 그녀와 그녀의 가정에 절망을 지우시고 소망을 주신 것처럼 지금 이 죽음 또한 생명으로 바꾸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 믿음으로 기도하여 이 가정에 다시금 생명과 소망,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를 채워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의 자세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문제에 부딪쳤을 때에 우왕좌왕하거나 낙심하거나 주저 앉을 것이 아니라,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위기의 상황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기도는 대개 이와는 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즉, 실제적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하지만 대개는 자기가 수고해서 얻을 수 있는 것,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 등 현실적인 가능한 문제에 대해서만 기도할 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대해서는 포기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 그리스도인들이 조금 힘들면 어려움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기도할 만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주님의 뜻이 아닌 것 같다고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즉, 거기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파악할 때 어려운 문제, 불가능이라 여겨지는 문제는 포기해버리는 것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실제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개의 믿음이며, 기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 해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실 것이라는 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에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해보다가 안 되는 것을 믿음이라 할 수 없으며 그런 제한적인 믿음을 가진 자는 무제한 적인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 보이시는 역사를 결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점검해 보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바를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의 믿음과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 해도 결코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그만큼의 믿음이 없습니까? 자기 믿음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부르짖었던 사람과 같이 마가복음 9:24절처럼,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기도하십시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의 믿음을 든든히 세우시고 당신의 놀라운 능력을 믿는 여러분들의 믿음을 헛되지 않음을 살아 있는 증거로 보여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되어지는 내용이 21-24절에 나와 있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뭐라고 부를까요?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안다"라고 고백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소명이 이것인 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오직 하나의 사명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프랜시스 쉐퍼의 말처럼, 지금 엘리야는 이방 땅에서 이방 여인과 아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사르밧에서 엘리야를 훈련시키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를 갈멜산에 세우시기 전에 과부의 작은 다락에서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전에 먼저 한 생명을 위해 목숨을 내거는 기도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 과정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은 갈멜산에 세우시지 않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사르밧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새롭게 체험했습니다. 그의 믿음은 강해졌고, 그의 성품은 더욱 거룩해졌으며 점차 역사의 무대로 세워질 준비가 되어 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가 차고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야가 경험한 그 하나님을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함께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반드시 응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엘리야의 기도처럼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께 포기란 없네'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주께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도 우리의 기도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실 것을 믿으며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주께포기란없네-악보
주께포기란없네-악보

소망이 보이지 않아도 깊은 절망 속에서도 빛은 꺼지지 않았네

누구도 기대치 않았던 낮은 이 땅 가운데서 그 나라 시작되었네

그 나라 오늘 이곳에 우리 살아가는 곳에 먼 곳에 있지 않네

주가 일하시는 곳에 여전히 소망이 있네 주께 포기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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