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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설교문

주일설교문 I 지식의 절망, 지식의 희망 I 잠언 1장 7절

by №1★↑♥ 2021. 7. 6.

[설교문] 오순절 후 세 번째 주일설교 

지식의 절망, 지식의 희망!

잠언 1:7 (본문 접맥적 주제설교)

  늙은 사자가 사냥을 하러 나갔습니다. 마침 사슴 한 마리가 눈에 띄어 전 속력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자를 발견한 사슴도 필사적으로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늙어서 기력이 쇠한 자는 힘들게 쫓아가다가 그만 숨이 차서 추격을 포기했습니다. 아침부터 사냥에 나섰지만 한 마리도 따라가질 못하다니.. 이러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야' 사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참을 생각하더니 동굴에 둥지를 틀며 앉아서 소문을 냅니다. '사자 아프다, 사자가 심각한 병에 걸려서 죽게 됐다!' 그러자 숲 속의 순진한 동물들이 사자의 문병을 옵니다. 첫날 그 동굴에 사슴이 문병을 왔어요. "사자님 몸이 편찮으시다던데 괜찮으세요?" 그러면서 사자에게 다가가는 순간 사자가 사슴의 목덜미를 꽉~ 물어 버립니다. 그렇게 다음날은 토끼도 야금야금, 너구리도 야금야금, 멧돼지도 야금야금 먹어치웁니다. '이렇게 편한 방법이 있었구나. 머리가 좋으면 손발이 고생을 안 하지!' 사자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이 참 기특했습니다.

 

 

 

  하루는 여우가 문병을 왔습니다. 그런데 동굴에 들어오질 않고 동굴 밖에서 인사를 하는 겁니다. '문병을 왔으면 밖에 있지 말고 들어 오너라!' '저는 안 들어갈래요! 동굴에 사슴, 토끼, 너구리 발자국이 나 있는 걸 보아 걔네들이 문병 왔던 것 같은데, 나온 발자국은 없네요. 저도 들어가면 못 나올까 봐 안 들어갈래요' 결국 동굴에 들어가지 않은 여우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여우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간단합니다. 관찰을 통해서 올바른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는 영국의 대문호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귀납적인 지식을 강조하기 위해 쓴 예화인데요, 이것을 근거로 베이컨은 그 유명한 명제, '아는 것이 힘이다!'를 주장하게 됩니다. 그래요! 아는 것이 힘입니다. 지식이 여우를 살렸고 지식이 우리 생활이 힘이 됩니다. 

 

  요즘 우리가 힘들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오늘날처럼 우리나라가 발전된 때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처럼 풍족한 때도 없었습니다. 오늘날처럼 편리할 때도 없었습니다. 다들 핸드폰 갖고 계시지요? 이거 없을 때 어떻게 살았나 싶어요. 다들 차 몰고 다니지요? 자가용 없을 때 얼마나 불편했습니까? 다들 컴퓨터 사용하시지요? 컴퓨터와 인터넷 없는 세상을 가히 상상이나 할 수 있나요? 이 모든 편리함의 근원은 기술과 과학이 발달한 결과인데요, 결국 이 모든 이야기를 종합하면 지식의 발전, 지식의 확장입니다. 지식이 발전하니까 예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들이 현실이 되잖아요?

  인간의 역사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발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과학과 지식이 발전하고 팽창되는 역사! 100년 전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훨씬 지식도 늘었고 과학도 발전했어요. 앞으로의 100년 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첨단 과학의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들을 관통하는 진리가 하나 있어요. 그게 뭔고 하니 어느 시대이든 아는 자가 대우를 받는다는 겁니다. 아는 사람이 면장을 하고 아는 사람이 리더가 되고 아는 사람이 성공을 합니다. 여러분이 그 고생하면서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이유가 뭡니까? 좋은 대학 가서 출중한 실력 쌓아 성공한 사람 만들려는 것 아닌가요? 더욱이 현대는 어느 때 보다도 지식이 중시되는 시대입니다. 21세기를 가리켜 지식기반 사회, 지식 정보 사회라고 하잖아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문 지식과 창의력을 갖춘 지식 근로자라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현대 들어 지식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는 것은 다름 아닌 정보통신기술(IT) 혁명이 산업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정보통신혁명은 정보의 저장, 가공, 처리, 전달 비용을 크게 감소시켰습니다. 정보화는 빠르고 넓게 사회의 모든 제도와 조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적 전략 요소가 바로 지식,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에 사람대접받고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부단히 아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여러분 셀러던트(saladent)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셀러던트는 직장인을 가리키는 샐러리맨과 학생을 가리키는 스튜던트가 합해져 나온 신조어입니다.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 들어가면 끝이다! 아니에요! 거기도 경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 계발을 안 하면 도태되고 직장에서 퇴출됩니다. 그래서 퇴근 후나 주말까지 자기 계발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많습니다. 심지어 퇴근 후 곧장 독서실로 향하는 직장인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직장애 몸담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열중하고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직장인을 '셀러던트'라 부르는 겁니다. 한편으로 참 각박하다 생각이 들면서도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거의 없습니다. 유일한 자원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은 치열할 수 없습니다. 그 치열함이 오늘 우리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아십니까? 평균 아이큐가 105를 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입니다. 문맹률이 1% 미만인 유일한 나라, 음악 수준이 가장 빠르게 발전한 나라, 문자 없는 나라들에게 UN이 제공하는 문자인 한글을 가진 나라, 가장 단기간에 IMF를 극복한 나라, 세계 10대 거대 도시 중 한 도시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 세계 4대 강국을 무시하는 배짱 있는 나라(미국-양키, 일본-쪽바리, 중국-짱깨, 러시아-시발스키), 인터넷, TV, 초고속통신망이 가장 발전된 나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를 가진 나라(한글은 24개 문자로 11000개의 소리를 표현, 일본어는 300개, 중국은 400개에 불과), 세계 유수 대학의 우등생 자리를 휩쓸고 다니는 머리 하나는 끝내주는 나라, 세계 경제력 9위, 군사력 6위임에도 아직 멀었다며 일본 따라잡자고 부르짖는 나라, 다시 살아나지 못할 거란 비관적인 전망으로 다른 나라가 포기했지만 전쟁의 폐허 속에서 50년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 누구보다 까칠하고, 비판적이며, 전문가 뺨치는 정보력으로 무장한 나라, 세계 11위의 경제대국, 성공적인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한 나라! 여러분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국제연합 개발계획(UNDP)이 매년 HD(Human Development Index)라 불리는 인간개발지수라는 것을 발표합니다. 문자 해독률과 평균수명, 1인당 실질 국민소득 등을 토대로 각 나라의 선진화 정도를 평가하는 수치인데요, 1점 만점에 0.8까지가 상위그룹, 0.5까지가 중간그룹, 그 이하가 하위그룹으로 분류됩니다. 2013년 기준으로 45위까지가 Very High Human Development에 해당하는 국가인데 우리나라는 0.897로 세계 15위를 마크했습니다.

  이것이 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얻은 결과입니다. 부모들은 굶어도 빚을 내서라도 자식들은 공부시켜서 얻은 결과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사회는 유사 이래 가장 지식이 출중한 사회 지성이 풍성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프렌시스 베이컨의 명제를 우리 민족만큼 구체적으로 증명한 민족이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알아야 성공한다는 것을 알기에 앞으로도 앎을 향한 전쟁은 더욱 불을 뿜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지식 정보사회를 향하여 만일 오늘 성경의 말씀을 이야기한다면 그 반응이 어떨까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최첨단 과학의 지식으로 충만한 현대인들입니다. 그 지식은 철저히 인간의 능력으로 만들었다고 믿는 현대인입니다. 유전자 지도도 만들고 우주까지 정복하러 우주선을 띄우는 인간의 능력에 한없는 신뢰를 보내는 현대인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탈종교와 탈 신 현상을 가속화시켰습니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한다면 반응이 어떨까요? 너무 생뚱맞나요? 광화문에 있는 교보 빌딩 유리벽은 아주 인상적인 문구를 거는 걸로 유명한데요. 거기에다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라고 써붙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 난리가 날 겁니다. 인간이 중심 되어 일궈낸 찬란한 과학 천국에서 여호와라는 신을 들이미느냐? 다른 종교는 고사하고라도 일반인들도 강력한 항의를 할 겁니다.

 

  반대로 아주 오랫동안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에 이름을 올린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입니다. 현대인들은 시은 없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도킨스 같은 이에게 열광하고 그를 영웅시합니다. 정말 대단한 석학처럼 생각합니다. 정말 그런 걸까요? 아는 것이 힘인 이 시대에, 최첨단의 과학과 정보를 인간이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이 시대에 여호와가 지식의 근본이란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석기시대의 유물일까요?

  유전공학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생명체의 다양한 특성이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을 중심으로 인간의 유전자 연구가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 연구진은 '인공 자궁'에서 염소를 열흘 동안이나 생존시켰다고 합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요즘, 일부 과학자들은 인공 자궁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유전자 조작 기술이 더해지면 축구 천재, 음악 천재, 공부 천재를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런데 유전자 연구에는 언제나 '윤리성'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런 기술이라면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 자궁에서 '출고'하는 시대가 곧 들이닥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학이 만드는 이러한 미래가 과연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이시나요? 정말 인류의 유토피아(낙원)일까요?

 

  1932년 올더 헉슬리라는 사람이 '먼진 신세계(Brave New World)라는 소설을 발표했는데요. 이 소설은 복제 인간을 다룬 책으로 유명하지요. 헉슬리는 이 소설에서 과학 발달로 인간이 모두 인공적으로 제조되는 미래 사회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멋진 신세계'가 그리는 사회는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문명 세계입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다섯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최고 지배층인 알파 계급은 뛰어난 지능과 일정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가장 낮은 계급 엡실론은 지능도 낮고 자유 의지도 없는 상태이지요. 이들은 인공 부화를 통해 계급별로 표준화되어 대량 생산됩니다. 인간이 표준화되고 대량 생산되는 사회! 그렇게 생산된 인간이 과연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는 것이 힘이라면 그리고 유전공학이 이런 미래를 만든다면 이것이 과연 올바른 힘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얼마 전 '독수리의 눈, 사자의 마음, 그리고 여자의 손'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에세에를 쓴 사람은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주임교수인 이춘성 박사인데요. 이 책에서 이 박사는 매우 놀라운 의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요즘 병원이 환자들을 치료하기보다는 치료 명분을 내세워 환자들을 발가벗겨 먹는다는 이야기가 시중에 나도는데 이 박사가 그런 내용을 솔직하게 적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척추수술의 80%는 수술을 하지 않고도 치료가 가능하다. 혹은 운동으로 치유가 가능하다! 대학병원들의 교수들이 환자들을 대상으로 과대 치료 혹은 수술을 권장하여 의료수가 높이는 것으로 자신들의 가치와 연봉을 높인다!

  이 책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많은 병원에서 환자 마케팅을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환자를 봉 취급해서 이것저것 치료 범위를 늘려 가면서 의료수가를 과대하게 징수합니다. 혹은 제약회사 내지 의료기기 취급소와 결탁 혹은 담합하여 환자들에게 치료비를 부담률을 높이는 현상이 비일비재합니다. 의사가 누굽니까? 최고 성적의 우등생들만 들어간다는 의과대학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가장 고귀한 전문가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하다니요? 아는 것이 힘이라면 이들은 의학지식이라는 힘을 사람 등 처먹는 데 사용한 것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 아는 것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말에 마냥 동조할 수만 없지 않나요? 아는 것이 힘인 거 맞습니다. 힘 있는 개인, 힘 있는 나라가 되는 거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힘의 방향입니다. 힘 있는 개인, 힘 있는 나라가 되는 거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힘의 방향입니다. 유전공학이라는 최첨단 과학이 방향을 잘못 틀면 인류의 재앙을 가져옵니다. 오랜 세월 연구에서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지식들이라 해도 그 지식에 정의와 윤리가 없다면 역사왜곡 같은 파렴치범이 되기 십상입니다. 최고의 재능으로 의사가 되어도 의료윤리가 없으면 치졸한 사기꾼으로 전락하기 마련입니다.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무기를 만들어도 거기에 올바른 가치가 결여되면 그 무기는 전쟁을 막는 무기가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는 살인 병기가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힘의 일탈, 힘의 그릇된 사용은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버젓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현상을 보면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성경 말씀이 케케묵은 석기시대의 덜 개화된 문명의 산물인가요? 이런 위험을 보면서 도 하나님은 외면하고 인간 중심의 세계로 나아가야 하나요? 앞으로도 과학은 더욱 발전할 것이고 아는 것이 힘이라는 믿음은 더욱 공고하게 우리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이런 그릇된 힘의 사용을 바로 잡지 못한다면 인간은 바로 그 자랑하는 과학의 힘 지식의 힘에 의해 파멸될 것입니다. 여전히 이런 인간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아야 하나요?

  우리가 많이 들어본 본 훼퍼라는 신학자가 있어요. 히틀러 정권에 저항하다 순교당한 분인데요. 1944년 4월 30일 자 베트케에게 보낸 편지에서 본 훼퍼는 성인 된 세계, 그리고 무종교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성인이 뭐냐, 첨단의 과학으로 무장하고 있어서 모든 어려움에도 종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어떤 초월적 능력도 필요치 않고 스스로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이제 본 훼퍼가 말하는 성인입니다. 당연히 이런 성인들에게는 신도 종교도 필요 없는 것이지요. 본 훼퍼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러한 세계를 성인이 된 세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가리켜 '성인이 된 사람들'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말하자면 본 훼퍼는 과학으로 무장한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성인이라고 자처하면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과학과 지식으로 하여금, 인간에게 신이 없어도 된다고 자만하게 하는 것은 정말 큰 위험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랑이 인간을 파멸시키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위험만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러시아의 그리보예도프가 쓴 '지혜의 슬픔'이라는 희곡이 있습니다. 일종의 풍자극인 이 작품은 1825년 일어난 제까브리스트 혁명을 배경으로 쓰여졌습니다. 제까브리스트 혁명이란 전제정권과 농노제 폐지를 내 걸고 혁명을 배경으로 쓰여졌습니다. 제까브리스트 혁명이란 전제정권과 농노제 폐지를 내걸고 러시아에서 일어난 귀족 장교들의 혁명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인 차즈끼는 진보적인 계몽 의식을 지닌 지식인입니다. 사회에 비판적인 시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기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합니다. 생각은 있는데 행동은 하지 않는 지식! 그렇다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지요. 

  이 작품에 몰찰린 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옛것을 옹호하려 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끌고 살 사상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자신의 이익일 뿐입니다. 철저히 이익만을 쫓아갑니다. 작가가 이 작품 제목을 '지혜의 슬픔'으로 붙인 의도를 간파하셨나요? 많이 배우고 지식으로 충만한데 그래서 옳고 그른 것도 아는데 정작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면 힘을 가진 자들인데 전혀 움직이질 않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그것뿐입니다. 작가는 바로 이런 지식인의 비겁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 여러분! 본 훼퍼의 고발이나 그라도 예보프의 고발이나 다 일리가 있지요? 그리고 방향 잃은 힘, 윤리와 가치를 잃은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도 동의하시지요? 이 문제의 해결책은 한 가지입니다. 지식이 힘이라면 그 지식의 근본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 근본 위에 모든 힘이 서는 것, 다시 말해 그 근본을 모든 힘의 기준으로 삼는 것!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중요합니다. 힘으로 가득 찬 이 땅을 살리는 너무 귀한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지식'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다아트'입니다. 이 단어는 '안다'라는 듯을 가진 '야다'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 차원의 지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하여 얻는 지식으로서 삶의 지혜와 동의어입니다. '근본'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쉬트'는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면 그 힘의 첫 단추가 뭐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경외가 뭡니까? '경외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야레'입니다. 야레는 기본적으로 '두려워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강도 만났을 때 무서움으로 벌벌 떨며 도망가는 그런 두려움이 아닙니다. 두렵기는 하지만 무엇인가가 강력한 이끌림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신비로움이 동반된 그런 두려움입니다.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라고 번역한 것이지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온 우주와 역사를 직접 설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지식과 모든 지혜의 근원이시며 모든 것을 통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의 본체이십니다. 우리 인간은 바로 그 하나님 앞에서 서 있는 지극히 작은 존재입니다. 그분은 너무 크신 분이라서 우리는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고 그저 떨리는 마음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오라 하면 세상없어도 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거절할 어떤 힘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우주의 중심을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 삼는다는 의미입니다.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사랑으로 인간을 살리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우주의 중심으로 삼는다. 그 하나님을 모든 지식의 근거와 모든 지식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첫출발로 삼는다.

  그러면 결론은 너무나 분명하지요. 아는 것이 힘 알면 이 땅의 어떤 힘도 잘못 사용될 수 없습니다. 이 땅의 어떤 힘도 죄짓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힘은 다 정의를 구현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 땅의 모든 힘은 다 사랑을 구현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걸 못하면,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으면, 하나님이 그 모든 지식의 기초와 기준이 되지 못하면 오히려 그 지식이 인간을 망하게 합니다. 어느 교소도에 모범적인 교도관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수형 생활을 하는 수인들 중 문맹자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일이 자신의 사명인양 헌신적으로 임했습니다. 한 청년이 들어왔는데 글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열심히 한글을 가르쳐서 마침내 한글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 청년은 형기를 마치고 출옥했습니다. 교도관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나 그 청년이 다시 교도소에 수감된 게 아닙니까? 너무 안타깝고 궁금해서 죄목이 뭔가 알아보았더니 문서를 위조했다는 겁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그 힘의 근거와 기준에서 하나님이 없으면 항상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여전히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고 척도이고 판단의 기준이라면, 여전히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면, 성경은 그런 자를 미련하다고 했어요. 미련 한자! 여기 미련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에빌'인데요. 그 기본 의미는 '두껍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감각이 예민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민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들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살리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에게 민감하지 않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지요. 호세아서 4장 6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민족의 아픔이 있는 6월입니다. 65년 전 이 땅에 몰아닥친 청천벽력 같은 전쟁의 비극은, 따지고 보면 인간의 과학과 지식이 그릇된 방향으로 사용된 결과입니다. 하나님 없는 지식이 인간 야욕의 앞잡이가 되어 만들어진 비극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지식, 하나님이 없는 과학, 하나님이 없는 지성, 하나님이 없는 지혜는 절망이고 멸망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지식이 없으면 나도 망하고 내 자녀들도 망하게 됩니다. 모든 지식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 위에 섰을 때에만 살리는 지식, 생명의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과학의 시대, 지식의 시대에 우리가 진정 살 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과학과 지식의 전제와 기초와 근거가 될 때 우리는 아는 것이 진정한 힘이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축복이 우리 민족과,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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