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story/설교문

[새벽설교] 이사야 40:27-31 I 피곤한 인생이 아니라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라 I 삼일교회 I 이익주 목사

by №1★↑♥ 2021. 7. 12.

[새벽 설교] 이사야 40:27-31

피곤한 인생이 아니라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라 

삼일교회 이익주 목사

 

  오늘 우리가 봉독 한 이사야 40장은 42장까지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지 굉장히 오랜 세월을 지나는 가운데의 모습입니다. 포로생활이지만 처음에는 고난을 잘 이겨내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기간이 결코 짧지 않습니다. 7년도 아니고, 70년 동안 그 고난과 어둠의 시간을 이겨내야만 했다는 것이지요. 초반의 고난들은 욥도 잘 이겨냈지요. 이게 하나님께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넉넉히 이길 수 있었다는 고백을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왜 태어났을까?'와 같은 모습으로 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점점 고난이 가중되고 세월이 더 해갈 수록 마음이 약해지고 점점 마음의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게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이 기력이 쇠하셔서 구원할 능력이 없는 건 아닌가?' 왜냐하면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까요. 한 세대 이상이 지나가는 엄청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의 바닥을 치게 됩니다. 심지어는 정체성마저 흔들립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 맞는가?'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좋을때가 있습니다. 아주 충만한 때가 있지만, 많은 분들은 고난의 시기들이 찾아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고난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지속될 때 또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질 때, 우리는 의심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의심을 계속 키워나가고, 의심에게 밥을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의심을 끊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그 의심을 기가 막히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말씀을 붙들고 의심을 끊어낼 때 세밀하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늘~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신의 마음의 깊어지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주십니다. 먼저는 반복해서 이름을 부르십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야곱이란 호칭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에 언약이 어떻습니까? 그냥 문서 하나 쓰는 것이 아니라, 짐을 잡고 배를 갈라서 두 동강을 냅니다. 언약을 어기는 자는 이와 같이 죽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언약을 했기 때문에 결코 배반하지 않고 잊지 않는다. 나는 그런 하나님이야!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스라엘이라는 호칭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의미도 있지만, 애굽에서 구원받은 백성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영원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해야 했던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 왕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장자를 다 죽이면서까지 너희를 구원한 이유가 있다. 너희를 내 영훤한 백성으로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도 반복해서 사용하십니다. 28절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계시지요. 엘로힘, 전능한 하나님은 잘 알고 계시지요? 전능한 하나님에 대해서 지금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이냐? 내가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희를 구원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는 여호와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르시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이 말은, 스스로 계신 자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이냐? 인간이 만들어 놓은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런 신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있는 그리고 영원까지 살아 역사하는 창조주 하나님이다.'라는 사실을 명시해주는 것입니다.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자, 인간이 만들어 낸 신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고난이 지속되면 시험이 듭니다. 약해집니다. 그리고 나는 의심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어쩌면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분명한 건, 저는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있고, 응답이 계속 지연되면 약해집니다. 또 의심도 찾아옵니다. 슬럼프도 입니다. 이것이 정상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믿음이 약해지고 의심하는 존재이지만 다른 말로 보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시간에 깨달아야 할 부분이 이것입니다. 의심할 수 있습니다. 약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지속될 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이냐? 나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구나! 한 순간도 하나님 없이는 이렇게 연약해지는 인간이구나! 자기 인식이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할 존재입니다. 이사야 40: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성경은 우리를 풀과 같다고 합니다. 여러분 풀이 싱싱해 보이죠? 그렇지만 영원하지 않고 곧 말라버립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비유합니다. 가장 팔팔하고, 건강을 자부할만한 그런 장정, 소년에 비유합니다. 인간적으로 봤을 때 정말 팔팔할 때 아닙니까? 아무리 젊어도 3일 밤을 새고, 강행군이 지속되면 코피 흘리고 파김치 됩니다. 인간이 대단하지 않습니다. 뭔가 엄청난 존재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가장 지치자 않을 것 같은 때를 지나는 자도 너무나 유약한 자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40: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 메뚜기 같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 인간은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왜? 너희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이 사실을 성경은 계속해서 증언합니다. 인간처럼 곤비하고 지쳐는 연약한 자가 아니라, 홀로 온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결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6일 동안 창조하시고 피곤하셔서 하루를 안식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안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시냐를 12절부터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12-15절 '12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보았으랴 13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 뭐냐? 인간의 손이 아무리 커도 얼마나 크냐? 바다를 뺨으로 제어 볼 수 있느냐? 인간 유한하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있어서 온 바다도 한 뼘으로도 제고도 남을 만큼 크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저울로 달면 얼마나 나갈까? 지구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저울로 달아보실 정도로 크신 하나님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방을 다 포함해도 두레박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 물과 같다. 

  그러기에 우리의 유한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가늠하거나 그 큰 하나님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크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이해해야 하는데, 고난이 지속되고, 어려움이 지속될 때면 의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의 백성들에게 새 힘을 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1절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성경은 오늘 새 힘을 받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새 힘을 받을 수 있습니까? 40일 금식기도? 여호와를 앙망하라. 앙망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바로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냥 단순하게 축~ 쳐져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고 신뢰하며 기다리라는 것이 바로 앙망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으려는 간절한 태도와 상태와 비슷합니다. 

  본문에서 '힘을 주시며'라는 히브리어도 '노테르'로, '주다'를 나타내는 능동 분사입니다. 한마디로 지속적으로 힘을 공급해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새 힘을 불어넣어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결국에는 승리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잠깐 앙망했더니 뭐가 왔다? 이것은 굉장히 세상적인 논리입니다.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바라보시고, 앙망하시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 계속해서 새 힘과 능력을 부어주시기 때문에 결국은 승리한다. 결국은 잘된다. 결국은 이기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인생을 사는 비결은 하나님을 앙망하는 인생입니다. 베드로가 최초로 물위를 걸을 때 주님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전심으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로 인해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세상과 바람과 물과 파도를 바라보면서 의심하니까.. 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앙망하는 것이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 ​

 

  '낮은 대로 임하소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안희환 목사님의 간증을 펴낸 책입니다. 원래 목사님의 아들로 신학교에 갔는데 너무 재미 없어서 신학교를 그만둡니다. 결혼하고 미국 가려고 유학을 준비하는데 시력을 잃어갑니다. 결국 비참해지고, 가정이 깨어지고 이혼을 당합니다. 그리고 가족에게도 외면을 당합니다. 몇 번 죽으려고 시도를 하다가 헬렌 켈러 재단의 도움으로 신학을 하게 되고, 목사를 하게 됩니다. 집회를 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되지요. 독일에서 집회를 하던 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의사들이 시신경이 살아있음으로 "수술만 하면 80% 이상 회복될 것"이라는 결과를 내놓았고 여기저기서 수술비용을 지원해서 수술을 진행하려는 시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수술하면 볼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거부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유가 뭐냐? 안 보이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만났는데 보이게되면 내가 하나님보다 딴 거 의지하고, 딴 거 바라볼 까 봐 거부감과 두려움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결국 눈 수술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불편함보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을 놓칠까 봐..

  여러분 기도할 때, 눈을 감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것에 대해서 눈을 감고, 세상에 대해서 눈을 감고, 전심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사람을 의지하면 결국 넘어지고 헛된 것입니다.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상한 갈대를 의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할 때 승리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대하 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여러분 하나님을 전심으로 바라볼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고요? 그런 자들에게 능력을 계속해서 베푸신다. 하나님 앙망이 비결입니다. 예레미야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온 맘으로,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하나님을 온 맘으로, 찾으면 늘 만나세요. 응답이 딜레이 되실 수 있지만 하나님 만나는 일까지 지체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는 걱입니다.

  캠벨 몰간 목사님이 이런 새로운 주장을 했습니다. 우리가 수석 제자라고 아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특별히 더 곳곳으로 데리고 다니신 이유가 그들이 더 의심이 많고, 더 연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공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억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나님은 더 연약한 자에게 관심이 있다.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 우리 주님. 하나님이십니다. 핵심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 연약함을 혼내지 않으세요. 의심할 수 있고, 연약할 수 있고, 믿음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한 순간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자기 인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얻는다. '얻는다'는 말은 원어적 의미로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말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힘입니다. 하나님 앙망하는 자에게 거듭난 생명력을 부어주시겠다. 인간의 생명력은 유한하지요. 아무리 애를 써도 유한합니다. 영원한 생명력을 부어주시겠다. 새로운 생명력으로 거듭나게 해 주시겠다. 위로부터 부어지는 생명력을 부어주시겠다. 하나님이 그런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힘의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앙망하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최우선 순위를 두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마술처럼 환경이 한순간에 반전이 일어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지치지 않는, 계속 믿음의 걸음을 걸으며 멈추지 않고, 눈앞의 환경에 눌리지 않고 이기며 승리로 하나님께서 대미를 장식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기도

지쳐 있는 분들, 연약하고, 의심해져 있는 분들이 있으십니까?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며 다시 한번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거기에 최우선 순위를 두며 전심으로 바라보며 기다리겠습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주어지는 성령의 능력과 새 힘으로 공급받기를 원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