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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story/이찬수목사

성탄주일예배I 누가복음 2장 10-14절 I 큰 기쁨의 좋은 선물 I 이찬수 목사 I 분당우리교회 I 성탄절 설교문

by №1★↑♥ 2023. 12. 19.

분당우리교회 성탄주일예배, 누가복음 2장 10-14절, 큰 기쁨의 좋은 선물, 이찬수 목사, 성탄절 설교문, 2020-12-25

 

큰 기쁨의 좋은 선물

코로나 19 백신이 개발이 되고, 미국민들을 대상으로 접종이 시작되는 것을 뉴스를 통해서 보게 되는데 우리나라도 마찬 가지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백신을 구해보려고 정부의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큰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왜 전 세계적으로 백신을 구하려고 저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까? 1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안 해본 게 있습니까? 거리두기 1 단계니, 2 단계니 하면서 식당과 학교 문도 닫아 보기도 수능 시험을 연기해보기도 하고 지금도 다들 얼마나 애쓰고 있습니까? 그래봐야 효과가 없고 점점 더 확산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만 해도 하루에 20만 명 육박하는 인원이 감염이 되고 있다 해요. 이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은? 미국에서 지금까지 발병된 확진자 숫자가 78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뭐, 아무리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캠페인을 해도 우리 노력으로는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백신 개발과 접종에 모든 힘을 기울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하며 기념하는 성탄절 예배를 준비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냐? 코로나 19가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백신이 필요하다. 치료제가 필요하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범죄 해서 죄에 오염된 인간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버린 인간의 상태. 그래서 마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처럼 아버지 품을 떠나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며 길을 잃어버렸듯이 우리 힘으로는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전 세계가 가치관의 갈등과 혼란과 각 가정마다 예수 잘 믿는 가정일수록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이 크다고 해요. 우리가 이 나라가, 이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혼란스러운데.. 인간의 어떤 지도자가 나와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힘으로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리에게 영적인 백신, 영적인 치료제가 필요하다. 이게 성탄절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노력을 해도 이 세상은 근원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인 백신과 영적인 치료제가 되어 주셔서 이 땅에 오신 날이 성탄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여기 나오는 '구주'라는 말은 '소테르'라는 단어인데, 자료에 보니까 고대 세계에서 '소테르'는 병, 전쟁, 사고와 같은 세속의 악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존재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당시로 말하면 로마 황제를 가리킬 때도 '소테르'라는 단어를 썼다고 해요. 이런 것들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단어를 천사들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게 뭘 의미할까요? 예수님은 죄와 심판의 위험에서 건져 주시는 구원자이시다. 이것을 묘사하기 위해 당시에 통용되던 '소테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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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힘으로는 죄에 감염된 상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친히 백신과 치료제가 되어 주셔서 이 땅에 오신 날이 성탄절의 의미라고 정리를 해드린 거 아닙니까? 이런 의미에서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선물이라는 것이 뭘 의미합니까? 우리의 노력 없이 얻게 된 것이라는 거예요. 백신 치료제를 우리가 만들었습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백신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거기에 우리가 희망을 두는 것처럼 우리가 이 죄의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원수가 되어버린 문제, 아버지를 떠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는데 하나님의 선물이에요. 에수 그리스도가 친히 이 땅에 오셔서 내가 너희들의 치료제가 되어줄 게, 백신이 되어 줄게. 그래서 우리가 이 날을 선물처럼 기뻐하고, 감사하며 감격하며 보내자는 거 아닙니까? 이런 차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 성탄절마다 세 가지를 다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제가 기억하기 쉽도록 단어로 정리를 해봤는데요.

 

 1. 수용.

첫번째, 단어로 설명하자면 수용입니다. 미국에서 지금 백신이 개발이 되어서 모든 나라들이 부러워하고 있는데 정작 미국 사람들 중에는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고 합니다. '코로나 19는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병이다.'라는 말이 퍼져 있어요. 그런가 하면, "정치인들을 통제의 수단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백신을 맞으면 안 된다." 심지어는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몸의 칩이 박힌다."는 이런 것들 때문에 백신을 거부하는 미국 사람들이 엄청 많다고 해요. 아무리 백신이 개발되면 무엇합니까? 아무리 이 땅에 예수가 오셔서 치료제가 되시고, 백신이 되어주신다는 호의를 베풀어 주신다 한들 거부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첫 번째로 제시하는 단어가 '수용'입니다. 

로마 전체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분봉왕이라는 자리 때문에, 눈이 거기에만 박혀 있다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영접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을 벌인 거 아닙니까? 이걸 우리가 점검하셔야 해요. 나 모태신앙이고, 나 교회 오래 다녔어도 진짜 내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의 병듦을 해결해 주시는 구세주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고 있는가? 점검하셔야 해요.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 영적인 치료자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근원적인 문제가 치료되고 해결될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수용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많은 의미가 있지만, 오늘의 본문을 가지고 하나만 설명을 드리자면 눅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여기에 나와 있는 '주'는 헬라어로 '퀴리오스'인데, 글자 그대로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뭐가 예수님을 수용하는 것이냐? 마치 노예가 주인에게 자기 삶을 온전하게 맡기는 것처럼 이 땅 위에 오신 백신, 치료제, 내 인생을 변화시켜 주신다는 그분을 수용한다는 것은? 헤롯 왕처럼 내가 영유해 가는 인생길이 아니라,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내 인생을 맡겨 드리는 것. 그분을 내 삶의 통치자로 삼는 것. 그분을 내 삶의 주권자로 인정해 드리는 것이 주님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수용이라는 단어를 묵상할 때, '나는 정말 주님을 내 삶의 통치자로, 주권자로 인정해 드리는가? 아니면, 여전히 헤롯 왕처럼 내가 일군 그 무엇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는 영역은 없는가?' 돌아보자는 거예요.

 

 

 

 

 

 2. 누림

그런가 하면,, 기억해야 할 할 일이 있는데, 두 번째로는, 누림입니다. 선물 받은 사람이 할 일은? 그 선물을 수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누려야 해요. 아무리 선물 받아도 창고에 넣어놓고 개봉도 아니면 무슨 소용인가요? 누려야 합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무슨 뜻인가요? 적극적으로 화평을 누리자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더 이상 원수의 관계가 아니다. 나는 가출한 둘째 아들 같지 않다. 하나님을 떠나 내 멋대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하나님과 화해한 인생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뭘 누린다고요? 화평이에요.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려야 해요. 

어느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해요. 소설의 주인공인 어떤 젊은 청년이 현명한 노인을 찾아가서 자기 소원을 부탁합니다. "건강을 주세요. 재물을 주세요. 미모를 주세요. 재능을 주세요. 권력을 주세요. 명예를 주세요.' 많은 것들의 번호를 매겨서 요구를 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현명한 노인이 청년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여보게 젊은이 자네가 구하는 이 모든 것들을 다 누린다고 해도 평안이 없이는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네." 무슨 뜻인가요? 진짜 중요한 것은, 구하지 않는다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많은 것들을 거머쥐고 있다 해도..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아닙니까? 이 모든 것들을 결정적인 역할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오는 샬롬, 마음의 평안이라는 거예요. 마음의 평안이 없는데, 물질, 재능, 건강, 미모, 명예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것은 분당우리교회 담임목사로써 제가 뼈저리게 느끼는 거예요. 사람들이 아무리 우리 교회에 등록을 하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제 설교를 들어도 제 안에 평안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누려야 해요. 뭘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누려야 해요. 그 안에서 오는 평안, 샬롬을 누려야 한다는 거예요. 

이런 점에서 이사야 61:3(새번역),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주시며.. 무슨 뜻인지 아시잖아요? 슬픔의 재 대신에 꽃으로 장식된 화관. 기쁨을 표현하는 거 아닌가요? 그다음에..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바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이 가득 차게 하셨다. 우리가 아무리 수용 노래를 불러도 수용된 것들이 내 삶 속에서 실제적으로 능력으로 나타나야 그래야 누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예수 오래 믿었다고 해도 그분으로 인해서 내가 누리는 이 평안, 기쁨이 없다면 그건 병든 상태입니다. 뭐가 여러분의 화평을 방해하고 있는지 성탄절인 오늘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롬 12:18-,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전방위적으로 위에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 대인관계 속에서 아량이 넘쳐나고, 너그러움이 나오고 넉넉한 여유가 생길 수 있는 건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에게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관계적인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찬양이 계속 흥얼거려집니다. 찬송가 293장, 1. 주의 사랑 비칠 때에 기쁨 오네 근심 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기도하게 하시며 희미한 것 물리쳐 주의 사랑 비칠 때 기쁨 오네.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닙니까? 근심 걱정 물러가고, 그 자리에 기쁨이 넘치는 것,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찬송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후렴입니다.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충만하게 비칠 때에 찬송하네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화평함과 기쁨주네 그 큰 사랑. 그 큰 사랑이 내 맘 속에 임할 때에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오고 찬양이 찾아오는 거 아닙니까? 왜 그 큰 사랑이라고 표현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큰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 큰 사랑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바로 예배가 능력이에요. 오늘도 치료자 되시는 주님이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의 그 큰 사랑이 함께 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기쁨이 회복이 되는 은혜와 역사가 일어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나눔

마지막 세 번째로, 기억해야 할 단어는 나눔입니다. 눅 2:8-10,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여기 보면, 두려워 떨고 있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무서워 말라. 안심하라. 그리고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치료자 되시고, 백신이 되신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고 수용하기까지 누군가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었기 때문 아닙니까? 누군가가 이 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에 부지불식 간에 혜택을 누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제가 왜 목사가 되기로 결단했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주일학교 선생님과 많은 어른들이 또 미국에서 방황할 때 그 교회에서 만난 많은 분들의 그 사랑 때문에 제가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나도 이것을 누군가에게 나누고자 목사가 된 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이 기쁜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해야 해요. 그뿐 아니라, 그 이웃 섬김의 문제. 첫 번째 항목인 수용, 두 번째 항목인 누림. 이게 내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반드시 흘려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고해 드린 대로, 이번 성탄헌금은 우리가 대면으로 함께 모이지도 못하지만 이번에 이런 목표를 가지고 이웃을 섬기는 데 쓰여지면 좋겠다. 미자립교회 난방비를 지원하고, 쌀을 또 지원해 드리고 선교사님들에게 마스크 보내기를 하고, 저소득 결식아동을 지원하고, 미혼모 후원하는 일로 섬기고, 상설로 이삭 줍기 헌금을 하고 있는데 교회 내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쓰면 좋겠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을 드렸더니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오늘인데, 성탄헌금을 이 시간에 예배 마치고 드리기로 했는데, 무려 어제까지 4억 원이 넘는 헌금이 들어왔다는 거예요. 이곳저곳에서 미국에서 어떤 교포분이.. 유산으로 받은 것 중의 일부를 드려서 큰 헌금을 해주시고, 이게 너무 감동이 되는 거예요. 누리고 계시는구나?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고 계시기 때문에 애를 쓰심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고, 그런가 하면 어떤 분은 인간적으로는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심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연약한 이들을 위해 물질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모아주셔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교역자들에게 팀을 만들어서 이 헌금이 한 푼이라도 허튼데 쓰이지 않도록, 그리고 가장 적절하게 쓰여질 수 있도록 몇 명의 교역자들이 연구하며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수용한 모든 가정과 모든 영혼 영혼마다 주님이 주시는 많은 것들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안을 비롯해서.. 그리고 내가 누리는 많은 것들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나누고 베푸는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이렇게 맺기 원합니다. 3가지 단어를 기억하십시오. 영적인 백신, 영적인 치료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첫 번째, 수용. 두 번째, 누림. 세 번째, 나눔. 사실 제가 오늘 설교를 길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단에 섰어요. 왜냐하면, 크리스마스는 아이들과 함께 기뻐하는 자리 아닙니까? 일찍 마치고 아이들과 연이어서 기쁜 시간을 갖기 원해서인데요, 다 함께 모일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교역자들과 더불어 잔치 같은 기쁨의 성탄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저를 따라 함께 선포한 다음 말씀을 마칩니다.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 말씀이 온전히 구현되는 그런 성탄절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너무나 당황스러운 성탄절입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집 밖으로 외출을 하지 말라는 강권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본당에 성도들이 함께 할 수 없는 성탄을 드리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 내 안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그분을 내가 수용했기 때문에 코로나로 19로 그것들이 위축되지 않는 줄 믿습니다. 비록 예배당에 모여 뜨거운 열기로 함께 예배드릴 수 없다 할지라도 아버지 이 시간 각 가정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들 마다 개입해 주심으로 거기에 기쁨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장들을 붙들어 주시고, 어머니들을 붙들어 주시고, 자녀들을 열린 마음으로 인도해 주셔서 온 가정 가정이 그동안 미루어왔던 대화의 물꼬가 터지고, 사랑의 고백이 일어나고 서로가 용서하고 용납하는 일들이 가정 가정 안에서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역자들과 더불어 어린 자녀들과 함께 기뻐하기 위한 순서들이 준비되어 있는데 이것들을 나눌 때에 성령께서 개입해 주시고 은혜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인도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함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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