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21-34
예수님과의 접촉이 가진 힘
예수 믿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예수님을 향한 간절함의 회복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예배를 드려도 예배에 일하실 소망과 또 이 간절함을 가지고 예배하는 분하고 아무런 간절함과 열망 없이 예배드릴 때는 결과의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래서 또 오래 예수 믿을 사람일수록, 교회의 중직자일수록 주님을 향한 간절함을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가 필요한데요. 바로 오늘 본문에 이런 절박함, 간절함을 가지고 주님을 찾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혈루증이라는 병을 갖고 있는데요. 하혈이 멈추지 않는 일종의 부인병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5:25-26,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보니까 그 당시의 의술로는 여성이 가진 병을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까?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지만 아무런 효험도 없고.. 이 의사를 만나보고, 저 의사를 만나보고 병 고침을 받아보려고 점점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겁니다. 이렇게 12년이라는 세월 동안 고통을 당하는데요. 더군다나 그 당시의 유대 정결법에 의해 지금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어 격리가 되어야 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었던 여인입니다. 이런 아픔을 가지고 있던 여인이.. 27절입니다.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12년이나 고통에 빠져 있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고침을 받았다. 이런 간단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고침 받은 여인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살펴보려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 하나를 다루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24절을 보세요.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새번역으로 보니까, '큰 무리가 뒤따라오면서 예수를 밀어댔다.' 그러니까, 혈루증을 앓던 이 여인만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게 아니고 많은 군중들이 밀고 당기고 하면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고 밀치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제가 집고 넘어가고자 하는 포인트가 뭐냐 하면? 아니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는데 고침 받은 여인, 기적을 경험한 여인은 이 여자 한 사람인가? 이게 왜 중요하냐? 오늘도 많은 분들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심정으로 예배에 나오시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 고침받은 여인처럼 인생이 바뀌거든요. 예배 한번 잘드리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받거든요. 그러한 일들이 매주일마다.. 그래서 건의가 있었어요. 우리 화장실에다가 두루마리 휴지 말고, 크리넥스를 비치해달라. 예배 끝나면 너무 많이 우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런 건의가 들어올 정도였거든요. 그렇게 오늘 본문에 옷 자락을 만져 고침을 받은 여인처럼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분들이 계시는가 하면, 전혀~ 그런 게 없는 분들. 그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 건가?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 옷자락을 만졌지만 유독 이 여인만 고침을 받았는가? 이 부분이 오늘 살펴볼 포인트 중에 하나입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그 치료가 가능했던 두 가지 요소가 이 여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중 첫 번째가 뭐냐? 간절함이 따르는 믿음입니다. 그걸 몰입이라는 단어로 묵상을 해보았는데요. 27절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는데 이 여인만이 다른 점이 무엇이었느냐? 28절입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 일러라' 이게 생각 없이 밀어내는 다른 사람과 이 여인과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사실 여러분 그 당시에 부정하다고 낙인찍혀 있는.. 그래서 격리되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고, 다른 사람을 터치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이런저런 어려운 난관이 많은 상황이지만.. 이 여인이 간절함과 절박함이 '그의 옷에 손만 대어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모든 난관을 뛰어넘게 만드는..' 그런 도구가 되는 거 아닙니까?
혹시 랜디 포시 교수라고 들어보셨나요? 이분은 '마지막 강의'라는 책을 냈는데, 베스트 셀러가 되었지요. 그런데 이분이 최장암 말기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럼에도 제자들과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강의가 진행되었고 이 영상이 강의가 유튜브를 통해서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이 강의들을 묶은 것이 책으로 출간된 것이지요.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가 되었고요, 29개 나라의 언어로 이 책이 번역이 될 정도로 각광을 받는 강의를 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랜디 포시 교수님이 강의 중에 이 한 마디를 마음에 담기를 원하는데, 자기 학생들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장애물에 부딪치거든 나에게 절실함을 물어보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난관이 찾아오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포기해버리는데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난관이 찾아오면 그것은 그저 테스트 일뿐이다. "네가 이런 난관에도 연연하지 않을 만큼 절실함이 있는지를 물어보려는 장치로 생각해라." 이 말이 참 제게 많이 도전이 되더라고요.
'하버드 상위 1%의 비밀'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도 비슷한 부분을 말합니다. 이 책의 부제가 "신호를 차단하고 깊이 몰입하라." 이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하버드에서 찾은 가장 강력한 성공 공식이 'Block and Deep'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차단과 깊은 몰입' 이 책의 주제들을 보면서 영적으로 같은 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성숙해지려면 'Block and Deep'을 잘해야 합니다. 뭘 차단해야 합니까?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방해하는 것들을 차단해야 합니다. 음란한 거, 악한 거, 패역한 거, 이런 건 아니라도.. 저는 자극적인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금요일에 하는 '궁금한 이야기', '그것이 알고 싶다' 등등을 즐겨보는데.. 제가 요즘 이러한 것들을 끊어야겠다고 작정을 했는데요. 아직 못 끊고 있습니다. 별의별 이상한 사건들이 보도되는 프로를 보다 보니까 이상해 지는 것 같아요 제가. 그래서 이거 끊어야겠다. '그것이 안 알고 싶다. 그것이 알고 싶지 않다.' 제가 안 보려고 애를 쓰는데 중독이 되었는지 잘 안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려면 'Block and Deep'이라고 했잖아요? 뭘 차단해야 합니까? 그것이 꼭 아주 포악한 행동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저희 어머니를 존경하는데 저녁에 일체 TV를 안 보셨어요. "내가 잠들기 전에 귀신 시 나락 까먹는 것들을 보면서, 자면서 그 영향을 받아야 하느냐?"라고 말씀 묵상하고, 암송하고 잠자리에 들어가시는 거.. 이게 바로 'Block and Deep'이라는 정신이라는 것을 나이 들어서 알게 된 부분이거든요.
여러분 영적으로 깊이 가기 위하여 이 세상의 악한 것들, 혼란한 것들을 차단하기 위해 애쓰고 계십니까? 음란한 것들이 괴롭히면 그냥 인터넷을 끊어버리세요. 차단해야 해요. 그런가 하면, 차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Block and Deep' Deep이 무엇입니까? 깊이 몰입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이 악한 세상을 차단시키고 어디에 몰입을 해야 합니까? 무엇에 몰입해야 합니까? 히브리서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뭘 깊이 몰입해야 한다고요?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안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기왕에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데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대고 밀치고 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그런 신앙생활이 아니라 12년 혈루병으로 고통하던 여인이 간절함을 가지고 깊은 몰입을 가지고, 의도를 가지고 주님 옷자락에 손을 대었을 때 12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그 혈루증이 떠나가는 이런 아름다운 일들을 경험하면서 예수 믿으면 좋지 않을까요?
전화기를 개발했던 알렉산더 벨이 했던 말이 있는데요. "초점을 맞추기 전까지 햇빛은 아무것도 태우지 못한다." 태양이 어마어마한 열을 가지고 있고, 빛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여러분 초점을 맞추기 전까지 햇빛은 아무것도 태우지 모한다는 거 아닙니까? 어릴 때 렌즈를 가지고 태웠던 기억이 있거든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Block and Deep'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을 차단시켜봐야겠다. '그것이 알고 싶다.' 더 이상 안 보도록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음란한 거, 이런 거 참을 수준은 아니고요. 젊을 때는 그런 것과의 싸움이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Block and Deep' 차단하고 깊이 몰입하는 가운데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 보니 저 같은 설교자들에게 하는 메시지를 발견했는데 설교학 교수님인 '권호 교수님'을 향한 인터뷰의 질문이 이렇습니다. "변화를 이끄는 설교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우리 같은 목사들이 늘 관심을 질문이겠지요? 그랬더니 교수님이 이런 답을 적어놓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본문 몰입과 깊은 영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본문에 완전히 몰입해야 합니다. 적어도 하루에 2-3시간씩 말씀에 몰입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본문에 몰입하지 않으면 절대 청중을 몰입시킬 수 없습니다." 너무나 동의가 됩니다. 한 주 동안 제가 이 본문 말씀을 어느 정도 깊이 몰입하며, 화장실 갈 때도 본문 프린트한 것을 들고 가고, 잠자리에 들 때도, 일어나면서도 제일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깊은 몰입이 있을 때 성도들이 그 말씀에 은혜를 받는 거 아닙니까?
저는 종종 이 찬양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 전혀 없네' 그런데 여러분 그 수많은 군중들처럼 주님의 몸을 만지고 밀치면서도 이런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거. 그리고 유독 12해를 앓던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면서 그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차이가 이 찬양의 후렴에 있더라고요.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 보라 주의 말씀 의지하여 믿음으로 그물 던져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 없네' 두 가지 조건이 있네요? 첫 번째로는,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어디로? 깊은 데로 그물 던져.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무엇으로? 믿음으로 그물 던져. 옛날에 우리가 부르던 찬송가가 종종 떠오릅니다. '왜 너 인생은 언제나 거기서..' 왜 깊은데 들어가지 못하느냐? 이것을 다루는 찬양인데요. 이런 기억이 떠올려집니다. 청소년들이 바닷가에서 파도가 밀려오면 소리치며 도망치고 그거 몇 번 하고는 해수욕 다녀왔데요. 우리 신앙생활이 그런 거 아닙니까? 발 하나 세상에, 발 하나 주님의 성령의 은혜에 담가놓고 찰싹찰싹 꺼리는데 무릎까지도 오지 않는 물 경험해놓고 해수욕 다녀왔다는 것과 같은 신앙생활이라고 하면 곤란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던져.. 저는 이 깊이의 문제에 있어서 날마다 고심하며 날마다 괴로운 사람이에요. 이렇게 주일 예배가 다 끝나고 월요일 새벽이 되면 마음이 흔쾌하기보다 괴롭고 답답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령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는 깊고도 깊은 말씀이라고 하는데.. 12년 혈루병을 앓고 있는 여인을 단번에 치료하시는 능력의 기록이 성경에 담겨 있는데 왜 나는 설교가 이렇게 얕은가? 왜 설교가 능력으로 나타나지를 않는가? '주의 말씀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주의 말씀 의지하여 믿음으로 그물 던져' 이런저런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말씀을 의지하여 그것을 극복해 내게 되고 치유함을 얻게 되는 이런 일이 왜 잘 일어나지 않을까?
여러분 제가 그런 문제로 괴로워하고 고통할 때,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은 무엇으로 괴로워해야 합니까? 하나님 저도 저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지기 원합니다. 저희가 매 가을마다 특별 새벽 부흥회를 가지면 거기에 특별한 사연을 가지신 분 특별한 열심을 가지신 분이 여러분 나오세요. 부산에서 차를 몰고 오셔서 밤 꼬박 새우고 새벽 1-2시쯤 학교 정문으로 오셔서 밤을 꼬박 새시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강북 어디에서 찜질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너무 빨리 새벽 부흥회가 새벽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찍 와서 기다리는 그런 분들이 꼭~ 여러분 나타나거든요? 오늘 혈루증 앓고 있던 여인이 정말 그런 상태입니다. 정말 몰두하고, 한번 은혜받아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옷자락을 잡을 때 거기에 능력이 나타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이 고침 받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소고요.
그런가 하면 두 번째 여인이 두 번째로 치료받을 수 있었던 요소가 있는데, 행동이 따르는 믿음입니다. 27-28절입니다.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많은 군중들은 여기까지 밖에 없는데요. 이 여인은 그다음 28절입니다.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 일러라' 그는 먼저 생각했고, 깊이 몰입했고 그리고는 깊이 몰입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날 여인이 "야~ 예수님 옷자락만 만져도 병 나을 것을 믿는다' 그리고는 안 만졌다고 치자고요. 병 고침 못 받는 거 아닙니까? 정말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살펴보지 않는 풍토도 개탄스럽지만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다락방 모임 하면 항상 깊이 있는 말씀을 잘 나누는데도 그것이 행함으로 연결되지 않는 많은 경우들을 보는데.. 그게 마음이 아프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주님의 주옥같은 산상수훈의 맨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을 끝내십니다. 마태복음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그런가 하면 26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주옥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이후에 이 말씀을 주시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모레 위에 지은 집처럼 한 순간에 몰락하는 그런 비참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이 들려야 해요. 그리고 그 들려진 말씀에 순종하며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거든요.
2000년이 지난 오늘 이 시대에도 주님이 찾으시는 분은 한결같이 이런 사람입니다. 3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지금도 다 마스크 쓰고 계셔서 인간적인 눈으로 눈에 띄는 독특한 분 아무도 안 계세요. 그러나 이 시간에도 주님은 이 수많은 무리 가운데서 주님께서 유난히 주목하는 분이 계세요. 혈루병 환자와 같이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와 행동하는 믿음으로 삶을 실천하는 자들 아닐까요? 그래서는 저는 이 두 가지. 간절함이 뒤 따르는 믿음, 행동이 뒤 따르는 믿음. 이 두 가지가 능력이 되어서 12년 동안 그녀를 괴롭혔던 혈루병을 치료받는 사건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면..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는 마음 내내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거 아닙니까? 오늘 저는 진짜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이 여인처럼 예배 중에 육신의 질병이 떠나가고 육신의 질병이 회복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 여인처럼 오랫동안 투병하는 성도님들의 육신의 질병이 예배드리는 가운데 깨끗이 고침을 받는 시간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런가하면 마음의 병, 많은 현대인들이 이 병을 갖고 있는데.. 저도 제 자신이 맛이 간건가? 정상인건가? 그게 인생이에요. 모두가 너무너무 힘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데요. 오늘 에배 가운데 그 혈루증을 고치신 능력이 오늘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모든 성도님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주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의 회복이 예배 드리는 가운데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부부간의 이런저런 오해로, 어려움으로 갈등을 겪는 가정 가정의 예배 가운데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런 일들을 우리가 사모한다면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경험하면서 신앙생활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한 가지요. 이렇게 그 여인처럼 눈에 보이는 육신의 질병을 고침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게 있어요. 30절에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전지전능하신 주님이 모르셨을까요? 주님은 이미 그 여인이 자신의 옷자락을 만졌는지 다 아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질문을 공개적으로 하셨을까요?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는 질문은 고침 받은 후에 해야 될 일이 있기 때문에 그녀를 불러 세우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하신 질문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고침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육신의 질병을 고침받은 여인이 해야 할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뭐냐? 능력의 주님과의 관계 맺기입니다. 주님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그랬더니, 그 여인이 부들부들 떨면서 무릎을 꿇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질병을 단번에 고쳐주시는 놀라우신 메시아 주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오는 두려움. 거기에서 오는 경외감입니다. 그렇게 부들부들 떨며 여인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33절 '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여인이여.."가 아니라 "딸아~"입니다. 딸이라고 불러주시는 것, 관계 회복을 위한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병고 쳐 주시는 것과 관계가 회복되어 딸이라 부르시는 것은 다른 차원 아닙니까? 저도 병원을 여러 차례 가보았지만 병이 깨끗하게 나은 것과 의사와 관계를 맺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의사 선생님 성함도 기억이 안 나요. 관계가 없기 때문이에요. 오늘 주님이 진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가진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그것은 도구에 불과하고 그것을 매개로 해서 "딸아~ 아들아~" 이렇게 부르실 수 있도록 관계를 회복하시는 거예요. 요한복음 15:4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히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관계 맺음의 문제고, 주님과의 관계가 맺음이 이루어지면 능력자 되시는 그분의 능력이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한다는 거예요.
저는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제가 예전에 들었던 인터넷 강의가 생각이 났는데요. 이 교수님이 무엇을 주장했느냐? 우리나라기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이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왜? 무기가 비교가 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 당시 일본군의 무기가 무라타 소총이라는 건데요. 영국에서 개발된 스나이더 소총을 일본군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하도록 개량을 해서 총을 만들었는데, '무라타 소총'의 무서움이 유효거리가 800m라는 거예요. 그리고 1분에 15발까지 가능한 총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반해 조선인들이 가지고 있던 총은 화승총으로 유효 사거리가 120m입니다. 임진왜란 때 쓰던 총이 개량이 거의 안된 걸 썼다고 하니 전쟁이 되겠습니까? 적은 800m 거리에서 총을 쏘아대는데.. 그리고 화승총은 장전하기 위해서는 화약을 보충해주어야 하는데 일어서서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일본군들은 없드려서 총을 겨누고 있는데.. 다 죽겠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그 교수님이 예를 하나 드는데 우리 동학 농민군이 화승총을 가지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동학군 3만 명이 일본군에 의해서 살해를 당했는데.. 여러분 우리편 3만명이 죽을 때 일본군 몇 명이 죽었는지 아십니까? 일본군 1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게 우리 군인이 왜소하고 힘이 없고, 싸움을 못해서가 아니라 무기의 차이 아닙니까?
저는 그 강의를 들으면서 목사의 직업병이기도 해요. 이게 영적으로도 그런 게 아닌가? 오늘 여러분 우리가 만든 화승총으로 싸우는데 유효 사거리가 120m밖에 되지 않아요. 그런데 원수 마귀는 800m까지 날아가는 무라타 소총과 같은 공격무기로 대항하니.. 한국교회가 다 무너지고 있는 거 아닙니까? 어제도 신문에 보니까, 여자 목사님이 식당에서 어떻게 해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억장이 무너지는 거예요. 이거 왜 자꾸 이런 비참한 일들이 벌어지냐? 조선 동학농민군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무기로는 100전 100패입니다. 이게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제 너희가 만든 총 내려놓고 성령의 검으로 무장해야 된다. 에베소서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7절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절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여러분 우리의 노력, 32년 목회의 관록 이런 것을 가지고 지난 주일에 4대 비전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이 모든 것을 유효 사거리 120m 인간이 만든 총으로는 100전 100 패합니다. 여기서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든 소총 좀 내려놓지 않으시겠습니까? 성령의 검으로 무장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게 기도예요.
그런가 하면, 두 번째로 고침 받은 후에 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평화의 영향력 안으로 들어가기'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34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여기서 평안은 헬라어 '에이레네'라는 단어로 여러 번 설명해 드린 단어입니다. 헬라어 '에이레네'는 구약의 '샬롬'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는 이 말씀은 "이제 너 병도 고쳐졌으니 맘 편하게 살아라."는 것이 아니고요. 이 말씀의 의미는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들이 누리는 샬롬, 하나님이 주시는 이 샬롬. "이 샬롬을 누리며 살도록 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이 샬롬이 절실한 시대 아닙니까?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이 샬롬은 인간의 것이 아니에요. 인간이 만들어 나누어 주는 거 아니고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의 병 고쳤다고 할렐루야 감사하지만.. 주님이 진짜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과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관계가 회복된 자들이 누리는 샬롬. 평화의 영향력 안으로 주님이 들어가시기를 원하는 거예요.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예수님과의 접촉이 가진 힘'으로 정했는데요. 예수님과의 접촉이 가진 힘은 두 가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는 그분의 능력을 덧입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샬롬을 덧입는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가평 우리 마을을 놓고 수년째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빗대어 설명하자면.. 하나님 가평 우리 마을이 열 두 해 혈루병으로 앓던 여인들이 모인 공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수 많은 의사들을 만났지만 병을 고칠 수 없어 신음하는 연약한 자들이 가평 우리 마을을 방문하고 거기서 치유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드림센터를 사회에 환원하게 될 때에 이 땅에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건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수 많은 젊은이들, 아프고 상처 받아 우울하고, 자살 충동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저 공간을 찾아와 저 공간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치유를 받는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자살하러 한강으로 가다가. "저기 들렀다 가야지" 여러분 이 꿈을 같이 꾸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인간의 얄팍한 계획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샬롬이 드러나는 곳,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곳..
결론을 맺으면서.. 저는 최근에 뉴질랜드의 유학생이 저에게 보내온 메일의 한 부분을 읽어드리며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하는데요.. 그때가 청년이 보기에 제가 엄청 지쳐 보였거나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제가 이 편지를 왜 옮겨 보관을 하고 있냐 하면 너무 감당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목사님 힘내셔야 합니다. 목사님 힘 내주세요."를 먼저 쓴 것이 아니라 편지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저는 뉴질랜드의 오타오 대학을 다니고 있는 김리석입니다. 올해 초에 목사님을 통해서 들었던 올해의 세 가지 목표. 예수님을 기억하고 묵상하고, 예수님의 영향력 안에 거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이 세 가지를 붙들며 뉴질랜드 대학에서 치열한 1학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온 후에 음란하고 타락한 세상의 문화와 대중 흐름에 흔들리지 않도록 매일 새벽마다 기숙사에서 제 형과 함께 모여 기도하며 예수님께 은혜를 구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럴 때마다 참 신기하게 주님께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것을 체험하며 참~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목사님께서 전해주시는 말씀을 통해 때로는 눈물로 기도하며 회개하며 참으로 감사가 넘쳐 기쁜 한 주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제 설교를 통해서 어떤 은혜를 받는지를 설명을 하고는 맨~ 뒷부분에 목사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항상 말씀으로 승리하시기를.. 그리고 평안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목사님을 응원하는 김리섭 올림. 제가 이 편지를 받고 감동을 받은 것이 대학교 1학년. 2001년생이니까, 이 어린 청년이 저를 위로해주려고 편지를 하는데 인간의 말로 "목사님 파이팅, 힘내세요"가 아니에요. 뉴질랜드에 있는 저도 목사님의 말씀이 통로가 되어 그 말씀으로 힘을 얻고 살아가는데, 목사님 힘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목사님 응원하는 많은 성도들 있으니까 꼭 힘 내주 셔주기를 바랍니다. 이게 너무 감동이 되는 거예요.
한국교회가 위기를 만났다느니, 어려움에 빠졌다느니 하지만 이런 소망이 있는 젊은이들이 지금도 일어나기 때문에 저는 여기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말로 하는 위로도 중요하지만, 힘을 내야 하는 명분. 살아야 할 이유. 그리고 하나님을 끊임없이 접촉하면서 그분의 능력을 공급받아야 할 이유, 그분의 샬롬으로 덧입어야 할 이유.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인간의 어떤 공격으로, 무너질 수 없는 이 샬롬을 붙들고 사명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창립 19주년 헌금을 드리는데 가평 우리 마을과 네 가지 비전을 위해서 헌금을 쓸 텐데요. 저는 꿈꿉니다. 오늘 드려지는 이 헌금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어 낼 어린아이의 도시락이 되기를 원합니다. 각각의 작은 정성을 드릴 때, 아버지 이 헌금으로 생명이 살아나고 젊은이들이 꿈을 회복하고, 가평 우리 마을에서 신음하는 자들이 치유가 일어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같이 기도하고 이 헌금을 하나님께 같이 드리기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전하는 저부터가 고민이 많은 이 혈루증 환자 같은 자입니다. 우리 많은 성도님들이 그 여인이 그랬듯 이 의사를 찾아가고 저 의사에게 도움을 구해도 근원적으로 병이 낫지 않아 많은 근심을 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 모였는데, 하나님 오늘의 예배가 사건이 되게 하시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창립 19주년 감사해서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데 이 헌금이 오천명을 먹이고도 남는 오병이어 기적의 도구가 된 어린아이의 도시락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의 삶이 오천명을 먹이고도 남는.. 이 시대와 다음 세대를 섬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덧입는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인도하실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 수많은 무리들 줄지어
기도제목
주님, 몸에 손을 댄 수 많은 군중들이 있었지만 고침을 받은 사람은 딱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몰입하고, 마음의 열망을 가지는.. 정말 주님만이 내 치료자가 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런가 하면 하나님 아버지 머리로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이 내 삶에 주인 되신다는 이 지식이 내 삶의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켜주시어서. 뉴질랜드의 그 어린 대학생, 말씀의 능력을 가지고 음란함과 싸우려고 형하고 기도하는 행함이 우리들에게도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예배 가운데 육신의 질병이 떠나가기를 원합니다. 예배하는 가운데 마음의 질병이 치료되기를 원합니다. 예배하는 가운데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해결될 줄 믿습니다.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12년 고침 받지 못해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혈루병을 해결하려던 여인과 같이 애쓰는 이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그들에게 없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오늘 이 시간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한번 드리는 이 예배의 인생이 변화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한번 집중해서 드려지는 이 예배 하나가 긴~ 시간 동안 우리를 어려움에 빠지게 했던 그 문제가 해결되는 첫출발이 이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하는 귀한 성도님들 오늘 아버지 성령의 강한 역사하심으로 육신의 질병이 떠나감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의 병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오랜 시간 절망의 상태에 빠져 38년 된 병자처럼 '이제는 나는 해결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꽉~ 차 있는 성도들에게 주님 말씀하여 주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육신의 질병이 고침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그 능력자 되시는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내가 만든 유효 사거리 120m 그 소총을 들고 800m의 유효사거리에서 쏘아대는 원수 마귀 앞에서 무기력했던 삶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이제 내가 만든 그 무기 다 내려놓고 성령의 검으로 무장하기로 결단하오니, 성령의 검으로 무장한 주님의 자녀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한 주간 동안 그 강력한 성령의 무기를 가지고 참으로 승리했노라 고백할 수 있는 한주간이 되도록 주님이 인도하시고 역사하여 주셔서, 샬롬으로 이 한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다함없는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감화 위로 교통 충만하심의 역사가 오늘 주신 말씀 마음에 담고 힘 얻어 달려가기를 다짐하며 예배하는 모든 주의 자녀들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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