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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이찬수목사

설교문 I 제자리를 맴도는 신앙 벗어나기 | 이찬수 목사 | 창세기 22장 1-12절 I 분당우리교회 주일설교

by №1★↑♥ 2023. 8. 28.

2023년 8월 20일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 주일설교 창세기 22장 1-12절, 제자리를 맴도는 신앙 벗어 버리기

 

제자리를 맴도는 신앙 벗어나기

 

-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 -

여름을 시작하던 그즈음에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서 영상 하나를 발견했는데 제목이 '제발 좀 간절해져라'에요. 예전에 TV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망해가는 식당이나, 어려움에 처한 식당을 컨설팅해 주었는데, 거기서 굉장히 격하게 나무라는 부분들만 편집한 영상이었어요. 내용이 살벌합니다. "음식 하는 사람이 그렇게 무책임해서 어떻게 할 거야? 아니 간절함이 없어요. 이렇게 하면 망해요. 이건 아니잖아요. 이러면 반년도 못 가!" 이런 내용들로 저보다 훨씬 격하게 소리를 지르면서 그렇게 절규하듯 부르짖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다음, 저장해 놓고 이번 여름 동안에 수 차례 들었습니다. 저도 꾸지람을 듣고 싶었어요. 분당우리교회 25년이 넘었지요. 그동안에 해왔던 방식들로 해 나가도 큰 어려움 없이 현상유지하는 흐름을 갈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는 꾸지람으로 들려서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절박해하며, 거기에 반응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여름 내내 하나님이 제 마음에 절실함, 절박함, 간절함을 제게 주셨는데요? "하나님 분당우리교회가 좀 더 하나님 앞에서 성숙한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담임목사인 제가 더 성숙해지도록 은혜 주시기 원합니다." 이 성숙에 대하여, 성장에 대하여, 거룩에 대하여 여름 내내 제 안에 굉장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잠이 안 오고, 어떨 때는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지고, 2학기는 성숙을 위하여, 성장을 위하여 모든 교회가 힘을 다하여 달려가자는 제안을 해야겠다. 그런 목마름을 가지고 이번 여름을 보냈는데요. 제 마음에 기대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저에게 불붙여 주신 성숙을 향한 뜨거움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옮겨가 붙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이 정도면 됐지요?" 이 정도가 아니라, 더 성숙해지기 원합니다. 더 주님 닮아가기 원합니다. 분당우리교회는 정말 성숙한 신앙인들이 모인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그런 마음을 여러분들도 갖기를 원하는 데요. 그런데 여러분, 성숙을 위한 이러한 목마름을 갖고 계시다면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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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숙은 반드시 순종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히브리서에서 이 아브라함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해 놓은 말씀이 있습니다.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 그러고 보면, 아브라함의 삶의 여정은 순종 훈련입니다. 맨 먼저 초보 시절에 주셨던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도 그거 아닙니까?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어딘지도 몰라요? '보여줄 땅'이에요.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로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그 명령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첫 명령으로 제시하셨거든요? 순종 훈련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의 본문은 실질적인 마지막 마무리에 해당합니다. 맨 마지막 마무리 부분도 결국은 같은 훈련이에요.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그런데요. 제가 이번에 순종 훈련에 대해서 묵상을 하다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 하나를 발견했어요. 이 순종훈련도 단계별로 깊어져야 한다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했던 순종의 훈련을 보십시오.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순종훈련을 시키시는 데 2절에서 부연 설명을 합니다.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여기서 제가 뭘 발견했냐? 창세기 12장의 순종훈련은, "순종하라. 그러면 내가 주겠다." 뭘 주시죠? "땅을 주겠다. 자식을 주겠다. 복을 주겠다. 복의 통로 삼아 주겠다." 초보 시절의 순종훈련은, '순종해라 그리하면 주겠다.'에요. 이에 반해 실질적인 아브라함의 마무리로 갈 수 있는 명령은 결정적인 이 차이가 있습니다. '순종해라 그리하면 빼앗을 것이다.' 창 22:2, (새번역)'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이게 뭐죠? 순종해라? 그러면 빼앗겠다예요. 

이번 여름에 제가 이 공식을 알고 난 다음 제 인생을 여기에 대입을 해보았어요. 젊은 시절에 12장의 순종 훈련은 이루어졌던 것 같아요. 저는 그때 비즈니스를 해서 돈을 많이 벌고, 고아원 하나 차리고, 양로원 하나 차리려는 플랜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거 하지 말고 한국으로 가서 목사가 되어라 해서 순종했어요. 왜? 주시겠다니까.. 여러분 저는요? 진짜 예수님 만나서 대박 난 인생 아닙니까? 예수님 안 만났으면 제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순종해라. 주시겠다. 그래서 너무나 많은 은혜를 주셨는데, 이 여름에 저에게 강력한 명령을 주시는 거예요. 초보단계를 지나 12장을 건너서 22장으로 가라는 거예요. 순종해라. 빼앗겠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사랑하면 질투가 나서 빼앗는 거 아니고, 훈련의 과정이에요. 테스트예요. 아브라함이 창세기 12장 2절에서의 '순종해라 그러면 줄게' 그 과정을 가볍게 통과했고, 그리고 오늘 22장에서 '순종해라 빼앗을 거야.' 이 어려운 고난도의 테스트를 아브라함이 통과를 한 거예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순종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하니까, 창 22:12,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여기 '이제야'가 뭘 의미하나요? 아브라함의 고난도 순종. 성숙한 순종을 인정하는 말씀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들이 되풀이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이제 우리는 자꾸 모태신앙이야. 5대째 신앙인이고, 내가 그래도 권사 목사인데 이런 말 말고요. 한 단계 더 진입하자는 거예요. 여름 내내 갈망하던 목마름. "하나님, 우리 분당우리교회는 진짜 성숙을 위해서 달려가기 원합니다." 여기서 정말 위험한 것은 자기만족이에요. 자꾸 주변에서 우리를 헷갈리게 만들어요. 자꾸 분당우리교회가 크고 좋은 교회라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소리에 귀담아듣기보다는, 순종훈련의 단계를 높이셨으면 좋겠어요. "순종해라 주시겠다."는 말이 익숙하지 않나요? 이것 때문에 상처를 받는 분들이 많아요. 순종하고, 충성하면 주신다더니 왜 안 주시냐? 그다음 단계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한 단계 더 높은 고난도의 순종 훈련은? 순종해라 빼앗겠다.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빼앗기 원하신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 하나님 굉장히 인격적이세요. 그래서 빼앗지 않으세요. 훈련이에요. 그걸 벌벌 떨면서 절대로 순종하지 못합니다. 이 낮은 단계를 벗어나자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분당우리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이제 성숙을 향하여, 성장을 향한 목마름을 가지고 더 깊은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기 원하는데요. 그렇다면, 깊은 순종을 우리가 이루기 위해서 두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1. 로드십(Lordship)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제 깊은 순종의 자리로 갈 수 있는 힘을 얻으려면 로드십을 장착해야 하는데요. 이 로드십이 뭐냐?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잖아요? 이게 영어로 Lord에요. 구약에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불렀던 하나님의 이름이 '아도나이'도 영어로 보면, Lord.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로드십은 간단하게 뭐냐?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해 드리는 것.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해 드릴 뿐만 아니라 내 모든 일을 그분의 뜻에 맡기겠다. 

성경에 이 로드십을 잘 구현한 인물이 사도 바울인데,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드십을 이렇게 잘 설명해 놓은 부분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만큼 주님을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해로운 길로, 망하는 길로 이끄시는 분이 아닌 것을 믿기 때문에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삽니다. 마리아의 언급은 수 없이 했잖아요? 너무나도 고난도의 순종을 요구하실 때의 대답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니이다." 이게 로드십입니다.

 C.S 루이스라는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가 쓴 책 중 '스쿠르테이프의 편지'에서 '스쿠르테이프'가 누구냐? 경험 많은 악마예요. 워낙 노련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초보 악마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전수해 주는 31통의 편지를 모아 놓은 것이 스쿠르테이프의 편지입니다. 그 편지 중 21번째 편지가 이거예요. "인간을 타락시키는 전략이 뭔지 아느냐? 인간을 타락시키는 전략은, 인간들로 하여금 인생의 주인이 나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주입시켜 주는 것이다." 이게 인간을 타락시키는 사단의 방법이라는 거예요.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 때 히트 쳤던 노래 하나가 떠 올랐습니다. 민혜경이라는 가수가 불렀던 '내 인생은 나의 것' 80년 초에 나온 노래인데,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두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 하도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반복을 많이 해서 분석을 해보니까, 사춘기 아이가 항변하는 내용이더라고요. 두 가지 항변이에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맡겨두세요.", 그리고 "나 할 수 있어요. 내가 책임질 수 있으니 그냥 두세요." 가만 보니까, 이 두 가지가 인간이 하나님께 반항하는 요인 아닙니까? 이게 사단의 전략이라는 거예요. 

이 시대에 왜 이렇게 성적으로 타락하느냐? '내 몸뚱이 내 거인데, 내가  쓰겠다는 데 왜?' 이러한 부분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로드십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는요? 우리를 지으신 주인이 계세요.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창조하신 주인이 계시고 그분의 뜻에 나를 맡기는 것이 로드십입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죽여도 나 하나님 신뢰합니다.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여유로울까요? 고난을 당해도 갈등하지 않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주인께서 나를 어떤 메시지를 주시려고 하나? 하나님이 내게 너무 기쁜 일을 주세요. "하나님 나를 이렇게 순탄하게 인도하심 감사합니다." 로드십입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로드십이 깊은 순종의 자리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고난도의 순종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함께 로드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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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호와 이레를 누려야 합니다. 

여러분, 이 로드십을 회복한 사람이 반드시 누려야 하는 것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본문 7절에서 아들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창 22:7,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누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라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8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 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이게 여호와이레 신앙이에요. 결과 13절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그리고 이 깊은 순종이 이루어진 이 사건에 대하여 본인 아브라함이 이렇게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게 14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저는요?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이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 이레를 초등학교 여름성경학교 때 어린이 찬양에서 배웠습니다. '주님 내길 예비하시니 나 기뻐합니다*2 여호와 이레 여호와 이레 주님 내 길 예비하시니 여호와 이레' 신앙생활은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여러분들이 기뻐해야 할 이유를 빼앗기고 있다면, 방치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왜 기쁨이 없을까요?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드리자면, 왜 여호와 이레를 노래로만 부르지 경험하지 못할까요?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를 어떻게 경험했을까요? 아브라함은 깊은 순종의 자리로 갔잖아요. 도저히 로드십이 아니고서는 아들을 바치는 말도 안 될 것 같은 하나님의 명령에 고난도의 순종 훈련을 통과했기 때문에 여호와 이레 아닙니까?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왜 이렇게 재미가 없습니까? 하나도 다이내믹하지 않고, 신앙생활이 무슨 세금 내듯이 안 갈 순 없고.. 신앙생활은 기쁨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여호와 이레. 여러분, 우리가 순종해라 빼앗겠다는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절대 빼앗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오늘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자녀 세댜의 신앙 전수 차원으로 봐야 합니다. 자꾸 오늘 본문을 아브라함에게만 초점을 두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많은 안티들이 이걸로 엄청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삭은 생각 안 하느냐?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겠느냐? 하여튼 성경을 안 읽는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해요. 여러분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이삭이 상처받고 대인 관계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본문 속에서 이삭이 상처를 받은 것이 아니라 정반대입니다. 이삭은요? 아버지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이레를 경험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 삶이 너무너무 여유로워요. 우물을 팠는데요. 누가 시비를 걸면, 줘 버려요. 왜? 여호와 이레. 또 주실텐데.. 

로드십이 내 안에 장착이 되면 안달복달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와도 즐거운 일이 있어도. 누가 날 비난해도.. 그걸 전부 메시지로 받아요.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내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건가? 교회가 아무리 겉으로 보기 화려해 보여도 이건 나와 아무런 상관없어요. 내가 트럭 몬다고 내가 거인이고, 티코 몬다고 소인인가요? 하나님 일 인거 거거든요. 이게 여호와 이레. 하나님 일이에요. 오늘 우리가 이 자녀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이 차원의 문제들이 지금 굉장히 한국교회 어렵잖아요? 부모님들이 먼저 영적성숙을 목표로 하시고요. 기쁜 순종의 자리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 훈련하시느라고 고난도의 훈련을 통과하면, 거기에 여호와 이레가 보여요. 이걸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해요. 

여러분 우리가 즐겨 부르는 이 찬양 아시죠? '내게 허락하신 시련을 통해 나의 믿음 더욱 강하게 자라나고 험한 산과 골짜기 지나는 동안 주께 더 가까이 나를 이끄시네' 그다음 가사 늘 내 마음에 남습니다. '내가 겪는 시험이 어렵고 힘겨워도 내 주님보다 크지 않네..' 로드십이에요. 여호와 이레를 아는 사람이에요. 문제에만 집중하면 내가 너무 초라해져요. 메뚜기 같아요. 오늘도 로드십이에요. 하나님이 날 창조하셨고, 그 하나님이 나를 이끌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겪는 시험이 힘들어 어려워도 내 주님보다 크지 않네.. 그다음 가사 이렇습니다. '내 앞에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 '주가 나로 바다 위 걷게 하네' 제가 이번 여름 중등부 수련회 주제를 보니까, '미라클 제너레이션'이라고 잡았더라고요? 그게 제가 굉장히 와닿았습니다. 

예수 무슨 재미로 믿으세요? 내가 하는 일 하나님도 하시고, 내가 못하는 일 하나님도 못하셔. 기적이에요. 미라클이에요. 여호와 이레. 여러분 제가 호소합니다. 이번 2학기에, 오늘 만이 아니에요. 여호수아서의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데 너무너무 빨리 말씀을 나누고 싶어요. 거룩을 목표로 하고, 성숙을 목표로 하고, 성장을 목표로 하고, 창세기 12장의 순종도 너무너무 귀하고 아름답지만, 나 이제 창세기 22장으로 건너갈 거야. 순종해라. 그러면 빼앗을 거야. 주신자도 취하신 자도 하나님이시니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자리로 나아갈 때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호와 이레를 맛보는 드라마틱한, 다이내믹한 기적적인 신앙생활을 맛보게 되실 줄 믿습니다. 이 꿈을 꾸자는 거지요. 이 꿈을..

아까 '내가 겪는 시험이 어렵고 힘겨워도, 내 주님보다 크지 않네 내 앞의 바다가 갈라지지 않으면 주가 나로 바다 위 걷게 되리' 이 찬양 밑에 어떤 고3 학생이 간증의 댓글을 쓴 걸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들어보세요. 

수험생입니다. 자습하면서 이 찬양을 듣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문제보다 더 큰 믿음을 주신다고 하네요"
그 순간 공부를 핑계로 주님과 조금씩 멀어지고,
세상의 유혹들로 위안을 얻으려던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숨죽여 울었습니다.
처음엔 설교를 통해 비전을 얻었고, 하나님 일을 크게 하고자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 저는 나의 욕심을 구하는 자. 자기 열심히만 사는 자가 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왜 공부를 하는지.. 제가 회복해야 하는 신앙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저를 사랑하고 계시는지 새롭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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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잖아요?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 버렸잖아요. 해야 하는 이유도 없이 하라고 하니까 너무 힘든 거 아니에요? 이 예수 믿는 학생이 공부하다가 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슴이 뜨거워져서.. 내가 이 어려운 공부를 해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내게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기 때문에.. 저는 우리 다음세대가 미라클 제너레이션이 되기를 원하고요. 이를 위해서 우리 부모세대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 성숙해 지자고요. 창세기 22장의 고난도의 순종으로 도전해 보자고요. 

 

결론을 오늘 이렇게 맺기 원합니다. 이번 2학기에 성숙을 향한 목마름을 회복하기 원해요. 영적으로 내가 하나님 성숙해지기 원합니다. 거룩을 추구하기 원합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스페셜 일러스트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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